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패스트트랙 사태로 고발된 여야 의원 109명 공개
  • 구민주 기자 (mjooo@sisajournal.com)
  • 승인 2019.07.08 08:00
  • 호수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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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 공천의 칼자루 쥔 ‘패스트트랙’
검찰 눈치 보랴 공천 신경 쓰랴, 한국당 의원 전전긍긍

지난 4월, 극한의 국회 충돌 사태를 빚은 패스트트랙은 각종 고소·고발장만 잔뜩 실은 채 3개월 가까이 출발점만 맴돌고 있다. 여야 각 당과 검찰 등에 확인한 결과, 7월4일 기준 피고발자로 고발장에 이름을 올린 의원(황교안 한국당 대표,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 포함) 수만 총 109명이다. 당별로는 더불어민주당 40명, 자유한국당 58명, 바른미래당 7명, 정의당 3명, 무소속 1명에 이른다. 당마다 의석수 대비 상당히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는 숫자다.

그런데 각 당이 느끼는 고발장의 무게는 사뭇 다르다. 여러 국회의원실을 취재한 결과, 한국당을 제외한 다른 당에선 피고발 건에 대해 대체로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분위기다. 실제 “우리 의원도 고발당했는지 몰랐다”거나 “고발과 관련해 한 번도 얘길 나눠본 적이 없다”는 등의 반응도 어렵지 않게 들렸다.

4월26일 오후 국회 사법개혁특별위원회가 열릴 예정인 220호 회의실 앞에서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와 의원들이 출입을 막고 있다. ⓒ 시사저널 박은숙
4월26일 오후 국회 사법개혁특별위원회가 열릴 예정인 220호 회의실 앞에서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와 의원들이 출입을 막고 있다. ⓒ 시사저널 박은숙

“공천 앞둔 지금, 고발장은 ‘목 안에 가시’”

“떨어지는 낙엽도 조심해야 할 이때에 고발장이라니, ‘목 안에 가시’ 같다”. 한국당의 경우 58명으로 피고발 의원 수가 가장 많기도 하지만, 이들은 단순 폭행이나 직권남용 혐의로 고발된 다른 당 의원들과 달리 전부 국회법 165조와 166조, 즉 국회선진화법 위반으로 걸려 있어 유독 전전긍긍하는 기류가 짙다. 이 경우 폭행·감금 등 국회 업무를 방해한 행위가 조금이라도 인정되면 곧장 의원직이 상실되고 5년간 피선거권이 박탈될 형량이 주어진다. 총선을 9개월여 앞두고 상당히 부담스러운 족쇄를 차게 된 셈이다.

물론 정치권에서 이번 고발로 인해 한국당 의원들이 총선 전 실질적인 법적 처벌을 받게 될 거라고 보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6월27일, 수사를 전담한 영등포경찰서에서 한국당 의원 4명에게 처음 소환장을 보내며 본격적인 조사를 시작한 듯하지만, 실제 선고까진 갈 길이 멀다. 조사 대상도 많고 검토해야 할 증거자료도 방대해 전담팀을 꾸렸음에도 수사에 허덕이는 상황이다. 무엇보다 수사에 있어 경찰 측이 느끼는 부담이 상당하다. 경찰 한 관계자는 “의원들 누가 지금 같은 시기에 쉽게 경찰에 출석하는 모습을 보이겠는가. 소환에도 한 세월이 걸릴 거고, 또 당마다, 의원들마다 어떤 순서로 불러야 할지 경찰로서도 눈치 보이고 부담되는 상황이다”고 전했다.

