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순 시인, 세계적 권위 ‘그리핀 시 문학상’ 수상
  • 최규승 시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7.01 16:00
  • 호수 155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살아서 죽은 자의 49일을 담은 《죽음의 자서전》으로 영예

지난 6월6일 밤(현지 시각)은 한국 시문학에 역사적인 날로 기록될 것이다. 한국 여성시의 아이콘이자 우리 시대 시의 전위에 서 있는 김혜순 시인이 ‘그리핀 시 문학상’을 수상한 날이기 때문이다. 수상작은 《죽음의 자서전》(문학실험실)이고, 번역 시집명은 ‘Autobiography of Death’다. 이 수상 소식과 함께 시작(詩作) 40년을 맞아 지난 3월에 발간된 시집 《날개환상통》과 7월 중 발간될 산문집 《여자짐승아시아하기》(문학과지성사)를 알리는 기자간담회가 지난 6월25일 광화문의 한 식당에서 있었다.

이 자리에서 시인은 “수상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고, 번역자와 함께 1000여 명의 관객과 함께 펼쳐진 낭독 축제를 즐기자는 마음으로 주최 측의 초청에 응했을 뿐”이라면서 “죽은 자가 아닌 산 자로서 쓴 죽음의 자서전이었기에 (인간 보편의 정서가) 심사위원들의 마음에 닿지 않았나 하고 (수상 이유를) 짐작한다”고 말했다. 시인은 지난 6월6일, 캐나다 토론토의 수상식장에서 “오늘은 한국의 현충일인데, 국가의 도움을 받지 못하고 죽어간 불쌍한 영혼들에게 수상의 영광을 드린다”면서 “지금 호스피스 병동에서 병과 싸우고 있는 어머니께도 수상의 영광을 드린다”고 수상 소감을 밝혔다. 딸의 수상을 바라며 마지막 힘을 다해 삶을 붙잡고 있던 시인의 어머니는 수상 소식을 접하고 나서 채 보름이 지나지 않아 삶을 놓았다.

그리핀 시 문학상은 시상식 하루 전날 밤에 최종 후보에 오른 시인들을 초청해 1000여 명에 가까운 유료 관중들 앞에서 시낭독회를 연다. ⓒ 최규승 제공
그리핀 시 문학상은 시상식 하루 전날 밤에 최종 후보에 오른 시인들을 초청해 1000여 명에 가까운 유료 관중들 앞에서 시낭독회를 연다. ⓒ 최규승 제공

삶과 죽음의 틈에 스며든 마흔아홉 편 진혼의 시

《죽음의 자서전》은 한국 사회의 수많은 죽음, 제주 4·3, 광주 5·18 등 집단학살과 세월호 등 사회적 죽음뿐만 아니라 매일 이어지는 사건과 사고로 발생하는 개인의 죽음을 다루고 있다. 시인은 산 자로서 죽음과 대면하면서 불안과 애도를 뒤섞는다. 그리하여 49편의 자서전은 죽음의 고통을 드러내지만 치유나 안위, 해탈을 주거나 요구하지 않는다. 다만, 고통과 똑바로 대면하게 한다. 그래서 《죽음의 자서전》은 읽기 어렵고 불편하고 힘들다. 함께하던 사람의 죽음을 맞은 것처럼 슬픔 속으로 빠져들게 한다. 두껍지 않은 이 시집을 가볍게 읽어나가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오늘날 죽음은 도처에 흔하지만 더 이상 자연의 섭리로 맞는 생의 끝이 아니다. 죽음은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 애도와 불안을 낳는다. 애도가 일상이 된 사회, 언제 애도받을지 모르는 불안 중에도 잠깐 안도하게 되는 시간이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시간은 애도의 시간이다. 아직 나는 죽음을 당하지 않았다는 안도. 그러나 곧 이어지는, 애도하면서 안도했다는 부끄러움과 죄스러움.

“… / 언니가 운다 오빠가 운다/ 순서대로 가야 하는데 왜 네가 먼저 가니?// 네 방에는 소주 2병 수면제 1통/ … / 잠속에서도 눈알이 돌아가요/ 이불 속에는 푸른 옷을 입고 착검한 총을 든 군인들의 행렬/ … / 꿈을 깨서 침대를 나서는데/ 갑자기 안방에서 들려오는 엄마 언니 동생의 통곡 소리// 죽었다네요, 내가”(‘부검 —스무나흘’)

이 시에서 ‘80년 광주’는 죽음이 죽음으로 이어지는 현재진행형이다. 또한 시인이 어머니의 죽음 이후 자주 떠오른다고 한 ‘저녁메뉴 —스무아흐레’에는 어머니인 한 여성의 죽음이 그 죽음을 대면하는 딸인 한 여성으로 이어지는 죽음의 자서전이 있다.

