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 비웃는 현대백화점 오너 일가의 ‘주(株)테크’
  • 이석 기자 (ls@sisajournal.com)
  • 승인 2019.06.27 14:00
  • 호수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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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선·정교선 형제, 알짜 계열사 현대그린푸드 지분 취득 과정 의문

정교선 현대백화점그룹 부회장은 2018년 4월 계열사로부터 현대그린푸드 지분 7.8%를 넘겨받았다. 매입 주체는 현대쇼핑. 그룹 순환출자 고리의 핵심 역할을 해 온 회사였다. 하지만 최근 현대쇼핑이 보유하던 현대그린푸드 지분 전량을 오너 일가에게 매각하면서 현대백화점그룹은 공정위의 압박에서 벗어나게 됐다.

무엇보다 현대그린푸드는 그룹의 지주회사 격인 회사다. 연결 기준으로 지난해 3조2517억원의 매출과 1372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을 정도로 실적도 탄탄하다. 이전까지 정교선 부회장과 정지선 회장이 각각 15.3%와 12.7%의 지분을 보유했다. 정교선 부회장이 이번에 추가로 지분을 취득하면서 오너 일가의 지배력이 더욱 탄탄해졌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현대백화점그룹 정지선 회장(오른쪽)과 정교선 부회장이 취득한 알짜 계열사 현대그린푸드 지분을 놓고 뒷말이 나오고 있다. ⓒ 시사저널 최준필·연합뉴스
현대백화점그룹 정지선 회장(오른쪽)과 정교선 부회장이 취득한 알짜 계열사 현대그린푸드 지분을 놓고 뒷말이 나오고 있다. ⓒ 시사저널 최준필·연합뉴스

순환출자 풀었지만 일감 몰아주기 규제 포함

문제는 현대그린푸드가 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상에 새롭게 포함됐다는 점이다. 현행 공정거래법에 따르면 총수 일가 지분율이 30% 이상인 상장사(비상장 20%)의 경우 한 해 내부거래가 200억원 이상, 매출의 12% 이상이면 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상이 된다. 현대그린푸드는 그동안 현대백화점 등 계열사와의 거래를 통해 고속 성장해 왔다.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내부거래가 60%를 웃돌기도 했다. 이후 내부거래가 서서히 줄었고, 지난해 IT사업부마저 현대IT&E로 물적 분할되면서 16.88%(매출 1조5146억원-내부거래 2555억원)를 기록했다. 그럼에도 규제 기준을 10배 이상 상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총수 일가의 지분이 29.92%로 규제를 아슬아슬하게 피했다. 하지만 최근 지배구조 개선 과정에서 총수 일가의 지분이 37.90%로 증가하면서 새롭게 규제 대상에 포함된 것이다. 더군다나 공정위가 입법 예고한 공정거래법 개정안은 상장사나 비상장사 모두 총수 일가의 지분율을 20%로 규정하고 있다. 규제를 피하기 위해서는 정지선 회장과 정규선 부회장이 지분 18%를 매각하거나 내부거래를 줄여야 하는 상황이다.

