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 데까지 간 야구계…유소년에 약물 투여까지
  • 기영노 스포츠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7.05 16:00
  • 호수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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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성적 위해 약물 복용했던 과거 동구권 국가들도 어린이에겐 투약 안 해

대학 입학이나 프로야구단 입단을 위해 유소년들에게 금지약물인 ‘아나볼릭 스테로이드(테스토스테론)’를 투여한 전대미문의 사건이 국내에서 발생해 야구계를 긴장시키고 있다. 프로야구 선수 출신 이여상씨가 유소년들에게 ‘아나볼릭 스테로이드’를 불법 투약한 혐의로 7월2일 구속되었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지난주 초·중·고교생과 사회인에게 야구를 가르치는 이여상 아카데미 야구교실을 압수수색했는데, 여기서 유소년들에게 약물을 투여한 정황이 포착되었다. 유소년 7명을 도핑방지위원회에 의뢰해 2명으로부터 양성반응이 나왔고, 나머지 5명은 조사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식약처 관계자는 “이씨가 약물을 투약할 때마다 학부형으로부터 수강료 외에 돈을 추가로 받아온 정황이 담긴 장부를 확보했다”며 “증거는 차고 넘친다”고 말하고 있다.

그동안 유소년 야구에서 구타, 금품수수, 학부형에 대한 성 파문 등은 종종 있어 왔지만, 한창 자라는 아이에게 스테로이드를 투약했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은 처음이다. 식약처 발표에 야구나 스포츠계뿐만 아니라 이를 접한 모든 사람들이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다. 이씨는 유소년들에게 스테로이드 주사를 맞히면서 “부작용도 거의 없고, 또한 몸을 좋게 만들어야 원하는 대학이나 프로야구팀에 갈 수 있다”고 권유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어 더욱 문제가 커질 것으로 보인다.

ⓒ freepik·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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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로이드, 신체적 부작용은 물론 정신적 피폐화까지 불러

이씨는 불법 스테로이드를 투약한 유소년들의 성장판이 빨리 닫혀 키가 크지 않는 것은 물론 예기치 않았던 갖가지 부작용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회유를 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강습비용에 약물 값을 더해 그런지 이씨의 야구교실 수강비용은 일반적인 곳보다 훨씬 비싼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실제 전문가들의 설명을 들어보면, 어린 나이에 스테로이드를 복용할 경우 신체적으로 부작용이 생기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정신적으로도 피폐해질 수 있다고 한다. 따라서 우울증이 생기거나 심지어 자살충동까지 느낄 수 있어 아이들의 인생을 망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또한 인위적으로 성인들처럼 근육량을 키우고자 편법으로 약물을 동원한 셈이어서 자칫 야구계 전체로 파장이 확산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로 약물에 대해 양성 반응을 보인 선수 가운데 2019 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에 뽑힌 학생도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씨는 2006년에 신고 선수로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했고, 한화 이글스를 거쳐 롯데 자이언츠에서 내야수로 뛰다가 2017년 은퇴했다. 선수 시절 타석에 들어섰을 때 이씨의 타법은 매우 특이했었다. 이른바 ‘중풍 타법’이라고 불리기도 했는데, 타석에 들어서서 투수의 투구를 기다릴 때 왼쪽팔을 덜덜 떨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한화 이글스에 소속되어 있던 2011년 결혼을 했다. 이씨는 프로야구 선수로는 이례적으로 중등학교 2급 정교사(체육) 자격증을 갖고 있어 야구교실을 운영하는 데 유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씨는 7월3일 현재 해당 사실을 부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프로야구 선수 시절에 크고 작은 부상을 자주 당했고, 팔에 철심도 박혀 있는 탓에 통증이 심해 인터넷으로 스테로이드를 구입해 자신이 직접 맞은 것이라고 변명하고 있다. 그러나 그 말이 맞는다고 해도 인터넷으로 스테로이드 계통의 약물을 샀다는 자체가 불법이라는 지적이다. 이씨는 “아이들이 피부과 치료를 받다 보니 몸에서 스테로이드 성분이 나온 것 같다”고 변명하고 있다. 그러나 아토피나 천식 환자가 치료 목적으로 쓰는 스테로이드 약물과 아나볼릭 스테로이드 약물은 전혀 다르다. 치료용 스테로이드를 먹는다고 해서 힘이 나고 근육이 생기지는 않는다. 만약 운동선수가 치료 목적으로 스테로이드를 쓸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의사 소견서 등을 첨부해 ‘치료 목적 사용 면책(TUE)’에 제출하면 심의를 거쳐 치료 기간 동안 치료적 사용 면책을 해 준다.

