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 완화·부실 검증’이 코오롱 인보사 사태 초래했다
  • 주재한 시사저널e 기자 (jjh@sisajournal-e.com)
  • 승인 2019.06.21 16:00
  • 호수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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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 논리로 강행된 규제 완화가 화 키워…식약처 사후 대응도 논란

정부는 지난 2002년부터 2018년까지 17년 동안 인보사 관련 R&D(연구·개발) 사업에 총 147억원 정도를 지원했다. 인보사는 2002년 보건복지부의 신약개발 지원사업(연구기간 5년, 지원액 13억원), 2005년 노무현 정부 시절 바이오 산업화 방안 중 하나인 바이오스타 프로젝트사업(6년, 52억1500만원)에 선정됐다.

이의경 식약처장이 6월5일 인보사 투여 환자 안전관리 대책 발표에 앞서 이번 사태에 대해 사과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이의경 식약처장이 6월5일 인보사 투여 환자 안전관리 대책 발표에 앞서 이번 사태에 대해 사과하고 있다. ⓒ 연합뉴스

‘정부책임론’ 계속 커지는 이유

대통령의 직접적인 규제 완화 요구는 인보사 R&D 사업에 날개를 달아줬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2011년 9월 서울대병원에서 열린 줄기세포 연구·개발 관련 보고회에 참석해 “너무 보수적으로 하면 남들보다 앞서갈 수 없다”며 제도 개선을 주문했다. 생명공학 분야 연구회에 대통령이 직접 참석한 것은 처음이었다. 대통령 언급 이후 자가세포 치료제의 임상시험 기준이 완화됐다. 2012년 2월 식약처(당시 식약청)는 자가세포 치료제 임상시험 허가자료 인정 범위를 확대하는 내용의 ‘생물학적제제 등의 품목허가·심사 규정 일부개정안’을 고시했다. 당시 정부는 “자가세포 치료제의 연구자 임상시험이 ‘상업화 연계’가 용이하도록 허가자료 인정 범위를 확대했다”고 설명했다.

박근혜 정부에서 규제 완화는 더 가속화됐다.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생명윤리법)상 유전자 치료는 ‘심각한 장애를 일으키는 질병일 때’ ‘치료법이 없거나 유전자 치료의 효과가 다른 치료와 비교했을 때 현저히 우수할 것으로 예측되는 경우’를 동시에 만족해야 가능했다. 하지만 2015년 일부 조항을 신설해 두 조항 중 한 가지만 충족하더라도 유전자 치료제를 개발할 수 있도록 법이 완화됐다. 코오롱은 2015년 글로벌 첨단바이오의약품 기술개발 국책과제 사업 주관 기관으로 선정됐으며, 이후 3년간 약 82억1000만원의 정부 지원을 받았다. 최근 발생한 인보사 사태에 대해 정부 책임론이 불거지는 이유다.

전진한 건강권 실현을 위한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국장은 “당시 시민사회단체는 검증되지 않은 유전자 치료제 규제 완화가 환자를 위험에 빠뜨릴 것이라고 반대했지만, 정부는 산업 논리에 매몰돼 이를 강행했다”고 지적했다. 최규진 인하대 의과대학 교수는 “식약처는 과거 정권에 맞춰 규제 완화를 추진하는 데 급급했다”며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해 재생의료 업계에 건전한 토대를 만드는 고민은 찾기 어려웠다”고 진단했다.

‘정부 책임론’은 규제 완화뿐만 아니라 부실 검증에서도 근거를 찾을 수 있다. 지난 4월 식약처는 인보사 제품이 허가 사항과 다른 세포인 것을 알게 된 배경에 대해 “코오롱이 지난 3월 미국에서 임상시험 제품에 대해 자체적으로 유전자 검사를 진행하면서 세포 변경 가능성을 보고해 이를 처음으로 알게 됐다”고 밝혔다. 150억원에 달하는 국비를 지원하고 제조·판매까지 허가한 15년의 기간 동안 이를 몰랐다고 정부 스스로 자인한 셈이다.

