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재편①] ‘보수 대분열’ 가시화하는가
  • 송창섭 기자 (realsong@sisajournal.com)
  • 승인 2019.07.01 10:00
  • 호수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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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교안 리더십으론 개혁공천 불가능 관측
한국당, '친박' '친이' 틈바구니에서 진퇴양난 빠져

“저쪽 당(더불어민주당 지칭)의 전략에 제대로 말려들었다. 황교안 대표가 총리까지 했는지는 몰라도 정치 쪽에선 신인 아닌가. 신인 티가 나도 너무 나는데, 문제는 이를 돌파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는 데 있다.” 자유한국당의 한 수도권 재선 의원은 최근 보수진영의 대통합 가능성 등을 묻는 질문에, 대통합은 커녕 오히려 ‘황교안 리스크’로 인한 대분열이 현실화하고 있다는 설명과 함께 걱정부터 늘어놓았다.

최근 벌어진 그야말로 다연발의 갖가지 해프닝은 ‘정치인 황교안’의 한계를 그대로 보여준다. 청년들을 상대로 한 강연회에서 자신의 아들 스펙을 자랑삼아 말한 것, 외국인 노동자 차별 발언 등은 사회 통념과는 거리가 멀다. 전직 한국당 당직자는 “‘스펙을 낮춰 말하는 게 왜 문제가 되느냐’는 황 대표의 생각이 더 큰 문제다”고 한탄했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164명의 인재영입 명단을 발표한 것도 논란거리가 됐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한국당은 박찬호 한국야구위원회(KBO) 국제홍보위원, 이국종 아주대병원 교수, ‘쏘카’ 이재웅 대표 등을 영입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거명된 인사들은 하나같이 “사전에 아무 협의가 없었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한 TK(대구·경북) 지역 의원실 보좌관은 “당이 체면까지 구겨가며 이런 식으로 읍소해야 하는지 자괴감이 든다”고 안타까워했다.

최근 황교안 체제의 한국당을 가리켜 ‘애플당(대국민 ‘사과’만 한다는 의미)’이라며 비아냥대는 목소리가 많다. 한국당에서 활동하는 한 당직자는 “의원들에게 ‘막말 주의보’를 내린 황 대표가 정작 본인의 말실수에 대해서는 어떤 식으로 당원들과 국민들에게 설명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 시사저널 박은숙
ⓒ 시사저널 박은숙

한국당은 대국민 사과만 하는 '애플당' 자조

황 대표의 최근 문제점은 정치 입문 때부터 거론돼 왔다. 기본적으로 황 대표는 ‘관리형 대표’라기보다 ‘대권형 대표’에 가깝다. 차기 대선까지 3년가량 남은 상태에서 대권형 대표 체제의 허점은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고 있다. 원외 인사라는 한계도 지적된다. 무엇보다 황 대표는 정치 신인이기 때문에 정치적 주가를 올리는 게 급선무다. 그렇다 보니 경우에 따라선 당의 존재감이 황 대표 개인 이미지에 가려지는 상황이 연출될 수도 있다. 최근 등원 문제를 놓고 당내 혼선을 보인 것이 좋은 예다.

여야 3당 원내대표가 조율한 합의안은 한국당 강경파의 반대에 부딪혀 휴지조각이 됐다. 이 과정에서 강경파로 분류되는 일부 의원은 지도부 불신임을 운운해 원내 사령탑인 나경원 원내대표의 리더십은 큰 상처를 받은 모습이다. 자연스럽게 황 대표와 나 원내대표 간 갈등 양상이 결국 폭발한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민주당 내에서는 “사실상 ‘황교안 가이드라인’이 있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온다. 6월24일 합의문 발표 뒤 가진 의총에서 한국당 강경파 의원들이 △패스트트랙 합의 처리 및 사과 △재해 추경 외 전체 추경 불가 △경제청문회 개최 △합의문 내 5·18특별법 문구 삭제 △북한 선박 남하 국정조사 △패스트트랙 고소·고발 취하 등을 요구했는데, 이것이 ‘황교안 가이드라인’이라는 게 민주당 쪽 시각이다.

