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우리를 ‘한국인’으로 만드는가
  • 강성운 독일 통신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6.26 14:00
  • 호수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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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담 인터뷰] 부모와 한인 사회의 기대, 주류 사회의 낙인…‘디아스포라 코리안’이 말하는 ‘나’

지난봄, 아시아 인종차별 논란에 휩싸인 독일 호른바흐 광고 사태는 출신 및 거주 국가별로 분리돼 있던 해외 아시아 디아스포라 사회가 온라인과 도킹하는 계기가 됐다. 이에 시사저널은 한반도 바깥의 여러 나라에서 태어나 서로 다른 전기(傳記)적 궤도를 그리고 있지만, 또한 공통된 경험을 한 아시안 디아스포라의 대화를 제안했다.

시사저널은 독일 베를린을 거점으로 활동 중인 안무가 올리비아 현신 김, 일본 아사히신문의 소 고우스케 기자와 국적·정체성·차별에 대해 100여 분간 화상통화를 했다. 태어나 자란 나라에서 각각 ‘외국인 같은’ 외모로, 혹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한국식 이름’으로 인해 이방인의 자리에 처한 이들이 민족 정체성을 부여받는 과정과 그 속의 균열에 관한 섬세한 대답을 들려줬다.

독일에서 안무가로 활동 중인 한국계 독일인 올리비아 현신 김 ⓒ 강성운 제공
독일에서 안무가로 활동 중인 한국계 독일인 올리비아 현신 김 ⓒ 카타리나 하우케 제공
일본 아사히신문 기자로 활동 중인 자이니치 소 고우스케 ⓒ 강성운 제공
일본 아사히신문 기자로 활동 중인 자이니치 소 고우스케 ⓒ 소 고우스케 제공

자기소개를 부탁한다.

올리비아 현신 김(이하 ‘김’): "독일 지겐에서 태어나 12세 무렵 한국으로 추방될 때까지 독일에서 자랐다. 한국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2011년 독일 대학원에 입학하면서 태어난 곳으로 돌아왔다. 현재 독일에서 안무가로 활동 중이다."

소 고우스케 (이하 ‘소’):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났다. 2차 세계대전 중 조부모가 한국에서 일본으로 건너왔다. 일본에서 나고 자랐지만 한국 국적을 가진 외국인, ‘자이니치’다. 스코틀랜드와 파리에서 각각 1년을 살았고 한국에서 산 적은 없다. 언젠가 한국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일본 아사히신문의 월간 일요판 ‘글로브(GLOBE)’를 거쳐 현재 도쿄에서 아사히신문 기자로 활동 중이다."

독일에서는 외국인을 ‘통합’시키는 문제가 큰 정치적 이슈다. 하지만 통합은 외국인들에게만 일방적인 변화를 요구한다. 일상에서 통합에 대한 기대나 압박을 느낄 때가 있나.

김: "지금 독일의 통합 정책은 매우 게으른 해결책이라 생각한다. 독일 사회가 통합을 요구하는 대상은 누구인가. 보통 유럽 문화권 출신임이 분명해 보이는 사람들에게는 통합을 요구하지 않는다. 반면 여기서 나고 자랐다 해도 비유럽권 문화 출신처럼 보이면 독일 사회에 통합되라는 요구를 한다. 주류 사회가 '네가 우리가 정한 이런저런 조건을 충족시키면 우리 클럽에 가입시켜주겠다'며 환상을 파는 행태다."

소: "나는 일본에서 나고 자라 태어날 때부터 일본어를 했기 때문에 일본 사회로부터 ‘통합’의 압박을 받지 않고 있다. 차라리 자이니치 커뮤니티로부터 내가 한국인이니 한국어로 말하고, 한국 국적을 유지해야 한다는 압박을 느낀 적이 있다. 동시에 일본인으로부터 '너는 일본인이나 마찬가지'라는 말을 들을 때면 복잡한 기분이 든다. 자이니치가 처한 사회적 상황은 일본인과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자이니치인 부모님은 일상을 영위하기 위해 늘 싸웠다. 안정적인 직업과 소득을 가질 수 없었다."

독일 사회의 아시아계는 외모 때문에 더욱 차별을 당한다. 자이니치의 경우 외모로 구분되지 않는데도 차별을 경험하나.

소: "과거 자이니치가 공직에 종사할 수 없고, 국민보험에 가입할 수 없던 시절이 있었다. 평교사는 될 수 있어도 진급은 안 된다. 차별이 두려워 일본 이름을 자칭하는 사람이 있지만, 그것이 어려워지는 순간이 있다. 이름을 보면 한국 정체성이 드러난다."

각자 살고 있는 곳에서 선거권은 있는가. 선거권을 갖는다는 것은 당신에게 어떤 의미인가.

소: "일본 선거에는 투표권이 없다. 2012년부터 재외국민으로서 한국 선거에 참여할 수 있다. 한국 사회와 정치에 관심이 있다. 하지만 나는 일본에 살고 있기 때문에 한국 정치에 구체적인 이해관계가 있지 않아 큰 의미를 찾기 어렵다."

김: "내 주변에도 독일이 삶의 중심지임에도 불구하고 국적이 다르다는 이유로 투표를 못 하는 경우가 있다. 이번 유럽 선거 중 투표권은 특권이라는 이야기가 디아스포라 커뮤니티 안에서 많이 나왔다. 투표권이 없으면 타인에 의해 (내 삶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이중국적이 디아스포라 정체성에 대한 고민의 해결책이 될 수 있을까.

