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문 총리설’에 與도 野도 웅성웅성
  • 송창섭 기자 (realsong@sisajournal.com)
  • 승인 2019.06.17 13:00
  • 호수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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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총선 ‘충청 표심’ 노리는 중원싸움 전략…여권 내부 "오히려 지지층 반발 클 것"

여의도 정가에 ‘반기문 총리설’이 불거져 화제다. 올 하반기 이낙연 국무총리를 비롯, 내각에 포진한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속속 당으로 복귀할 거라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반기문 카드’의 실현 가능성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낙연 총리가 총리직을 사퇴하는 시점은 당초 7월말이 유력했다. 이 총리는 6월28~29일 일본 오사카에서 열리는 G20(주요 20개국) 정상회의를 전후로 북·미, 남북 정상회담 등 굵직한 현안을 마무리한 후 총리직에서 물러나 본격적으로 내년 4월에 있을 총선 레이스에 뛰어들 것으로 예상됐다.

그랬던 사퇴 시점이 1~2개월 뒤로 늦춰지는 분위기다. 이렇게 되면 개각 시점은 국정감사 기간과 겹친다. 이럴 경우 장관이 바뀌는 상임위에선 국정감사와 장관 청문회를 동시에 준비해야 한다. 두 가지 현안이 한꺼번에 몰리면서 장관 청문회 준비가 소홀해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정부 입장에선 장관 낙마와 같은 대형 악재가 터질 가능성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실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이렇다 보니 벌써부터 교체가 거론되고 있는 상임위에서는 ‘부실검증’ 이야기가 나온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3월21일 청와대 춘추관 대브리핑룸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만난 뒤 ‘미세먼지 해결을 위한 범사회적 기구’ 위원장을 수락한 것과 관련해 입장을 밝히고 있다. ⓒ 연합뉴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3월21일 청와대 춘추관 대브리핑룸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만난 뒤 ‘미세먼지 해결을 위한 범사회적 기구’ 위원장을 수락한 것과 관련해 입장을 밝히고 있다. ⓒ 연합뉴스

반기문 측 “근거 없는 소설에 불과” 일축

‘반기문 총리설’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위상만 놓고 보면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은 국무총리감으로 손색이 없다. 유엔 사무총장이라는 국가원수급 자리에 있었던 반 전 총장에게 내각을 맡긴다는 점은 총리 교체로 인한 국정 혼란을 최소화하기에 충분하다. 내년 총선용으로 활용하기에도 무리가 없다. 지난 2007년 대선 준비 과정에서 그가 중도보수를 표방했다는 점을 감안할 때 반 전 총장의 등장은 여권의 외연을 넓히는 데 도움이 된다.

더군다나 반 전 총장은 한때나마 ‘충청권 대망론’을 꿈꿨던 대선주자였다. 선거 때마다 충청권은 스윙보트(Swing Vote·선거 등 투표에서 어떤 후보에게 투표할지 결정하지 못한 유권자 층) 역할을 해 왔던 곳이다. 물론 내년 총선 역시 충청권 표를 누가 가져가느냐가 선거의 승패와 직결돼 있다.

지난 20대 총선(2016년)에서 충청권은 절묘한 선택을 했다. 대전에서는 민주당과 새누리당(자유한국당 전신)이 각각 4석과 3석을€나눠 가져갔고, 충남에서도 민주당이 6석을 가져가 5석을 확보한 새누리당에 신승했다. 반면 충북은 민주당이 3석, 새누리당이 5석을 확보했고, 세종은 무소속으로 출마한 이해찬 후보가 당선됐다. 종합하면, 전국적으로야 민주당이 승리를 거뒀지만 충청권만 떼어놓고 보면 13대 13의 팽팽한 접전이었던 셈이다.

반면 이후 치러진 대선과 지방선거에선 민주당에 확실히 표를 몰아줬다. 19대 대선에서 대전의 경우 문재인 민주당 후보가 42.93%, 홍준표 한국당 후보가 20.30%를, 충북은 문 후보 38.61%, 홍 후보 26.32%, 충남은 문 후보 38.62%, 홍 후보 24.84%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세종은 문 후보의 득표율이 51.08%로 절반을 넘어섰다. 지난해 지방선거에서도 민주당은 대전의 경우 5석 모두를, 충북은 11석 중 7석, 충남은 15석 중 11석을 가져가며 압승했다.