장외 투쟁이 두 달 반을 넘어가면서 자유한국당 당내 사정은 복잡하다. 윤상현·장제원 의원 등은 등원 필요성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지만, 이러한 목소리는 강경파에 밀려 제대로 들리지 않는다. 익명을 요구한 한 서울 지역 의원은 “지역에 가보면 민심은 ‘밖에서 뭐 하는 거냐. 빨리 들어가 싸워라’라고 요구한다”고 말했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가 6월21일부터 이틀간 전국 만 19세 이상 성인 남녀 1014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 ‘조건 없이 한국당이 등원해야 한다’는 의견이 59.4%로 ‘패스트트랙 철회와 경제청문회를 여당이 받아들여야 한다’는 의견(32.9%)을 크게 앞섰다.

최근 한국당은 전략과 리더십 모두 부재다. 민주평화당이 최근 황 대표를 향해 정알못(정치를 알지 못하는 사람), 경알못(경제를 알지 못하는 사람), 국알못(국민의 마음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비판하고 나선 것은 한번쯤 생각해 볼 대목이다. 

한국당과 황 대표의 차기 총선 전략은 ‘보수 대통합’이다. 사분오열된 보수진영을 한국당 중심으로 한데 묶어 민주당 등 범진보진영과 건곤일척의 승부를 벌이겠다는 전략이다. 그를 위해 황 대표 측은 개혁공천을 내세웠다. 개혁공천은 인적 청산이 불가피하다. 역대 총선마다 여야 가릴 것 없이 개혁공천이라는 명목으로 현역 의원 물갈이가 이뤄졌는데, 현재로선 이번에도 똑같은 일이 재연될 가능성이 많아 보인다.  

관건은 공천 과정에서 필수적으로 불거지는 잡음이다. 개혁공천은 강력한 리더십이 있어야 가능하다. 지난 2008년 총선 때 한나라당(한국당의 전신)은 이명박 대통령의 서슬 퍼런 칼날에 친박계가 ‘공천학살’을 당했다. 2012년 총선 때는 거꾸로 유력 대권주자인 박근혜라는 존재감이 있어 친박이 공천 과정에서 칼날을 휘두를 수 있었다. 하지만 지난 2016년 총선은 박근혜 대통령의 레임덕과 공천파동이 겹치면서 민주당에 제1당 자리를 내준 바 있다. 당시 개혁공천을 자처하며 칼날을 휘두른 친박계가 이번엔 반대로 청산 대상이 될 가능성이 크다.

보수 지지기반 핵심인 TK에서 변화 조짐  

조짐은 벌써부터 터져 나왔다. 당내 신정치특별위원회 위원장인 신상진 의원은 6월6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탄핵에 책임 있는 현역들을 물갈이하겠다”고 밝혀 큰 파장을 일으켰다. 논란이 일자 신 의원은 특정 의원을 염두에 두고 한 발언은 아니라며 한발 물러섰지만, 친박계는 ‘지도부의 속내가 드러난 것 아니냐’며 의심의 눈길을 거두지 않고 있다. 실제로 이후 황 대표가 14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국민들께서 한국당의 미래를 이끌어갈 인재를 추천해 달라”며 “여러분이 추천해 주는 인재와 함께 내년 총선에서 반드시 승리하겠다”고 말한 것은 대대적인 인적 청산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원장은 “황 대표가 정치권에 소프트랜딩(연착륙)하고 다음 총선에서 승리를 거두기 위해 친박계 청산에 나설 것이 확실하다”고 내다봤다. 

문제는 지금의 황교안 대표가 과연 과거 이명박·박근혜와 같은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해 당내의 불만을 잠재울 수 있겠느냐는 데 있다. 섣부른 칼날은 통합이 아닌 분열을 불러올 수밖에 없다. 