김: "국적 자체에 대한 인식의 변화가 필요하다. 독일에선 대부분이 이중국적자들은 독일에 충성스럽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국적을 혈통과 연관 짓고 그것으로 나라에 대한 ‘충성도’를 매기는 건 한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소: "일본에서는 이중국적을 가질 수 없다. 일본 국적을 선택하면, 한국 국적을 잃는다. 양국 관계가 자주 긴장상태이기 때문에 일본 국적으로 바꾸는 것이 내겐 쉽지 않은 문제다. 나는 우리 부모님이 일상에서 곤란을 겪는 것을 지켜보면서 자라났다. 양친이 모두 사망하면 나를 한국인으로 규정하는 것은 국적밖에 없을지 모른다고 생각할 때가 있다. 일본에서 살고 있으니 일본 국적을 취득하는 게 자연스럽다는 마음은 있지만, 한국을 버리는 것 같아 어려운 문제다."

“한국인이 되라”는 압력을 받은 적이 있나.

김: "한국과 독일 사회에서 모두 ‘한국인 되기’에 대한 압박감을 느낄 때가 있다. 한국으로 돌아간 직후인 2002년에 월드컵이 열렸고 한국과 독일 대표팀 경기가 있었다. 친구들이 '너는 어느 나라를 응원하니, 당연히 한국이지?'라고 집요하게 물어봤고, 그러다 친구들끼리 싸웠다. 나는 끝까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우리 가족 중 일부는 독일뿐 아니라 미국에도 근거를 두고 있다. 어느 한 국가에 소속감을 느끼는지 뚜렷이 말하기 어렵다. 한편 독일에서는 이민 1세대가 2세대에게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하라'고 요구해 압박감을 느끼기도 한다. 한국인처럼 행동하고 말하라는 요구에 부응하지 못하는 2세대는 문제를 겪게 된다. 두 나라의 문화를 잘 안다는 것은 강점이지만, 조화를 이루거나 한쪽을 선택해야 한다는 생각에 힘들 때도 있다."

소: "고등학교 진학 전까지 친척들을 제외한 한인 커뮤니티와 접촉이 없었다. 고교 입학 후 자이니치 단체의 장학금을 신청하면서 한국어 시험과 면접을 보고, 축제에 참여해야 했다. 이것은 어린 한국계 일본인들에게 ‘너는 자이니치 커뮤니티의 일원’임을 알게 하는 시스템이라 생각한다. 축제에서 자이니치 고등학생들이 각자 학급에서 교단에 올라가 '오늘부터 내 성씨는 김이다'라고 한국계임을 선언한 경험담을 말하는 걸 봤다. 일부 일본인 교사들이 정체성을 되찾으라며 이런 선언을 권하기도 했다. 그게 좋은 일인지 아닌지 잘 모르겠다. 한편 한인 사회에선 ‘본명 선언’을 장려했다. 그때부터 자이니치 커뮤니티에서 일종의 압박을 느끼기 시작했다. 한국어를 말하고, 한국인처럼 행동하고, 한국 역사를 이해해야 한다는."

각자의 영역에서 디아스포라와 개인적 경험을 말하는 작업들을 하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이며 어떤 반응을 얻었나.

소: "아마도 내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고 싶고, 사람들이 코리안-재패니즈가 어떤 감정을 갖고 사는지 더 잘 이해하기를 원해서인 것 같다. 내 개인의 경험 뿐 아니라 자이니치의 역사에 대해 써 나가고 싶다. 글로브에 실린 기사 역시 자이니치가 겪고 있는 차별이 특수성도 있지만 세계에서 보편적으로 일어나는 일이라는 점도 조명하고 싶었다. 이 기사가 나간 후 일본과 자이니치 커뮤니티 양쪽에서 긍정적인 반응을 얻었지만, 온라인 상에서는 "한국으로 돌아가라"는 등 악플도 많이 받았다. 그들도 언젠가 자이니치를 이해하게 되기를 바란다."

김: "독일 문화계는 스스로를 매우 국제적이고 개방적이며 다양성을 존중한다고 여기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최근 라이프치히 시립 극단이 제작한 “아틀라스”라는 연극이 그 한 사례다. 이 작품은 옛 동독의 베트남 이주자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데 출연진이 전원 백인이다. 또한 베트남계 독일인들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나누고 기여하지 않았다면 만들어질 수 없는 작품이었는데도 어떠한 형태로도 이들에 대한 언급이 없었다. 이것은 이미 “비가시성”에 대해 투쟁하고 있는 주변화된 그룹을 대상으로 하는, 또 한 번의 구조적인 인종차별이다. 자칫 '백인들의 죄책감(white guilt)'을 자극한다는 비난을 받을 우려가 있는 활동이지만, 내 필드인 연국‧무용계에서 이런 일들이 계속되고 있어 지적할 수밖에 없다."

아시안이라는 개념은 당신이 속한 사회에서 어떤 의미로 쓰이며, 당신에게 어떤 의미인가.

김: "유럽에서 아시아라는 말은 각국의 역사와 관련돼 각각 다른 뜻을 지닌다. 독일에서는 주로 동아시아를 의미하지만, 영국에서는 인도·파키스탄·방글라데시를 뜻한다. 아시아는 유럽인의 시각에서 우리를 타자화하는 단어다. 사실 유럽과 아시아 사이에 뚜렷한 지리적 경계가 없지 않나. 이런 생각들을 담아 최근 유라시아판을 소재로 삼은 작품을 했다. 아시아로 묶이는 지역에 굉장히 다양한 문화가 있고, 다양한 피부색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이러한 다양성에 주목하고 아시아라는 카테고리를 적극적으로 우리 것으로 만들어서 힘을 얻게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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