‘아나볼릭-안드로게닉 스테로이드(anabolic-androgenic steroidㆍAAS)’는 통상 ‘아나볼릭 스테로이드’라 불린다. ‘아나볼릭’이란 말은 ‘짓다’는 뜻이고, ‘안드로게닉’은 남성적이라는 그리스어에서 파생한 것이다. 즉 ‘남성적 특성이 뚜렷해진다’는 뜻이다. 아나볼릭 스테로이드는 남성호르몬과 비슷하다. 몸에서 단백질 합성을 촉진하기 때문에 근육을 빨리 만들고 근력을 강화할 수 있는 효과가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단기적으로 집중력이 향상되고, 피로 회복도 빨라지며, 공격성도 증가시키는 효력이 탁월하다고 알려져 있다. 또한 몸 안의 에너지 대사 속도를 높여 단시간에 폭발적인 힘을 발휘하는 효과가 크다는 분석도 있다.

2016년 프로야구 선수 시절의 이여상씨 ⓒ 연합뉴스
2016년 프로야구 선수 시절의 이여상씨 ⓒ 연합뉴스

쇼트트랙 국가대표 코치 성폭행보다 더 큰 파문 일 듯

그러나 스테로이드는 간 수치가 올라가고, 갑상선 기능이 떨어지며, 심지어 성기능 장애까지 일으키는 엄청난 부작용을 초래하게 된다. 따라서 선수생활은 물론 자신의 생명을 단축시키게 되는 결정적 부작용이 있다. 2000년대 초 미국의 한 스포츠 잡지사가 미국 국가대표 육상선수들을 대상으로 “스테로이드 약물을 복용하면 확실하게 금메달을 딸 수는 있지만 부작용으로 7년 뒤 사망할 수도 있다. 당신은 이 약을 복용할 것인가”라고 질문을 던졌더니, 놀랍게도 80%의 선수들이 “복용하겠다”고 응답했다. 그만큼 좋은 성적을 올리기 위한 땀의 고통이 얼마나 괴로운 것인지 알 수 있는 조사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스테로이드의 부작용이 얼마나 심각한 것인지도 가늠해 볼 수 있다.

이번에 유소년 야구선수들에 대한 불법 아나볼릭 스테로이드 투약이 모두 사실로 밝혀진다면, 쇼트트랙 스피드스케이팅 국가대표 조재범 코치의 심석희 선수에 대한 상습적인 성폭행 못지않게 사회적으로 엄청난 파문을 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약물복용은 과거 동독이나 구소련 등 공산국가에서 성인이나 주로 여성에게 투약해 남성화시켜, 올림픽 같은 큰 대회에서 공산(사회)주의의 우월성을 나타내려는 수단으로 이용되었다. 하지만 그 시절, 그런 국가에서도 어린이에게 투약한 사실은 거의 없었다. 만약 이씨가 대학 진학이나 프로야구팀 입단을 구실로 돈벌이를 위해 유소년들에게 약물을 투여한 것이라면, 개인뿐만 아니라 한국 야구계 전체에도 큰 불명예가 될 것이란 게 야구 관계자들의 우려 섞인 목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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