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시민들의 외침 “우리는 중국과 다르다”
  • 모종혁 중국 통신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7.02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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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환법 그 자체가 ‘일국양제’의 기본틀 무너뜨린다고 여겨

6월26일 홍콩의 각국 영사관 앞. 검은 티셔츠를 입은 시위대가 방문 투쟁을 벌였다. 그들은 모바일 메신저 텔레그램으로 서로 연락해 자발적으로 모인 시민들이었다. 시위대는 한국어·영어·일본어·독일어·프랑스어 등으로 미리 번역된 청원서를 발표했다. 방문 투쟁은 G20 정상회의를 앞두고 홍콩인들이 벌이는 릴레이 시위 중 하나였다.

같은 날 저녁에는 도심에서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다. 6월9일부터 시작된 홍콩의 시위 물결은 12일 대규모 시위에 최루탄과 고무탄을 동원한 경찰의 강경진압이 이어졌고, 16일 200만 명이 참여해 정점을 찍었다. 그 이후에도 여전히 기세를 높이고 있다.

본래 홍콩 당국은 시간이 지나면 시위대의 동력이 수그러들 것으로 기대했다. 그를 위해 6월15일 홍콩의 행정수반인 캐리 람(林鄭月娥) 행정장관은 시위 사태를 촉발한 ‘범죄인 인도 법안’(이하 ‘송환법’)의 추진을 보류했다. 이튿날에는 12일의 시위에 대해 서면으로 “노골적으로 조직된 폭동의 선동”이라고 비판했던 점을 사과했다. 18일에는 기자회견을 열고 “홍콩 시민들에게 가장 진심 어린 사과를 한다”고 밝혔다. 또한 “사회 갈등이 완전히 해소되지 않는 한 송환법을 추진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홍콩인들의 시위는 지속되고 있다. 오히려 주요 대학 학생회는 람 장관의 기자회견 직후 동맹휴학을 시작했다. 현재 학생들은 4대 요구사항을 내걸고 있다. △송환법의 완전한 철회 △6월12일 시위를 ‘폭동’이라 규정한 입장의 철회 △12일 시위 과정에서 과잉 진압한 책임자의 처벌 △체포된 시위 참여자 전원 석방 등이다.

이번 시위를 이끈 재야단체 연합인 ‘민간인권전선’도 “송환법의 완전 철회와 람 장관의 퇴진이 최종 목표”라면서, 실패로 끝났던 2014년 ‘우산혁명’의 전철을 경계하고 있다.

람 장관의 입지는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 6월24일 ‘민주건항협진연맹(民主建港協進聯盟)’의 스태리 리(李慧瓊) 주석은 방송 인터뷰에서 “송환법의 완전한 철회를 발표한다면 우리 정당은 이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민주건항협진연맹은 홍콩 의회 내 친중파 정당 중 최대 세력이다. 2017년 행정장관 선거에서 람 장관이 승리하는 데 결정적인 공헌을 했다. 같은 날 경제사장·정무사장·보안사장 등을 역임한 전직 고위 관료와 전직 입법회 의원 32명은 연대 서명해 송환법의 철회를 요구했다.

이렇듯 시위 사태가 진정될 기미를 보이지 않자, 해외 언론에서 “향후 홍콩 독립 목소리가 커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하지만 이는 홍콩 내부 실정을 제대로 모르는 단견이란 지적이 많다. 홍콩 시민들이 거리로 나선 이유는 ‘독립’과 전혀 무관하다는 것이다. 송환법 그 자체가 지금의 일국양제(一國兩制·한 나라 두 체제)의 기본틀을 무너뜨린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본래 일국양제는 중국이 홍콩을 반환받기 위해 내놓은 카드였다.

6월16일 논란이 되고 있는 범죄인 인도 법안에 반대하는 100만 명 이상의 시민들이 홍콩 거리에 몰려 나왔다. ⓒ AP 연합
6월16일 논란이 되고 있는 범죄인 인도 법안에 반대하는 100만 명 이상의 시민들이 홍콩 거리에 몰려 나왔다. ⓒ AP 연합

“홍콩 독립 요구할 것” 전망은 잘못된 판단 

1984년 덩샤오핑(鄧小平)은 이 묘책으로 영국과의 반환 협정 체결에 성공했다. 반환 이후 50년 동안 일국양제로 홍콩의 현상을 유지하겠다는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중국은 ‘항인치항(港人治港·홍콩인에 의한 홍콩 통치)’도 약속했다. 1990년에는 일국양제와 항인치항을 기본으로 한 홍콩특별행정구기본법을 제정해 법적 토대를 마련했다. 따라서 영국은 1997년 약속대로 홍콩을 중국에 돌려줬다.

