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 뭐부터 들으실래요
  • 노혜경 시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6.08 16:00
  • 호수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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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혜경의 시시한 페미니즘] 퀴어퍼레이드 흥행과 흐지부지된 ‘장학썬’

한때 악당이 등장하는 서부영화 같은 데 단골로 등장하던 장면이 있다.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이 있습니다. 어느 것을 먼저 들으실래요?”

당연히 등장하는 소식이라는 것은 야누스의 두 얼굴처럼 같은 사건의 양면일 때가 많다. 예를 들면 “자네가 엄청난 보험금을 타게 되었네(좋은 소식), 자네 집이 몽땅 타버렸거든(나쁜 소식).”

유머 또는 역설의 소재로 등장하는 양면 소식과 달리, 현실의 소식들은 변방 늙은이의 말을 둘러싼 사건(새옹지마)처럼 찾아올 때가 많다. 나는 양면 소식보단 새옹지마 이야기를 좋아하는 편인데, 이유는 페미니스트의 눈으로 세상을 보다 보면 세상살이가 좀 더 새옹지마 같기 때문이다. 지난 주말에 얼렸던 퀴어퍼레이드(퀴퍼)만 해도 그렇다. 작년의 퀴퍼는 아마도 새옹의 말이 사막으로 도망간 일과 비슷했을 것이다. 그러나 올해의 퀴퍼는 그 말이 준마를 데리고 돌아온 것처럼, 핑크닷이라는 새로운 형식의 축제도 하나 더 꾸려낼 수 있었는 데다 처음으로 퍼레이드가 광화문까지 진출하기도 했다. 핑크닷이란, 성소수자를 상징하는 분홍 야광봉을 들고 사람들이 둥글게 모여 일제히 불을 켜서 커다란 동그라미를 만드는 플래시몹이다. 몇 년 전 싱가포르에서 처음 했다고 한다. 올해 퀴퍼의 전야제 행사로 핑크닷을 만들기로 하고 시청광장에 모인 사람들은 주변 전광판의 방해를 뚫고 아주 예쁜 커다란 분홍 동그라미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심지어 올해의 퀴퍼엔 혐오세력이라 불리는 방해자들도 작년의 그 기세등등했던 모습과는 상당히 달라 보였다. 싸우면서 정든다는 말이 있긴 하지만, 하느님 보시기에 좋은 것을 인간이 혐오하기는 매우 힘겨운 법이다. 자꾸 보다 보니 성소수자들에 대한 무의식 수준의 이해가 깊어진 것은 아닐까? 그런 것이라고 그냥 우기련다.

성소수자가 아닌 페미니스트들이 성소수자와 연대하는 이유는 아주 단순하다. 어떤 성적 지향을 지녔든 관계없이 같은 사람이라서다. 차별에 반대한다면서 가장 근원적인 성차별을 외면할 수 있다면 참 사악한 능력일 것이다. 좋은 소식 이야기를 먼저 했다. 퀴어퍼레이드가 점점 참가자가 늘어나고 일시적이나마 자유와 연대의 행복을 만끽하는 축제가 되어 간다는 소식. 장차 우리 사회가 직면해야 할 문제들, 양극화에서 분단 문제에 이르는 혐오와 차별의 목록들을 해결해 나갈 실천가들이 이렇게 준비되고 있다는 소식.

20회 퀴어퍼레이드가 6월1일 서울광장에서 열렸다. ⓒ PENTA PRESS
20회 퀴어퍼레이드가 6월1일 서울광장에서 열렸다. ⓒ PENTA PRESS

아무리 버텨도 세상은 변한다…문제는 ‘속도’일 뿐

그렇다면 나쁜 소식은 어떨까. 변방 늙은이의 아들이 말에서 떨어지듯이, 온 국민의 속을 긁어놓은 ‘장학썬(장자연·김학의·버닝썬)’ 사건이 어느 하나 제대로 된 결론에 접근도 못 한 채 흐지부지되고 있다. 수사권이니 기소권이니를 지닌 검찰은 아무 일도 안 하기로 함으로써 세상의 변화를 막고자 하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현재 그들이 지닌 권력 때문에 이것은 정말 나쁜 뉴스다. 검찰이 우리의 다리를 부러뜨렸다.

그러나, 새옹은 이런 순간에 슬퍼하거나 염려하지 않았다. 나도 이 일이 전화위복이 될 수 있도록 생각을 모아보고자 한다. 예전에 채현국 선생이 하셨던 명언을 본받아, “공권력을 지닌 자들이 얼마나 너절한지를 보아두자. 이들이야말로 잠재적을 넘어 적극적 성범죄자들과 그 은폐자들임을 자라나는 청년들에게 보여주자.” 아무리 버티어도 세상은 변한다. 문제는 ‘속도’일 뿐. 좋은 소식은 꼭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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