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상수가 ‘불륜’ 딱지 떼기 위해 필요한 것들
  • 이철재 미국변호사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6.18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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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 변호사의 재밌는 미국] 한국과 달리 ‘파탄주의’ 채택한 美…그래도 이혼은 어려워

홍상수 영화의 팬이다. 오래전 우연히《생활의 발견》이란 영화를 DVD로 빌려 봤다가 그의 영화 세계로 빠져들었다. 요즘은 바쁜 일이 많아 몇 년 동안 영화를 그리 많이 못 봤다. 홍씨의 영화도 많이 놓쳤다. 예전엔 그의 영화가 나올 때마다 빠짐없이 챙겨 봤다. 주위엔 그의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별로 없어 늘 혼자 극장에 가서 봤다. 

근래 그는 영화보다 배우 김민희씨와의 사생활 때문에 더 관심의 대상이 되는 듯하다. 감독과 배우로 만나 사랑에 빠지고, 한동안 도피 행각을 벌인다고 보일 정도로 숨어 다녔다. 언제부턴가 둘이 함께 있는 모습이 사진에 포착되기 시작하더니 홍상수씨가 부인과 이혼하고 김씨와 결혼을 하겠다고 나섰다. 홍씨는 부인과 협의해서 이혼하는 조정을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그러자 이혼소송을 냈다. 

1심 결과는 많은 사람들이 예상했던 바와 같이 기각이다. 소를 제기한 사람이 자격을 갖추지 못했다는 이유로 법원이 소 자체를 받아주지 않았다.

2017년 3월13일 오후 서울 광진구 롯데시네마 건대입구점에서 열린 '밤의 해변에서 혼자' 언론시사회에 홍상수 감독, 배우 김민희, 서영화, 박예주, 권해효 등이 참석했다. ⓒ 시사저널 고성준
2017년 3월13일 오후 서울 광진구 롯데시네마 건대입구점에서 열린 '밤의 해변에서 혼자' 언론시사회에 홍상수 감독, 배우 김민희, 서영화, 박예주, 권해효 등이 참석했다. ⓒ 시사저널 고성준


기각된 홍씨의 이혼소송…이유는 ‘유책주의’

왜일까. 한국은 이혼에 있어 유책주의를 택한다. 쌍방 중 한 쪽이 결혼생활을 파탄에 이르게 한 책임이 있을 경우, 책임이 있는 쪽은 이혼을 청구할 수 없다. 오직 유책사유가 없는 쪽이 이혼을 요구할 때만 법원이 이혼을 허락할 수 있다. 

홍씨가 아무리 김민희씨와 자신의 관계가 진정한 사랑이라 믿는다 해도, 현행법의 기준으로 볼 때 두 사람의 관계는 가정생활을 파탄에 이르게 한 유책사유다. 앞으로 한국의 법이 유책주의에서 파탄주의로 바뀌지 않는 한, 홍씨는 부인의 동의 없이 이혼이 불가능하다고 보는 게 옳다.

만약 한국 법이 파탄주의를 택한다면 어떻게 될까. 간단히 말해 홍씨가 가정파탄의 책임자라 할지라도 이혼소송을 낼 수 있다. 서로 상대방의 유책사유를 공방을 벌여 증명할 필요가 없다. 성격 차이 혹은 가정 파탄으로 결혼생활을 더이상 지속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다는 사실만으로 이혼 사유가 된다. 

한국 법체계에서 위자료나 자녀 양육비 부담 문제 등이 현실적으로 개선되기 전에 유책주의에서 파탄주의로 바꾼다는 건 무책임한 일일 지도 모른다. 현실적으로 쌍방 중 경제적 약자가 일방적으로 이혼을 당하면 빈털터리가 돼 거리로 밀려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하지만 양육비 분담과 위자료 등을 포함해 이혼에 관한 법률 전반을 재정비한다면, 파탄주의는 어떤 것인지 한번 알아보고 고려해 볼 수 있다.

파탄주의를 영어로 ‘노폴트 이혼(No-fault divorce)’이라고 한다. 유책사유 없이 성립하는 이혼이란 뜻이다. 미국 법에서 이혼과 결혼에 관한 법률은 주법(州法)에 속한다. 50개 주가 각각의 법을 만들어 시행한다. 

2017년 5월22일 제 70회 프랑스 칸영화제 '그 후' 시사회에 참석한 홍상수 감독과 배우 김민희씨 ⓒ 연합뉴스
2017년 5월22일 제 70회 프랑스 칸영화제 '그 후' 시사회에 참석한 홍상수 감독과 배우 김민희씨 ⓒ 연합뉴스

 

미국은 ‘파탄주의’…유책사유 없어도 이혼 가능  

미국 법조계의 양대 산맥은 캘리포니아와 뉴욕이다. 캘리포니아가 판례를 깨고 새롭고 급진적인 법률을 내놓는 진보의 상징이라면, 뉴욕은 보수의 상징이다. 미국에서 가장 먼저 노폴트 이혼을 인정한 주는 캘리포니아다. 1969년 관련 법안이 캘리포니아 의회를 통과했다. 당시 캘리포니아 주지사 로널드 레이건이 노폴트 이혼법에 서명해 1970년부터 시행됐다. 현재는 50개 주가 모두 노폴트 이혼을 받아들였다. 

현재 캘리포니아 주법상 이혼성립 요건은 단 두 가지다. ‘타협할 수 없는 차이(Irreconcilable Difference)’, 즉 노폴트 이혼과 ‘치유불능의 정신질환(Incurable Insanity)’이 그것이다. 

