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드라마의 새로운 지평 연 《보좌관》
  • 하재근 문화 평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6.29 12:00
  • 호수 155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정치 혐오에 편승한 《국민 여러분》, 권력 쫓는 현실 보여준 《보좌관》

최근 두 편의 정치 드라마가 연이어 방영됐다. KBS에서 《국민 여러분》이 먼저 방영됐고 JTBC에서 《보좌관》이 현재 방영 중이다. 《국민 여러분》은 사기꾼이 국회에 입성한다는 내용이다. 사채업자 박후자(김민정 분)는 사기꾼 양정국(최시원 분)을 협박해 재보선에 출마시킨다. 뇌물로 정치인들을 조종해 왔는데 아예 부하를 국회 안에 거느릴 속셈이다. 3선 의원 출신이며 선거 전문가인 김주명(김의성 분)이 양정국의 선거를 돕는다.

기성 정치인과 참신한 고학력 신인 정치인이 양정국의 지역구 경쟁 상대였다. 하지만 기성 정치인은 구태로 자멸하고, 참신한 것 같았던 신인 정치인도 권력 욕심에 타락한다. 양정국은 기존 정치인들에게 호통을 치며 국민의 공감을 얻어내 일약 인기 국회의원이 된다. 원내에 진입해선 왕따를 당하지만, 싸움에만 골몰하는 패거리 구태 정치인들에게 다시 한번 호통치며 새로운 정치의 상을 제시했다.

《보좌관》에선 이정재가 장태준 보좌관으로 등장한다. 그가 모시는 3선 의원 송희섭(김갑수 분)은 부패한 권력욕의 화신이다. 원내대표, 법무장관, 대권으로 가는 코스가 목표인 송희섭은 자기보다 앞서 있는 정적들을 무자비하게 쳐나간다. 그 수족 역할을 하는 게 장태준 보좌관이다. 장태준은 국회의원으로 입신하기 위해 송희섭에게 충성하면서 여성 초선인 강선영(신민아 분) 등의 조력을 받아 야망을 키워 나간다.

그 과정은 진흙탕이다. 송희섭의 당내 정적과 온갖 편법을 동원한 싸움을 벌이고, 법무장관을 끌어내리기 위해 권모술수를 일삼는다. 그 과정에서 부정한 거래를 마다 않고 동지도 서슴없이 배신한다. 물리적 다툼만 없을 뿐 조폭 간의 싸움과 크게 다를 바 없어 보인다. 조폭은 주먹을 쓰지만 정치인은 검찰, 경찰, 언론을 활용해 상대를 친다.

KBS 드라마 《국민 여러분》 ⓒ KBS
KBS 드라마 《국민 여러분》 ⓒ KBS

선인이 호통치는 기존 정치 드라마

두 작품의 차이는 극명하다. 《국민 여러분》에선 착한 사람이 백로처럼 고고하게 정치판을 꾸짖는데, 《보좌관》에선 악인이 정치판이라는 진흙탕의 한복판에서 뒹군다. 《국민 여러분》의 방식이 우리나라 정치 드라마의 일반적인 패턴이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다른 정치 드라마들은 처음부터 착한 사람이 주인공이었는데, 《국민 여러분》에선 사기꾼이었다가 국회의원 선거 때부터 갑자기 착해진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어느 쪽이든 착한 사람이 썩은 정치판을 시원하게 꾸짖으며 국민에게 대리만족을 준다는 점에서 같다.

이러한 방식의 문제는 국민의 정치 혐오를 부채질한다는 데 있다. 그렇지 않아도 국민들이 ‘정치인은 다 똑같다’ ‘싸움만 한다’고 생각하는데 정확히 그런 국민 정서를 대변해 더 증폭시킨다. 주인공을 사기꾼으로 설정한 것 자체가 바로 그런 노림수다. 정치인이 사기꾼과 같은, 또는 그보다도 못한 존재라는 야유로 시청자의 공감을 끌어내려 한 것이다. 여기에서 3선 의원은 “입에 꿀 발라서 사람들 마음 살살 녹여 돈 빼내는 게 사기인데 돈 대신 표 빼내는 게 정치”라며 “누가 더 혼이 담긴 구라를 치느냐 그게 바로 당락의 핵심이야”라고 정치를 사기와 등치시킨다. 원내에 진입하고 보니 국회의원들은 스폰서 민원 챙기면서 패를 갈라 싸움에 날을 새우는 존재들이다. 주인공은 호통친다. “왜 서로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에요?” 그러면서 국민이 정치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작품은 말했다.

