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종환 前문체부 장관 “더 이상 블랙리스트란 없다”
  • 구민주 기자 (mjooo@sisajournal.com)
  • 승인 2019.06.24 17:00
  • 호수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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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문체부 장관 지낸 도종환 민주당 의원…“총선 험지 출마? 나도 생각 없고 당도 계획 없다”

“가는 데마다 욕먹고 혼나는 게 일이었다”. 지난 4월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직을 떠나 국회로 돌아온 도종환 더불어민주당 의원. 복귀 후 지난 3개월여를 지역구(충북 청주시 흥덕구) 활동으로 채우면서 그는 고민이 더 늘었다. “위(정부)에서 정책을 정하다가 아래(지역)에 와서 민심을 들으니 ‘이렇게나 갭(차이)이 크구나’ 놀랐다. ‘경제를 이렇게 망쳐놓고 무슨 표를 달라 하느냐’더라”. 6월18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만난 도 의원은 지역에서 체감한 ‘경제’ 얘기로 한동안 대화를 이어갔다.

22개월. 근래 보기 힘든 ‘장수 장관’으로서, 그에겐 긴 재임 기간만큼 ‘사건’도 많았다. 초유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태를 수습했고, 동계올림픽을 치러냈다. 북한을 방문해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공연도 관람했다. 여러 나라를 다니며 BTS의 위상을 몸으로 느끼기도 했다.

장관 이임식에서 그가 읊은 ‘사람의 일생에는 수많은 정거장이 있어야 한다‘는 시 구절처럼 도 의원은 문체부에서의 화려한 장면들을 뒤로하고 여의도 전쟁터로 다시 정거장을 옮겨왔다. 여야 간 갈등이 극에 달해 있는 데다 총선도 1년이 채 남지 않은 지금, 그는 여러모로 ’전투모드‘다.

ⓒ 시사저널 박은숙
ⓒ 시사저널 박은숙

오랜만에 돌아온 국회는 어땠나.

“여야의 간극이 더 커졌다. 자유한국당에서 정말 합의를 하고 싶긴 한 건지 모르겠다. 겨우 합의점을 찾으면 뒤집고 다른 걸 요구하고, 다시 합의를 이루면 또 다른 걸 요구한다. ‘경제청문회’도 그 일환으로 등장했다. 경제청문회는 IMF로 국가가 파산 났을 때 딱 한 번 한 적 있다. 지금 우리나라가 그때처럼 파탄 상태인가. 오히려 세계적으로 우리 경제가 꾸준히 상위 등급을 받고 있는데, 말이 되는 요구인가.”

경제가 어렵다고 토로하는 이들이 실제 굉장히 많지 않나. 정부·여당 지지율에 영향도 크다.

“지역 다니면서 굉장히 혼이 많이 났다. 자영업자들은 ‘최저임금 인상과 그놈의 ‘소득주도성장’ 때문에 장사 다 망했다’고 한다. 그런데 최저임금 인상과 함께 시행한 정부의 여러 지원책과 소득주도성장 원리를 다시 설명하고 나면 ‘진작 제대로 얘기하지, 왜 그리 전달을 못 했느냐’고 하신다. 야당과 일부 보수언론에서 만든 프레임 때문에 이분들의 걱정과 오해가 커져 있다. 여기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정부의 부족함도 인정한다.”

문재인 정부 전반기 문화예술 분야에 대해선 어떻게 평가하나.

“장관 시절 각국 문화부 장관들을 만나면 ‘왜 이렇게 영화·드라마를 잘 만드느냐’ ‘언제든 와서 촬영하라. 뭐든 제공하겠다’는 얘길 정말 많이 들었다. 대통령이 정상회담에서 그 나라 원수에게 BTS 친필 사인을 주면 다음 날 회담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지난해 문체부에서 외국인 8000명을 대상으로 우리나라 호감도를 조사했는데, 호감도가 80%를 넘었다. 지난 2년, 문화를 통해 우리 위상을 한껏 높인 시기였다고 자평한다.”

장관 기간 중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무엇인가.

“(망설임 없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우리 가수들의 공연을 보며 2시간30분 동안 대화한 것이다. 옆에서 김 위원장이 이것저것 많이 질문했다. 《총 맞은 것처럼》을 부르는 백지영씨를 보며 ‘저분은 남쪽에서 어느 정도의 가수냐’고 물었다. 윤도현씨가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를 부르니 ‘북에서도 다 아는 노래’라며, 마지막 ‘남자는 다 그래’ 가사에 리설주 여사와 김여정 부부장이 서로 쳐다보고 웃기도 했다. ‘북에서도 공감 가는 가사’라더라.”

