누구도 비켜갈 수 없는 ‘정권 실세 흑역사’
  • 유창선 시사평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6.07 16:00
  • 호수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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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창선의 시시비비] ‘총선 병참기지’ 사령탑 양정철의 광폭 행보, 스스로가 논란 불러

‘양비(양정철 전 청와대 비서관의 약칭)’가 다시 언론을 타고 있다. 19대 대선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탄생시키고 ‘제 역할은 여기까지입니다’라는 제목의 문자를 남기고 떠났던 그가 다시 정치의 한복판에 들어선 모습이다. 양 원장은 더불어민주당의 정책연구소인 민주연구원 원장직을 맡아 관심을 모으더니 이내 서훈 국정원장과 만난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란에 휘말렸다. 하지만 양 원장은 위축되지 않고 박원순 서울시장과 이재명 경기지사를 만나는 광폭 행보를 이어갔다. 민주당 싱크탱크인 민주연구원과 수도권 싱크탱크인 서울연구원·경기연구원 간의 업무협약 체결을 계기로 마련된 만남이었다고 하지만, 양 원장이 ‘대권 잠룡’들과 잇따라 만남을 갖는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그의 일거수일투족이 언론의 관심사가 되고 있는 것은 문재인 정부 탄생의 최전선에 섰던, 대통령의 최측근이라는 배경 때문이다. 양 원장의 정치권 복귀는 갑작스러워 보이기는 했지만 이미 예고된 것이었다. 일본·뉴질랜드 등을 떠돌며 외국에 나가 있던 시기에 ”더 모질게 권력과 거리를 둘 것”이라고 했던 그였다. 지난해 초 출판기념회를 위해 귀국했을 때 “아름다운 복수를 위해 5년간 백수로 남을 것”을 다시 한번 다짐했다. 하지만 양 원장이 여러 무대와 언론에 등장하던 순간부터 그의 정치 복귀를 시간문제인 것으로 받아들인 사람들이 많았다. 물고기는 결국 물을 떠나서는 살 수 없었던 것이다.

양정철 민주연구원장이 6월3일 박원순 서울시장과 서울시청 시장실에서 악수를 나누고 있다. ⓒ 시사저널 이종현
양정철 민주연구원장이 6월3일 박원순 서울시장과 서울시청 시장실에서 악수를 나누고 있다. ⓒ 시사저널 이종현

오얏나무 아래서 갓끈을 맨 형국

이제 그는 민주연구원 원장직을 맡아 집권 민주당의 내년 총선 전반을 주도하겠다는 구상을 내비치고 있다. 양 원장의 일성은 “민주연구원이 총선 승리에 꼭 필요한 병참기지로서 역할을 하겠다”며 “좋은 정책과 좋은 인재로 승부하는 데 역할을 하겠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양 원장의 취임 이후 연구원 부원장에 김영진·이재정·이철희 등 세 명의 현역 의원과 백원우 전 청와대 민정비서관, 이근형 전략기획위원장이 선임됨으로써 민주연구원의 당내 위상은 순식간에 강화되었다. 원외 인사 양 원장이 3명의 현역 의원을 부원장으로 거느리는 체제가 정상적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그가 문 대통령의 ‘최측근 실세’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원래 정당마다 있는 정책연구소들은 그리 정치적 힘이 실리는 기구는 아니었다. 당의 싱크탱크로서 주로 정책과제들을 수행하는 역할을 해 왔다. 그런데 양 원장이 들어서면서 그 같은 통념은 무너지게 되었다. 양 원장의 공언대로라면 내년 총선에서 그는 선거전략, 정책개발, 인재영입 등 선거 전반을 주도할 것으로 보인다. 민주연구원이 당 선대위급 연구원이 되는 셈이다. 하지만 당내 공론화 과정을 거치지 않은 그 같은 구상이 당내 권력 갈등을 유발할 가능성은 상존한다.

양 원장은 권력과 거리를 두겠다고 했지만, 그 자신이 결코 작지 않은 권력으로 자리하게 되었다. 언론이 양 원장의 행보에 관심을 갖는 것은 문 대통령의 복심(腹心)인 그가 여당 내의 새로운 권력으로 부상했음을 읽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양 원장이 서훈 국정원장을 만난 사실이 뉴스거리가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가 서 원장을 4시간가량 ‘독대’했다는 보도가 나간 직후 ‘사적인 지인 모임’이었다는 해명과 항변이 있었지만, 여당의 총선 병참기지 사령탑과 국정원장 사이에는 불순한 상상을 불러일으키는 많은 연결고리들이 가능하기에 논란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설마하니 촛불 시민혁명으로 들어선 문재인 정부의 집권여당이, 그것도 문 대통령의 최측근이 국정원과 불순한 내통을 하겠느냐는, 믿어 달라는 식의 설명만으로는 그 같은 논란을 잠재우기 어렵다.

