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 환자는 ‘자살 암시 흔적’을 남긴다
  • 노진섭 의학전문기자 (no@sisajournal.com)
  • 승인 2019.07.09 17:00
  • 호수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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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료 핵심은 ‘타이밍’…말 들어주고 공감하는 것 중요

30년 넘게 방송, 영화, 연극 무대를 오가며 활발하게 활동해 온 중견 배우 전미선씨가 6월29일 오전 전주의 한 호텔 객실 화장실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외부인의 침입 흔적이나 타살 정황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소속사는 “배우 전미선이 올해 나이 50세로 유명을 달리했다. 평소 우울증으로 치료를 받았으나 슬픈 소식을 전하게 됐다”고 밝혔다.

우울증을 앓던 배우 전미선씨가 6월29일 전주의 한 호텔 객실 화장실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 뉴시스 

전씨는 연극 《친정엄마와 2박3일》 공연을 위해 전주에 머물렀다. 또 송강호씨와 함께 출연해 기대를 모은 영화 《나랏말싸미》 개봉도 눈앞에 두고 있었다. 이렇게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던 전씨가 극단적인 선택을 할 정도로 무서운 병이 우울증이다.

전씨의 사망이 갑작스럽게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전문의들은 우울증 환자는 충동적으로 자살하기보다는 일정 기간 자살을 생각한 후 실행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한다. 자살을 암시하는 흔적을 남긴다는 것이다. 전미선씨도 과거 한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해 산후 우울감을 느꼈다고 고백한 적이 있다. 홍승봉 삼성서울병원 신경과 교수는 “노무현 전 대통령도 미리 주변에 수고했다는 전화를 했다. 이처럼 자살 전에 워닝 사인(경고)이 있다. 전미선씨도 그랬을 가능성이 있다”며 “대부분 그런 사인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는 게 문제다. 워닝 사인은 금전 관계 등 주변을 정리하거나, 걱정이 많던 사람이 갑자기 평온해 보이거나, 주변에 고마웠다는 전화를 돌리거나, 죽고 싶다거나 괴롭다는 문자를 보내는 등으로 나타난다. 주변 사람이 이를 알아채도록 국가 차원에서 대국민 계몽을 해야 우울증 자살을 조금이라도 예방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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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계, 우울증 환자 1000만 명 추산

우울증에 의한 자살을 예방하려면 우울과 자살이라는 말을 자연스럽게 꺼낼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도 필요하다. 홍승봉 교수는 “우울증 환자는 정신과에 가지 않는다. 우울증으로 정신과를 찾는 환자는 전체의 5% 정도다. 나머지는 다른 신체적 증상으로 병원을 찾는다. 우울증 환자는 절망감 단계를 거쳐 자살 생각에 이르는데, 그 시기에 두통, 어지럼증, 소화 장애 등 신체적 증상이 생겨 병원을 찾는 경우가 많다. 그때 환자의 우울증을 잡아내야 하는데, 의사들이 그런 것을 물어보지 않는다. 전국 모든 병·의원에서 환자에게 고혈압이나 당뇨병이 있냐고 확인하는 것처럼 기본적으로 우울증도 진단해야 한다”며 “우리는 우울증이나 자살이라는 말을 꺼내는 것조차 금기시한다. 오히려 드러내고 묻고 답하는 분위기가 형성돼야 한다. 환자에게 우울증이나 자살에 대해 묻기만 해도 자살을 생각하던 3명 중 1명은 자살을 포기한다. ‘나를 이해하려는 사람이 있다’는 생각에 자살하지 않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기웅 분당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도 “우울증을 발견하는 창구를 모든 병·의원으로 넓힐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우울증은 인구의 15%가 경험할 정도로 흔해 ‘마음의 감기’라고 불린다. 정신과를 찾는 사람 중 4명 중 1명은 우울증 때문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지난해 우울증으로 진료받은 사람은 약 75만2000명이다. 자신이 우울증인 것을 모르거나 알고도 병원을 찾지 않는 사람까지 합하면 우울증 환자는 1000만 명에 이를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추산이다.

감기를 방치하면 폐렴으로 이어지듯이 우울증도 치료하지 않으면 자살과 같은 극단적인 방향으로 진행할 수 있다. 우울증의 심각성을 가장 확실하게 보여주는 지표는 우울증과 자살의 상관관계다. 1년간 우울증 환자 10명 중 1명꼴로 자살한다. 또 자살자의 80% 이상은 우울증 환자인 것으로 추정된다.

