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돈의 시대다. 혹자는 난세(亂世)라 부른다. 갈피를 못 잡고, 갈 길을 못 정한 채 방황하는, 우왕좌왕하는 시대다. 시사저널은 2019년 올해 창간 30주년을 맞았다. 특별기획으로 정치·경제·사회·문화·종교 등 각계 원로(元老) 30인의 ‘대한민국, 길을 묻다’ 인터뷰 기사를 연재한다. 연재 순서는 인터뷰한 시점에 맞춰 정해졌다. ①조정래 작가 ②송월주 스님 ③조순 전 부총리 ④이헌재 전 경제부총리 ⑤손봉호 기아대책 이사장 ⑥김원기 전 국회의장 ⑦김성수 전 대한성공회 대주교 ⑧박찬종 변호사 ⑨윤후정 초대 여성특별위원회 위원장 ⑩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 ⑪한승주 전 외무부 장관 ⑫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 ⑬허영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석좌교수 ⑭이종찬 전 국회의원 ⑮남재희 전 노동부 장관 ⑯박관용 전 국회의장 ⑰송기인 신부 ⑱차일석 전 서울시 부시장 ⑲임권택 감독 ⑳이인호 서울대 명예교수 21 이문열 작가 22 송두율 전 독일 뮌스터대 교수
송두율 교수의 학문적 영역은 철학과 사회학을 넘나든다. 박사과정 지도교수가 ‘유럽의 살아 있는 지성’ 위르겐 하버마스 전 프랑크푸르트대 교수다. 슈뢰더 전 독일 총리와 대담을 끝마치고 점심식사를 하러 간 자리에서 기자는 바로 옆 테이블에서 식사하고 있는 하버마스를 만날 수 있었다. 석학을 만났다는 생각에 하버마스에게 명함을 건네며 “반갑습니다. 인사 좀 드려도 되겠습니까”라고 말하자, 밑도 끝도 없이 “Nein(싫다)!”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약속된 만남이 아니기에 응할 수 없다’는 의미로 해석됐다. 날이 서 있을 정도로 예리한 석학에게 사사했기에 송 교수의 비판은 박정희, 전두환 정권엔 그만큼 커다란 아픔이었을지 모른다. 북한 사회를 외부가 아닌 내부의 시각으로 보려 한 송 교수의 독특한 ‘내재적 접근법’은 국가보안법을 국가 신조로 삼던 군사정권에는 딱 좋은 먹잇감이었다.
제3세계에서 건너온 24살의 청년 송두율에게 39살의 하버마스는 스승이자 학문적 동지다. 올해 하버마스는 구순(九旬)을 넘어선다. 독일 현지에선 세계의 지성이라 불리는 그를 위해 생일(6월18일)에 맞춰 다양한 기획물을 쏟아내고 있다.
현재 송교수는 필생의 마지막 역작을 준비하고 있다. 《현대성의 구성》으로 이름 붙인 이 책은 오는 10월 탈고가 목표다. 그가 현대성에 대한 기록물을 내는 것은 1990년 발간된 《현대성의 연구》, 2002년 발표된 《현대성의 명암》 이후 세 번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