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도발] 日 보복 현실화되면 韓 GDP 최대 8.5% 추락
  • 이석 기자 (ls@sisajournal.com)
  • 승인 2019.07.15 08:00
  • 호수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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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경제제재 따른 3단계 예상 시나리오
전문가들 “공급망 붕괴로 한국 경제 동반 부실 가능성”

“아직까지 일본은 반도체 핵심 소재 3개에 대해서만 수출을 제한하고 있다. 일본 전략물자 리스트에 있는 1112개 품목으로 제재가 확대될 경우 한국 경제는 돌이킬 수 없는 타격을 입을 수 있다.”

기자가 최근 만난 경제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우려다. 일본 경제산업성은 7월1일 한국에 대한 경제제재 조치를 발표했다. 플루오린 폴리이미드와 레지스트, 에칭가스(고순도 불화수소) 등 3개 품목을 한국에 수출할 때 일본 정부의 허가를 받도록 한 것이다. 이들 품목은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제조공정의 핵심 소재라는 점에서 당분간 생산 차질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에 대한 신뢰가 무너졌다”는 게 현재 일본 측이 주장하는 수출규제 이유다. 하지만 이번 조치가 일본 기업의 한국인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대한 보복 조치라는 데 이견이 없다. 허가 신청과 심사에 90일 정도가 소요된다. 일본의 입맛에 따라 반도체 핵심 소재의 공급을 조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을 감안할 때 일본은 간단한 행정절차 변경만으로 한국 경제의 심장부에 큰 충격을 주게 됐다. 노근창 현대차증권 리서치센터장은 “불과 일주일 만에 한국 증시에서 51조원의 시가총액이 증발했다. 중소기업 10곳 중 6곳이 6개월 이상 버티기 어렵다고 호소한다”며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는 그렇지 않아도 어려운 한국 경제의 성장률을 더욱 둔화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최근 일본으로 긴급 출장을 떠난 것도 이 때문이다. 재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의 핵심 소재 수급 상황이 예상보다 심각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 부회장은 일본 인맥을 총동원해 수출업체 관계자와 접촉하는 등 대응책 마련에 고군분투했다. 하지만 현재까지는 뾰족한 대책이 없는 게 사실이다. 이들 3개 소재의 일본 점유율이 70~90%에 이르기 때문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가운데)이 일본 정부의 한국 수출규제에 대한 대책 논의를 위해 7월7일 밤 일본 하네다(羽田)공항에 도착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가운데)이 일본 정부의 한국 수출규제에 대한 대책 논의를 위해 7월7일 밤 일본 하네다(羽田)공항에 도착하고 있다. ⓒ 연합뉴스

1주일 만에 시가총액 51조원 증발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한국은 현재 일본으로부터 플루오린 폴리이미드와 레지스트를 각각 91.9%, 93.7% 수입하고 있다. 불화수소의 경우 일본(43.9%)보다 중국(46.3%)의 수입 비중이 높지만, 일본 기업의 중국 공장에서 생산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주완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연구위원은 “미국이나 유럽 기업들의 기술력이 일본에 밀리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들 제품은 수익에 큰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개발에 나서지 않았다”면서 “단기간 내에 일본 제품을 대체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무엇보다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제품은 한국 수출의 20%를 차지하고 있다. 수출은 한국 경제의 30%를 떠받치고 있는 만큼,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생산이 멈출 경우 한국 경제는 큰 충격을 받을 수 있다고 이 연구위원은 지적했다. 그는 “이미 국내 반도체 부품회사 240곳 중 40%가 적자 상태인 것으로 조사됐다”며 “현재도 재정이 취약한 상태에서 제재가 현실화할 경우 국내 반도체 소재·장비 업체로 실적 악화가 옮겨 붙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우리 정부는 국제사회에 일본의 부당성을 호소하는 한편, 세계무역기구(WTO)에도 제소할 방침을 밝혔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눈도 깜짝 않고 있다.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 조치는 협의 대상이 아니다”는 것이다. 오히려 일본 언론을 통해 추가 수출규제 가능성을 흘리고 있다. 2차 수출규제 품목과 함께 구체적인 실행 날짜까지 거론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이 7월12일 열리는 한·일 양자 협의에 갑자기 응했다. 그동안의 강경한 자세에서 한 발짝 물러난 모양새여서 기대 어린 시각도 일부 흘러나오고 있다.