그 첫 신호탄이 친박의 이탈 조짐이다. 신 의원 발언이 터지자 친박계 핵심으로 분류됐던 홍문종 의원은 탈당을 선언하고 대한애국당에 합류했다. 조원진 의원과 함께 공동대표에 오른 홍 의원은 당명도 우리공화당으로 바꿨다. 우리공화당의 총선 전략은 분명해 보인다. 홍 의원이 선도 탈당해 토대를 만들고, 올 연말이나 내년 초 한국당 공천에서 탈락한 친박계 인사들을 대거 받아들여 총선전에 나선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우리공화당이 내세울 전략은 당명에서 나타나듯 ‘박정희 향수’다. 태극기부대로 대표되는 강경보수 세력의 도움으로 TK 지역을 중심으로 바람몰이에 나선다는 전략이다. 우리공화당은 “이승만·박정희로 대표되는 정통 보수의 맥을 이을 정당은 우리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우리공화당의 실험이 성공하기 위해선 TK 지역 정서가 중요하다. 이와 관련해선 의견이 엇갈린다. 6월15~18일까지 대구 800명, 경북 814명을 대상으로 경북매일신문이 여론조사를 벌인 결과, 대한애국당(우리공화당 전신)의 지지도는 경북에서 2.1%, 대구에서 1.8%에 불과했다. 반면 한국당은 경북에서 53.8%, 대구에서 50.6%의 지지를 얻었다. 지지도만 놓고 보면 우리공화당에 절대 불리한 결과다. 하지만 지역 내 현역 의원을 다음 총선에도 지지할 것이냐는 질문에는 경북에서 41.4%, 대구에서 42.1%가 ‘지지하지 않을 것’이라고 응답해 TK 지역 한국당 현역 의원을 바짝 긴장시키고 있다. 우리공화당이 한국당 공천에서 탈락한 현역 의원을 ‘이삭줍기식’으로 영입하는 전략도 현재로선 쉽지 않아 보인다. 결국 탈당 후 곧장 우리공화당에 입당하기보다 옛 ‘친박연대’처럼 느슨한 형태의 정치적 결사체를 구성해 총선에 나서는 방안도 생각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박심(朴心·박근혜 전 대통령의 생각)도 중요한 요소다. 홍 의원을 비롯해 우리공화당은 “공화당이라는 이름을 당명으로 쓴다는 것 자체가 박심이 우리에게 있다는 뜻”이라고 주장한다. 보수 대통합을 꿈꾸는 황 대표로선 바른미래당 내의 유승민 의원으로 대표되는 바른정당계 의원들과 손잡는 구도가 가장 이상적이다. 현재 황 대표 측은 ‘민심 대장정’이라는 이벤트로 집토끼는 어느 정도 잡았다고 판단하는 분위기다. 한국갤럽 조사에 따르면, 한국당의 정당지지율은 5월 둘째 주 25%까지 치고 올라갔다. 그러나 잇따른 당내 인사들의 실언이 이어지면서 당 지지율은 다시 20%대 초반으로 떨어진 상태다. 당초 황 대표는 집토끼(전통적 지지기반)를 잡은 다음 산토끼(외연 확장) 사냥에 나선다는 구상이었다. 이를 위해선 옛 친박계와의 관계 청산은 불가피하다. 그래야만 내년 총선에서 여권의 ‘탄핵 프레임’을 깰 수 있어서다.

결국 앞으로 전개될 한국당의 인적 청산 작업은 유승민 의원 등 옛 바른정당계와의 합당 및 연대를 희망하는 시그널로 봐야 한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한때 당내 최대 계파를 이뤘던 범친박진영의 반발이 불거질 수도 있다. 한국당 한 중진 의원은 “탄핵 프레임을 깨기 위해 유승민 의원 등을 받아들일 경우, 태극기부대로 대표되는 전통적 한국당 지지층의 반발을 살 수 있기 때문에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물론 유승민 의원 등 옛 바른정당계 의원들이 한국당으로 다시 복당할 가능성은 현재로선 희박해 보인다. 그보다는 한국당의 대안세력으로 ‘따뜻한 보수’를 표방하며 세결집을 시도하고 있는 분위기가 더 강하게 감지된다. 황교안 대표 체제의 한국당 미래가 결코 낙관적이지 않다는 점을 정치적 감각으로 읽고 있다는 분석이다.  

‘친문’ ‘친박’과 같은 양극단의 정치 갈등이 지속될 경우, 중간지대인 중도 지형은 그만큼 넓어진다. 김홍국 경기대 겸임교수는 “지금은 우리 헌정 사상 이념 갈등이 가장 심각한 수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면서 “중도를 표방하는 제3정당 등장이 총선을 앞두고 본격화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최진 소장도 “다음 총선은 한국당 공천 탈락자, 홍준표 전 대표계, 친이(친이명박)계가 모두 원내에 진출함으로써 본격적인 다당제 구도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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