현대백화점그룹 측은 “문제성 거래는 없다”는 입장이다. 그룹 관계자는 “주주 권익 강화와 지배구조의 투명성을 높이는 사회적 요구에 부흥하기 위해 순환출자를 해소했다”며 “총수 일가 지분율이 높아질 경우 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상에 포함될 것임을 미리 인지하고 있었지만, 내부거래에 문제가 될 부분은 없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재계 일각의 시각은 달랐다. 순환출자 고리를 끊는 과정에서 알짜 회사 지분이 또다시 오너 일가에게 돌아갔기 때문이다. 재계 관계자는 “일감몰아주기법의 취지 자체가 편법적인 부의 상속을 막기 위한 것”이라며 “회사의 필요성에 따라 알짜 회사의 지분을 매각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 대상이 오너 일가라면 얘기가 달라진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현대그린푸드는 지난해 회사 설립 이후 처음으로 매출 ‘3조 클럽’에 가입했다. 현대백화점 등 그룹 계열사뿐 아니라, 방계 회사의 물량 지원으로 지난 한 해에만 매출과 영업이익이 각각 28.3%와 57.5% 증가했다. 최근 10년간 매출 증가율은 298.9%(8151억원→3조2517억원)에 달한다. 배당금도 적지 않다. 지난해에만 183억원을 배당했다. 오너 1인당 수십억원의 배당금을 챙긴 셈이 된다. 이런 알짜 회사를 순환출자 고리 해소를 명분으로 오너 일가에게 넘겼다는 점에서 뒷말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2010년 정지선 회장이 현대그린푸드 지분을 취득한 과정도 석연치 않다. 현대그린푸드는 1968년 금강개발산업으로 설립됐다. 1999년 회사가 현대그룹 계열에서 떨어져 나오고, 2001년과 2002년 호텔과 백화점 사업이 각각 분할되는 과정에서 현대백화점H&S→현대H&S→현대그린푸드로 사명이 바뀌었다.

하지만 2003년까지도 정지선 회장이 보유한 현대그린푸드의 지분은 1.23%에 불과했다. 정교선 부회장은 단 한 주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정몽근 명예회장은 2004년 보유 지분(21.34%)을 정 부회장에게 증여하면서 최대주주가 바뀌었다. 이때까지도 정지선 회장의 지분은 1.23%였고, 2009년까지도 이 체제가 유지됐다.

현대그린푸드는 2010년과 2011년 계열사인 현대푸드시스템과 현대에프앤지를 차례로 합병했다. 이 과정에서 정지선 회장의 지분이 갑자기 13.74%로 늘어났다. 현대푸드시스템 최대주주(35%)였던 정지선 회장이 합병 신주를 받아 지분율이 크게 늘었다는 게 현대백화점그룹 측의 설명이다. 하지만 현대푸드시스템의 2대주주(14.35%)였던 현대쇼핑의 지분은 합병 신주를 받고도 2009년 9.92%에서 2010년 합병 후 8.41%로 오히려 지분이 감소했다. 같은 주주인데, 오너 일가는 합병회사의 지분이 늘고 법인은 오히려 지분이 줄어든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도 현대백화점그룹 관계자는 “현대쇼핑은 현대백화점 신촌점의 운영 주체다. 당시 신촌점 유플렉스 신축 개발로 500억원의 차입금이 있는 상태에서 추가로 자금이 필요해 현대H&S(현 현대그린푸드) 지분 5%를 오너 일가에게 매각한 것”이라며 “투자자 혼란을 막기 위해 거래시간이나 거래단가 산정 역시 법적 절차에 맞춰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현대백화점 측 “지분 취득 과정에 문제 없다”

하지만 이 같은 해명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현대그린푸드와 마찬가지로 현대푸드시스템도 일감 몰아주기를 통해 고속 성장해 왔다. 상장 직전이던 2009년 3440억원의 매출 중 1715억원(50.4%)이 계열사와의 거래를 통해 나왔을 정도다. 2010년 이 두 회사를 합쳐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이 합병의 목적이었다. 이런 호재를 불과 몇 개월 앞두고 현대쇼핑이 지분을 오너 일가에게 처분했다는 점에서 논란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현대백화점그룹 경영진이 내부 정보를 알면서도 이런 결정을 했는지가 관건이 될 전망이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오너 일가들이 충분히 이사회를 컨트롤할 수 있는 게 재계 현실이다. 계열사가 오너 일가에게 알짜 회사 지분을 매각하면서 양측의 희비가 크게 엇갈렸다면 논란의 소지가 있다”며 “정지선 회장이 지분을 거래할 당시 지위를 이용해 내부 정보를 알고 있었는지가 관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쇼핑은 현재 현대백화점이 100%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문제가 드러날 경우 현대백화점 소액주주들로부터 소송을 당할 수도 있는 만큼 어떤 식으로든 검증이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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