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판 SKY캐슬’ 상산고에 갈라진 ‘토박이 민심’
  • 전북 전주 / 박성의 기자 (sos@sisajournal.com)
  • 승인 2019.06.28 17:00
  • 호수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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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지역 주민 "상산고는 '전북의 학교' 아닌 '외지인 학교'" 반감 드러내기도

“뜻하도 않은 일이 발생한께 당황스럽겄제. 근디 이해가 안 가는 것이, 즈그들끼리 쌈박질하고 자빠진 거랑 전주 토박들이랑 뭔 상관이 있냐는 것이여.”

전북 전주시 전주역 앞에서 만난 택시기사 김회양씨(61)는 ‘상산고 사태’에 대해 묻자 걸쭉한 전라도 사투리로 이렇게 말했다. 김씨는 “상산고 학생 대부분이 서울에서 내려와 3년 바짝 공부해 다시 서울로 대학 가고, 거기(서울)서 좋은 삶 살려고 하는 것 아닌가”라며 “그런데 이걸 마치 지역 사람들이 들고일어나야 하는 것처럼 말하는 게 이상하다. 전주 학생들 중 상산고 가는 애들 몇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렇게 25분을 달려 도착한 전주 상산고. 정문에는 ‘전북의 자부심, 상산고를 지켜 주세요!’라는 하얀색 플래카드가 상산고 학부모회 명의로 걸려 있었다.

전북교육청의 ‘상산고 자율형 사립고(자사고) 재지정 취소’ 결정을 둘러싼 공방이 정치권을 넘어 지역사회로 확산하고 있다. 향후 교육부의 ‘부(不)동의’ 권한 행사 여부를 두고 논란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지역 민심에는 균열이 일고 있다. 상산고에 자녀를 둔 지역 학부모와 학교 인근 주민들이 중심이 돼 ‘자사고 지정 취소’를 밀어붙이고 있는 전북교육청을 비난하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지만, 막상 현지에서는 상산고를 ‘외지인 학교’라 칭하며 반감을 드러내는 주민들의 목소리도 상당했다.

자율형 사립고(자사고) 재지정 취소 결정을 받은 전북 전주 상산고등학교 정문 앞 ⓒ 시사저널 박정훈
자율형 사립고(자사고) 재지정 취소 결정을 받은 전북 전주 상산고등학교 정문 앞 ⓒ 시사저널 박정훈

분노하는 재학생, 한숨 쉬는 인근 상인

6월26일 오후 2시, 전주 상산고 교문 앞은 한산했다. 때이른 장맛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가운데, 하얀색 교복을 입은 상산고 학생 몇 명만이 교재 복사를 위해 문방구 앞을 서성이고 있었다. 학교 안으로 들어가자 비를 맞으며 탁구채를 들고 체육관으로 향하는 학생 몇이 보였다. 취재를 왔다는 기자의 말에, 그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좋아요!”를 외쳤다. 하고 싶은 말이 많다고 했다. 학생들의 표정에는 불안감보다는 분노가 읽혔다.

상산고 2학년에 재학 중이라는 김회일군(18)은 “어른들이 우리(상산고 학생)에게 이길 수 없는 싸움을 걸었다고 생각한다”며 “공부를 좋아하는 학생들이 모였고 우린 정말 만족스럽게 학교 생활을 하고 있다. 그런데 왜 어른들이 정작 재학생들의 얘기는 듣지 않고 이 상황을 불행하다고 판단하는지 모르겠다. 결국은 (자사고 재지정 취소가)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경기도 시흥에서 상산고로 진학해 기숙사 생활을 하고 있다는 김윤재군(18)은 “나라에서는 인재양성을 말하면서, 정작 (공부를 잘하는 학생이 모인) 상산고를 나쁘게 얘기하는 건 정치적인 논리다. 색안경을 낀 채 하는 주장에 불과하다”며 “만약 상산고 재지정 취소가 다시 번복된다면 꼭 교육감이 시민들에게 해명과 사과를 했으면 좋겠다. 이 일로 상산고의 명예가 실추됐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학생들은 ‘상산고 자사고 재지정 취소’에 크게 동요하진 않는 모습이었다. 일단 자사고 재지정이 취소된다고 해도, 이들의 졸업과 수능에는 큰 영향이 없어서다. 정작 상산고의 일반고화(化)를 가장 크게 우려하는 이들은 상산고 인근에서 만난 지역 주민들이었다. 이들 사이에선 지역의 명문고가 사라진다면, 지역경제가 후퇴할 수 있다는 불안감이 팽배했다. 전국 단위 자사고인 상산고가 일반고로 전환되면 그동안 전국의 학생들을 뽑아온 선발권이 사라지게 되기 때문이다.

학교 앞에서 식당을 하고 있는 박순자씨(가명)는 “상산고 학생들이 외박 나올 때마다 외지에서 온 부모들이 많이 와서 그나마 먹고살았다. 이거(상산고) 자사고 안 되면 어찌 되겠나”라며 한숨을 쉬었다. 박씨 옆에 있던 최미영씨(가명·66)는 “내 손자도 상산고에 다니는데, 이거(상사고) 없었으면 벌써 서울이나 외국으로 보냈을 것”이라며 “자식들 상산고에 보내기 위해 전북으로 회사를 옮겼다는 학부모도 많다. 외지인 오면 돈도 모이기 마련인데, 얼마나 (상산고가) 우리 전북의 효자냐. 막말로 공부 못하는 애들이 상산고 오기 시작해 봐라. 전주에도 하나 좋을 게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6월26일 김승환 전북교육감이 국회 교육위에 출석했다. ⓒ 시사저널 박은숙
6월26일 김승환 전북교육감이 국회 교육위에 출석했다. ⓒ 시사저널 박은숙

‘독불장군’ 김승환 교육감, 바닥 민심이 힘?

