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 PD의 질긴 역사 사랑 《딸에게 들려주는 한국사 인물전》
  • 조창완 북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6.30 11:00
  • 호수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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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초에서 격변의 인물까지, 그들을 통해 지금을 읽는다

호랑이는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이름을 남긴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사람들 사이에서 온전히 이름으로 기억되는 이들은 많지 않다. 또 그 이름이 향기로운 이름이거나 악취 나는 이름일 수 있기 때문에 어떤 이름으로 기억되는가도 중요하다. 그런데 우리의 기록에서 사람들은 대부분 영웅이나 악명 높은 사람을 기억하는 게 일반적이다. 응당 그런 사실에 의문을 던지는 이들이 있다. 방송 PD이면서 글 쓰는 작가이기도 한 김형민 PD 역시 그런 사람이다. 그는 역사 속 인물들을 꼼꼼히 살펴 어떤 이들이 지금 되살릴 의미가 있는가를 점검해 왔다. 그는 긴 시간 동안 찾아낸 인물들을 정리해 두 권으로 정리했다. 《딸에게 들려주는 한국사 인물전》이라는 정겨운 제목이지만 그의 책에 소개되는 이들은 그간 잘 알려지지 않은 소중한 이들이 많다. 방송 PD라는 극강의 업무 강도를 가진 직업임에도 그는 왜 잊힌 인물들에 천착했을까.

잘 알려지지 않은 역사 속 인물들에 주목

“드라마나 예능, 오락 프로그램이 아닌 교양 프로그램 PD들은 사람을 만나는 게 주 업무입니다. 사람에 대한 관심과 애정은 PD의 필수적인 자질입니다. 역사 또한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역사는 외워야 할 사건들의 나열이 아니라, 평범하게 또는 특별하게 살아간 이들의 일상들의 총합이겠지요. 역사 속에서 저는 사람을 만나고, 그들의 행적에 즐거워하기도 하고 분노하기도 하고, 미소 짓기도 합니다. 일을 할 때와 마찬가지로 말이죠. 그것을 기록하는 것 역시 방송 못지않게 저에게는 중요하게 다가왔고 실천했습니다.”

저자가 책에서 소개하는 인물은 시간에 구애를 받지 않는다. 첫 장에서는 여진인이지만 조선 개국공신이 된 ‘이지란’이나 위구르인 ‘설장수’는 물론이고, 영친왕의 부인이 된 일본인 ‘이방자’ 여사 등을 다룬다. 국회 ‘돈봉투’를 폭로한 노동계 큰형님 ‘김말룡’, 판문점 역사에 묻힌 ‘남일’ 등 일반인들이 쉽게 접하지 못한 인물들이 적지 않다. 이런 인물의 발굴에는 작가의 전공인 사학도 적지 않은 영향을 줬다.

“애석하게도 대학 때는 학과 공부에 그다지 충실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강만길 교수님의 한국 근현대사 강의를 들으며 그 이전까지 들어보지 못했던 이름들, 공산주의자들, 아나키스트들, 그 외 현대사의 굴절 속에 사라진 이름들을 들으며 전율했던 기억이 선명합니다. 또 지금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으로 계신 조광 선생님이 강의 중 하신 말씀은 간직하고 있습니다. ‘역사를 배우는 건 결국 오늘의 우리를 탐구하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이번 작업도 그런 가르침에서 시작됐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딸과 아들을 하나씩 두고 있다. 그런데 이번 책의 제목을 ‘딸에게 들려주는’이라고 붙였다. 물론 그는 아이들에게도 공평하게 역사를 만나게 한다. 다만 많은 이들이 공감하듯이 아빠로서 아들과 딸은 느낌이 다르다.

“아들 하나 딸 하나인데 왜 딸이냐 하는 질문을 많이 받습니다. 편애하는 거 아니냐는 말도 듣고요. 그런데 어느 술자리에서 누가 제게 똑같은 질문을 했을 때 옆에 있던 친구가 정답(?)을 말했습니다. ‘어느 아들이 아빠가 그런 얘기 하는데 얌전히 듣고 앉았겠냐. 그나마 딸이니까 들어주지’라는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이 매우 공감하더군요. 어려서부터 이런저런 얘기를 많이 들려줬고 재미있게 들어주곤 하는데 역사 ‘과목’은 매우 어려워합니다. 그런 딸을 생각하면서 더 쉽고 편안하게 쓰려고 노력하죠.”

작가가 소개하는 이들은 역사의 주류에 있는 이들도 있지만 변방에 있거나 소외된 이들이 많다. 그는 왜 그런 삶에 집착했을까.

“유명하고 걸출한 위인들, 특별하고 빛나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저 말고도 뛰어난 분들이 다뤄주시기에 감히 무슨 말을 더하기 어려운 이유가 있고요. 더하여 역사라는 대하(大河)의 물방울들로 한 시대를 살다갔던, 그리고 자신의 역할을 다했던 사람들에게 애틋한 마음이 들어서입니다. 또 위대한 역사는 의외로 평범한 사람들의 용기와 헌신, 그리고 결단을 통해 이뤄진 적이 많습니다. 3·1운동의 민족대표 33인도 중요하겠지만 사전 계획 없이, 민족 대표들은 오지 않는 가운데 순간적인 결단으로 파고다공원에서 독립선언서를 읽어내렸던 시골 교회 전도사 정재용 선생 역시 역사적인 인물 아니겠습니까.”

 

“역사에서 배우는 것 매우 신중해야”

‘역사는 반복된다’는 명제는 지금 이 시대라고 다르지 않다. 저자의 최근 인터뷰에서 미·중 양강구도를 명청에 대입하는 것은 맞지 않는다는 내용을 봤다. 화웨이 갈등 등이 논란의 중심에 있는 지금 우리나라는 어떤 자세로 봐야 할까를 물었다.

“역사로부터 ‘배운다’는 것은 매우 신중해야 할 일입니다. 역사는 반복되지만 재연되지는 않는다는 말을 하는데, 과거로부터 비슷한 상황이 도래할 수는 있으나 그 각본과 배우, 관객은 전혀 다르기에 ‘과거의 교훈’과 오늘의 상황이 맞아떨어지는 일은 별로 없기 때문입니다. 다만 참고로 할 뿐이죠. 우리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두 강대국이 양강 구도를 형성하는 것이 명청 교체기와 비슷할 뿐, 미국은 명나라처럼 쇠약하지 않았고, 중국은 발흥기의 청나라와는 사뭇 다른 점이 많습니다. 저는 오히려 거란과 송이 대립할 때 고려의 스탠스를 주목하고 싶습니다. 형식상 거란에 사대하면서도 송과 교류를 지속했고, 송이 고려를 이용하려 들면 단호하게 거절하면서 고려의 전략적 가치를 높였죠. 양자택일을 강요받는 것이 고달픈 일이긴 하지만 고려가 그랬듯 우리는 무게중심을 한쪽에 두되 다른 한쪽을 배려하면서 실리를 추구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이 책에는 ‘우리 역사 속 외교관’ 챕터가 있습니다. 신라의 김춘추, 후일 원종(元宗)이 되는 고려 태자, 거란의 대군을 철수시킨 하공진, 힘겹지만 끈질긴 줄다리기로 영토를 넓힌 고려의 외교술, 외교관으로 활약한 사명대사, 그리고 엄혹한 전쟁 직후 평화를 위해 남북을 오간 김낙중 등의 이야기가 실려 있지요. 그들의 사연을 꼭 봐 주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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