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트로피 키즈’를 위한 변명
  • 함인희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7.03 18:00
  • 호수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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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대학에는 2000년생이 신입생으로 입학했다. 진정 21세기에 태어난 이들이 대학 진학을 시작한 것이다. 이들이 앞으로 대학을 향해 어떤 목소리를 낼 것인지, 대학 문화를 어떻게 바꿔갈 것인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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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직장에서는 흔히 밀레니얼 세대라 부르는 ‘90년대생’이 밀려들어오기 시작하면서 다양한 충격을 경험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미국만 해도 최근 4~5년 사이에 직장 내에서 90년대 이후 태어난 이들의 비중이 2배 이상 증가함에 따라 새삼 이들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는 소식이다.

미국의 90년대생 밀레니얼들에게는 ‘트로피 키즈’라는 별칭이 붙여졌다고 한다. 어린 시절부터 다양한 종류의 상을 무수히 받고 자란 세대의 특징을 포착한 이름인 셈이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어서 이들이 고등학교 시절 학생생활기록부에 기록하는 상의 종류를 보면 입이 딱 벌어질 만큼 다채롭다. 교내 영어 말하기 대회 1등, 수학 미적분 분야 우수상, 국어 독후감 쓰기 2등, 사회봉사활동 장려상 등등 수상 목록이 줄줄이 이어지는 경우가 흔하니 말이다.

하지만 일명 ‘트로피 키즈’들에게도 애환(?)이 없는 것은 아닌 듯하다. 무엇보다 무대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경험이 풍부한 ‘트로피 키즈’들은 자신의 익명성을 별로 달가워하지 않는 것 같다. 익명성을 반기지 않는 이들의 성향은 점차 썰렁해지는 대학 졸업식장 풍경에서 전형적으로 감지된다.

머지않아 대학은 ‘코스모스 졸업식’을 치르게 될 텐데, 한껏 성장(盛裝)하고 졸업 사진 찍는 일에 열중하는 이들이 정작 졸업식장에는 참석하지 않는 이유를 물으니 다음과 같은 재치 있는 답이 돌아왔다. “앞으로 웨딩드레스 입은 결혼 사진은 여러 번 찍을 가능성이 있지만 졸업가운 입은 사진은 평생에 한 번뿐”이니, 정성을 들여 사진을 찍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졸업식장에 들어가기가 왠지 꺼려지는 이유는 “사회과학대학 졸업생 ○○○ 외 258명” 식에 묻혀가는 것은 솔직히 원치 않는다는 것이다.

언제 어느 상황에서든 자신의 존재감을 인정받고 싶은 이들의 속내를 듣고 보니 마음 한구석에서 걱정이 들기도 한다.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순간 캠퍼스 시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삭막하고 살벌한 상황과 오롯이 부딪쳐야 할 테니 말이다. 실제로 신세대를 대상으로 “직장생활 중 언제 가장 보람을 느끼는지”를 질문해 본 결과 “상사나 동료로부터 칭찬 혹은 인정을 받았을 때”라는 응답률이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자신의 업무가 성과에 기여했을 때”나 “사회에 긍정적 영향을 미쳤을 때” 보람을 느낀다는 기성세대의 응답과 흥미로운 대조를 보이고 있음은 물론이다. 하지만 “직장 내에서 사축(社畜·회사에서 기르는 가축이란 의미를 지닌 자조적 표현)을 경험한 적이 있다”고 응답한 비율이 신세대의 경우 10명 중 7명에 이른다는 취업 포털업체의 조사자료를 보면, 칭찬과 인정에 민감한 ‘트로피 키즈’들이 냉혹한 현실 속에서 경험하는 당혹스러움이 직접적으로 묻어 나옴을 숨길 수가 없는 듯하다.

기성세대 입장에서는 밀려오는 신세대를 보면서 “왜 우리만 그들을 이해하고 배려해야 하는가? 그들도 우리 세대를 인정하고 따라주어야지”라는 내심 불만스러운 목소리를 내지만, 생각해 보면 이미 기성세대가 마련해 놓은 시스템의 틀 안으로 들어와 그동안의 관행에 나름 적응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신세대 입장도 배려받을 만하지 않을까 싶다. 이제야말로 세대 간 불필요한 소모적 갈등을 일상화하기보다는, 각자의 가치를 인정해 주고 서로의 행동양식을 존중해 주면서 각 세대의 장점을 결합해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지혜를 모색해야 할 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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