우울증이 자살로 이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성이 충동을 지배하지 못하는 뇌 변화가 생길 때 자살을 시도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전홍진 삼성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고려대, 하버드의대 팀들과 함께 2011년부터 5년간 자살 생각이 있는 우울증과 없는 우울증 환자의 뇌 변화를 분석했다. 그 결과, 인간의 기본적인 본능과 충동을 관장하는 뇌 부위(변연계)가 분노, 화, 불안, 트라우마 등으로 흥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판단과 사고를 관장하는 뇌 부위(전두엽)의 기능이 떨어져 변연계를 통제하지 못하는 상태가 된다. 마치 술을 많이 마시면 이성보다 충동이 앞서는 것과 비슷한 현상이 생기는 것이다. 또 이번 연구에서 우울증으로 전두엽-변연계 간의 연결이 줄어들수록 자살 생각이 더 증가한다는 사실을 규명했다.

WHO, 우울증 질환 중 1위 예측

세계보건기구(WHO)는 우울증이 2020년경 모든 연령에서 나타나는 질환 중 1위를 차지할 것으로 예측했다. 우울증은 생각·기분·감정·행동·신체건강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는 증상임을 고려하면 단순히 기분·갱년기 문제로 치부할 게 아니다. 우울증은 명백한 질환이라는 것이 의학적으로 증명됐다. 우울증의 원인은 생물학적 원인, 유전적 원인, 생활 및 환경 스트레스, 신체적 질환, 악물 등이 있다.

이런 원인으로 뇌의 신경전달물질(세로토닌, 일명 행복 호르몬)이 부족해지면서 우울증이 발병한다. 사별, 실직, 힘든 대인관계, 업무 스트레스 등 다양한 스트레스를 받을 때 스트레스 호르몬(코르티솔)이 분비된다. 코르티솔은 뇌 활동을 조절함으로써 스트레스 극복에 도움을 준다. 그러나 코르티솔이 장기간 높은 농도로 유지되면 세로토닌이 적어 우울증이 생긴다. 이 외에도 불안감을 높이는 물질(노르에피네프린)이나 의욕을 갖게 하는 물질(도파민)도 우울증과 관련이 있다. 이런 물질들이 균형을 이루지 않고 부정적인 기분이 들게 하는 물질이 많아질 때 우울증이 발생한다.

이런 신경전달물질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먹는 약이 항우울제다. 환자의 50%는 항우울제로 치료된다. 첫 번째 약에 반응 없는 사람에게 다른 항우울제를 쓰면 환자의 20%가 좋아진다. 전체적으로 70%는 약물로 치료된다고 볼 수 있다.

우울증 치료의 핵심은 타이밍이다. 우울증 초기에 자살 가능성이 가장 크다. 그렇지만 우울증 초기에 치료도 잘된다. 만성이나 재발한 우울증이라면 약물만으로 치료가 쉽지 않다. 홍승봉 교수는 “우울증은 발생했다가 좋아지기를 반복한다. 우울증 발생 3개월까지가 자살로 이어질 가능성이 큰 시기다. 이때 발견해 치료하면 효과가 좋다. 그러나 우울증이 반복될수록 치료는 어려워지는데, 3번 이상 재발하면 약을 평생 먹어야 할 정도로 치료가 힘들어진다”고 설명했다.

2주 이상 우울한 기분 들 때 치료 필요

그렇다면 언제 우울증을 의심하고 병원을 찾아야 할까. 의학적으로는 우울한 기분이 종일, 2주일 이상 지속되면 우울증으로 본다. 따라서 우울한 기분이 2주일 이상 지속되면서 평소 해 오던 일이 갑자기 힘들게 느껴질 때 의사를 찾는 게 바람직하다. 업무 수행이 어려울 만큼 기억력이 떨어졌을 때, 사람 만나기가 꺼려질 때, 주부인 경우는 집안일을 하지 않고 방치할 때도 마찬가지다. 짧게 며칠씩 반복하는 우울감은 우울증이 아니지만, 우울증으로 발전할 수 있으므로 전문의와 상담해 볼 필요가 있다.

우울증이 심각해지는 것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주변의 관심이 필수다. 예를 들어 우울증이 의심되는 사람이 가족 중에 있을 때 가족 구성원이 가장 먼저 할 일은 그 사람의 말을 들어주고 공감하는 것이다. 이러쿵저러쿵 말하는 것은 별 도움이 안 된다. 누구나 다 우울하다거나 너만 과민해서라거나 의지가 약한 것이니 힘내라는 식의 말은 오히려 반감을 살 뿐이다. 또 처음부터 병원에 가자는 식으로 대하면 우울증 환자는 거부감부터 느끼므로 문제가 커진다.

