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 대세론’ 한 방에 날려버린 ‘해리스 돌풍’
  • 김원식 국제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7.05 17:00
  • 호수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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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샌더스에 식상해 있던 美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 ‘사이다 후보’로 부각

“기부자 가운데 60%가량이 처음으로 기부한 사람이다. 마치 지난 대선 초기 트럼프 돌풍의 시작을 보는 것 같다.”

지난 6월27일 펼쳐진 미국 민주당 대선후보 TV토론회를 계기로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의 대세론을 한 방에 허문 카멀라 해리스 상원의원의 돌풍에 관해 워싱턴의 한 정치분석가가 내놓은 말이다. 이번 TV토론회는 26일과 27일 두 차례로 나눠 실시됐다. 20여 명이 넘은 예비후보가 난립해서다. 27일 TV토론회에서는 최근 여론조사에서 압도적 1위를 달리던 바이든 후보와 지난 대선 돌풍의 여세를 몰아 2위 자리를 지키고 있던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의 옆자리에 해리스 상원의원이 자리했다. 물론 시청자들의 관심은 바이든과 샌더스의 맞대결이었다.

하지만 이날 TV토론회의 결과는 예상을 뒤엎고 해리스 상원의원의 압도적인 승리로 끝났다. 이후 24시간 만에 해리스의 후원금 계좌에는 6만3000명이 넘는 기부자들의 소액 기부금이 줄을 이어 200만 달러(약 23억원)가 넘는 후원금이 들어왔다. 더군다나 30달러 안팎으로 기부한 이들 중 60%가량은 처음으로 정치후원금을 기부한 사람이다. 정치분석가가 주목했던 부분이 바로 이 점이다. 마치 지난 2016년 대선 초기 정치에 무관심하던 대중이 도널드 트럼프 예비후보의 지지자로 등장해 결국 그를 대통령으로 당선시킨 돌풍이 그대로 연상된다는 것이다.

6월27일(현재 시각) 미국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TV토론회에서 조 바이든 전 부통령(왼쪽)과 카멀라 헤리스 상원의원(오른쪽)이 논쟁을 벌이고 있다. 가운데는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 ⓒ AFP 연합
6월27일(현재 시각) 미국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TV토론회에서 조 바이든 전 부통령(왼쪽)과 카멀라 헤리스 상원의원(오른쪽)이 논쟁을 벌이고 있다. 가운데는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 ⓒ AFP 연합

‘올드한’ 바이든과 대비된 ‘세련된’ 해리스

사실 해리스 후보의 돌풍을 낳은 TV토론회 드라마는 바이든 후보가 자초했다. 이미 만 76세의 고령인 그는 지난 1970~80년대 흑백 인종분리 정책으로 유명했던 공화당 상원의원들과 함께 일한 추억을 언급하며 “그때는 정파 간에도 화합이 가능했다”고 발언했다. 이 틈을 해리스는 놓치지 않았다. 그는 “나는 당신이 인종차별주의자(racist)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면서도 “하지만 나는 당신의 그 발언에 상처를 받았다”고 말해 순간 토론회장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이어 “당신은 1970년대 ‘버싱(busing)’에 반대했다. 바로 그 시기 캘리포니아에서 좀 더 나은 학교에 가려고 스쿨버스에 타던 작은 소녀가 바로 나”라며 다소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해 좌중을 압도했다.

버싱은 당시 ‘강제 버스통학 제도’로 불리며 인종차별을 없애고자 흑인과 백인의 학교가 나뉜 상황을 해소하기 위해 집에서 먼 학교에 다니게 되더라도 흑인 어린이를 백인 학교로, 백인 어린이를 흑인 학교로 버스에 태워 보내는 제도였다. 하지만 당시 공화당 일부 상원의원들은 이러한 제도에 반대했고, 하필 바이든 후보는 TV토론회에서 그들을 칭찬하고 나선 것이 화근이 되고 말았다. 해리스 후보는 즉각 바이든 후보를 몰아세웠고, 이에 바이든은 “난 그런 제도 자체에 반대한 것은 아니다”고 뒤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바이든 후보는 졸지에 자신이 가장 ‘뜨거운 감자’인 인종차별주의자로 내몰릴 수도 있는 상황을 자초하고 만 것이다.

