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도발] 일본 제품 불매운동, 아베 정권 ‘악용’ 경계하라
  • 엄민우 시사저널e 기자 (mw@sisajournal-e.com)
  • 승인 2019.07.15 10:00
  • 호수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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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매운동 상황 부각해 지지층 결집 시도 우려
향후 반한(反韓)정책 더 강하게 밀고 나갈 수도

지난 7월8일 유통부문 담당 기자들은 일본 담배회사 JTI로부터 11일로 예정돼 있던 제품 관련 행사를 취소하겠다는 연락을 받았다. 특별히 한·일 관계를 언급하진 않았지만, 시기적으로 볼 때 양국 간 갈등 조짐 때문이라는 해석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정치 영역에서만 이뤄지던 한·일 갈등이 기업들로 번지고 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 사건으로 여겨졌다.

이보다 더 양국 간 갈등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일본 제품에 대한 불매운동이다. 일각에서는 이 같은 공개적인 불매운동이 의도와 다르게 오히려 아베 정권에 악용될 수도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불매운동 움직임을 부풀려 정치적으로 활용하면 아베 정권이 지지율을 끌어올리는 데 도움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일본 정부가 한국 제품에 대해 수출규제를 하겠다고 나서자 일부 소비자들 사이에서 일본 제품을 사지 말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불매운동이 일본과 관련한 제품 전반으로 확산되는 조짐이 나타나고 있는 상황이다. 일본 제품에 대한 불매운동 움직임은 유통 부문, 특히 맥주 소비와 관련해 노골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마트에 따르면 일본의 수출규제 방침이 발표된 7월1일부터 7일간 일본 맥주의 매출은 14.3%나 감소했다. 같은 기간 롯데마트에서도 매출이 10.4% 떨어졌고 편의점들 역시 사정이 다르지 않았다.

일본의 수출규제를 계기로 국내에서 일본 제품에 대한 불매운동 여론이 퍼지는 가운데, 7월9일 서울 은평구의 한 식자재 마트에 ‘일본 제품을 팔지 않는다’는 안내문이 걸려 있다. ⓒ 시사저널 최준필
일본의 수출규제를 계기로 국내에서 일본 제품에 대한 불매운동 여론이 퍼지는 가운데, 7월9일 서울 은평구의 한 식자재 마트에 ‘일본 제품을 팔지 않는다’는 안내문이 걸려 있다. ⓒ 시사저널 최준필

수출규제로 “일본 제품 사지 말자” 확산

하지만 소비 패턴 변화가 즉각적으로 일어나는 식음료품 부문과 달리 다른 부문에선 아직 큰 변화가 감지되지 않고 있다. 한 항공업계 관계자는 “7~8월 항공권은 이미 다 이전에 판매됐던 것들이라 현재의 불매운동 바람이 반영되진 않았다”며 “다만 향후 사태가 어떻게 흘러갈지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일본 완성차업체 임원 역시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았기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아직까지 즉각적으로 드러나는 변화는 없다”고 전했다. 다만 한 일본 자동차가 신원미상의 누군가에게 ‘김치 테러’를 당했다는 주장이 나와 눈길을 끌었다.

현재 양국 관계를 보면 불매운동은 다양한 부문으로 번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문재인 대통령은 일본에 대해 수출규제를 철회할 것을 요구하며 우리 기업이 피해를 보면 상응 조치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그런데 전문가들은 자칫 불매운동이 일본 정부에 한국 수출규제를 유지할 명분을 제공하는 모양새가 될 수 있다고 충고한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불매운동이 강해지면 일본에서도 혐한 여론이 확산될 수 있고, 일본 정치가들은 해당 정책이 먹힌다고 생각해 더 강하게 수출규제 정책을 밀어붙일 수 있다. 일본 국민들도 아베의 정책이 올바르지 않다고 느낄 수 있는 만큼 민간은 민간대로 냉정하게 대처해야 한다”고 분석했다.

오는 7월21일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있는 아베 총리로선 현재의 지지율을 크게 끌어올릴 전략이 필요하다. 그 지지율을 끌어올리는 가장 대표적 방법 중 하나가 외부의 적을 만드는 것인데, 한국의 공개적인 불매운동 움직임을 활용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마치 과거 일부 국내 정치인들이 지역감정을 조장해 본인들의 지지층을 확보하려 한 것과 비슷한 현상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불매운동 취지 자체는 참 좋은 것이지만 문제는 일본 정치인들이 이를 부풀려 ‘이거 봐라, 한국인들이 우리를 이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우리도 더욱 혐한 정책을 펴야 한다’고 주장하는 데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라고 충고했다. 즉, 불매운동을 혐한 정책을 펴는 정치적 토양으로 활용할 우려가 있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일부 일본 언론은 한국의 불매운동과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 등을 상당히 크게 보도하고 있다.

불매운동과 관련해 또 하나의 논쟁점은 실제로 일본 기업에 얼마나 타격이 되고 우리에게 어느 정도 도움이 되느냐 여부다. 대부분의 업계 관계자 및 전문가들은 그간의 경험에 비춰볼 때 이 같은 불매운동이 실제로 일본 기업들에 타격을 입힐 가능성에 대해선 회의적 시각이 많다. 국내 패션업계의 한 관계자는 “일본 브랜드 불매운동이 이어지면 상대적으로 시장에서 비슷한 위치에 있던 기업 입장에선 뭔가 반사이익을 기대할 수 있겠지만, 지금까지의 경험상으로 보면 이 같은 불매운동은 반짝 효과로 끝날 수밖에 없기 때문에 크게 보면 시장 전체에 별 영향이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일본차 불매운동을 하는 이유는 결국 일본에 경고나 위협을 주기 위함인데, 시장 규모를 보면 설령 불매운동을 한다고 해도 일본차 브랜드에 줄 수 있는 타격이 그렇게 크지 않다”며 “불매운동이 결정적 무기가 돼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상황이 될 수 있다는 것”이라고 조언했다. 박주근 CEO스코어 대표는 “불매운동은 그동안 우리가 봐왔듯이 오래가기 힘들다”며 “감정적 대응보다 냉철하게 준비된 대응이 상대방에게 치명타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일본 기업에 치명타 될지도 미지수

그동안 일본과 큰 외교적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일부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불매운동이 일었지만 여전히 일본 회사들은 국내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2013년 독도 영유권 분쟁이 한창이었을 때 일본 제품에 대한 역대 최대 규모 불매운동이 일었지만 역시 오래가지 못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불매운동이나 기타 반일 운동을 하더라도 일본 정치인과 일반 일본 시민을 구분해 공략하는 방식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일부 극우 일본 정치인들에게 화살을 집중해 일본 국민들이 ‘혐한 정치’를 지지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신율 교수는 “일본 극우 세력과 일반 시민을 철저히 구분해 대응하는 방식이 효과적일 수 있다”고 조언했다.

실제로 일본 민간기업들에 있어선 일본 정부의 한국 수출규제가 꼭 반가운 일만은 아닐 수 있다. 예를 들어 삼성전자가 일본의 감광제 없이 반도체를 생산하는 게 힘든 일인 것은 맞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일본 회사로선 세계 1위 삼성전자야말로 가장 큰 고객 중 하나인 셈이다. 일본 아베 정부의 압박에 맞서 민간과 정치 영역을 구분해 냉철하게 대응해야 하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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