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할매가 된다, 그런데 엄마 아니라도 할매는 된다
  • 노혜경 시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7.06 16:00
  • 호수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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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혜경의 시시한 페미니즘] ‘할매’들은 호명하거나 발견할 대상이 아니라 나의 미래형식

최근 들어 ‘할매’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영화 《칠곡가시나들》에 쏟아진 호응도 그렇고, MBC예능 《가시나들》, 얼마 전에는 구술사최현숙이 《할매의 탄생》을 펴내기도 했다. 이 ‘할매’들에게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자식들에게 헌신하는 삶을 졸업하고 비로소 내 삶에 대해 생각해 보는 분들, 비교적 교육 수준이 낮아 문해맹인 경우가 많고, 사투리 보존자들이기도 하다. 그러나 일단 조명이 비추이면 박막례 할머니처럼 일약 스타가 될 만한 잠재력을 지녔다. 끝이 좋으면 다 좋다는 사계의 속설이 있다시피, 인생 말년에 말할 입을 얻은 이 할매들은 참 다행이다. 덕분에 사람들이 우리 집 ‘할매’한테도 관심을 기울인다면 더 좋다.

그런데, 늘 이런 장면에서 뒤집어 생각하는 좋지 못한 버릇이 있는 나는 또 뒤집어본다. 우리 엄마 이야기다. 우리 엄마도 내년이면 90세가 되는 진짜 할매다. 그 엄마가 내 나이 때(실로 나도 할매 반열이긴 하지만) 젊었던 나는 엄마를 어찌 생각했던가. 엄마는 내 친구들의 엄마와 달리 인텔리겐차였고 3급 공무원으로 퇴직했다. 그런 엄마를 취재하면 어떤 이야기가 나올까. 시도를 많이 해 보았지만 엄마는 말을 안 한다. 내 기억 속의 엄마는 권위의 화신이고, 나는 ‘엄마와의 전쟁’이란 시를 쓸 정도로 엄마와 싸웠다. 알고 보니 많은 딸들이 그랬단다. 우리 엄마와는 정반대 위치지만, 딸들과 엄마들의 싸움 한복판엔 가부장제라는 보이지 않는 감옥이 있다. 엄마가 가부장제의 전통을 고수하든 벗어나든, 그 엄마와 전쟁하는 딸들도 영향을 심하게 받는다. 나는 어릴 적 한때는 장래희망이 심지어 현모양처였다. 그 전쟁에 나의 우군이 우리 할매였다는 것이 무슨 뜻이겠는가.

폴란드 바르샤바에 있는 할라 미로브스카 꽃시장에서 꽃을 사는 폴란드 할매 ⓒ 노혜경 제공
폴란드 바르샤바에 있는 할라 미로브스카 꽃시장에서 꽃을 사는 폴란드 할매 ⓒ 노혜경 제공

‘할매’들은 발견 대상이 아닌 나의 미래형식

내가 기억하는 우리 할매, 아버지의 엄마는 내 자식이라고 편드는 능력이 크지 않아 삼촌들을 섭섭하게 만들고 나이 들어서는 할아버지를 후드려잡았다. 내 기억 속의 우리 할매는, “여자는 나이 들수록 진보적이 된다”라는 스타이넘의 통찰에 꼭 들어맞는다. 그런데 우리 할매가 엄마에게는 그냥 시어머니였다. 엄마가 말을 안 해도 그 정도는 다 보였다.

또 뒤집어본다. 위안부 할머니들 이야기다. 우리가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할머니’란 호칭을 붙이지 않았다면 지금 그분들에 대한 우리 사회의 생각은 어떤 길로 달리고 있을까. 이분들이 처음 위안부 피해 사실을 말하기 시작했을 때 이미 이분들은 ‘할매’였지만, 알고 보면 소녀 때, 처녀 때 사건들을 할매가 되어서야 말하기 시작한 게 아닌가.

왜 ‘꽃보다 할배’는 있는데 ‘꽃보다 할매’는 없는 걸까. 엄마는 성역할이고 할배는 나이 들어서도 남자인데 할매는 입술에 고운 루즈를 발라도 왜 “아이고 우리 할머니 고우시네 우쭈쭈”일까. 갑자기 가슴이 아프다. 할매가 되기 전에 우리 엄마가 예뻤다는 것을 나는 아는가.

이 다양한 ‘할매’들 중에 누구를 먼저 바라보아야 할까. 그런데 질문이 잘못되었다.난생처음 가본 유럽의 재래시장에서 꽃을 사고 채소를 사는 할머니들을 보았다. 낯설어서 더 절실하게 깨달은, 저것이 나의 미래다. 엄마만 할매가 되는 게 아니라 나도, 지하철에서 욕을 먹는 뻔뻔한 아줌마도 좀 더 지나면 할매가 된다. ‘할매’들은 호명하거나 발견할 대상이 아니라 나의 미래형식이라는 것을 먼저 생각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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