TV토론회에서 이 한 장면이 낳은 결과는 ‘돌풍’ 그 자체였다. 다른 후보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압도적인 1위를 달리던 바이든 후보의 지지율이 곤두박질치고 해리스 후보가 2위를 탈환한 데 이어, 이제 1위 자리마저 넘보는 대이변이 발생했다. 7월1일 CNN이 발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바이든 후보가 22%로 1위를 유지했지만, 해리스 후보가 17%로 뒤를 이었다. 또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이 15%,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은 14%를 기록했다. 이전 5월 조사와 비교하면 바이든 후보의 지지율은 10%포인트나 떨어지고 해리스 후보는 9%포인트 상승했다. 바이든의 지지율 이탈을 해리스가 그대로 다 가져간 셈이다.

2위를 달리던 샌더스도 또 다른 여성후보 워런에게 추월당해 4위로 밀려났다. 7월2일 퀴니피악대학이 발표한 여론조사에서는 바이든 후보가 22%, 해리스 후보가 20%의 지지율을 획득해 1위 자리를 놓고 오차범위 내에서 접전을 벌이고 있다. 단 한 차례 TV토론회에서 대이변의 드라마가 연출된 것이다.

사실 ‘해리스 돌풍’을 낳은 압도적인 장면은 그가 바이든 후보를 몰아친 그 한 장면이었지만, TV토론회 내내 해리스 후보의 발언은 민주당을 지지하는 유권자들의 마음을 끌기에 충분했다. 이날 TV토론회에서도 10명의 후보들이 나와 서로 상대방을 비난하며 난타전을 벌일 때, 해리스 후보는 “여러분, 그거 아세요? 미국인들은 이러한 밥그릇 싸움을 보고 싶어 하진 않습니다”라면서 “우리 국민들은 정치인들이 어떻게 식탁에 음식을 올릴지를 알고 싶어 한다”고 말해 청중의 박수를 받았다. 또 무턱대고 바이든 후보를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차분하게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면서 조리 있게 따져 묻는 모습과 단지 그 상황에서 벗어나려는 바이든 후보의 이미지가 비교되면서 자연스럽게 유권자들의 마음을 뒤흔들었던 것이다. 한마디로 민주당 지지자들에게는 별 대안 없이 1, 2위를 달리던 바이든과 샌더스의 식상함을 돌파할 수 있는 ‘사이다’ 같은 존재가 등장한 셈이다.

 

‘흑인 여성 민주당 대선후보’ 탄생 가능할까

이제 관심은 과연 이러한 돌풍이 여세를 몰아 ‘흑인 여성 민주당 대선후보’의 탄생을 가능하게 할 수 있을까에 쏠리고 있다. 여론조사 1, 2위 후보를 무너뜨리는 해리스의 돌풍이 가능했던 것은 상대인 두 후보가 모두 고령인 데다, 바이든 후보는 그의 개혁 성향에도 불구하고 1988년과 2008년에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 나섰을 정도로 노회한 정치인이라는 점이다. 바이든 후보보다 1살 더 많은 샌더스 후보는 지난 대선에서 힐러리 클린턴 후보를 위협할 정도로 돌풍을 몰고 왔지만, 이번 대선후보 경선에서는 더 이상 신선한 이미지의 신인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또 과감한 개혁적인 공약으로 확고한 나름의 지지층을 확보하고 있지만, 늘 ‘확장성’이 발목을 잡고 있다.

물론 대다수 선거 전문가들은 이번 해리스 후보의 초기 돌풍이 과연 끝까지 이어져 그가 민주당 대선후보 자격을 거머쥘지는 아직 미지수라고 입을 모은다. 민주당은 모두 12차례에 걸쳐 TV토론회를 진행하며, 이제 단 한 차례가 진행됐을 뿐이다. 또 주별로 프라이머리와 코커스를 거쳐 내년 7월 전당대회에서 최종 후보를 결정할 예정이다. 그만큼 아직 도사리고 있는 변수가 많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미 해리스 후보가 확고한 한 자리를 차지한 것만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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