고발당한 한국당 의원들 역시 대체로 총선 전 가시적인 선고가 이뤄질 거라고 보진 않는다. 이들의 걱정은 오로지 ‘고발장이 공천에 미치게 될 영향’뿐이다. 고발당한 한 한국당 의원 측은 “대상자가 한두 명도 아니고, 당 입장 지키려 싸우다 얻은 고발장인데 (공천에) 무슨 큰 영향을 주겠는가”라며 손사래를 쳤다. 그러나 단 1%의 불확실성에도 민감해지는 공천 국면에서, 여전히 당내엔 ‘혹시나’ 하는 우려가 깔려 있다. 특히 공공연히 ‘물갈이 대상’으로 언급되는 친박계 의원 등은 자칫 고발장이 공천 배제의 좋은 명분이 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이러한 우려 때문에 지난 두 달여 장외투쟁을 하는 동안에도 한국당 내에선 “빨리 국회에 복귀해 여당과 고발 건을 논의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지난 6월28일 한국당이 조건 없는 등원을 택했던 데도 이 같은 압박감이 크게 작용했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이날 당 의원총회에서 나경원 원내대표가 들고 나온 3당 합의문을 의원들이 거세게 거부한 이유 중 하나도 합의문 안에 패스트트랙 고발 철회와 관련해 어떠한 논의도 담겨 있지 않아서였다. 급기야 최근 이종배·이채익 등 한국당 일부 의원이 경찰에 관련 수사자료 제출을 무리하게 요구한 것도 이러한 ‘조바심’의 일환이라는 분석이다.

 

한국당, ‘윤석열 검찰’ 패스트트랙 수사 우려

또 하나, 최근 한국당이 새롭게 우려하는 변수는 ‘윤석열’이다.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이 검찰의 수장으로 내정되면서 자칫 패스트트랙 수사가 한층 날카롭고 빨라질까 걱정하고 있다. 일각에선 공천 과정 내내 수사 지휘권자인 검찰의 눈치를 봐야 하는, 이른바 ‘검찰발(發) 공천’이 이뤄지는 것 아니냐는 얘기까지 나온다. 한국당 내에선 ”입법부가 사법부 눈치를 보는 것처럼 비춰지는 상황이 개탄스럽다”는 한탄도 심심치 않게 나오고 있다.

발등에 불 떨어진 한국당을 대하는 ‘고발인’ 민주당과 정의당의 입장은 여전히 단호하다. 한국당에 의해 고발된 한 민주당 의원은 “국민 보기에 소란스럽게 이뤄진 상호 고발을 이제 와 철회해 버리면 오히려 역공을 받을 수 있다는 부담도 있고, 국회선진화법도 국회 스스로 아주 우습게 만들어버리게 된다”고 말했다. 정의당 역시 “정의당 고발장이 찢어질 일은 결코 없을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피고발인’ 입장에서 민주당과 정의당 역시 고발전이 장기화되는 게 마냥 반가울 수만은 없다. 향후 경찰·검찰의 조사와 여야 간 고소·고발 취하 여부를 둘러싸고 한국당이 계속 불만을 제기할 경우, 여야 간 논의는 건건이 막힐 가능성이 크다. 벌써부터 한국당은 경찰에 고발전의 근본적 원인을 제공한 집권여당부터 수사하라고 압박하며 소환에 불응하고 있다. 경찰 역시 수사의 중립성을 위해 민주당 의원들도 하나둘 부르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민주당 의원들로서도 선거를 앞둔 입장에서 폭행 등의 혐의로 조사를 오가는 모양새는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국회선진화법은 고소·고발 취하가 이뤄져도 수사를 계속해야 하는 특징 때문에 한국당 의원들의 부담은 총선 직전까지 계속될 수밖에 없다. 다만 법조계에선 “당끼리 상호 합의를 해 취하하면 검찰과 법원도 처벌하긴 어려울 것”이란 판단이 지배적이다. 이 때문에 국회에선 당분간 고소·고발 취하를 둘러싸고 복잡한 물밑 논의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동시에 통과된 패스트트랙 법안을 무력화하려는 한국당의 요구도 계속 이어질 거란 분석이 나온다. 기존 법안이 힘을 잃게 되면, 자연히 이로 인해 얻게 된 혐의 또한 일정 부분 정상 참작되거나 양형이 줄어들 여지가 커질 거란 계산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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