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3차대전은 ‘기술전쟁’…화웨이 둘러싼 ‘5G 新냉전’
  • 김종일 기자 (idea@sisajournal.com)
  • 승인 2019.06.19 08:00
  • 호수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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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산업혁명의 대동맥’ 주도권 쥔 화웨이 놓고 미·중 ‘패권 전쟁’

역사는 반복된다. 34년 전인 1985년 미국과 일본은 기술 패권을 놓고 총성 없는 전쟁을 벌였다. 반도체가 문제였다. 기술력을 축적한 일본이 엔저로 인한 가격 경쟁력을 앞세워 ‘미국 독주 체제’에 균열을 내기 시작했다. 도시바·히타치 등 일본 기업들의 총공세에 미국 회사들은 대규모 구조조정에 돌입하거나 가동시간을 단축해야 했다. 당시 일본의 부상이 얼마나 위협적이었으면 미국에서는 이를 ‘제2의 진주만 습격’이라고 했다. 미국은 일본이 반도체를 장악하면 세계 패권국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미국은 즉각 반격했다. 일본 기업들을 줄지어 반덤핑 혐의로 제소하고 보복관세를 매겼다. 플라자 합의를 통해 엔화를 대폭 절상시켜 일본의 가격 경쟁력을 눌렀다. 이듬해엔 일본 내 미국산 반도체 점유율을 기존의 두 배인 20%로 높이고 저가품 수출을 중단하는 내용을 담은 ‘미·일 반도체 협정(1986년)’을 맺었다. 일본 입장에서는 굴욕스러운 협정이었다. 미국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1987년 모든 일본 제품에 100% 보복관세를 매겼다.

고래 싸움에 어부지리를 얻은 나라가 있었다. 바로 한국이다. 1986년 누적 적자가 2000억원에 달했던 삼성은 일본이 주춤하는 사이 1988년 한 해에만 3200억원의 순이익을 거뒀다. 그렇게 삼성은 기회를 얻었고, 반도체 패권을 거머쥐었다. 반도체 패권이 서쪽(미국→일본→한국)으로 움직인다는 ‘반도체 서진설’도 이런 맥락에서 나왔다.

ⓒ AP 연합·EPA 연합
ⓒ AP 연합·EPA 연합

전 세계에 ‘화웨이냐 아니냐’ 양자택일 강요

34년이 지난 지금 미국은 새로운 싸움에 나섰다. 중국에 대한 첨단기술 패권 경쟁을 공식화한 것이다. 미·중 패권 충돌은 특정 기업의 생사를 둘러싼 정부 간 대리전이라는 초유의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미국은 실리콘밸리의 강력한 경쟁자로 부상한 화웨이를 고사시키려 하고, 중국은 강력 저항하며 결사항전 태세를 갖추고 있다. 양국은 전 세계에 ‘화웨이냐, 아니냐’라는 양자택일을 강요하고 있다. 두 개의 수레바퀴처럼 안보와 경제가 맞물려 돌아가는 국제관계에서 미·중은 화웨이 사태를 단순한 경제문제가 아니라 안보 차원으로 확대시키면서 전 세계를 신(新)냉전으로 끌고 가고 있다.

미국과 중국은 왜 이토록 화웨이에 목을 맬까. 이유는 간단하다. 화웨이의 가치 때문이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나는 5G(차세대 이동통신)를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 이젠 우리가 곧 (5G 시장을) 선도할 것”이라고 말했다. 여기엔 두 가지 의미가 내포돼 있다. 미국이 지금과 같은 패권국 지위를 누리려면 5G라는 신기술을 놓쳐선 안 되고, 지금 미국의 패권을 가장 위협하는 존재가 중국의 화웨이라는 것이다.

한국이 세계 최초로 상용화에 나서 우리에게 친숙한 5G는 그저 통신장비 분야의 신기술을 뜻하지 않는다. 5G는 4차 산업혁명의 토대, 핏줄과 같다. 자율주행, 사물인터넷(IoT), 인공지능(AI), 빅데이터, 클라우드, 스마트시티 등 4차 산업혁명 시대의 핵심 인프라스트럭처가 모두 5G 네트워크 위에 구축된다.

특히 5G는 기존 4G(LTE)보다 20배 빠르고(초고속), 끊김이나 지연 현상이 없는 데다(초저지연), 수많은 사람들이 동시에 접속(초연결)할 수 있는 기술이라 산업 간 경계를 허물고 융합과 혁신을 촉발하면서 4차 산업혁명의 빅뱅을 앞당길 가능성이 높다. 5G의 경제적 효과가 2030~40년에는 수억 달러를 넘어 수십억 달러까지 될 것이라는 전망이 쏟아질 정도다. 5G를 ‘4차 산업혁명의 대동맥’이라고 평가하는 이유다. 한마디로 5G를 장악하는 국가가 4차 산업혁명의 칼자루를 쥐게 되고 향후 100년의 세계 패권을 갖게 된다는 얘기다. 미국이 중국 첨단산업 견제에 나서고, 중국이 총력전으로 맞서는 것도 이 때문이다.

