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긋한 이강인, 분주한 유럽클럽들…李의 새 팀은?
  • 서호정 축구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7.12 17:00
  • 호수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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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반테 등 스페인 클럽 영입 유력…7월15일 발렌시아 훈련 시작

‘슛돌이’ 이강인에게 2019년 6월은 평생 잊을 수 없을 시간이다. 폴란드에서 열린 2019 FIFA(국제축구연맹) U-20 월드컵에서 한국을 준우승으로 이끌며 골든볼(MVP)까지 차지, 세계적인 유망주라는 그동안의 평가를 기량으로 직접 증명해 보였다. 2005년의 리오넬 메시 이후 14년 만에 만 18세로 U-20 월드컵 골든볼을 수상한 선수가 됐다.

세계무대에서 자신의 기량을 유감없이 발휘했지만 들 뜰 새가 없다. 이강인은 성인 무대 안착이라는 다음 목표를 새 시즌에 이뤄내야 한다. 지난 1월, 7년 동안 자신을 성장시켜준 스페인의 명문 클럽 발렌시아와 성인 계약을 체결하며 정식 프로선수가 됐다. 그러나 하반기 동안 팀 내 주전 경쟁에서 밀리며 2군과 1군을 오가야 했다.?발렌시아 구단 수뇌부도, 팬들도 팀의 미래인 이강인에게 거는 기대는 특별하다. 그러나 선수 기용의 최종 권한은 감독이 쥐고 있다. 마르셀리노 가르시아 토랄 감독의 성향과 전술은 이강인을 제대로 활용하기 어렵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U-20 월드컵에서 이강인은 공격형 미드필더나 투톱에서 처진 공격수로 활용될 때 자신의 진가를 발휘했다. 중앙을 본거지로 측면까지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자유가 주어지면 뛰어난 탈압박 능력과 정교한 패스, 크로스로 상대 수비를 무너트린다. 정정용 감독은 아르헨티나와의 조별리그 최종전부터 이강인을 장신 스트라이커 오세훈 아래에 두며 수비 부담을 줄여주는 대신 공격력을 극대화하며 승승장구했다. 3-5-2 포메이션과 4-3-3 포메이션 어디에서든 이강인의 포지션과 역할은 변함없었다.

반면 마르셀리노 감독은 공격형 미드필더를 따로 두지 않는 4-4-2 포메이션을 활용한다. 왼발잡이인 이강인은 왼쪽 미드필더로 기용됐다. 문제는 기술이 뛰어나지만 주력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이강인으로선 자신에게 맞지 않는 옷처럼 힘들어했다는 점이다. 게다가 발렌시아는 포르투갈 국가대표인 곤살로 게데스라는 전문 윙어가 주전이다. 임대로 데려온 러시아 국가대표 데니스 체리셰프까지 있어 이강인의 주전 경쟁은 더 버거웠다.?

무엇보다 잠재력이 무기인 10대 유망주보다는 성인 무대에서 경험이 쌓이고 검증된 선수를 선호하는 마르셀리노 감독의 기용 방식이 높은 벽이었다. 게데스와 체리셰프는 성인 무대에서 150경기 이상을 소화한 선수들인 반면 이강인은 지난 시즌 11경기를 뛴 게 전부다. 발렌시아는 최근 체리셰프까지 완전 이적으로 데려왔다. 당장 1군에서 이강인의 자리는 보이지 않는 상태다.?

2월21일(현지 시각) 발렌시아의 이강인이 셀틱과의 경기에서 슛을 하고 있다. ⓒ PPA 연합
2월21일(현지 시각) 발렌시아의 이강인이 셀틱과의 경기에서 슛을 하고 있다. ⓒ PPA 연합

발렌시아 지역 라이벌로 임대 추진되는 까닭

현재 계약대로면 이강인은 2022년까지 발렌시아 선수다. 10대 선수에게 1000억원이 넘는 바이아웃(계약기간 내 협상 없이 데려갈 수 있는 이적료) 금액을 책정할 정도로 발렌시아도 장기적 관점으로 이강인을 키울 계획이다. 문제는 장기계약만 믿고 마냥 기다릴 수 없다는 점이다. 이 시기의 선수에게는 꾸준한 출전 경험이 자신감을 높이고 기량을 더 끌어올리게 만드는 요소다.?

