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태양광 사업이 자연과 인간을 해치는 사업으로 변질됐다”
  • 정성환 호남취재본부 기자 (sisa610@sisajournal.com)
  • 승인 2019.06.25 10:00
  • 호수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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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장성호 수상태양광발전소 설치 논란…“조용하던 마을이 뒤집혔다”

“장성호 수몰민의 한(恨)이 서린 곳이자 광주·전남인의 휴식처인 장성호는 어떤 개발논리로도 훼손될 수 없습니다.”

한 업체가 전남 장성군 북하면 장성호에 수상태양광발전소를 건립하려는 것에 반대하는 주민들의 항변이다. 이들도 태양광 발전 자체는 반대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그래서 자신들의 주택 지붕 위에도 태양광 패널을 설치했다. 다만 입지와 장소의 적합성에 문제가 있다고 주장한다. 왜 하필이면 경관이 수려하고 수몰민의 한이 서린 장성호에 설치하느냐는 것이다. 

장성호 수상태양광발전소 설치 반대 펼침막 ⓒ 시사저널 정성환
장성호 수상태양광발전소 설치 반대 펼침막 ⓒ 시사저널 정성환

“농어촌공사가 주민 세 번 죽이려고 하냐”

지난 6월18일 오전 장성호. 수상스키를 즐기는 이들이 간혹 물살을 가를 뿐 조용했다. 하지만 호수 ‘밖’은 달랐다. 장성호 초입인 북하면 남창계곡 입구에는 전운이 감돌았다. 교량에 걸린 깃발들, 만장기 형태의 펼침막에 적힌 살벌한 문구가 갈등 현장임을 보여줬다. ‘장성호를 지켜내자’ ‘태양광 설치 결사반대’ ‘각성하라 농어촌공사’ 등의 태양광발전소 건설 반대 펼침막이 곳곳에 붙어 있었다. 

이 가운데 유독 ‘장성호 사망(태양광)’이라는 문구가 적힌 현수막이 시선을 끌었다. “한국농어촌공사가 세 번이나 죽이려고 하고 있습니다.” 북상우체국 뒤편 한 식당에서 만난 ‘장성호 태양광설치 반대위원회’ 박장수 위원장(67)의 말이다. 그는 장성호 수상태양광발전소 건립 시도를 ‘3차 수몰’로 규정하며 정부와 한국농어촌공사에 대한 서운함을 토로했다. “1975년 댐 건설공사와 2010년 둑 높이기 사업 때 두 번에 걸쳐 수몰민들이 고향을 등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당시 쌓였던 애환과 아픔이 지금도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뜬금없는 장성호 수상태양광 사업 추진으로 잔존하는 실향민들이 찬반으로 갈라져 반목하는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작 현장에서 확인한 수상태양광발전소 건립의 주체는 ‘농어촌공사’가 아닌 ‘태양광업체’였다. 장성호 소유주인 농어촌공사는 태양광 제안 사업 추진 여부를 검토 중이라는 입장이다. 그럼에도 한 업체가 농어촌공사 대신 사업 추진을 기정사실화하고 나서면서 갈등의 불을 지폈다. 광주에 본사를 둔 국내 굴지의 태양광업체인 A사는 지난달 23일 북하면사무소에서 버젓이 사업설명회를 열고 1500억원을 투자해 75㎿ 규모의 수상태양광발전소를 장성호에 건립하겠다는 구상을 내놓았다. 장성호 수상에 설치될 태양광 면적만 해도 75ha로, 논 1120마지기에 해당한다. 업체는 내친김에 주민들에게 10%의 조합 지분을 배정하고 20년간 256억원을 현금으로 지원하겠다는 등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업체가 사업설명회를 통해 들쑤셔놓은 이후 조용하던 장성호 수변지역 마을은 시끄러워졌다. 다정다감했던 이웃들이 가뭄에 호수 바닥 갈라지듯이 찬성과 반대로 나뉘었다. 태양광 발전시설로 환경이 파괴될 것이라는 주민들과 마을 발전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주장하는 주민들이 맞서고 있다. 여기에 민간자본의 힘을 빌려 손쉽게 지역을 개발해 그 공으로 단체장의 영향력을 확대하겠다는 지자체의 정치적 노림수도 겹쳐 있다. 

