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답게’ 퇴장했지만 2세 승계 문제 여전히 ‘족쇄’
  • 이석 기자 (ls@sisajournal.com)
  • 승인 2019.06.19 13:00
  • 호수 1548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남승우 전 풀무원 사장, 직원에게 회사 맡기고 경영 은퇴
올가홀푸드 향방 등은 여전히 안갯속

풀무원은 1984년 풀무원효소식품이란 이름으로 설립됐다. 설립자는 원혜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부친인 원경선 풀무원농장 원장이다. 하지만 설립 초기 회사 경영은 순탄치 않았다. 현미효소 사업을 하다 어려워지자 원 의원의 고등학교와 대학교 동창인 남승우 전 총괄사장(현 이사회 의장)이 경영권을 넘겨받았다. 남 전 사장은 지난 34년간 바른 먹거리를 만들고자 했던 설립자의 신념을 몸소 실천했다. 그 결과 직원 10명으로 시작한 풀무원은 현재 직원 수 1만 명, 매출 2조원대의 중견그룹으로 성장했다.

풀무원의 ‘성공신화’를 쓴 남 전 사장은 65세가 되던 2017년 말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이듬해 1월 남 전 사장의 뒤를 이어 사령탑에 오른 인사는 오너 2세가 아니었다. ‘사원 1호’로 이 회사에 입사해 34년간 근무한 이효율 대표였다. “자녀에게 그룹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겠다”는 약속을 지킨 것이다. 주요 언론도 “2세나 3세 승계를 위해 편법이 난무했던 그동안의 재계 관행을 감안할 때 ‘아름다운 퇴장’이었다”고 평가했다.

남승우 전 풀무원 총괄사장 ⓒ 뉴시스
남승우 전 풀무원 총괄사장 ⓒ 뉴시스

2세 아닌 전문경영인에 경영권 넘겨 주목

이효율 대표 첫해의 성적표는 썩 좋지 못했다. 지난해 풀무원은 2조2270억원의 매출과 420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전년 대비 매출은 소폭 상승했지만, 영업이익은 23.7%나 감소했다. 이효율 대표 취임 초기 1만8000원을 오르내리던 주가는 그해 말 7000원대로 절반 이상 하락했다. 실적 악화와 ‘식중독 케이크’ 등의 사고로 1년 만에 풀무원 시가총액이 수천억원이나 증발한 것이다.€

올해 상황도 녹록지 않다. 1분기 풀무원은 5683억원의 매출과 15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하는 데 그쳤다. 전분기 대비 영업이익은 7분의 1 토막이 났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률은 1.84%에서 0.27%로 추락했다. 풀무원 실적이 매년 상저하고(上低下高) 성향을 띠는 점을 감안해도 지나친 하락세다. 그마나 올해 들어 주가가 최저점을 찍고 오름세로 전환됐다는 점이 위안이라면 위안이다.

이와 관련해 풀무원 관계자는 “지난해 대주주인 국민연금의 포트폴리오 조정 과정에서 주가가 많이 빠졌다. 거래량이 많지 않다 보니 주가가 쉽게 휘둘리는 면이 있다”면서 “올해 3월 주주총회 의결을 거쳐 액면분할을 한 것도 이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실적도 마찬가지다. 앞서€ 관계자는 “풀무원은 35년 된 중견 회사다. 1년간의 활동으로 모든 것을 평가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며 “지난해부터 해외사업의 방향을 바꾸고 있다. 현지에서도 반응이 좋은 만큼 올해는 실적 턴어라운드가 가능할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적자가 쌓여가는 해외법인의 경우 이 대표가 CEO에 오르기까지 지휘봉을 잡았다는 점에서 뒷말이 나오고 있다. 무엇보다 풀무원은 최근 2분기 연속 당기순손실을 기록했다. 당기순손실 규모 역시 시간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는 점에서 안팎의 우려가 나오고 있다. 남 전 사장이 다시 경영에 복귀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 섞인 얘기가 그룹 내부에서 들릴 정도다.

남 전 사장의 경영 일선 퇴진과 관련해 또 한 가지 주목되는 사실이 있다. 유기농 제품 유통회사인 올가홀푸드의 향방이다. 이 회사는 현재 남 전 사장의 장남인 성윤씨가 94.95%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사실상 오너 개인의 회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문제는 이 회사가 매년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올가홀푸드는 903억원의 매출과 33억원의 영업손실, 39억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했다. 처음 감사보고서를 공개한 2005년 이후 단 한 차례도 영업이익을 기록하지 못했을 정도로 경영 상황이 좋지 않다. 그럼에도 남 전 사장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으로 올가홀푸드를 지원하고 있어 배경이 주목되고 있다.

실제로 남 전 사장은 지난해 10월 자신이 보유한 풀무원 주식 중 일부를 올가홀푸드 차입을 위한 담보로 제공했다. 당시 종가 기준으로 90억원대에 이른다. 2015년부터 최근까지 남 전 사장은 모두 6차례, 700억원대 규모의 주식을 담보로 제공했다. 남 전 사장은 2014년 개인 회사인 풀무원아이씨(현 피씨아이)가 소유하던 회사를 성윤씨에게 넘겼다. 이듬해부터 올가홀푸드의 경영난 타개를 위해 본인 소유의 풀무원 주식을 금융권에 담보로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재계 일각에서는€올가홀푸드가 향후 풀무원그룹 지배구조의 중심축을 이룰 수 있다는 시각이 적지 않았다. 2세 회사인 올가홀푸드가 주력 회사인 풀무원 지분을 매입해 지배구조의 정점에 서게 되면, 자연스럽게 성윤씨를 중심으로 후계구도가 완성되기 때문이다.

2018년 5월31일 서울 수서동 풀무원 본사에서 열린 ‘풀무원 New CI 선포식’에서 이효율 대표가 새 CI 퍼즐 조각을 완성하고 있다. ⓒ 뉴시스
2018년 5월31일 서울 수서동 풀무원 본사에서 열린 ‘풀무원 New CI 선포식’에서 이효율 대표가 새 CI 퍼즐 조각을 완성하고 있다. ⓒ 뉴시스

풀무원 측 “올가홀푸드 수익성 개선 노력”

이와 관련해서도 풀무원 관계자는 “공식적으로 풀무원효소식품이 그룹의 모태지만, 시초 격인 회사는 유기농 식품을 판매하는 풀무원 무공해 농산물 시판장으로 올가홀푸드의 전신이다”며 “그룹의 상징과도 같은 회사여서 내부적으로 적자를 감내하고 있다. 수익성 개선이 관건이데, 현재 여러 방안을 고민 중이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그러나 “올가홀푸드가 풀무원 지분을 인수해 그룹의 정점에 서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내부적으로 전혀 고려하고 있지도 않다”고 강조했다.

풀무원 측은 과거에도 관련 시나리오가 언론에 거론될 때마다 “그럴 일은 없을 것”이라고 강변해 왔다. 오히려 성윤씨의 올가홀푸드 지분을 모두 해소해 전문경영인 체계로 확실히 정리될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럼에도 성윤씨가 여전히 올가홀푸드 최대주주를 유지하고 있는 만큼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아름다운 퇴장’ 이면에 드리운 악재를 풀무원그룹이 어떻게 해결할지 주목된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