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스테리어 ‘안락사’ 논란에 숨는 무책임한 견주들
  • 오종탁 기자 (amos@sisajournal.com)
  • 승인 2019.07.05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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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환희 수의사 “양육 자격부터 박탈해야…구체적인 대안 필요한 시점 왔다”
'맹견'으로 분류된 로트와일러 ⓒ Pixabay
'맹견'으로 분류된 로트와일러 ※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은 없습니다. ⓒ Pixabay

서울 성북구에 사는 정희석(34·가명)씨는 얼마 전 아이와 함께 집 앞 공원을 찾았다가 혼비백산했다. 4살 아이의 몸집보다 큰 개들이 주인과 공원을 활보하고 있어서다. 입마개는 단 한 마리도 쓰지 않았다. 사냥개 같이 매서워 보이는 녀석도 있었는데, 어른에게도 무섭게 느껴졌다. '저런 개가 달려들기라도 하면…….' 걱정하고 있던 찰나 대형견 한 마리가 마주오던 다른 대형견에게 '컹컹' 짖어댔다. 정씨의 아이가 무섭다고 울기 시작했다. "야, 너도 좀 짖어 봐라. 당하기만 하냐!" 짖지 않던 개 주인의 말에 정씨는 할 말을 잃었다.

최근 아파트에서 폭스테리어종인 반려견이 만 3살 아이를 문 사건이 드러나 공분을 자아냈다. 애초 사람들의 분노가 향한 대상은 개와 그 주인이었다. 그러다 유명한 반려견 훈련사가 해당 개를 안락사시키는 게 옳다고 말하자 비난의 화살 세례는 그에게로 분산됐다. 반려동물을 키우지 않는 사람과 키우는 사람도 반으로 갈려 갑론을박을 벌이기에 이르렀다. 이런 가운데 무책임한 견주들은 논란 속에 숨어 아무런 태도 변화 없이 공격성을 내재한 개와 함께 거리, 공원 등지를 활보하고 있다.

반려견 훈련사인 강형욱 보듬컴퍼니 대표는 7월3일 유튜브 방송에서 문제의 폭스테리어를 안락사시켜야 한다고 밝힌 뒤 일부 네티즌들로부터 거센 비난을 받아 왔다. "생명을 빼앗는 안락사를 함부로 논하다니 실망이다" "왜 폭스테리어를 위험한 개로 일반화하느냐"는 내용이 골자인데, 정당한 비난 수위를 넘어선 인신공격성 댓글들도 그의 SNS에 달리고 있다.

덩달아 사고를 일으킨 폭스테리어 견주 A(71·여)씨도 "특정 종을 겨냥해 극단적인 주장을 하는 게 옳은 것이냐. 안락사시킬 생각은 절대 없다"고 응수했다. 폭스테리어를 경기도에 있는 훈련소에 맡기고 자신도 이사를 준비하고 있다는 A씨. 혼란스러운 분위기 속 사건이 이렇게 일단락돼도 괜찮은 걸까.

어차피 같은 주인이 또 키울 거면 '말짱 도루묵' 

시사저널에 《따듯한 동물사전》이라는 코너로 칼럼 연재를 하고 있는 수의사 이환희 포인핸드 대표는 "훈련소에 맡기더라도 (훈련을 마치고) 다시 같은 보호자가 키우면 공격성을 제지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며 "일단 보호자의 양육 자격을 박탈해야 하는 게 급선무인 것 같다"고 말했다.

경찰에 따르면, A씨는 6월21일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의 한 아파트 지하 1층 엘리베이터 앞에서 자신이 키우는 폭스테리어(몸 길이 40cm, 무게 12kg)의 관리를 소홀히 해 만 3살 여자 아이를 물어 다치게 했다. 이 폭스테리어는 지난 1월9일에도 등교 중이던 11살 B군의 중요 부위를 물었다. 폭스테리어는 영국의 사냥견종으로 알려진 개 품종이다. 여우 사냥에 많이 쓰였던 배경에서 '폭스(fox)'테리어란 이름이 붙었다. 흥분을 잘하는 편이라 엄격한 훈련이 필요한 것으로 알려졌다.