하지만 이런 방식으로 정치를 그리면 국민은 정치에서 더 멀어진다. 모든 정치인을 싸잡아 비하하면서 그 차이를 무력화하고 일체의 정치대립, 정치행위를 무의미한 패싸움으로 뭉개버리기 때문이다. 이런 시각으로는 정치인들 사이의 작은 차이, 옥석을 가릴 수가 없어 격려해 줘야 할 정치인을 분별할 수 없고, 국민을 정치 자체로부터 등 돌리게 만들어 정말 사기꾼들이 활개 칠 토양이 강화된다. 착한 사람이 국회의원 돼서 진흙탕 국회에 개탄하며 도덕 교과서 같은 사자후를 내지르는 유형의 정치 드라마들이 모두 이런 문제를 안고 있었다.

《보좌관》은 다르다. 주인공이 선인(善人)이 아니다. 권력을 잡으려는 야망에 의해 움직인다. 썩은 정치에 호통치지 않고 그 한복판에서 오물을 다 묻혀가며 뒹군다. 정치‘꾼’이라 할 만하다. 그런데 이런 게 바로 현실의 정치다. 이 세상에 100% 선인은 드물고, 설사 그런 선의지가 있다고 해도 현실이 그것을 그대로 구현하게 놔두지 않는다. 권력으로 가는 길엔 갖가지 어두운 그림자가 있게 마련이다. 정치인의 결정엔 여러 가지가 뒤섞여 있다. 공익을 위한 선한 의지, 자신의 권력을 위한 사익 추구, 현실적 한계에 따른 타협 등등 다양한 요소가 뒤엉켜 행보가 결정된다.

《보좌관》이 바로 그런 현실의 모습을 보여준다. 장태준 보좌관은 자신을 후원해 줄 스폰서를 보호하기 위해 다른 회사를 치는데, 그건 동시에 부당한 노동환경을 개선하려는 노력이기도 했다. 강선영 의원은 송희섭 의원을 도와 법무장관을 치는데, 그건 복지기관에 투입할 예산을 따내려는 타협이기도 했다. 이렇게 다양한 동기가 작용하면서 때로는 적당히 거래해 가며 조금씩 결과물을 만들어가는 것이 정치다. 장태준 보좌관과 그 주변인들은 진흙탕 속에서 뒹굴며 계파싸움에 나서지만 그 속에서 작은 성과들을 만들어내려 한다.

JTBC 드라마 《보좌관》 ⓒ JTBC
JTBC 드라마 《보좌관》 ⓒ JTBC

야망에 의해 움직이는 정치꾼의 드라마

도덕 교과서 같은 내용의 사자후로는 이런 작은 차이, 작은 결과물들을 인지하지 못하고 모두 싸잡아 ‘나쁜 놈들!’ 한마디로 끝이다. 《보좌관》은 정치인들의 세계를 보다 면밀하게 들여다보게 한다. 그래서 오십보백보가 결코 같은 게 아니라, 그 사이엔 엄청난 차이가 있다는 걸 알게 한다. 이렇게 유권자들이 오십보백보, 더 나아가 반보만큼의 차이도 분별하고 조금이라도 나은 사람을 선별해 응원할 때 우리 정치가 나아질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보좌관》은 우리 정치 드라마에 의미 있는 새 지평을 열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보좌관》에도 여전히 한국적인 특징은 남아 있다. 주요 등장인물들이 모두 선인이라는 걸 암시한다. 그런 암시조차 없이 완전히 선악이 모호한 상태에서 오로지 정치행위로 인해 결과물이 만들어지는 과정에만 집중했다면 더 신선한 작품이 됐을 것이다. 현실적인 정치를 그린다지만 국회 내부의 모습이 판타지적으로 표현된 측면도 있다. 이런 점들을 감안해도 《보좌관》이 지금까지의 한국 정치 드라마와 차원이 다른 통찰을 제시한 작품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보좌관에서 시작한 주인공의 야망이기 때문에 시청자의 지지만 있다면 앞으로 국회의원, 원내대표, 당 대표, 대권 등 시즌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충분해 보인다. 우리도 내세울 만한 정치 드라마 브랜드를 하나 갖게 되는 것일까.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