최덕현 제일합동법률사무소 변호사는 “식약처는 세계 최초 유전자 세포 치료제에 대한 임상시험 계획 승인 및 시판 허가를 하면서 코오롱 측이 제출한 자료만을 근거로 판단했다.€제출 자료와 제품의 세포 동일성 여부를 점검하지 않은 것”이라고 지적했다. 식약처를 직무유기 혐의로 고발한 소비자주권시민회의 박순장 팀장도 “인보사 임상 허가 및 품목 허가 과정에서 유전자 치료제 특성상 자체 교차검증이 필수적인데도 식약처는 코오롱이 제출한 자료에만 의존한 채 품목 허가를 내줬다”고 꼬집었다.

식약처의 허가심의 결과가 두 달 만에 뒤집힌 배경에도 의문이 남는다. 2017년 4월 식약처 허가심의 회의록에 따르면 위원들은 “안전성을 담보할 수 없다” “증상 완화만을 위해 유전자 치료제의 위험성을 가져가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의견을 냈다. 결국 인보사는 위원 7명 중 6명의 반대로 심의를 통과하지 못했다. 하지만 불과 두 달 뒤 위원 7명 중 3명이 교체되면서 결과가 뒤집힌다. 일각에서는 인보사 허가 당시 식품의약품안전평가원 바이오생약심사부장의 전결로 처리됐다는 이유로 ‘특혜’ 의혹도 제기하고 있다.

전진한 정책국장은 “외국에서 허가받은 유전자 치료제는 모두 중증질환이거나 희귀질환 치료를 목적으로 하는데 인보사는 ‘증상 완화용’ 유전자 치료제라는 말 자체도 황당한 제품”이라며 “인보사 허가 과정 전체와 규제 완화 특혜 제공 모두 총체적 부실이 없는지 밝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식약처가 인보사를 허가 취소하고, 코오롱생명과학을 고발하면서 공은 검찰로 넘어갔다. 검찰은 코오롱 측이 허위 자료를 제출해 인보사 허가를 득했는지 확인하는 동시에, 허가 과정에 식약처의 부실 검증 등은 없었는지 함께 들여다보고 있다. 검찰은 또 6월15일 이웅열 전 코오롱그룹 회장을 출국 금지해 수사가 코오롱 최고 윗선까지 뻗어갈 수 있음을 시사했다.

검찰은 6월3일 서울 강서구에 위치한 코오롱생명과학 본사를 압수수색했다. ⓒ 연합뉴스
검찰은 6월3일 서울 강서구에 위치한 코오롱생명과학 본사를 압수수색했다. ⓒ 연합뉴스

검찰, 식약처 잘못도 들여다봐

시민단체들은 인보사 사태에 최소한 식약처의 ‘부실 허가’ 책임이 있다고 지적한다. 무상의료운동본부는 5월21일 전·현직 식약처장을 각각 위계에 의한 업무방해 및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 등의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이들은 “식약처가 인보사 판매 허가 당시 코오롱과 밀접한 연구를 통해 시행착오를 줄였다”며 “코오롱과 식약처는 공동의 책임을 진 당사자”라고 꼬집었다. 또 다른 시민단체인 소비자주권시민회의는 4월30일 이의경 처장을 직무유기 혐의로 고발하기도 했다.

파장은 고스란히 자회사로 번졌다. 6월19일 코오롱생명과학 자회사 코오롱티슈진이 상장 실질심사 대상인지 검토했던 한국거래소는 7월15일까지 결정을 미뤘다. 거래소 관계자는 “코오롱티슈진이 중요 사항을 허위로 기재하거나 누락했는지, 이런 행위에 중과실이 있는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식약처의 청문 절차를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실질심사 대상이 되면 코오롱티슈진은 관리종목으로 지정되며, 심사 결과에 따라 상장 폐지 위기에 몰릴 수도 있어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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