한반도 정세가 주춤하면서 당시 속도를 내던 남북 문화교류사업도 주춤해진 듯하다.

“당시 2020년 도쿄올림픽에 단일팀으로 출전하기로 하고, 그 전에 남북을 오가며 훈련하기로 약속했는데 지금 잘 안되고 있다. 이전에도 스포츠가 정치를 견인하며 남북관계 돌파구를 만들었듯, 다시 스포츠를 통해 관계 전반이 풀렸으면 한다.”

 

“문화예술인들, 서운했지만 이해한다”

도 의원은 2015년부터 박근혜 정부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를 가장 앞장서 밝히던 국회의원이다. 그는 예술인들의 가장 큰 ‘동지’였으며, 문체부 장관으로 갈 때도 이 문제를 해결해 주리란 기대를 받았다.

그러나 블랙리스트 관련 공무원을 처벌하는 데 있어 그는 예술인들과 한때 갈등을 빚었다. 이들의 오랜 동지인 동시에 문체부 공무원들의 수장이었기에, 그 사이에서 고민이 많았다. 이 때문에 예술인들은 “장관이 되니 변했다”고 했고, 일부는 그의 퇴진을 요구하는 피켓도 들었다. 도 의원은 당시를 기억하며 “서운함도 있었지만 그들이 왜 그렇게 세게 나왔는지 이해하기에 최대한 협조했다”고 말했다.

문체부가 블랙리스트 관련 공무원들을 제대로 징계하지 않는다는 비판이 꾸준히 이어졌고, 지금도 문제 제기가 있다.

“문화예술인들의 주장은 블랙리스트에 관여한 문체부 하위직 공무원들까지 모두 징계하자는 것이었다. 그 요구에 따라 진상조사위원회가 꾸려졌고 최종 131명에 대한 징계를 요구했다. 난 제대로 징계하되, 이미 퇴직했거나 징계시효가 지난 공무원들은 징계가 어렵다는 입장이었다. 131명 중 몇 명을 징계했을 것 같나. 78명 했다. 나머지 50여 명 중 37명은 퇴직자였고, 타 기관 소속이거나 징계시효가 끝난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이게 결과다.”

문화예술인들에게 서운했나.

“서운한 면도 있었다. 다들 공무원들이 징계 안 받으려 버틴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내가 만난 공무원들은 오히려 ‘징계해 주세요’ 했다. 부당한 지시를 거부하지 못한 잘못을 책임지겠다고. 이런 얘길 하면 공무원들 편든다고 오해했다. 그럼에도 예술인들의 울분을 충분히 알기에 여러 번 사과했다. 이들도 다시는 이런 일이 없어야 한다는 걸 강조하면서 나에 대한 비판도 세게 한 거라 생각한다. 나 개인을 죽이려고 한 게 아니란 걸 안다.”

이 정부에도 블랙리스트, 또는 화이트리스트 논란이 나오는데.

“정부 입장에선 블랙도 화이트도 결단코 없다는 게 기본 원칙이고 입장이다. 물론 지난번 환경부 블랙리스트 문제가 있었다. 리스트를 보는 시각차는 있지만, 검찰이 이게 사실이면 장관도 구속시키겠다는 기세로 나오지 않았나. 어느 부처든 쉽게 리스트를 만들긴 어려울 거다. 유명 인사들에 대한 화이트리스트 의혹도 나오는데, 기존에 블랙리스트여서 방송에 나오지 못했던 이들이 전보다 자주 등장해서 그런 것 같다. 방송국에서 그들을 쓰는 거지, 리스트가 있다고 생각지는 않는다.”

지역구에 공천경쟁이 매우 치열할 거란 얘기가 벌써부터 나오는데.

“10개월 남았고 공천은 내년 2월부터 심사를 한다. 지역 일간지에서 지금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 대부분 추측으로 기사를 쓰고 있다. 나를 포함한 당사자들에게 물어보지도 않았다.”

험지에 출마해야 한다는 요구가 있다고 하던데.

“나도 전혀 생각이 없고 당에서도 계획이 없다. 내가 맡아온 곳에서 계속 열심히 할 거고, 누구나 그러고 싶은 게 당연하지 않나. 여기저기서 추측을 하고 있는데 나한테 먼저 좀 물어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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