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 인 블랙: 인터내셔널》, 익숙한 그립감인데?
  • 정시우 영화 저널리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6.15 12:00
  • 호수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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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부트로 돌아온 《맨 인 블랙》 네 번째 작품은 아쉬웠다

1997년 여름, 《맨 인 블랙》을 보고 난 후 한동안 TV를 보며 “저 사람은 인간의 탈을 쓴 외계인이야!”라고 말하는 버릇이 생겼었다. 우리 삶 속에 외계인이 섞여 산다는, 심지어 우리가 잘 아는 스타가 알고 보면 외계인이라는 《맨 인 블랙》의 거대하고도 재기 넘치는 농담에 매료된 탓이다. 그런 외계인들을 담당하는 ‘MIB(Man In Black)’란 국가 비밀조직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기발한 설정에도 상당히 마음을 빼앗겼다. 게다가 그들이 입은 각 잡힌 검정 슈트와 날렵한 선글라스가 너무나 ‘간지’여서, ‘나도 MIB 요원이 되고 싶다’는 상상에 휩싸이기도 했다.

이런 허무맹랑한 꿈을 꾼 소녀는 비단 필자만이 아니었던 것일까. 《맨 인 블랙: 인터내셔널》의 신입 요원 M(템사 톰슨)은 그런 소녀들의 대변인과도 같으니, 어린 시절 외계인과 그들을 쫓는 검정 양복의 요원을 우연히 엿본 그녀는 MIB 입사를 꿈꾸며 본부 잠입을 시도한다. 그런 그녀가 MIB 인턴으로 들어가면서 《맨 인 블랙: 인터내셔널》은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한다.

영화 《맨 인 블랙: 인터내셔널》의 한 장면 ⓒ 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 《맨 인 블랙: 인터내셔널》의 한 장면 ⓒ 롯데엔터테인먼트

이야기 구성에 짜임새 부족

하지만 M을 기다리는 건, 우리가 익히 알던 에이전트 J(윌 스미스)와 에이전트 K(토미 리 존스)가 아니다. 《맨 인 블랙》 1~3편을 이끈 환상의 복식조 J와 K 대신, 크리스 헴스워스가 연기한 에이전트 H가 그녀를 맞는다. 그렇게 완성된 새로운 콤비. 뭔가 익숙한 조합이라 느낀다면 당신은 적어도 《토르: 라그나로크》나 《어벤져스: 엔드게임》을 본 게 분명하다. 마블 영화에서 토르와 발키리로 호흡을 맞췄던 두 사람이 H와 M으로 다시 만나 시치미 뚝 떼고 요원 행세를 하는 셈이다. 물론 《맨 인 블랙》 시리즈 안에서 두 사람의 만남이 이색적인 건, 마블 캐릭터들의 재회라서가 아니다. 방점은 첫 ‘남녀 콤비’라는 점에 찍힌다. 여기에 리암 니슨이 에이전트 H를 아끼는 런던 지부 책임자 하이(High) T로 합류해 새로운 출발에 힘을 실어준다. 이들은 위기의 지구를 어떻게 구해 낼까.

1997년 첫선을 보인 《맨 인 블랙》은 그 흥행에 힘입어 2002년과 2012년 2, 3편을 내놓았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소재 고갈에 시달렸고, 무엇보다 이야기의 중요한 한 축인 K를 연기한 토미 리 존스의 기력이 이전과 같지 않았다. 속편 이후 10년 만에 내놓았던 3편에서 시간여행이라는 설정을 이용, 젊은 K(조슈 브롤린)를 등장시킨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9년 만에 찾아온 《맨 인 블랙: 인터내셔널》이 이를 타개하기 위해 찾은 방법은 ‘리부트/스핀오프’다. 앞선 시리즈의 3편을 모두 연출한 배리 소넨필드 감독이 제작자로 이동했고, 빈자리를 《분노의 질주: 더 익스트림》의 F. 게리 그레이가 채웠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상황은 생각보다 좋지 않다. 《맨 인 블랙》은 앞서 이야기했듯, 외계인과 인간 관계에 대한 기본 아이디어가 좋은 영화였다. 그러나 한 번 쓴 아이디어는 더 이상 새로울 수 없다. 이를 무마할 또 다른 무엇인가가 필요한데 《맨 인 블랙: 인터내셔널》의 아이디어는 아쉽게도 과거에서 크게 나아가지 못한다.

