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서 ‘자기과실 사망사건’, ‘살인사건’으로 뒤집혀 
  • 이정용 인천취재본부 기자 (teemo@sisajournal.com)
  • 승인 2019.06.25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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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과수, 자기과실·타살가능성 ‘반반’…경찰, 현장감식 사진 400장 분석
법의학자들 감정결과 ‘타살가능성’ 무게중심…22개월간 끈질기게 수사

자기 과실로 숨진 것으로 내사종결된 사망사건이 약 2년 만에 살인사건으로 뒤집혔다. 자칫 억울한 죽음으로 묻힐 뻔 했지만, 과학수사와 법의학자 감정, 끈질긴 수사 등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인천 남동경찰서는 동거남을 흉기로 찔러 숨지게 한 혐의(살인)로 A씨를 구속했다고 25일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A씨는 2017년 8월5일 오전 2시39분께 인천시 남동구 서창동 한 아파트에서 동거남 B씨를 흉기로 한 차례 찔러 숨지게 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인천 남동경찰서 전경. ⓒ이정용 기자
인천 남동경찰서 전경. ⓒ이정용 기자

국과수, ‘애매한’ 부검결과…경찰, 변사 ‘내사종결’ 후 타살 혐의 추적 

당시 경찰은 A씨의 신고를 받고 사건현장에 도착했다. A씨는 오른쪽 종아리에 흉기로 찔린 상처가 나 있었고, B씨는 왼쪽 옆구리에 흉기에 찔린 상처(자상)를 입은 채 현관에 쓰러져 있었다. 

이들은 3년간 동거해 오다가 성격차이로 헤어진 뒤, 의류 등 물품을 돌려 주고받는 과정에서 다툼을 벌인 것으로 조사됐다.  

A씨는 경찰에서 “B씨가 현관에서 내 오른쪽 종아리를 흉기로 찌른 후, 거실방향으로 돌아가다가 미끄러져 넘어지면서 벽에 부딪히는 바람에 자신이 들고 있던 흉기에 옆구리를 찔렸다”고 진술했다. 이어 “B씨는 스스로 흉기를 빼낸 후 숨졌다”며 “흉기를 만지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B씨가 자신의 과실로 숨졌다는 것이다.
  
경찰은 B씨가 숨진 원인을 밝혀내기 위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부검을 의뢰했다. 부검결과, B씨는 ‘왼쪽 옆구리 자창에 따른 신장동맥 손상’으로 숨졌다. 자상의 깊이는 11㎝에 달했다. 또 B씨의 손바닥과 새끼손가락에는 흉기에 베인 상처(저항 흔)가 발견됐다.

국과수는 또 현장검증을 통해 B씨가 흉기에 찔린 상처의 위치와 혈흔 비산각도 등을 감안하면, A씨의 진술을 수긍하기 어렵다는 결과를 내놓았다. 흉기에 찔린 상처의 각도가 위에서 아래로 30도 가량 기울어져 있어, 미끄러져 넘어지면서 흉기에 찔린 상처가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A씨가 경찰에 신고할 때 사용한 전화기와 A씨와 B씨에게 상처를 입힌 흉기에서 A씨의 지문이나 유전자(DNA) 등의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국과수는 이런 부검 결과를 토대로 B씨가 숨진 원인에 대해 ‘자기과실’과 ‘타살가능성’ 등 2가지를 내놓았다.

이에 경찰은 2018년 2월1일 B씨가 숨진 변사사건은 내사종결하고, B씨가 타살된 혐의를 찾는 수사를 계속 진행했다.

 

현장감식 사진 400여장 분석…법의학자 감정 무게중심 ‘타살’

경찰은 B씨가 살해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2018년 8월부터 본격적으로 수사를 이어갔다. 사건은 강력팀에서 형사팀으로 넘어갔다. 그동안 사건의 현장은 사라졌지만, 사건의 현장을 촬영해 놓은 사진들이 남아 있었다. 

경찰은 과학수사반과 국과수가 촬영해 놓은 현장감식 사진 400여장을 꼼꼼해 분석했다. 국과수 검증자료들은 법의학자들에게 감정을 의뢰했다.

법의학자들은 B씨의 상처가 B씨 스스로 흉기를 빼내기 어려운 각도로 나 있다고 판단했다. 또 흉기의 폭이 2㎝인데 자상은 2.5㎝에 불과하기 때문에 A씨가 B씨를 찌르고 빼냈을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법의학자들은 B씨가 살해됐을 가능성에 무게중심을 둔 것이다.

경찰은 법의학자들의 감정을 토대로 A씨를 6차례 소환해 조사했다. 이 과정에서 경찰은 주방에서 A씨와 B씨의 혈흔이 발견된 점을 추궁했다. 

A씨는 당초 흉기를 전혀 만지지 않았다고 진술했는데, 주방에서 행주로 흉기에 묻은 혈흔을 닦아냈고, 경찰에 신고한 전화기도 행주로 닦았다고 진술했다. 이는 당초 A씨가 “흉기를 만지지 않았다”고 진술한 것과 배치되는 대목이었다. 

A씨는 거짓말탐지기(법심리감정검사) 조사에서 ‘남편을 살해했나’는 질문에 ‘아니오’라고 답했지만, 거짓반응이 나오기도 했다. A씨는 현재까지 B씨를 살해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이런 수사결과를 종합해 A씨를 살인 혐의로 구속해 검찰에 송치했다. 경찰 관계자는 “자칫 미궁에 빠질 수 있었던 사건을 약 22개월에 걸쳐 국과수 검증과 법의학자들의 감정, 끈질긴 수사 등을 통해 풀어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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