문제는 중국 기업 화웨이가 ‘5G 시대 선두’로 질주하며 미국 등 경쟁국을 초긴장으로 몰아넣고 있다는 점이다. 화웨이는 이미 세계 통신장비와 스마트폰 시장에서 각각 1위와 2위로 우뚝 선 중국 대표 기업이다. 더 무서운 점은 5G에서의 경쟁력이다. 미래의 주도권 여부를 가릴 수 있는 특허 건수에서 화웨이는 경쟁자를 압도한다. 세계지적재산기구에 따르면, 지난해 5G 관련 특허 출원 수는 화웨이가 1529개로 노키아(1397개)나 삼성전자(1296개)보다 많다. 화웨이를 필두로 중국의 차이나텔레콤, ZTE, 오포 등의 5G 특허 건수(3400건)는 국내 삼성·LG전자의 특허 수(2040개)보다도 월등히 많다.

이처럼 화웨이는 이미 글로벌 ICT(정보통신기술) 기업으로 우뚝 섰다. 소비자 손에 닿는 스마트폰부터 기업 네트워크 시스템, 국가 이동통신 인프라까지 모든 ICT 서비스를 아우르고 있다.

화웨이의 핵심 사업은 단연 네트워크 통신사업이다. 화웨이의 통신장비 가격은 해외 업체보다 40%가량 저렴하다. 품질도 좋다. 그렇게 화웨이의 글로벌 통신장비 점유율은 2018년 28%로 세계 1위를 차지했다. 올해 30%를 넘은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화웨이는 5G 기술 특허부터 모뎀 칩, 라우터(데이터 중계기), 기지국 인프라까지 핵심 밸류체인(가치사슬)에 모두 진출해 있는데, 현재 글로벌 통신장비 업체 중 밸류체인 수직계열화에 성공한 업체는 화웨이가 유일하다. 5G 통신 성능을 좌우하는 핵심 기술인 데이터 코딩(폴라코딩)은 가히 독보적이라 평가받는다. 관련 특허만 51개로 글로벌 전체 특허의 절반을 화웨이가 갖고 있다. 이런 점 때문에 미·중 분쟁 이전 시장에서는 곧 화웨이가 61개 국가와 통신장비 계약을 체결할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했다. 바꿔 말하면 중국 기업이 5G의 핵심인 전 세계 통신장비 시장을 장악한다는 얘기다.

화웨이, 5G 특허 ‘독보적 세계 1위’

도저히 미국으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시나리오다. 당연히 이번 기회에 중국 기술굴기의 상징인 화웨이를 고사시켜야 했다. 1985년 일본의 저가 반도체 공세에 떨던 미국의 상황과 아주 흡사하다. 역사는 반복된다. 한 번은 희극으로, 한 번은 비극으로. 34년 전 한국은 위기를 기회로 바꿨다. 지금은 어떤가. 한국 외교, 아니 국력이 시험대에 섰다.

화웨이의 진짜 주인은 누구일까

‘화웨이는 중국 정부가 실질적 주인 아니냐.’ 화웨이에 대한 많은 논란의 처음과 끝이 바로 이 질문에서 시작된다. 미국을 위시한 서방국가들의 의구심도 바로 여기서 출발한다. 확실히 화웨이는 이름부터 남다르긴 하다. 화웨이(華爲)는 ‘중화민족의 번영을 위하여’라는 뜻이다. 문자 그대로 ‘중국몽(中國夢)’을 상징하는 중국의 대표적인 기업인 셈이다.

창업자인 런정페이(任正非) 회장은 인민해방군 정보기술학교 장교 출신이자 공산당원이다. 그의 장인은 공산당 최고위층이었다. 1987년 설립된 화웨이가 창업 초기 안정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가 인민해방군의 주문 물량 덕분이었다는 건 공공연한 비밀이다. 그래서 미국은 화웨이의 실질적 주인이 중국 정부나 군이라고 의심한다. 최소한 화웨이가 중국 정부의 강력한 영향력 아래 있다고 본다.

화웨이는 이런 주장에 중국 정부의 지분은 단 한 주도 없다며 펄쩍 뛴다. 현재 최고경영자(CEO)도 런 회장이 아니다. 화웨이는 세 명의 부회장이 순번을 정해 6개월씩 돌아가면서 CEO를 맡는 독특한 구조다. 하지만 정확한 지배구조는 여전히 미스터리다. 화웨이는 비상장 기업이라 대주주 구성과 이사회 안건을 발표하지 않는다. 공개된 재무제표도 신뢰하기 어렵다.

하지만 접근 가능한 정보로 합리적 추론은 가능하다. 런 회장의 지분율은 1.4%에 불과하다. 나머지 98.6%는 8만여 명의 직원들로 구성된 공회(노동조합)와 일부 임직원들이 보유하고 있다. 공회는 5년마다 49명의 출자직원대표회의라는 단체에 소속될 대표를 선출한다. 이들은 주주총회에서 다양한 권한을 행사한다. 즉 자본주의 시각으로 접근하면 화웨이는 98.6%의 비상장 종업원 지주제 형식의 회사인 셈이다.

문제는 누가 공회 대표회의에 속해 있는지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또 화웨이 경영진은 공회 대표 후보를 거부할 권한을 갖고 있다. 아울러 공회는 지방정부에 소속돼 있다. 한마디로 기업 내 당 위원회가 존재하는 것이다. 서방국가들이 중국 정부와 군이 화웨이의 최대 지분을 확보해 통제하고 있다는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는 이유다.

파이낸셜타임스는 화웨이 본사에 주주 명부가 실린 10권의 블루북이 존재하는데, 여기에 일반 직원들의 주식은 다 합해도 수만 주에 불과하고, 이름이 가려진 소수 그룹이 주식 수백만 주를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이승우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복잡하고 불투명한 소유구조로 인해 화웨이 상장은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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