보수 야당은 물론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소속 의원들도 전북교육청의 평가 기준에 의문을 제기하고 나섰다. 제369차 국회 제1차 교육위원회가 열린 지난 6월26일 이학재 자유한국당 의원은 “자사고가 적폐냐”며 “상산고는 굉장히 운영이 잘되고 있는 학교로 상을 줘야 한다. 정말 조폭 같은 교육행정”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박경미 민주당 의원은 “교육부 표준안에 따르면 평가지표와 배점을 바꾸려면 합리적인 근거가 있어야 하는데 (전북교육청이) 기준 점수를 80점으로 설정한 과정이 합리적이었는지 묻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날 김승환 전북교육감은 여야 의원들의 계속된 질문 공세에도 불구하고 자사고 폐지를 통한 고교 체계 개편이 필요하다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그는 “자사고에 입학하지 못하면 패배라는 인식이 생기고 있다”며 “불공평한 교육이 발생하고 학습 포기자가 만들어지는 게 특수고·자사고 확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상산고 학생 수가 360명인데 재수생을 포함해 한 해 275명이 의대에 간다”며 “잘못돼도 한참 잘못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 교육감은 “2015년 2기 자사고로 선정된 학교 2곳과 규모가 비슷한 일반고 2곳을 대상으로 같은 방식으로 평가했다”고 했다. 그는 “자사고가 아닌 전주 신흥고(70.8점)와 전주 해성고(70.9점) 모두 70점을 넘었다”며 “상산고가 1기 자사고로서 2기 학교와 수준이 다르다고 자부한다면 재지정 점수는 80점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거듭 소신을 밝혔다.

정치권의 거센 공격에도 꿈쩍도 하지 않는 김 교육감의 태도에, 일각에서는 ‘불통(不通)’ ‘독불장군’이라는 비판의 목소리도 새어 나온다. 실제 그는 지난 6월24일 취임 1주년 기자간담회에서 ‘교육부가 (상산고 재지정 취소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할 거냐’는 물음에 “정치적 손익 계산을 해야 한다”면서도 “전북교육청은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 심판을 청구할 것”이라고 엄포를 놓기도 했다. 상산고 자사고 취소를 위해 배수진을 쳐놓고, 모든 반발을 튕겨내고 있는 모양새다. 김 교육감은 어떤 자신감으로 ‘명문 상산고’를 상대하고 있는 것일까.

지역사회에서는 김 교육감의 태도가 ‘근거 없는 자신감’은 아니라는 분석도 나온다. 최근 그가 정부와 정치권, 학부모 등 모든 이들과 척을 진 ‘공공의 적’처럼 비춰지고 있지만, 지역 ‘바닥 민심’과는 괴리가 있다는 것이다. 김 교육감은 지난 2010년 6월 전북시민단체 단일후보로 추대돼 교육감에 당선된 뒤, 재선까지 순탄한 길을 걸었다. 2014년 55%의 득표율로 연임에 성공했고, 지난해 6·13 지방선거에서도 당선돼 3선 교육감이 됐다. 10년 가까이 전북교육감 자리를 지켰다는 것은, 전북 도민들이 그에게 보내는 신뢰가 작지 않다는 것을 방증하는 셈이다.

실제 기자가 전북 현지에서 만난 도민들 중 상당수가 상산고 사태에 대해 김 교육감 손을 들어주거나 혹은 무관심을 표했다. 이들은 김 교육”감의 논리를 그대로 따랐다. 상산고를 ‘지역 명문’이 아닌 ‘외지인 학교’ 또는 ‘특권층만의 학교’로 인식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자신의 아들이 전주고를 나왔다는 최지만씨(76)는 “(상산고가 생기기) 이전에는 전북에서 으뜸가는 학교가 전주고와 전주여고였다. 아들도 거길(전주고) 나와서 지금은 대기업 임원으로 있는데, 명절이면 항상 전주에 내려와서 후배들도 만나고 장학금도 전달하고 하더라”며 “지역의 자랑이라는 게 별거 아니다. 지역에서 나고 자란 수재들이 가야, 나중에 성공해서 고향에 덕을 나누는 것이다. 그런데 상산고는 죄다 외지 아이들이 오지 않느냐. 걔들이 좋은 대학 많이 간다고 전주 명문이라 부르는 건 간사한 거짓말”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첫째 딸이 지난해 상산고에 지원했다 떨어졌다는 박희영씨(가명·42)는 “자식 좋은 대학 보내고 싶은 엄마들 마음이야 똑같다. 그래서 (딸도) 상산고에 가길 바랐는데, 사실 (상산고에) 갔으면 자사고 학비가 1년에 1000만원씩은 깨지니까 부담은 됐을 것”이라며 “전주 사람으로서는 (상산고가) 있어서 나쁠 건 없는데, 부모의 마음으론 이런 학교(자사고)들이 많아지면 자식 세대가 과연 더 행복해질까 하는 걱정도 있다. 사실 이거(상산고) 하나 사라진다고 해결될 문제도 아니지 않나. 앞으로 교육 과정 전반이 좀 바뀌었으면 하는 게 부모로서의 바람”이라고 전했다.

☞연관기사 : “일방적인 상산고 자사고 취소는 교육감 권한 남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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