“… / 네 엄마는 네 아잇적 그 강기슭/ 네 엄마는 네 아잇적 그 오솔길// 강기슭 지나 그 오솔길 너 혼자 멀어져 가노라면// 우리 딸이 왔구나 힘없는 목소리/ 어서 들어오너라 방문열리면/ 텅 빈 아궁이 싸늘한 냉기/ …”

김혜순 시인은 여성이 시를 쓰는 것은, ‘시하기’라고 한다. 시선으로써, 은유로써 세상을 폭력적으로 대상화한 남성적 시 작법을 거부한다. 여성은 온몸으로 시를 쓴다. 몸으로 쓰는 시, 그 몸은 여자의 몸, 즉 입 없는 몸이다. 자신의 언어가 아직 없는, 입 없는 여자들의 시 쓰기이다. 그러므로 시는 ‘되기’가 아닌 ‘하기’일 수밖에 없다. 이를 이광호 문학평론가는 “정체성이 아닌 수행성의 시”라고 해설했다.

‘시하다’는 은유적 수사(레토릭)가 아니다. 쓸 수 없어서 (시)하는 것이다. 입 없는 몸을 가진 여성이 말이 아닌 비명을 지르고, 웃고, 토한다. 여성에게 입은 언어를 펼치는 기계가 아니다. 가부장의 언어가 아닌 변방의 소리가 터져 나오는 찢어진 구멍이다. 그것은 상처이고 소리이다. 주술의 언어이다.

7월 출간하는 산문집 《여자짐승아시아하기》에는 시하기의 공간을 세계로 넓혀간다. “우리가 제일 모르는 것, 우리가 아시아인이라는 것/ 우리가 제일 모르는 것, 우리가 짐승이라는 것/ 우리가 제일 모르는 것, 우리가 사실 여자라는 것.” 여행 산문집이자 시 산문집인 이 책에서는 더 넓어지고 깊어진 시인의 시 세계를 만날 수 있다.

그리핀 시 문학상의 2019 인터내셔널 부문 수상자로서 수상 소감을 밝히고 있는 김혜순 시인과 번역자인 한국계 미국인 Don Mee Choi(최돈미) 시인.  2019 그리핀 시 문학상을 수상한 한국어 원 시집 《죽음의 자서전》(문학실험실, 2016) ⓒ 최규승 제공
그리핀 시 문학상의 2019 인터내셔널 부문 수상자로서 수상 소감을 밝히고 있는 김혜순 시인과 번역자인 한국계 미국인 Don Mee Choi(최돈미) 시인. 2019 그리핀 시 문학상을 수상한 한국어 원 시집 《죽음의 자서전》(문학실험실, 2016) ⓒ 최규승 제공

 

아시아 여성 시인으로는 노벨문학상에 가장 근접

그리핀 시 문학상은 2000년 캐나다의 기업가 스콧 그리핀이 제정한 시 부문 단일 문학상으로는 세계적인 권위를 갖는, 국제적인 시 문학상이다. 번역 시집을 포함, 그 전년도에 영어로 출간된 시집을 대상으로, 매년 캐나다와 인터내셔널 부문 각 한 명의 시인을 선정해 시상한다. 영문판 위키피디아에 의하면, 노벨문학상을 비롯해 영국의 National Poetry Competition 등과 함께 시 부문이 있는 단일 또는 복수 장르의 세계 주요 문학상 중 열 손가락 안에 드는 문학상이다.

한강 작가의 수상으로 한국 사회에 잘 알려진 맨부커상이 영어 번역 소설에 주어지는 국제부문상이라면 그리핀 시 문학상은 영어 번역 시집에 주어지는 국제부문 상이다. 맨부커상의 인터내셔널 부문 수상이 2005년부터 시행된 점을 고려하면 그리핀 시 문학상은 그 역사는 짧지만 2001년 첫해부터 인터내셔널 부문을 제정, 첫 수상자로 파울 첼란을 선정했다.

사실 문학상은 작품의 문학적 성취에 대한 확인이고 격려일 뿐이다. 상을 받았기 때문에 세계적인 작품이 되는 것이 아니라 문학적·예술적 성취가 세계적·인간적 보편성을 충분히 담았기 때문에 지역과 인종을 넘어서 읽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세계적 상을 수상한다는 것은 함께 기뻐하고 자부심을 느낄 만한 일이다. 더 많은 수상 소식이, 노벨문학상의 영예가 이제, 아시아 여성 시인에게 주어지기를 기대해 본다. 그 기대는 김혜순이라는, ‘지금 여기’의 문학적 전위를 통해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그 시적 성취의 다음번 확인을 기다린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