설마설마하며 반신반의하던 주민들은 업체의 설명회 이후 서둘러 ‘장성호 태양광설치 반대위원회’를 꾸렸다. 반대위는 장성호의 자연경관이 훼손되는 등으로 인해 관광지로서 매력이 떨어질 것을 걱정하고 있다. 무엇보다 태양광 사업이 마을 사람들을 반목하게 하는 현실을 개탄했다. 장성군청 공무원 출신인 박 위원장은 “북하면 마을은 장성군 안에서 화목하고 단결이 최고로 잘된 마을들이었다. 태양광 발전사업 때문에 지역 공동체가 산산이 부서지고 마음이 갈라져 안타깝다”고 했다. 반대위 정동일 사무국장(51)은 “정부가 주도·장려하고 공기업과 개인자본이 수익을 가져가는 태양광 발전사업은 자연수탈적이고 주민복리에도 반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태양광 사업 있는 곳에 갈등 있다

그러나 다른 목소리도 나온다. 장성군 북하면 이장단협의회에 속한 일부 이장들을 중심으로 찬성추진위원회 구성 움직임도 감지됐다. 이들이 찬성추진위를 구성하려는 이면에는 금방 손에 잡히는 뭔가 있을 때 잡아야 한다는 현실적 이유가 깔려 있다. 지역 개발 등 마을이 발전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논리다. 찬성 쪽 주민들의 대표자 격인 박삼수 북하면 이장단협의회장도 작은 지역에서 서로 다투는 지금의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북하면사무소에서 만난 박 회장은 “43년 동안 피해만 당하고 보상을 받지 못했다. 이대로 가만히 앉아 있으면 누가 나서서 보상해 주겠나. 뒤늦게나마 수몰민 보상 차원에서 이 사업을 추진했으면 한다. 전체 20명 목표인 찬성추진위원 중 15명의 서명을 받아놓은 상태에서 주민 간 반목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보고 일시 중지하고 있지만 조만간 재개할 생각입니다”라고 말했다. 주민들은 장성군의 어정쩡한 태도에 대해선 한목소리로 갈등을 오히려 조장하고 있다며 마땅치 않아 했다. 중재에 적극 나서야 할 지자체가 뒷짐 지고 강 건너 불구경을 하다가 잘되면 떡만 얻어먹겠다는 심보라는 것이다.

장성호는 소설 《징소리》의 배경지이기도 하다. 1978년 소설가 문순태는 장성호가 들어선 북상면 덕재리 방울재라는 수몰(水沒)지구를 배경으로 댐이 건설되면서 졸지에 농토를 잃은 수몰민들과 개발논리를 앞세운 지배세력 간의 갈등을 소설로 그려냈다. 그때나 지금이나 장성호가 수몰민의 눈물을 담기는 마찬가지다. 

지난 6월17일부터 이틀 동안 장성호와 북하면사무소, 장성군청, 농어촌공사 등 유관기관을 둘러봤다. 그곳에는 ‘태양광발전소’ 건립을 둘러싼 주민과 농어촌공사의 갈등이 끓어오르고 있었다. 43년 동안 유예된 보상을 받을 수 있다는 일부 주민의 ‘기대’와 재정이 빈약한 공기업의 민자 제안사업 ‘유치’라는 욕망이 “왜 하필 장성호이냐”는 주민의 분노와 결의 사이를 파고들었다. 이들 사이에서 이윤을 챙기려는 태양광 자본의 욕망이 호수를 따라 흘렀다. 장성군 북상면 덕재리에서 태어나 평생을 그곳에서 살았다는 변동하 전 북상우체국장은 “녹색에너지 사업을 하겠다고 시작한 태양광 사업이 오히려 자연과 인간을 해치는 사업으로 변질되고 있다”고 탄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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