정인교 인하대 국제통상학과 교수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7월10일 여의도 전경련회관 컨퍼런스센터에서 한국경제연구원 주최로 열린 ‘일본 경제제재의 영향 및 해법’ 세미나에서 “WTO 협정 21조는 안전보장상의 필요한 예외 조치로서 무역 제한을 인정하고 있다. 일본은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를 발표하면서 사전에 통보하거나 협의하는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 최소한의 요건을 갖추기 위해 협의에 응한 것 같다”며 “일본이 장기적이고 논리적으로 이번 규제 조치를 준비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올해 들어 한국과 일본의 경제 교류 규모가 눈에 띄게 위축되고 있다. 한국경제연구원의 분석에 따르면 일본의 올해 1분기 해외직접투자(ODI)는 전년 동기 대비 167.9%나 증가했지만, 한국에 대한 투자는 6.6% 감소했다. 금융시장에서도 일본 자금이 빠지기 시작했다. 일본이 올해 1분기 한국에 직접 투자한 금액은 6억3000만 달러다. 전년 동기 대비 6.6%, 전분기 대비 33%나 급감했다. 일본이 올해 1분기 전 세계적으로 투자한 금액이 1015억9000만 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167.9% 증가한 것과 대비되고 있다.

7월10일 서울 여의도 전경련회관 컨퍼런스센터에서 ‘일본 경제 제재의 영향과 해법’이란 주제로 긴급 좌담회가 열렸다. ⓒ 시사저널 임준선
7월10일 서울 여의도 전경련회관 컨퍼런스센터에서 ‘일본 경제 제재의 영향과 해법’이란 주제로 긴급 좌담회가 열렸다. ⓒ 시사저널 임준선

“日, 장기적·논리적으로 경제 보복 준비”

일본과의 교역도 많이 줄어들었다.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5월까지 양국의 교역 규모는 9.3% 감소했다. 중간재(부품소재) 교역의 감소폭이 컸다. 강제징용 판결 이전인 2018년 6~10월 부품재 교역 규모는 전년 동기 대비 3.8% 감소했지만 2018년 11월~2019년 3월까지 교역 규모는 8.3%나 감소했다. 이상호 한국경제연구원 산업혁신팀장은 “지금까지의 규제 조치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7월24일까지 의견 수렴을 거쳐 한국이 화이트 리스트 대상국에서 제외될 경우 광범위하게 수출규제가 이뤄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지평 LG경제연구원 상근자문위원도 “한국에 대한 경제제재 조치로 일본 기업이 피해를 입고, 국제적 비판 역시 피하기 어렵다”면서도 “그럼에도 일본 정부가 극단적인 수출규제 조치를 강행한 데는 숨은 이유가 있다. 목표 달성 없이는 보복 조치를 철회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일본의 극단 처방 이면에는 최근 한국 경제 규모가 일본을 턱밑까지 쫓아온 것도 일정 부분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세계은행과 한일경제협회, KOTIS 등에 따르면 1988년 일본의 국내총생산(GDP)은 3조720억 달러로 한국(1960억 달러)보다 15.6배나 컸다. 그러나 2008년에는 양국의 GDP 격차가 5배(5조380억 달러-1조20억 달러)로 좁혀졌다. 지난해에는 3.1배(일본 4조9710억 달러-한국 1조6190억 달러)까지 줄어들었다. 지난해 한국의 1인당 GDP는 3만1362달러(27위)로 3만9286달러를 기록한 일본(24위)을 바짝 뒤쫓고 있다.

