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성그룹과 참여연대의 오랜 악연
  • 송응철 기자 (sec@sisajournal.com)
  • 승인 2019.06.20 08:00
  • 호수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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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연대, 입찰 담합 혐의로 (주)효성 등 공정위 신고

효성 오너 일가가 각종 비리 혐의로 기나긴 영욕의 세월을 보내고 있다. 햇수로 올해 7년째다. 끝날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기존 사건이 마무리될 만하면 기다렸다는 듯 새로운 악재가 터져나와서다. 효성가(家) 수난사의 시작은 2013년 9월 이뤄진 국세청 세무조사였다. 조사 과정에서 (주)효성의 1조원대 분식회계와 1000억원대 비자금 조성 혐의가 포착됐다. 국세청은 당시 효성그룹 회장이던 조석래 명예회장 등을 검찰에 고발했다. 검찰은 그해 10월부터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했다. 수사가 마무리될 무렵인 2014년에는 조 명예회장의 차남인 조현문 변호사(전 효성 부사장)와 나머지 형제 간 갈등인 이른바 ‘형제의 난’이 불거졌다.

이 과정에서 조 변호사는 형인 조현준 효성그룹 회장을 200억원대 횡령·배임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그 결과 2017년 수사가 본격화됐고, 검찰은 최근 조 회장에게 징역 4년을 구형했다. 이런 가운데 최근 국세청 세무조사로 3000억원대 탈세 의혹이 또다시 불거졌다. 국세청은 현재 범칙조사 전환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만일 범칙 전환이 결정돼 형사고발이 진행될 경우 문제는 심각해진다. 앞서 2013년 국세청이 조세포탈죄로 검찰에 고발한 사건이 1·2심에서 모두 유죄로 인정된 상황이기 때문이다.

100억원대 비자금 조성 혐의 등을 받고 있는 조현준 효성그룹 회장이 2018년 1월17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하고 있다. ⓒ 시사저널 박정훈
100억원대 비자금 조성 혐의 등을 받고 있는 조현준 효성그룹 회장이 2018년 1월17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하고 있다. ⓒ 시사저널 박정훈

효성가(家), 햇수로 7년째 수난 중

그러잖아도 심란한 상황에서 효성의 골치를 더욱 아프게 하는 일이 벌어졌다. 올해 6월10일 (주)효성 등이 시민단체인 참여연대로부터 공정거래위원회 신고를 당한 것이다. 효성 계열사와 건축자재 납품회사인 칼슨(옛 헨슨) 사이의 입찰담합 혐의와 관련해서다. (주)효성과 계열사인 진흥기업이 건축자재 납품업체 선정을 위한 입찰 과정에서 들러리 업체를 내세우거나 낙찰가를 사전에 알려주는 등의 방법으로 칼슨의 낙찰을 공모했다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개별 사례를 보면, 효성은 2015년 3월 노량진 복합빌딩에 타일을 납품하는 업체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다른 업체가 최저가로 응찰하자 칼슨이 더욱 낮은 금액으로 견적서를 다시 작성토록 해 납품업체로 선정했다. 또 같은 해 10월에는 천안과 울산의 아파트 현장 조명 납품업체 선정 과정에서 다른 입찰 참여업체가 칼슨이 계획한 가격보다 높은 가격을 써내도록 했다. 2015년부터 2017년까지 이뤄진 홈네트워크시스템 납품업체 선정 과정에서도 비슷한 방법을 동원했다. 이를 통해 칼슨은 30억원대 부당이익을 누린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이 사건은 이미 2심 판결까지 나온 상태다. 지난해 1월 홍아무개 칼슨 대표와 효성 임직원들은 재판에 넘겨져 1심과 2심에서 모두 유죄를 선고받은 만큼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그럼에도 다시 공정위에 신고를 한 배경에 대해 참여연대는 입찰담합 혐의에 대해 효성 등 법인에는 아무런 처벌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이유를 들었다. 사건에 연루된 법인들이 실질적 책임자니만큼 행정적 제재가 가해져야 한다는 것이 참여연대의 주장이다.

