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20팀, 축구 그 자체를 즐기는 ‘Z세대’…1983년과 비교 불가
  • 서호정 축구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6.16 08:00
  • 호수 1548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유쾌함 넘치는 ‘정정용號’, 당당한 자신감과 그것을 현실화할 수 있는 실력 지녀

1983년 박종환 사단이 멕시코에서 쓴 세계청소년선수권(현 U-20 FIFA 월드컵) 4강이라는 성과에는 신화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월드컵 본선에 오르는 것도 버거웠던 한국 축구가 처음으로 세계의 높은 벽을 뛰어넘어 정상 부근까지 간 데 대한 찬사였다. 그 성과는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히딩크 감독과 태극전사들이 새로운 4강 신화를 쓰기 전까지 한국 축구의 성역이자 성공의 기준이었다. 

하지만 성과 뒤에는 그늘도 존재했다. 1970~80년대 고도성장·압축성장 뒤에 여러 부작용이 있었던 것처럼 당시 세계무대에서 결과를 내기 위해 기나긴 합숙과 스파르타식 훈련, 강압적 분위기가 뒤따랐다. 일부 선수의 경우 호적상 나이를 낮추고 출전한 것이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박종환 감독은 카리스마 넘치는 지략가였지만, 동시에 불복종은 허락하지 않는 독재자에 가까운 리더였다. 그 여파인지 당시 신화의 주역들은 그 성공을 성인 무대로 이어가지 못한 채 일찍 마모됐다. 

6월11일(현지 시각) 결승 진출이 확정된 뒤 U-20 대표팀 선수들이 어깨동무를 한 채 관중석을 향해 위아래로 뛰며 ‘오, 필승코리아!’를 외치고 있다. ⓒ 연합뉴스
6월11일(현지 시각) 결승 진출이 확정된 뒤 U-20 대표팀 선수들이 어깨동무를 한 채 관중석을 향해 위아래로 뛰며 ‘오, 필승코리아!’를 외치고 있다. ⓒ 연합뉴스

그들의 훈련장에는 늘 웃음이 넘쳐났다

36년 만에 U-20 월드컵에서 4강을 재현하고, 거기서 멈추지 않고 결승까지 진출한 정정용호는 선배들과 180도 다른 분위기다. 그들의 훈련장에는 웃음이 넘쳐난다. 감독 한 명의 강한 리더십, 특정 선수의 존재감이 아니라 팀의 자율화와 전문성이 돋보인다. 무엇보다 구성원 간의 존중과 신뢰가 바탕에 깔려 있다. 헝그리 정신이 미덕이던 시대의 ‘안 되면 되게 하라’가 아닌, 체계적인 교육으로 얻은 ‘잘하는 것을 더 빛나게’ 함으로써 팀의 완성도를 높였다. 

정정용호의 성과가 더 빛나는 것은 실력 이상의 처절함을 짜내야 했던 선배들의 투혼에 대한 콤플렉스를 실력으로 극복했다는 점에 있다. 21세기에 접어든 2002년에도 월드컵 성공을 위해 규정을 무시한 소집과 선수 차출, 부상 투혼이 만연했고, 그것이 아름다운 열정과 희생으로 포장됐다. 보는 이로 하여금 눈물을 흘리게 만들었지만, 이번 세대가 보여주는 편안한 즐거움과 유쾌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1999년부터 2001년 사이에 태어난 정정용호의 선수들은 ‘Z세대’다. 알파벳 마지막 글자인 Z처럼 20세기에 태어난 마지막 세대에게 붙은 호칭이다. 이들은 당당한 자신감과 그것을 현실화할수 있는 실력을 지녔다. 긴장하지 않는 그들은 경기장 안팎에서 늘 유쾌함을 보이지만, 경기 중 승부처에서는 냉정함과 진지함을 유지한다. 

