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 따라 월북’ 최인국은 누구?
  • 김재태 기자 (mwlee@sisajournal.com)
  • 승인 2019.07.08 17:26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33년 전 부부가 함께 북으로 간 전 외무장관 최덕신의 아들

북한 대남 선전매체 '우리민족끼리'는 지난 7월7일 "류미영 전 천도교청우당 중앙위원회 위원장의 아들 최인국 선생이 공화국(북한)에 영주하기 위하여 7월6일 평양에 도착하였다"고 밝혔다. 북한에 영구 거주하기 위해 평양에 도착했다고 북한 매체가 보도한 최인국(73)씨는 어떤 인물일까.

그의 부모는 박정희 정권에서 외무부 장관까지 지내다 월북한 최덕신 장군과 류미영 전 북한 천도교청우당 중앙위원장이다. 그런 만큼파란만장한 그의 가족사도 관심을 끌고 있다.

류미영 전 북한 천도교청우당 중앙위원장의 차남 최인국 씨가 북한에 영구거주하기 위해 평양에 도착했다고 북한 대남 선전매체 '우리 민족끼리'가 7월7일 보도했다. ⓒ 연합뉴스
류미영 전 북한 천도교청우당 중앙위원장의 차남 최인국 씨가 북한에 영구거주하기 위해 평양에 도착했다고 북한 대남 선전매체 '우리 민족끼리'가 7월7일 보도했다. ⓒ 연합뉴스

최인국의 부모도 그처럼 월북을 택했다. 아버지인 최덕신은 국군 1군단장을 역임한 후 박정희 정권 외무장관과 주서독대사를 지냈지만 박 전 대통령과 갈등을 빚어 1976년 미국으로 망명했다. 그후 1986년 4월 아내 류미영과 함께 북한으로 이주했다. 한국전쟁 이후 월북한 인물 중에서는 최고위급이다. 그의 월북은 ‘남한판 황장엽' 사건으로 불리기도 했다.

최덕신 부부는 북한에서도 고위직에 올랐다. 최덕신은 북한에서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부위원장, 천도교청우당 중앙위원장, 조선종교인협의회 회장을 지냈다. 류미영도 1989년 남편이 사망한 후 공식 활동에 나서 조선천도교회 중앙지도위원회 고문, 천도교 청우당 중앙위원장, 단군민족통일협의회장, 北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 등으로 활동했다.

2000년에는 이산가족 상봉을 위해 북측 가족들이 서울에 왔을 때 책임위원장으로 방문해 아들 최씨와 23년 만에 재회하기도 했다.

또 최씨의 할아버지이자 최덕신의 부친인 최동오는 독립운동가이자 ‘김일성의 스승’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김일성 전 북한 국가주석이 아버지를 여의고 중국 길림성 화전에 위치한 화성의숙에 입학했을 당시 의숙을 책임지고 있던 숙장이 바로 최동오다.

최동오는 광복을 맞아 귀국할 때까지 임시정부 국무위원과 임시의정원 의원, 외무위원 등 다양한 직책을 맡아 일 항일투쟁을 이어갔다. 그러다 6·25 전쟁 때 휴전선을 넘어 월북한 최동오는 1956년 7월 재북 평화통일촉진협의회 집행위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최인국씨는 그런 아버지의 전례를 따라 이번에 북한으로 넘어갔다. 조부 최동오가 북한으로 떠난 이후에도 남쪽에 남아 장관직까지 수행했던 최덕신은 미국으로 망명한 이후 여러 차례 방북을 거듭하다 1986년 8월 다섯 번째 방북 때 북한에 영주하는 길을 택했다.

부모가 월북한 이후 한국에 살고 있던 차남 최씨는 지난 2016년 모친인 류미영이 위독하다는 연락을 받고 입북했으며, 2017년과 2018년에도 1, 2주기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통일부의 승인을 얻어 방북한 바 있다. 2017년 11월에 이뤄진 그의 방북은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첫 민간인 방북이기도 했다.

그러나 최씨의 이번 북한행은 방북 신청을 하지 않은 채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최덕신·류미영 부부의 자녀는 모두 2남 3녀로, 장남은 사망했고 세 딸은 해외에 거주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독일에 거주하다 별세한 것으로 알려진 최인국의 형과 최인국의 남은 자녀들은 부모의 월북 이후 여러 어려움을 겪기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최인국씨가 어떤 경위로 북한을 방문했는지, 실제로 월북한 것이 맞는지 당국의 공식 발표는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