폭스테리어 ⓒ Pixabay
폭스테리어 ※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은 없습니다. ⓒ Pixabay

다만 사고 후 모든 폭스테리어가 언제든 사람을 물 수 있는 견종으로 비쳐지는 데 대해서는 이환희 대표도 우려했다. 이 대표는 "(공격적인) 성향이 분명히 있지만, 어려서부터 사회화하고 적절히 통제하면 사람에 대해 맹목적인 공격성을 보이는 일이 결코 없다"면서 "사람들 사이에서 '폭스테리어 포비아(공포증)' 같은 게 생길까봐 걱정된다"고 했다.

이 대표는 강형욱 대표 발언으로 촉발된 안락사 논란을 놓고는 "사람에게 맹목적인 공격성을 보이는 개에 대해 보호자와 상의 하에 안락사를 진행하기도 하는데, 물론 안락사 만이 해법은 아니다. 안락사는 최후의 수단이 돼야 하는 게 맞다"면서도 미숙한 반려견 간수보다 '안락사'라는 자극적인 단어에 관심이 집중되는 것은 경계했다.

그는 "개 물림 사고를 막을 수 있는 열쇠는 결국 보호자에게 있다. 개의 공격성은 개를 통제하지 못하는 주인과 함께 있을 때 더욱 강화되기 때문"이라며 "자신의 반려견을 잘 통제할 수 있도록 평소에 많은 공부와 노력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3년간 6883명 개에 물려 병원행

개가 사람을 물었단 소식을 들어도 반려견주 대부분은 '우리 OO는 안 그러겠지'라고 생각하기 십상이다. 이 대표는 "견주들도, 개를 키우지 않는 사람들도 개의 성향에 대한 이해도가 낮은 경우가 많다"며 "특히 개를 키우는 자격에 관해선 검증 과정도 없고, 양육 정보 역시 스스로 어딘가에서 찾아 공부해야 하는 현실"이라고 안타까워했다. 그러면서 "지방자치단체에서 주관하는 반려견 이해 교육 등이 있는데, 이를 많이 홍보하고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분위기가 형성되면 좋겠다"고 했다.

한편, 이 대표는 "개 물림 사고가 너무 많이 발생하고 있다. 사고 후엔 개선은커녕 반려인과 비(非)반려인 간 갈등의 골만 깊어진다"면서 "구체적인 제도적 대안 마련이 필요한 순간이 왔다"고 말했다.

소방청 통계에 따르면, 최근 3년간 119구급대가 개 물림 사고로 병원에 이송한 환자는 6883명에 달한다. 특히 맹견으로 분류된 견종은 입마개 착용이 필수임에도 잘 지켜지지 않는다. 지난해까지는 도사견, 아메리칸 핏불테리어, 로트와일러 등 3종만 맹견으로 분류됐다. 올해부터는 마스티프, 라이카, 오브차카, 캉갈, 울프독 등 5종도 맹견에 해당한다. 꼭 맹견이 아니라도 자신의 반려견이 사람에 대한 공격성이 높다면 외출 시 반드시 입마개를 착용, 혹시 발생할 수 있는 사고를 방지해야 한다. 아이를 문 폭스테리어는 맹견에 속하지 않는다. 2017년 사람을 물어 숨지게 한 가수 최시원씨의 개도 소형견인 프렌치 불독이었다.

시민들이 반려동물과 산책을 하고 있다. ⓒ 시사저널 최준필
시민들이 반려동물과 산책을 하고 있다. ※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은 없습니다. ⓒ 시사저널 최준필

정부는 맹견에 속하지 않는 개라도 공격성이 있다고 판단되면 입마개를 물리는 방안을 추진한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우선 개의 공격성을 평가하는 기준을 마련하기로 하고, 이를 위한 연구용역을 의뢰할 계획이라고 6월9일 밝혔다. 공격성이 높다고 판단되면 맹견이 아니더라도 '관리대상견'으로 지정해 입마개나 교육 등 강화된 관리 방안을 적용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개의 공격성 평가는 사후적 대응 측면도 있다. 사람을 문 개를 어떻게 처리할지 여부의 기준이 된다는 점이다. 현재 개 물림 사고 발생 시 현장에서 격리 조치나 필요한 조치를 하게 돼 있지만, 그 이후 해당 개를 어떻게 조치할지를 두고는 아무런 규정이나 기준이 없다. 농식품부는 이에 공격성 평가를 거쳐 훈련이나 중성화 조치를 하고, 경우에 따라는 안락사 명령을 내릴 수 있도록 제도를 다듬을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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