U-20 월드컵을 앞두고 이강인을 필두로 한 선수들은 우승을 목표라고 언급했다. 과거 선배들이 신중하게 조별리그 통과, 16강을 말하던 것과는 다른 분위기였다. 그들이 목표를 밝힐 때만 해도 목표는 클수록 좋은 것이라고 인식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스스로 강한 목표 설정을 통해 동기부여를 한 것이었다. 대회를 위해 출국하기 전 선수단에게 심리 특강을 진행한 강성구 중앙대 교수(스포츠심리학)는 “모든 선수들이 분명하게 우승을 말했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닌 또렷한 목표 설정이었다. 팀원들의 생각이 하나였다”라며 당시 분위기를 전했다. 

강한 성취욕은 철저한 준비와 자신감을 만나 경기력으로 발현됐다. 정정용 감독은 대회 개막을 앞두고 가진 마지막 인터뷰에서 “준비는 계획대로 100%를 마쳤다. 지금부터는 선수들이 즐겼으면 좋겠다. 자신감·열정·패기를 운동장에서 발휘하길 바란다”라는 말을 남겼다. 선수들뿐만 아니라 코칭스태프도 같은 생각을 품었던 것이다. 

우려와 달리 국가대표에 대한 자긍심도 높은 세대다. 최근 A대표팀을 중심으로 국가대표에 대한 애착이 줄었다는 지적과 비판이 이어졌다. 젊은이들의 국가관과 애국심에 대한 우려로 확대되기도 했다. 그런데 이번 세대는 오히려 경기에 앞서 시작되는 국가 연주에서 어떤 선배들보다 우렁차게 애국가를 따라 불렀다. 팀의 막내인 이강인이 조별리그에서 애국가를 크게 불렀고, 다른 동료들도 동참했다. 토너먼트에 접어들자 응원을 온 팬들까지 함께했다. 이강인은 “다른 팀 선수들이 자신들의 국가를 크게 따라 부르는 걸 봤다. 국가에 대한 마음과 기 싸움에서 그들에게 지고 싶지 않았다”고 말했다. 

 

자율·창의, 한류문화 전파하는 BTS와 비슷한 궤적

누군가의 지시나 부추김이 아니라 스스로 생각하고, 자율적으로 행동할 줄 아는 세대의 역량은 창조적 플레이로 이어진다. 이강인이라는 특출한 선수도 있지만, 이번 대회에서는 오세훈·조영욱·최준·김현우·이광연 등 여러 포지션의 선수들이 세계적인 경쟁력을 보였다. 상대에게 실점을 해도 분해하거나, 고개 숙이지 않고 곧바로 모여서 자신들의 플레이를 분석하고 다음 대책을 준비했다. 최대 고비였던 세네갈과의 8강전에서는 골키퍼 이광연이 승부차기 초반 1, 2번 키커가 모두 실패하자 “괜찮아. 내가 다 막을게”라며 키커들을 위로한 뒤 정말 선방을 펼치며 승부를 뒤집었다. 이런 위풍당당한 모습은 이전의 한국 축구에서 보기 어려웠던 장면이다. 

국내에서 진행한 소집 훈련 때 정정용호는 30여 분의 워밍업 시간에 대형 스피커를 통해 최신 음악을 크게 틀었다. 라커룸을 벗어난 구역에서도 그 같은 흥을 즐기는 것은 세계적으로도 보기 드문 일이다. 선수들은 “우리 팀만의 문화다”라고 소개했다. 단지 즐겁기만 한 게 아니라 월드컵 등 큰 국제대회에서 경기 시작 전 워밍업 시간에 관중들을 위해 크게 음악을 트는 것에 익숙해지려는 합리적 의도도 숨어 있었다. 

이런 정정용호의 성공은 새로운 한류문화를 전파하고 있는 방탄소년단(BTS)과 비슷한 궤적을 보인다. 기획사의 관리와 획일화된 스타일에 안주하지 않고, 자율적인 음악과 창의적인 퍼포먼스, 합리적인 사고와 행동을 보이는 새로운 세대는 세계의 호응을 받았다. 정정용호라는 한국 축구의 새로운 세대도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하며 시대의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