이강인 측도 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는 데 집중하고 있다. U-20 월드컵의 성공을 발판으로 U-23 대표팀과 A대표팀에서도 자연히 중용되겠지만, 이 상승세를 꾸준한 경기 감각으로 유지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는다. 성인 계약 후인 지난 3월부터 발렌시아 내에서의 입지를 냉정하게 내다보고, 일찌감치 임대 이적을 요청했다. 지난 시즌 리그 4위, 코파델레이(국왕컵) 우승, 유로파리그 4강 진출로 나름의 성과를 내며 마르셀리노 감독의 입지가 더 탄탄해진 것도 변수다. 발렌시아 구단이 이강인 기용에 대해 감독에게 간섭할 수 없는 상황이 됐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U-20 월드컵 성공이 이강인에겐 신의 한 수가 됐다. 대회에 모인 유럽 각 클럽의 스카우트만 155명이었는데, 그들 앞에서 훌륭한 쇼케이스를 치른 셈이다. 빅클럽들의 문의가 쏟아졌지만, 발렌시아가 매긴 거액의 바이아웃 금액을 듣곤?기겁을 하고 물러났다는 후문이 있을 정도다. 네덜란드의 아약스, PSV처럼 어린 선수들의 성장을 주도하는 중위권 리그 강자들이 이강인 임대에 관심을 보였다.

선택지가 넓어진 이강인이지만 시선은 스페인 밖이 아닌 안으로 향한다. 발렌시아는 이강인이 만 18세의 어린 선수고, 한국과 스페인에서만 성장한 점을 고려해 문화와 환경이 크게 달라지는 해외보다 스페인 내의 클럽으로 임대를 보내는 것을 기본 원칙으로 삼았다. 이미 스페인 내에서도 많은 클럽들이 이강인의 임대를 요청하고 있는 상태다.?셀타비고, 그라나다, 에스파뇰, 오사수나 등 스페인 1부리그 중하위권 팀들의 러브콜이 쏟아진 가운데 발렌시아가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팀은 레반테로 알려졌다. 레반테는 발렌시아와 함께 스페인 제3의 도시인 발렌시아를 연고로 하는 지역 내 축구 클럽이다. 발렌시아보다 더 오랜 역사를 지녔지만 2부 리그와 1부 리그를 오간 탓에 2인자 이미지가 강하다. 레반테도 이강인 임대 영입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었다.?

발렌시아가 레반테로 이강인을 보내는 것을 선호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어린 선수가 임대를 위해 가족과 떨어지거나 생활 근거지를 옮길 필요가 없고, 지근거리에서 꾸준히 선수를 관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스페인 언론들은 실제로 레반테의 파코 로페스 감독이 이강인에게 전화를 걸어 자신의 팀에 와 달라고 어필했다고 보도했다. 최근에는 레반테의 미드필더 다비드 제이슨이 발렌시아로 이적했다. 이 과정에서 이강인의 임대 역시 논의됐을 가능성이 높다.?

 

발렌시아와 레반테는 공생 관계

한 도시를 연고로 더비 매치를 벌이는 라이벌이지만 발렌시아와 레반테의 관계는 공생에 가깝다. 선수 교류도 활발하다. 올여름에도 발렌시아가 레반테로부터 제이슨을 영입했고, 반대로 레반테는 발렌시아의 수비수 루벤 베소를 데려왔다. 이강인을 임대 보내는 데 대한 정서적 거부감이 덜하다. 다만, 발렌시아는 이강인 임대 시 20경기 이상의 출전을 보장하는 옵션을 넣길 원하고 있어 이 부분이 협상의 핵심 변수다.?

이강인은 차기 행선지가 결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일단 발렌시아에 합류한다. 발렌시아는 7월9일부터 새 시즌 준비를 위한 프리시즌 훈련을 시작했다. U-20 월드컵에 참가하느라 휴가가 짧았던 이강인은 15일부터 팀 훈련에 가세한다. 레반테 등과의 임대 협상은 이 시점부터 본격화될 가능성이 높다. 여의치 않을 경우 발렌시아에 그대로 잔류할 수도 있지만 이강인은 “팀에 남아도 열심히 할 것이다. 경쟁에서 살아남느냐는 해 봐야 아는 것”이라며 발렌시아 내에서의 주전 경쟁에 대해서도 당당한 자신감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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