해결책을 찾으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 그냥 힘든 점을 잘 들어주고 공감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병원 치료 등 해결 방법을 얘기하게 된다. 특히 대화 중 자살에 대한 언급이 있다면 반드시 이른 시일 내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김기웅 교수는 “우울증 환자는 힘든 것 때문에 자살을 택한다. 그 힘든 점을 주변에서 공감해 주는 것이 중요하다. 해결책을 찾지 못하더라도 같이하는 것, 좋아질 것이라는 희망을 주는 것이 우울증 환자에게는 큰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여행이나 운동 등 자신의 의지로 우울증을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우울한 기분이 드는 정도라면 수다, 여행, 취미, 운동, 술 등 개인의 취향대로 풀 수 있다. 그러나 우울증 대부분은 뇌 기능에 이상이 생긴 질환이므로 자신의 의지만으로는 해결하기 힘들다. 전문가의 치료를 받으면서 보조적으로 개인적 노력을 하는 게 맞다. 그럼에도 어떤 이유로든 병원 방문이 여의치 않다면 일단 자신에게 우울증 치료가 필요한 상태인지를 확인해 볼 필요는 있다. 각 지역에 있는 정신건강복지센터에서 병원 치료가 필요한지에 대해 상담할 수 있다.

ⓒ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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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속 우울증 예방법 5가지

전문의들이 꼽은 우울증 예방을 위한 생활습관은 5가지다. 소통, 운동, 햇볕, 수면, 긍정 버릇이다. 김기웅 교수는 “우울증 예방의 1순위는 주변 사람들과의 소통이다. 소통이 단절되면 쉬운 문제도 어렵게 느낀다”며 “특히 어르신에게 우울증 예방의 첫걸음은 운동이다. 운동은 소통의 일종이기도 해서 운동을 즐기는 우울증 노인은 자살률이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수면과 기분은 각각의 사이클이 있는데 수면에 변화가 생기면 기분의 사이클도 깨진다. 기분의 사이클을 일정하게 유지하려면 정한 시간에 잠자리에 들고 깰 필요가 있다. 직장생활 등으로 자는 시간이 불규칙하다면 잠자리에서 일어나는 시간이라도 일정해야 한다. 또 운동이 우울증 예방과 재발 방지에 도움을 준다는 사실은 여러 연구를 통해 증명됐다. 스트레스나 분노를 운동으로 풀 수 있기 때문이다.

홍승봉 교수는 “수면은 우울증 예방에 중요한데, 우울증 없이 수면 부족만으로도 자살 위험이 2배, 자살 시도는 3배 높아진다”며 “또 중요한 것은 긍정 버릇이다. 평소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버릇을 길러야 한다. 우울증 환자는 사람 만나기를 피하고, 다투고, 혼자 지내려는 특징이 있다. 영화도 보고 친구도 만나고 쇼핑도 즐기면서 관계를 맺어야 한다. 과거에 좋았던 생각이나 행동을 억지로라도 해야 긍정하는 습관이 생긴다. 실제로 이는 우울증 환자를 위한 심리치료법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계절성 우울증, 가면 우울증, 조울증, 공황장애의 차이는? 

• 계절성 우울증은
특정 계절에 발생하는 우울증을 말한다. 계절성 우울증은 일조량과 관련이 있다. 햇빛이 줄어들면 멜라토닌이라는 신경전달물질의 분비가 줄어들면서 신체 리듬이 깨져 우울증이 유발된다. 일조량이 줄어드는 가을과 겨울에 우울증이 시작되고 일조량이 늘어나는 봄과 여름엔 증상이 저절로 회복되는 현상이 매년 반복된다. 일조량이 적은 여름 장마철에도 우울증이 증가한다.


• 가면 우울증은
실제로는 우울하지만 마치 가면을 쓴 것처럼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것을 말한다. 이는 주로 청소년과 노인에게서 나타난다. 청소년은 우울감을 느끼기보다는 짜증과 화를 낸다. 물건을 부수고, 가출하고, 담배를 피우고, 비행을 저지르기도 한다. 정서 통제가 되지 않아 우울증이 행동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노인은 우울한 느낌보다는 신체적인 변화를 경험한다. 가슴이 두근거리거나 숨 쉬기가 곤란하거나 소화가 안 되는 등의 증상을 보인다.


• 조울증은
기분이 가라앉는 우울증에 기분이 들뜨는 조증이 동반된 것이다. 우울증에 걸릴 확률이 평생 15% 정도라면 조울증은 1~2%다. 조울증의 가장 큰 특징은 예민함이다. 기분이 좋을 때는 업무 능력이 오르지만 우울한 기분이 들면 화를 내고 짜증을 낸다. 그래서 조울증 환자는 주변 사람들과 다투거나 부딪치는 경우가 많다. 기분 변화가 심해 직장생활 적응도 어렵다. 조울증은 주로 20대에 잘 생긴다.


• 공황장애란
뚜렷한 이유 없이 갑자기 극도의 두려움과 불안을 느끼는 불안장애의 일종이다. 심한 불안, 가슴 뜀, 호흡 곤란, 흉통, 가슴 답답함, 어지러움, 파멸감, 죽음의 공포 등을 경험한다. 공황장애는 만성적인 질병이며 자연적으로 회복되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에 반드시 병원 치료가 필요하다. 방치하면 우울증이나 광장공포증이 동반돼 치료가 어려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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