문제는 충북이다. 정서적으로 충북은 충남보다 정치색이 더 보수적이다.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지난 대선에서 충북은 문재인, 홍준표, 안철수 후보(국민의당)의 득표율이 38.61%, 26.32%, 21.78%로 각각 나왔다. 여권으로선 지난 대선에서 안철수 후보를 지지했던 중도보수표를 가져오는 게 중요하다. 여권이 ‘반기문 카드’를 만지작거리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최근 충청권 표심도 고려한 듯하다.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조사한 6월 첫째 주 문재인 대통령 국정지지도에서 충청권(대전·세종·충북·충남)은 44.5%로 한 주 전(48.2%)보다 3.7%포인트 내려갔다. 부정평가는 45.8%를 기록해 긍정평가를 넘어섰다. 대구·경북(TK)이나 부산·경남(PK)보다는 상대적으로 높지만, 하락세만 놓고 보면 ‘빨간불’이 켜진 상태다. 두 번의 지방선거에서 광역자치단체장을 싹쓸이한 여권으로선 위기감을 느낄 만하다.

대선후보 사퇴 전까지 현 집권세력과 대립각을 세웠던 반 전 총장이 올 4월 대통령 직속 ‘미세먼지 문제 해결을 위한 국가기후환경회의’ 위원장에 취임한 것도 주목할 대목이다. 반 전 총장은 4월29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국가기후환경회의 출범식에 참석해 “제 남은 여생을 기꺼이 미세먼지 문제 해결을 위해 헌신하겠다”면서 “미세먼지 해결을 국민들께서 저에게 주신 마지막 과업이라고 생각하고 비장한 각오로 위원장직을 수행하고자 한다”고 밝힌 바 있다. 위원장 자리는 문 대통령이 반 전 총장에게 직접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부 시절부터 반 전 총장의 핵심 참모로 불렸던 김숙 전 유엔대사는 현재 반 전 총장 아래에 있는 국가기후환경회의 전략기획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최근 김 전 대사는 주미대사관 외교관이 한·미 정상회담 전화통화 내용을 유출한 것과 관련해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나와 야당인 자유한국당 강효상 의원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이러한 정치적 해석에 대해 반 전 총장 측은 “근거 없는 소설에 불과하다”고 일축하고 있다. 하지만 그와 외교부에서 함께 근무한 인사들은 한결같이 “반 전 총장의 성격상 공직에 대한 미련은 여전히 많이 남아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문재인 대통령(가운데)이 3월21일 청와대에서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과 면담하고 있다. 문 대통령 오른쪽은 노영민 비서실장 ⓒ 청와대 제공
문재인 대통령(가운데)이 3월21일 청와대에서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과 면담하고 있다. 문 대통령 오른쪽은 노영민 비서실장 ⓒ 청와대 제공

“노영민 실장이 친분 내세워 반기문 추천” 소문

‘반기문 카드’가 현실화되려면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당장 여권 내 반대기류가 만만치 않다. 민주당의 한 의원(비례대표)은 “노영민 청와대 비서실장이 동향(충북) 사람인 반 전 총장을 내세워 영향력을 확대하려 한다는 소문이 있는데, 당 지지층의 반발 등을 감안할 때 쉽지 않다”고 선을 그었다. 노 실장은 충북 청주 흥덕 을에서 17대부터 내리 세 번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자유한국당 등 야당의 반발도 만만치 않다. 한 자유한국당 당직자는 “여의도 정가에는 아직까지 ‘의리를 접었을 땐 인생을 접어야 한다’는 말이 있다”면서 “반 전 총장 보고 따라 나가 정치적 상처를 입은 한국당 탈당파가 (총리 입각을) 가만히 보고만 있겠냐”고 반문했다.

반기문 카드를 탐탁지 않게 여기는 여권 일각에서, 그에 맞설 다른 카드를 준비 중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그 가운데 하나가 ‘경제 총리’를 표방하는 ‘김진표 총리설’이다. 노무현 정부 때 경제부총리를 지냈고, 민주당 내에서는 비교적 온건 성향이어서 중도층으로 외연을 넓히는 데도 유리하다는 논리를 내세운다. 자칫 총선 필승 전략과 집권 후반기 안정화를 위한 목적의 차기 총리 인사가 여권 내부의 헤게모니 다툼으로 비화될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오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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