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파라벨룸’과 한국 경제
  • 김경원 세종대 경영대학장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7.10 18:00
  • 호수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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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최근 개봉한 할리우드 영화의 제목 끝에는 ‘파라벨룸’이라는 말이 붙어 있다. 한 킬러의 이야기인데 1편, 2편의 흥행 성공에 이어 3편이 나온 것이다. 군사 마니아라면 단박에 이 말이 한 총탄의 종류를 뜻하는 것임을 알아챌 것이다. 실제로 이 말은 영화 중 셀 수 없이 나오는 총격전에 사용되는 직경 9mm짜리 탄환을 가리킨다. 1902년 게오르그 루거는 독일군의 요구에 따라 주로 권총에 쓰일 새 탄환을 설계했고 이를 ‘DMV’라는 총기 회사가 이듬해부터 생산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 회사의 사훈에 ‘파라벨룸’이란 말이 들어가 있어 이 탄환에도 이런 별칭이 붙었다고 한다.

이 탄환은 2차 세계대전까지 독일군의 모든 권총 및 기관단총에 사용됐다. 당시 미군이 권총 및 기관단총에 사용하던 탄환은 직경 11.43mm의 ‘.45 ACP’라는 탄환이었다. 전쟁이 끝나자 패전국의 총알 ‘파라벨룸’은 나치 독일과 함께 사라질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1985년 미군은 새로운 제식 권총으로 파라벨룸 탄을 사용하는 이탈리아 회사의 권총을 채택했다. 이후 이 탄환은 전 세계의 권총 및 기관단총의 표준이 됐다. 각각 K5, K7이라 불리는 우리 국군의 제식 권총과 기관단총의 탄종도 예외가 아니다.

영화 중 한 조연이 읊조리는 대사가 이렇게 제목에 붙여진 이유이기도 하다. 바로 “시비스파켐, 파라벨룸(Si vis pacem, para bellum)”이다. “평화를 바라거든 전쟁에 대비하라”는 뜻이다. 앞서 언급된 DMV의 사훈이기도 한 이 문장은 4세기 후반에 로마의 베게티우스라는 사람이 저술한 《군대 일에 관하여(De re militari)》라는 책에 나온다. 다소 역설적으로 들리는 이 경구는 지금까지도 각국의 군인들이나 외교관들 사이에 회자되고 있다. 

#2. 얼마 전 삼척항에서 ‘해양판 노크 귀순’이 일어났다. 이 배는 정박할 때까지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고 한다. 상당수 언론에서는 지난해 ‘9·19 남북군사합의’의 여파로 이런 일이 벌어졌으며 ‘안보가 뚫린’ 것이라고 비판한다. 군조차 평화무드에 젖어 ‘전쟁에 대비’하는 자세가 무너졌다는 것이다. 정말 그렇다면 베게티우스의 경구가 와 닿는 상황이다.

#3. 필자는 외환위기 시절 모 민간연구소에서 ‘IMF T/F 팀장’이라는 직책을 맡은 적이 있다. 이 팀의 업무 중 하나가 외환위기의 원인을 규명하는 것이었다. 분석 결과 일본 자금이 한 번에 썰물처럼 빠져나가며 위기의 뇌관 역할을 했다는 점과 그들 정부가 우리 정부의 긴급 외환유동성 지원을 거절하며 IMF 구제금융으로 밀어넣었다는 점도 발견할 수 있었다. 이에는 YS 정권의 “버르장머리” 발언 등 그전에 일본을 자극한 것이 배경이 된 정황도 있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7월4일 오후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하반기 경제정책방향 기업인 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7월4일 오후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하반기 경제정책방향 기업인 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요즘 한국 경제는 ‘위기’의 조짐이 갈수록 짙어지고 있다. 수출은 7개월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하고 금년 2%대 성장도 위협받고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최근 한·일 간의 여러 갈등으로 일본이 무역보복을 예고하고 있다. 이에 한국 경제의 버팀목인 반도체 산업의 기반 붕괴는 물론 자칫 경제 전체를 위기로 몰아갈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퍼져가고 있다. 딱 20여 년 전 상황의 데자뷔다. 하지만 이런 상황을 대하는 정부의 태도는 별로 다급함이 보이지 않는다. 해서 당국자에게 베게티우스의 경구를 변형한 ‘안정을 바라거든 위기에 대비하라’는 경구를 권하고 싶다. 일본과의 관계 개선 등 거창한 과제는 차치하고 우선 ‘소득주도성장’을 근본부터 재검토하고 최저임금과 건보료를 동결하는 기본적인 조치부터 시작해 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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