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무 前LG회장, 평양서 폭탄주 먹은 이유는?
  • 송창섭 기자 (realsong@sisajournal.com)
  • 승인 2019.06.12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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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특보가 전한 2000년 ‘6‧15 남북정상회담’ 뒷이야기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 및 양측대표단이 2000년 6월15일 오후 백화원 영빈관 1호각에서 열린 대표단 환송오찬에서 활짝 웃으며 건배하고 있다. ⓒ연합포토
2000년 6월 15일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 및 양측대표단이 백화원 영빈관 1호각에서 열린 대표단 환송오찬에서 활짝 웃으며 건배하고 있다. ⓒ연합포토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은 ‘낮은 단계의 연합국가’가 생긴 한반도가 하나의 통일국가로 발전하기까지 얼마나 걸린다고 봤을까.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특보(연세대 특임명예교수)는 6월11일 국회 한반도평화포럼 주최로 열린 '6‧15 남북정상회담 19년 특별 좌담회‘에 참석해 비화를 털어놓았다. 문 특보에 따르면, 당시 자리에서 김 대통령은 '30년 후', 김 위원장은 '50년 후'라고 내다봤다.

이밖에도 문 특보는 19년 전 평양에서 열린 사상 첫 남북정상회담의 뒷이야기를 여러 가지 털어놓았다. 문 특보에 따르면, 당시 북한은 남측 협상단이 평양에 오기 전 “다른 언론사는 다 들어와도 조선일보와 KBS는 절대 올 수 없다”고 완강하게 버텼다. 이에 우리 정부는 “조선일보와 KBS 등 특정언론사의 방북을 불허하면 우리도 갈 수 없다”고 맞불을 폈다. 양측 간 팽팽한 기싸움은 북한이 두 언론사에 대한 방북을 허용하면서 일단락됐다.

문 특보는 또 “방북 첫날 북한은 대외 공식 수반인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과 김 대통령과의 만남을 주선했는데, 그 자리에서 김 상임위원장은 교조적인 발언을 해 김 대통령을 불편하게 했다”고 말했다. 서울로 돌아오기 전날인 6월14일 남북협상단은 6‧15 공동선언문의 서명을 누가 하느냐를 놓고도 실랑이를 벌였다. 북한은 공식 국가수반인 김영남 위원장이 서명하겠다고 나섰고, 우리 정부는 북한의 최고권력자인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직접 나서야 한다고 맞섰다. 양측의 팽팽한 줄다리기는 결국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이 선언문에 서명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김대중 "낮은단계 연합국가", 김정일 "연방제 통일" 팽팽히 맞서

“나를 포함해 특별수행단이 모란봉 초대소에 대기하고 있었는데 14일 밤 11시까지 협상결과가 나오지 않아 조마조마 했다. 얼마 후 박재규 통일부장관이 협상이 타결됐다는 소식을 전해왔고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만세를 외쳤다. 그러자 함께 평양을 찾은 기업인 대표 구본무 LG그룹 회장이 발렌타인 양주 10명을 쓰윽 꺼내는 거 아닌가. 구 회장이 갖고온 양주와 미지근한 용성맥주로 폭탄주를 만들어 먹었던 기억이 난다.” 문정인 특보가 밝힌 비하인드 스토리다.

1차 남북정상회담에는 우리 측에서 고은 시인, 강만길‧차범석 교수, 정몽준 의원, 정몽헌 현대그룹 회장, 김용운 IOC 위원, 장상 전 국무총리서리, 손길승 SK그룹 회장, 구본무 LG그룹 회장, 윤종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총 21명의 특별수행원이 함께 했다.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특보가 6월11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6.15 남북정상회담 19주년 특별좌담 '6.15 공동선언과 한반도 평화'에서 이야기하고 있다. ⓒ시사저널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특보가 6월11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6.15 남북정상회담 19주년 특별좌담 '6.15 공동선언과 한반도 평화'에서 이야기하고 있다. ⓒ시사저널

이날 간담회에서는 6월15일 송별오찬 때 벌어진 해프닝도 소개됐다. 전 수행단원이 모인 자리에 참석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의자에 앉자마자 “방금 전 국방위원회를 소집해 남조선에 대한 적대적 행위를 하지 않는 것으로 결정했다. 일부 국방위원이 반대했지만, 그렇게 결론났다”고 통보했다. 문 특보는 6월11일 좌담회에서 “송별회에서 김 위원장이 박권상 당시 KBS 사장을 바라보며 ‘난 국영방송만 보는 습관이 있다’고 말해 MBC, SBS 관계자가 머쓱해 했던 일도 기억이 남는다”고 당시를 술회했다. 협상 과정에서 김 위원장이 주한미군 철수와 연방제 통일을 요구하자 김 대통령이 예멘을 예로 들며 사람과 물자가 자유롭게 오가는 연합국가를 통일국가의 전 단계로 설득한 일화도 소개됐다.

문 특보는 “6‧15공동선언은 평화와 번영이라는 지평을 열어준 사건”이라면서 “북한이라는 특수 체제와의 협상에 있어서 현실적으로 정상간 톱다운 회담이 효과적일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북한의 정책구조상 비공식적 접촉이 불가피함도 강조했다. 최근 남북 간 물밑접촉에 대해 문 특보는 “이제는 북한이 결단을 내려야 할 때다. 만약 6월 기회를 놓치게 되면 상황이 상당히 어려워질 수 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아무리 북핵 문제에 관심이 있다고 해도 (한국에) 수시로 올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며 트럼프 대통령 방한 전인 6월 북한이 행동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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