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로에서] 평화와 그 적(敵)들
  • 김재태 편집위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7.08 09:00
  • 호수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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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사회관계망서비스)를 통한 ‘번개 만남’이 일찍이 이처럼 큰 화제를 불러일으킨 적이 있을까. 역사적 사건의 시작은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트위터 글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의 트위터에 “김정은 위원장이 이 글을 본다면 DMZ에서 김 위원장을 만나 악수하고 안녕 인사를 하게 될 것이다”라고 썼을 때만 해도 그저 막연한 기대감을 표현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결과는 예상을 가뿐하게 뛰어넘었다. 2019년의 절반이 끝나가던 날, 남·북·미 정상은 판문점에서 극적으로 만났다. 정전협정이 체결된 지 66년 만에 처음으로 이루어진 회동이다. 북·미 정상은 단순한 만남에 그치지 않고 제법 긴 시간의 간이 정상회담까지 해냈다.

그 자리에서 김정은 위원장은 “(이 만남은) 어제와 달라진 오늘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트럼프 대통령도 “지금은 시작에 불과하다”고 화답했다. 그들의 말처럼 이번 만남은 여러 역사적인 의미를 떠나, 이른바 ‘하노이 노딜’ 이후 꽉 막혀 있던 비핵화 협상에 반전의 물꼬를 텄다. 서로 간에 ‘백악관 초청’ ‘평양 초청’이 있었고, 실무협상 계획도 구체적으로 나왔다. 비핵화 협상이 다시 달릴 준비를 마쳤다는 신호가 켜진 셈이다.

하지만 순진한 낙관은 여전히 금물이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는 말도 있듯이, 언제 어디에서 예상치 못했던 방해물이 튀어나올지 알 수 없다. 그만큼 불안하고 험난한 과정임을 우리는 그동안의 경험을 통해 충분히 안다. 협상이 완전한 합의를 이뤄 마무리되기까지 앞으로 얼마만큼의 시간이 걸릴지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그때까지는 평화를 평화라고 분명하게 말하기가 어렵다. 지금은 그냥 ‘평화무드(mood)’일 뿐이다. 아직은 무드의 사전적 의미인 ‘미약하며 지속적인 감정’, 즉 분위기만 조성돼 있는 상태다. 현재로서는 북한에서 핵실험이 일어나지 않고 있다는 사실 외에 그 무엇도 확실한 것이 없다.

정경두 국방부 장관이 7월3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북한 소형목선의 '삼척항 입항' 사건에 대한 정부의 합동조사 결과를 발표하며 고개 숙여 사과하고 있다. ⓒ 연합뉴스
정경두 국방부 장관이 7월3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북한 소형목선의 '삼척항 입항' 사건에 대한 정부의 합동조사 결과를 발표하며 고개 숙여 사과하고 있다. ⓒ 연합뉴스

그런 점에서 최근 여야 간에 뜨거운 쟁점이 되어 있는 북한 어선 삼척항 입항 사건은 결코 가볍게 넘길 일이 아니다. 아직 확실한 평화도 아닌 ‘평화무드’에 젖어 꼭 해야 할 일마저 놓치고 있지 않나 하는 우려를 떨칠 수 없기 때문이다. 아무리 평화를 향해 가는 길에 들어서 있더라도 ‘경계’의 자세까지 흐트러져서는 결코 안 된다. “작전의 실패는 용서할 수 있어도 경계의 실패는 용서할 수 없다”는 맥아더 장군의 말을 굳이 인용할 필요도 없을 만큼 경계의 중요성은 크다. 그 금과옥조 같은 기본을 놓치면 자칫 다 잃을 수 있다.

안보를 위한 행동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갖은 수식어를 붙여 치장하더라도 안보라는 개념은 사실 간단명료하다. 구성원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맡은 일을 빈틈없이 해내는 것이 안보의 기본이자 핵심이라는 얘기다. 군인은 군인으로서의 임무를, 공무원은 공무원으로서의 임무를, 그리고 시민은 시민으로서 지켜야 할 법규를 완수하고 지키면 된다.

이 시점에서 무엇보다 걱정스러운 것은 북한 어선 사건 같은 일들이 자꾸 일어나면 그동안 진행돼 왔던 평화 행보에 제동이 걸릴 수 있다는 점이다. 어렵게 개방된 고성·철원의 ‘DMZ 평화의 길’ 같은 터닦이 작업에까지 불똥이 튈 가능성도 있다. 평화는 늘 불안하고, 그 빈틈을 노리는 세력은 어디에나 있다. 꼭 필요한 기본을 놓쳐, 이해타산이라는 잣대로 평화를 재단하고 싶어 하는 그들에게 빌미를 줘서야 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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