민주연구원을 총선의 병참기지로 만들겠다는 양 원장이 취임하자마자 만난 사람이 하필이면 국정원장이었으니, 오얏나무 아래서 갓끈을 맨 셈이 되었다. 아무리 국정원이 정치적 중립을 선언하고 국내 파트를 축소하는 개혁을 했다 해도, 우리 정치의 흑역사는 이 같은 만남을 순수하게만 받아들일 만큼 여유롭지 못하다. 민주주의는 제도와 규칙으로 운영되어야지, 사람의 선의를 믿고 모든 것을 맡겨서는 안 된다. 따라서 총선을 불과 10여 개월 남겨둔 시점에 여당의 총선 지휘부와 국정원장이 긴 시간 대화를 나누는 자리를 가졌던 것은, 두 사람의 사적 인연이 무엇이었든 간에 부적절해 보인다. 두 사람의 사적 인연이 그럴 정도로 긴밀한 것이라면, 그러니까 만남을 더욱 자제했어야 했다는 역설이 가능하다.

양 원장이 6월3일 경기도청에서 이재명 경기지사를 만나 인사를 나누고 있다. ⓒ 연합뉴스
양 원장이 6월3일 경기도청에서 이재명 경기지사를 만나 인사를 나누고 있다. ⓒ 연합뉴스

일과 이후의 삶 주시받는 것까지 감수해야

대통령 만들기의 일등공신들이 정작 정권을 잡은 후에는 수난의 계절을 맞은 사례가 많다. 워낙 부정이 많았던 보수정권들의 경우는 차치하고라도, 김대중 정부에서의 동교동계 가신들이 그랬고 노무현 정부에서의 ‘좌희정-우광재’가 그러했다. 대통령의 최측근일수록 집중적인 감시와 견제의 대상이 되고 누구보다 엄정한 평가를 받곤 한다. 임기가 보장된 대통령 대신 정치적 제물이 되기도 한다. 그에 맞서 억울하다고 항변하는 것은 그리 현명한 대처법은 되지 못한다. 당사자로서는 부당한 정치공세나 흔들기로 여길 때가 많겠지만, 대개는 아궁이에 불을 때니까 연기가 난 경우가 많다. 그러니 정권의 실세 소리를 듣던 최측근이 하루아침에 몰락하고 마는 것이다. 그것이 우리 정치의 흑역사였다.

양 원장 또한 예외는 아닐 것이다. 그가 있는 곳이 문 대통령 주변이든 당이든 상관없이 대통령의 복심으로 인식되는 한, 언행 하나하나를 지켜보는 눈들은 집중될 것이다. 거기에다 대고 “일과 이후 삶까지 이토록 주시받아야 하느냐”고 항변하는 것은 그리 현명한 대응방식은 아닌 듯하다. 정치, 그것도 총선의 한복판에 들어섰다면 일과 이후의 삶까지도 주시받는 것을 감수해야 한다. 정치의 속성을 알고도 남을 양 원장이라면 누구에게 책잡힐 일이 없도록 자신을 다스리는 것이 우선이다.

이제 양 원장은 광흥창팀을 이끌던 시절의 단순한 참모가 아니다. 그가 인정하든 안 하든, 양 원장 자신이 여권의 한 권력이 되고 있다. 갈수록 많은 시선이 그를 주시할 것이다. 양 원장은 문 대통령을 대신해 감시받고 비판받는, 때로는 대신 희생해야 할 존재가 될지도 모른다. 아무리 문 대통령과는 떨어져 당에서 활동한다 해도, 총선정국에서 그의 언행들은 문심(文心)으로 해석될 것이다. 몸을 낮추며 있는 듯 없는 듯하게 자기 역할을 해 나가는 것이 자신을 지키고 문 대통령을 지키는 길이 될 것이다.

양 원장은 지난해 초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문 대통령은 안개꽃 같은 분이다. 더불어서 같이 다른 꽃이 빛나게 하지만 사실은 그 꽃이 없으면 안 되는 그런 꽃 말이다.” 바로 그 안개꽃같이 다른 꽃을 빛나게 하는 역할이 지금 ‘양비의 몫이 아닐까. 서훈 국정원장과의 만남으로 빚어진 논란이 정치로 돌아온 그에게 쓴 교훈이 되기를 바란다. 급히 달리는 차가 사고를 내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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