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역사 품은 서소문, ‘위로’ 공간으로 거듭날까
  • 김지나 도시문화칼럼니스트 (mjooo@sisajournal.com)
  • 승인 2019.07.12 1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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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나의 문화로 도시읽기] 6월 개장한 서소문 역사공원, 공간의 정체성 더 명확해져야

서울 서소문 지역에 역사공원이 새롭게 문을 열었다. 서소문은 조선시대 서울에 있었던 4개의 소문(小門) 중 하나다. 동시에, 한양도성의 성문들 중 서대문과 함께 아직까지 복원되지 못한 성문이기도 하다. 서울에 사는 사람이라면 지명으로 심심찮게 듣게 되는 이름이지만, 서소문이 있던 자리는 작은 표지석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서울이 거대한 메트로폴리탄으로 성장하는 사이, 이런 옛 도성의 흔적들은 마치 화석처럼 희미하게 도시 안에 새겨져 서울이 얼마나 오래된 도시인가를 간간이 깨닫게 한다.

새로운 역사공원은 ‘서소문 밖 네거리’에 얽혀 있는 슬픈 역사를 조명한다. 조선시대 사람들의 왕래가 잦은 길목이었던 이곳은 죄인을 처형하는 행형장이기도 했다. 많은 사람들에게 사형을 집행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경각심을 주겠다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곳이었다. 그러나 그것보다는, 새로운 사상을 추구했다는 이유만으로 처형당했던 개혁 사상가, 종교인들의 한이 서린 장소로 더 의미가 각별할 테다. 특히 1801년 신유박해 이래 이어진 잔인한 천주교 박해의 현장으로서 종교적인 상징성이 특별한 지역이다.

서소문 역사공원에 남아 있는 '서소문 밖 순교자 현양탑'. 1999년 천주교 서울대교구에서 세운 것이다. ⓒ김지나
서소문 역사공원에 남아 있는 '서소문 밖 순교자 현양탑'. 1999년 천주교 서울대교구에서 세운 것이다. ⓒ김지나

반대 여론 속 새 단장한 서소문 역사공원

이후 일제강점기에 가로가 정비되고 철로가 놓이면서 서소문 밖 행형장의 역사는 점차 희미해져 갔다. 서소문도, 행형장도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없게 된 것이다. 행형장을 내려다보는 듯이 세워진 약현성당이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며 비극적인 순간들의 목격자로 남아있을 뿐이었다.

1970년대에 이르러 서소문 공원이 만들어지면서 서소문 밖 네거리의 역사는 비로소 조금이나마 가시화되었다. 하지만 이후 수십 년간 평범한 근린공원으로 이용되며 크게 알려지지 않았던 서소문 공원이었다. 그러다 2011년, 본격적으로 서소문 성지 역사박물관을 조성하는 계획이 발표된 것이다. 그러자 일각에서는 천주교도들만의 성지로 만드는 것이 아니냐는 비난도 일었다.

반대시위와 각종 논란에도 불구하고, 지난 6월 초 새롭게 단장한 서소문 역사공원이 개장됐다. 서울시에서는 ‘복합문화공간’, ‘관광명소’ 등의 단어로 포장해 서소문 역사공원의 종교적 아이덴티티(identity)를 가급적 드러내지 않으려 애쓰는 듯한 인상이었다.

역사를 보여주는 전시시설과 종교시설은 지하로 스며들 듯 숨고 지상은 시민을 위한 공원으로 조성됐다. 원래 있던 ‘서소문 밖 순교자 현양탑’을 제외하면, 지상의 공원은 도심의 새로운 그린 스페이스로서 기능에 충실한 모습이다. 빌딩숲과 경의 중앙선 철로로 둘러싸인 풍경이 초록과 대비되며 더욱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지하의 전시내용 또한 종교적인 색채를 강하게 드러내기보다 서소문 지역에 얽힌 장소성과 역사성을 보여주고자 노력한 흔적이 보였다.

서소문 역사공원에서 추모의 의미가 강조되는 공간인 지하의 '콘솔레이션 홀'. ⓒ김지나
서소문 역사공원에서 추모의 의미가 강조되는 공간인 지하의 '콘솔레이션 홀'. ⓒ김지나

특정 종교색 줄였다지만 공간적 정체성 모호

다만 추모의 의미를 은유적으로 드러내는 설치작품들이 이곳의 종교적 특성을 증언해주는 것으로 균형을 맞추고 있었다. 지하의 전시시설 중 하나인 ‘콘솔레이션 홀(consolation hall)’은 특히 인상 깊었다. ‘consolation’이란 위로, 위안을 뜻한다. 제단을 연상시키는 구조물과 어두운 조명이 괜스레 겸허한 마음을 갖게 했다. 관람객을 압도하듯 둘러싼 4면의 거대한 스크린에서는 천주교 박해의 역사들이 영상으로 재생되고 있었다. 추모의 장소성이 가장 강조되는 공간이었다.

서울시는 서소문 역사공원 일대를 새로운 역사문화 콘텐츠 자원으로 육성할 것임을 거듭 강조한다. 이 지역은 서울시의 역점사업인 서울로와 가깝고, 일제강점기부터 상권이 형성된 것으로 알려진 서울의 대표 수제화 거리가 있어 공공자원이 지속적으로 투자될 명분이 분명하다. 그런 한편 특정 종교와의 관계성도 무시할 수 없다. 그동안 경시되었던 서소문 밖 네거리의 스토리에 주목하는 역사적인 의미도 분명하지만, 일반적인 ‘역사공원’이 아닌 천주교 성지로서의 장소성이 계속 강조된다. 이런 구조 속에서 이 공간은 무엇을 추구하는 장소인지 다소 혼란스러운 것이 사실이었다.

도시관광객들을 불러 모으기 위한 랜드마크거나, 종교 간 분쟁을 일으키는 논란의 씨앗이거나, 어느 쪽이든 우리가 왜 ‘서소문 밖 네거리’의 역사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지, 왜 수백억의 비용을 들여 기념해야 하는지 충분히 설명해주지 못한다. 서소문 역사공원이 특정 종교만의 공간이 아닌, 역사의 아픔을 어루만지고 더 나아가 오가는 시민들을 포용하는 공간으로서 자리매김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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