 

무난하고 낯익은 새로운 설정

이야기 구성의 짜임새도 아쉽다. 제대로 설명되지 않고 사라지는 캐릭터와 사연들이 너무 많다. (결정적인 떡밥으로 밝혀지는) 오프닝에서 에이전트 H와 하이 T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가. H와 사사건건 부딪치는 에이전트 C의 의심은 어디에서 비롯되고 어떻게 풀리는가. 빌런들은 왜 저리도 ‘우주에서 가장 위험한 무기’를 노리는가. 설득력 있게 제시되지 않는 플롯들이 쌓이다 보니 결말의 쾌감에도 힘이 실리지 않는다. 큰 덩어리를 바탕으로 부분들이 유기적으로 움직이는 게 아니라, 토막토막 신들을 이어 붙여 달리는 인상이 짙다.

‘인터내셔널’이라는 부제처럼 미국을 벗어난 다양한 로케이션은 볼거리다. 프랑스 파리의 에펠탑, 모로코 마라케시의 시장, 미국과 유럽을 오가는 열차 등 ‘더 크게 더 화려하게’라는 속편의 법칙을 공식처럼 따른다. CG의 발달로 특수효과 완성도도 확실히 좋아졌다. 다만 여름 성수기 극장가를 호령할 만한 강력한 한 방은 약하다. 기본 아이디어만큼이나, 시각적 화력을 표현하는 상상력과 재기발랄함이 부재한 탓이다. 관객들이 기대할 외계인들의 개성 역시 기대치에는 미치지 못한다.€€€

캐릭터 케미가 너무 무난한 것이 무엇보다 걸린다. 크리스 헴스워스와 템사 톰슨의 호흡이 나쁘지는 않으나, 윌 스미스와 토미 리 존스의 협업을 떠올리면 상대적으로 싱겁다. 우려했던 둘 사이의 러브신이 두드러지지 않지만, 완전히 없다고 하기에도 애매한 상황이 몇몇 연출되면서 콤비물로서의 화력을 살짝 깎아먹기도 한다.

오히려 이 영화는 캐릭터의 시너지보다, 캐릭터 개개인의 개성에 집중해서 볼 때 즐길 만한 부분이 많다. 특히 크리스 헴스워스에게 토르는 이제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인데, 영화는 재미를 위해 토르 이미지를 활용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토르를 떠올리게 하는 장면이 적절한 타이밍에, 이질감 없이 잘 녹아들었다. 크리스 헴스워스가 《고스트버스터즈》 리부트 버전에서 선보였던 금발 섹시 비서 케빈의 면모도 적지 않게 인용돼 웃음을 자아낸다. 여러모로 크리스 헴스워스라는 배우가 지닌 자체 매력이 에이전트 H의 매력보다 앞서 있는 느낌이다.

위험천만한 적과의 대결에서 H는 말한다. “익숙한 그립감인데?” 뒤늦게 생각해 보니, 이 영화를 드러내는 대사가 아닐까 싶다. 새로운 설정이 아쉬운, 너무 익숙해서 무난한, 그런 영화랄까.

 

외계인, 친구인가 적인가

지구인과 외계인의 관계는 영화에서 여러 모습으로 연출돼 왔다. 영화사 초반, 외계인은 주로 인간에게 두려움의 존재로 그려졌다. 외계인의 지구 침공을 그린 1953년 허버트 조지 웰스 감독의 《우주 전쟁》이 효시 격이다. 이후 외계인과의 사투를 그린 1979년 《에일리언》, 1996년의 《인디펜던스 데이》 등이 이러한 흐름에 가세했다.

외계인과 인간의 공존에 대한 기대를 품게 만든 이는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다. 1977년 《미지와의 조우》를 통해 외계인에 대한 호감을 드러낸 그는 1982년 《E.T》를 통해 외계 생명체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를 심었다. 근래엔 영화 속 외계인이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 인간 캐릭터를 위협하는 매력적인 인물로 그려지는 경우가 많다. 주인공이 아예 우주의 존재인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가 이러한 변화를 드러내는 좋은 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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