일본에 대한 경제 의존도도 많이 낮아졌다. 30년 전 19.8%에 달했던 대일본 수출 비중은 올해 상반기 5.3%까지 축소됐다. 한때 일본은 미국 다음으로 중요한 수출·수입 대상국이었지만, 현재는 중국과 베트남 등에 밀려 수출은 5위, 수입은 3위 대상국으로 밀려났다. 이런 이유로 지난해 한국의 대일 무역적자는 241억 달러로 전년(283억 달러) 대비 17.4%나 감소했다. 2000년대 중국에 동북아 패권을 뺏긴 일본이 한국에마저 경제 주도권을 내줄 수 없다는 절박함이 이번 경제 보복 이면에 숨어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이 예상하는 일본 경제 보복 시나리오는 크게 3단계다. 승인 절차만 강화하고 수출을 허가하는 게 첫 번째 시나리오다. 이 경우 심사가 진행되는 초기 3개월간은 다소 어려움이 있겠지만, 큰 피해는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공급 중단이 아니라 가격 규제를 통해 무역분쟁이 진행된다고 가정해도 GDP 감소율은 0.15%에서 0.22%에 그칠 것으로 예상된다.

두 번째가 정부 승인 단계에서 3개 소재의 수출 불허 결정이 났을 경우다. 3개 품목의 심사를 하는 주무관청은 경제산업성이다. 그동안 한국의 첨단산업 부상을 견제하면서 일본 반도체나 디스플레이 기업연합을 주도한 부처여서 두 번째 시나리오 역시 실현 가능성이 꽤 높은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조경엽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우리나라가 제고를 통해 반도체 소재 부족분을 15%로 유지할 수 있다면 GDP의 0.12% 손실 정도로 방어가 가능하다. 하지만 반도체 생산 차질이 30%가 되면 2.15%, 45%가 되면 GDP 감소율은 4.24%로 급격히 늘어난다. 최악의 경우 GDP가 8.5%까지 감소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일각에서는 일본 기업 역시 수출규제로 피해를 입을 수 있다고 지적하지만, 실제적인 피해 규모는 높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3가지 품목에 대한 한국의 수입 의존도는 매우 높지만, 일본이 우리나라에 수출하는 비중은 10~20%로 낮기 때문이다. 수출규제를 통해 한국은 큰 타격을 입을 수 있는 반면, 일본 기업의 피해는 미미하다는 얘기다. 일본의 제재 조치가 정교하게 기획된 것이라는 지적이 전문가들 입에서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일본 맞대응 보복 조치는 실효성 없어

오는 8월 우리나라가 화이트 리스트 지정국에서 제외되고, 수출규제가 자동차나 철강 등 다른 산업으로 확산되는 경우가 세 번째 시나리오다. 이 경우 파장은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될 수 있다.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관련 산업뿐 아니라 철강, 기계, 화학 등으로 전선이 확대되면서 국내 산업의 도미노 실적 악화로 이어질 수 있다. 여기에 더해 금융 규제와 비자, 젊은 층의 일본 취업 중단 등 비관세 규제로까지 넘어갈 경우 우리 경제는 회복 불능의 상태에 빠질 수도 있다. 이지평 LG경제연구원 상근자문위원은 “일본은 세계 최대의 순채권국이다. 한국 기업에 제공한 일본 금융기관의 여신 규모는 지난해 9월 기준으로 586억 달러에 달한다. 한·일 관계가 악화되고, 일본계 금융기관의 해외지점 등에서도 한국에 대한 여신을 제한할 수 있는 만큼 대책 마련이 요구된다”고 조언했다.

조경엽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1947년 WTO 출범 이후 수많은 분쟁이 있었지만 대부분 관세 전쟁이었다. 물량만 확보하면 대응이 가능했고, 피해도 크지 않았다”며 “최근 미·중 무역분쟁에서 확인했듯이, 이제는 상대국의 공급망을 붕괴하는 것으로 분쟁 양상이 바뀌고 있다. 한·일 분쟁 역시 일본의 이런 노림수가 있는 만큼 단순한 보복 제재나 불매운동은 실효성이 없다. 체계적인 조치를 통해 정밀하게 대응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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