그로부터 홍콩특별행정구가 출범했고, 일국양제의 실험은 시작됐다. 중국은 일국양제를 앞세워 1999년 포르투갈로부터 마카오도 반환받았다. 그러나 중국은 홍콩인이 가진 불안감을 일소하진 못했다. 특히 1989년 톈안먼(天安門) 시위를 유혈진압하면서 고조됐다.

따라서 영국은 홍콩인을 달래기 위해 BN(O)여권을 마련했다. BN(O)여권은 반환 이전에 태어난 홍콩인 중 희망자에 한해 1987년부터 발급해 주었다. 비록 영국 시민권자가 소유한 여권과 비교할 순 없지만, 영연방 국가에서 체류허가·건강보험 등 여러 혜택을 받을 수 있다. 그 덕분에 1980년대 말부터 적지 않은 홍콩인이 BN(O)여권을 가지고 캐나다로 이주했다.

홍콩 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과거 344만 명이 BN(O)여권을 발급받았고 현재 150여만 명이 홍콩에 거주 중이다. 그들은 경제적으로는 대부분 중상류층이고, 연령으로는 30대 후반 이상의 중장년층이다.

사실 중장년층은 홍콩이 반환된 이후에 경제적 이익을 톡톡히 누렸다. 세계 각국이 아시아의 금융허브이자 중국에 진출하는 투자·무역 전진기지인 홍콩에 앞다퉈 진출했기 때문이다. 홍콩이 가진 투명한 사법제도와 서구식 비즈니스 문화, 자유롭고 공정한 상거래 질서는 큰 매력이었다. 이뿐만 아니라 부동산 가격이 폭등해 큰 수익을 거두었다.

홍콩 집값은 2003년부터 막대한 중국 자금이 유입되며 400%나 상승했다. 지난해 말 홍콩의 연소득 대비 주택가격 비율(PIR지수)은 49.4로 세계 1위다. 이는 거품이 심각한 베이징(45.3)과 상하이(45.1)보다 높고 싱가포르(21.6), 런던(20.8), 파리(19.1), 뉴욕(11.7) 등과는 비교조차 안 된다. 웬만한 아파트는 3.3㎡당 1억원을 훌쩍 넘는다.

이번 송환법 파동 이후 홍콩에서는 이민 희망자가 크게 늘어났는데, 신청자는 대부분 중장년층이었다. 그렇다고 모든 중장년층이 홍콩에서 누리는 경제적 이익과 사회적 지위를 쉽게 포기하진 않는다. 따라서 매년 톈안먼 사태 기념일마다 시위를 주도해 중국의 민주화와 일국양제의 수호를 외쳤다.

이번 시위에서도 젊은이들과 함께 적극 참여했다. 친중파 정당의 입장이 바뀌고, 전직 고위 관료들과 전직 입법회 의원들이 송환법의 철회를 요구하는 건 결코 우연이 아니다. 홍콩 엘리트와 중장년층조차 송환법이 일국양제의 시스템을 뿌리부터 흔드는 행위라고 받아들이고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다.

 

홍콩 젊은 세대들의 커지는 불안감

젊은 세대의 불안감은 더욱 크다. 비록 홍콩이나 중국에서 취업은 쉽게 할 수 있지만 일자리의 질은 열악하다. 실제 홍콩 샐러리맨의 월급 중간치는 약 240만원, 시간당 최저임금은 약 5200원에 불과하다. 따라서 젊은이들은 내 집 마련의 꿈을 아예 포기한다. 또한 승진은 중국인과 치열한 경쟁을 벌여야 한다. 현재 홍콩에 거주하는 중국인은 명문대를 졸업하고 유학을 다녀온 고급 인력이다. 그로 인해 홍콩인은 중국과의 투자·무역 업무를 그들에게 빼앗기고 있다. 당연히 핵심요직도 중국인 차지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이 약속했던 일국양제가 무너지고 있다. 젊은이들이 시위에 가장 열성적으로 참여하는 데는 이 같은 경제적·사회적 배경이 도사리고 있다. 그렇다면 앞으로 홍콩 정국은 어떤 양상으로 흐를까? 홍콩 시민들은 송환법의 완전 철회와 람 장관의 퇴진을 목표로 단일대오를 유지하면서 시위 동력을 살리는 데 주력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향후 수개월 동안 “자유 홍콩” “홍콩은 중국과 다르다”는 목소리는 계속 울려 퍼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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