캘리포니아를 비롯한 17개 주는 노폴트 이혼을 인정하는 것에서 한발 더 나아가 상대방의 유책사유를 열거하는 걸 아예 허락하지 않는다. 사랑해서 만났더라도 세월이 흘러 그 사랑이 식었다면, 서로 돌아설 수 있다는 것이다. 

언뜻 매정한 것 같다. 사회기강을 문란하게 만드는 무책임한 행위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여기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부부간의 일에는 부부만이 아는 진실이 있다. 이 부부간 진실은 또한 마땅히 보호받아야 할 사생활이다. 사법부가 부부의 내밀한 이야기까지 파고들어가 모두 들은 뒤,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행위부터가 자제해야 할 일이라는 것이다. 

또한 상대방의 잘못을 미주알고주알 들추는 사이 서로가 인격과 인간성에 상처를 입게 된다. 그렇지 않아도 피차 마음이 상해 돌아서는 마당에, 자칫 이혼 공방이 서로에 대한 인신공격으로 변해 관계가 더욱 악화되는 것을 막자는 것이다.

미 연방 50개 주 가운데 가장 최근인 2010년에 노폴트 이혼 법을 받아들인 곳은 뉴욕이다. 뉴욕 주법엔 오랜 별거, 한쪽의 잔혹 행위 등 이혼이 성립할 수 있는 요건이 6가지 있다. 이들 중 하나를 충족하면 이혼이 가능하다. 단 이혼을 원하는 쪽은 요건 충족을 입증하기 위해 지루한 법정 공방을 벌여야만 했다.

2010년 뉴욕주는 6가지 이혼 성립 요건에 ‘돌이킬 수 없는 와해(Irretrievable Breakdown)’를 추가했다. 법적 다툼이 필요 없는 노폴트 이혼이란 지름길이 생긴 것이다. 

이 요건을 충족하려면 두 배우자 중 한 쪽이 선서 후에 “결혼생활이 6개월 이상 ‘돌이킬 수 없는 와해’의 상태에 놓였다”고 서류에 적으면 된다. 그러면 법정 공방으로 인한 정신적·물질적 손실 없이 갈라설 수 있다. 실제로 현재 뉴욕주에서 이혼을 하려는 사람들이 귀책사유가 있다 해도 다른 종류의 이혼보다 노폴트 이혼을 선호한다. 

하지만 노폴트 이혼이라 해도 소를 제기한 날 바로 법원의 최종 승인을 받는 건 아니다. 이혼은 쉽게 성립되지만 최종 이혼승인판결(Divorce Decree)이 나오기까진 꽤 시간이 걸린다. 또 그 동안 당사자들이 해야 할 일이 많다.

캘리포니아의 경우 법원은 소송을 제기한 쪽이 상대 배우자에게 고지를 한 날로부터 최소 6개월이 지나야 최종 이혼승인판결을 내린다. 단 이는 어디까지나 최소한이다. 이 기간 내에 자녀 양육권, 재산 분할 문제 등에 양측이 합의하지 못하면 법적 이혼은 훨씬 더 오래 걸린다. 이혼승인판결이 나올 때까지 쌍방 모두 법적으로 기혼 상태라 다른 사람과 재혼할 수 없다. 

뉴욕의 경우 ‘최소 6개월이 지나야 이혼을 허가한다’는 조항은 없다. 하지만 캘리포니아와 마찬가지로 이혼 성립 이후 각종 문제에서 모두 합의를 보기 전까지 이혼승인판결은 나오지 않는다. 그 사이 재혼할 수 없다는 점도 캘리포니아와 같다. 

노폴트 이혼에 대한 찬반양론은 어느 곳이나 있다. 노폴트 이혼으로 인해 이혼율이 급증한다는 보고도 있고, 단기적으론 증가하지만 장기적으론 별 차이가 없다는 보고도 있다. 또한 유책사항을 고려하지 않아 재산분할이 공정하게 이뤄지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다.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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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이 결혼생활 강제해도 될까?

유책주의를 택하는 취지는 이혼 남발을 지양하고 기강을 확립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결혼이란 두 마음이 만나 하나가 될 때 존재하는 것이다. 20대 때의 열정은 아니더라도 양측 모두 최소한 가정이란 울타리 안에서 함께 살겠다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둘 중 한명의 마음이 떠나 더 이상 이어지지 않는 결혼생활을 법이 억지로 데려다 살라고 명하는 게 쌍방을 위한 최선인지, 법이 명령해 부부로 남은 사람들의 삶의 질은 과연 어떨지, 상대방에 대한 원망과 미움으로 그를 놓아주지 않는 게 나의 행복엔 어떤 도움이 되는지, 파고 들어가면 여러 가지 의문이 생긴다.

우리는 훌륭한 인품의 두 사람이 결혼해 순탄치 못한 결혼생활을 하는 경우를 종종 본다. 차라리 이혼하는 편이 낫다는 생각을 들게끔 하는 커플도 주변에 한둘쯤 있다. 자식 때문에 산다는 사람도 있고, 이혼을 해봤자 당장 먹고 살기 힘들어 할 수 없이 산다는 사람도 있다.

이번 홍씨의 이혼소송 기각을 계기로 유책주의와 파탄주의, 또 그에 따른 모든 현실적 이슈에 관해 포괄적으로 다시 생각해 보는 것도 좋겠다. 이혼율이란 통계를 넘어 개인과 각 가정의 실질적 행복을 저울질해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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