재계에서는 참여연대가 공정위에 신고한 진짜 배경은 따로 있다는 견해가 많다. 입찰담합 사건 너머의 총수 일가를 겨냥했다는 것이다. 실제 참여연대는 이번에 공정위 신고를 진행하면서 효성과 칼슨 간 담합행위가 총수 일가의 비자금 조성과 무관치 않다는 취지의 입장을 밝혔다. 또 칼슨과 조현준 회장의 관계를 조사하면 담합행위 방식으로 은밀하게 이뤄지는 재벌 총수 비자금 조성 문제에 대한 진상을 규명할 수 있을 것이라고도 했다.

참여연대가 효성과 칼슨의 입찰담합을 이렇게 해석한 까닭은 무엇일까. 여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홍 대표가 2013년 효성에 대한 검찰 수사 당시 총수 일가의 자금 관리인이라는 의혹을 받은 바 있기 때문이다. 효성 임원 출신이자 조 회장의 측근으로 알려진 홍 대표는 칼슨 외에도 부동산 개발업체인 펄슨개발과 무역회사 벤슨 등 이른바 ‘3슨’의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이들 업체는 모두 효성과의 거래를 통해 상당한 이익을 얻었다.

대표적인 예가 펄슨개발이다. 한때 효성가 삼형제(현준-현문-현상)가 지배하던 펄슨개발은 2008년 지분 100%가 홍 대표(45%)를 비롯한 효성 출신 한아무개씨(45%)와 최아무개씨(10%)에게 넘어갔다. 이후 펄슨개발은 효성의 보증을 받아 사업을 영위했다. 특히 지분이 넘어간 직후인 2008년 12월 펄슨개발은 보유 중이던 부동산을 효성에 고가 매각해 막대한 차익을 누리기도 했다. 이로 인해 2007년 12억원에 불과하던 펄슨개발 매출은 2008년 1141억원으로 크게 늘어났다. 이처럼 칼슨·펄슨·벤슨에 대한 효성의 석연치 않은 지원이 계속되자 앞서 사정 당국 안팎에선 ‘3슨’의 실소유주는 조 회장이라는 의혹이 제기된 바 있다. 홍 대표는 조 회장의 금고지기에 불과하다는 것이었다.

이와 관련해 효성그룹 측은 전혀 사실무근이라고 강조했다. 그룹 관계자는 “과거 검찰 수사 과정에서 각종 비자금 의혹에 대한 심층적 수사가 진행됐지만 이와 관련해 한 차례도 문제가 됐던 적은 없다”고 밝혔다.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는 4월30일 회삿돈으로 개인 형사 사건 변호사 비용을 충당한 혐의로 효성 총수 일가를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 ⓒ 연합뉴스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는 4월30일 회삿돈으로 개인 형사 사건 변호사 비용을 충당한 혐의로 효성 총수 일가를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 ⓒ 연합뉴스

참여연대, 계속해서 효성 고발 및 신고

참여연대가 효성을 고발하거나 신고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이미 오랜 기간 ‘악연’을 이어오고 있다. 참여연대는 이번 공정위 신고로부터 불과 40여 일 전인 지난 4월30일 조 명예회장과 조 회장을 업무상 횡령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2013년과 2017년 검찰 수사에 대한 변호사 비용 400억원을 회사 자금으로 충당했다는 의혹과 관련해서다.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법인 대표자 개인이 당사자가 된 민·형사 사건의 변호사 비용은 법인 비용으로 지출할 수 없다. 이와 함께 참여연대는 변호사 비용을 대납한 (주)효성과 효성티앤에스를 법인세법 위반 등의 혐의로 국세청에 탈세 제보하기도 했다.

앞서 2016년 5월에는 공정위에 효성을 신고하기도 했다. 효성투자개발이 갤럭시아일렉트로닉스를 우회 지원해 결과적으로 조 회장에게 부당 이익을 제공했다는 것이 이유였다. 2017년 7월에는 같은 내용으로 검찰 고발도 단행했다. 재계에서는 참여연대가 효성을 상대로 이처럼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는 배경이 효성가 ‘형제의 난’과 무관치 않다고 보고 있다. 한 재계 관계자는 “조 변호사가 형제들과 갈등을 빚는 과정에서 사정기관과 시민단체 등에 수많은 제보가 들어간 것으로 알고 있다”며 “이 과정에서 확보된 자료 등을 바탕으로 시민단체들이 문제 제기에 나서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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