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락한 도시의 30대 게이 시장, 트럼프에 도전하다
  • 이철재 미국변호사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7.15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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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음도 어려운 정치 신예 ‘Buttigieg’가 뜨는 이유

지금 미국 민주당은 20명이 넘는 대선 주자가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 지지율도 몇몇 거물급을 제외하곤 거기서 거기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다크호스가 나타났다. 미국 부통령 마이크 펜스가 주지사로 있던 인디애나 주의 사우스벤드(South Bend)라는 도시의 시장이다.

사우스벤드는 스튜더베이커(Studebaker)라는 자동차 회사의 본사가 있던, 매우 번성했던 곳이다. 그러나 1967년 스튜더베이커가 파산하면서 도시는 폐허가 되다시피 했다. 지금은 다른 중서부의 많은 도시들처럼 몰락한 도시로 인구 10만 명이 조금 넘는다. 도시의 자랑거리라곤 사학 명문 노틀담 대학(University of Notre Dame) 정도를 꼽을 수 있다. 

사우스벤드의 37세 시장이 올 1월 2020년 대선에 출사표를 던지기 전 단계인 탐사위원회(Exploratory Committee)를 구성한다고 발표했을 때 나는 웃고 말았다. 그래도 궁금증이 생겨 그의 자서전 『고향으로 돌아가는 가장 가까운 길(Shortest Way Home)』을 펼쳤다.

책을 처음 살 때 나는 그의 이름을 어떻게 발음하는지조차 몰랐다. 그의 이름은 ‘Buttigieg.’ 뉴스 앵커들도 곤혹스럽긴 마찬가지여서 ‘부티기그’ ‘버티기그’ ‘부티지그’ 등 제각각 발음하기 일쑤였다. 그도 모자라 몇 번씩 말을 더듬기도 했다. 

민주당 대선 경선에 나선 사우스벤드 시장 피트가 7월7일 뉴올리언스 모리알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이센스 페스티벌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민주당 대선 경선에 나선 사우스벤드 시장 피트가 7월7일 뉴올리언스 모리알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이센스 페스티벌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민주당의 ‘다크호스’…“이름은 어떻게 읽습니까?”

그런데 한 달 뒤, 내가 자서전을 모두 읽을 무렵 그는 민주당의 다크호스로 떠올랐다. 뉴스 프로그램마다 그를 경쟁적으로 초대했다. 출연하는 곳마다 그가 받은 첫 질문은 “이름을 어떻게 발음합니까”였다. 

그는 “‘Boot-Edge-Edge(부트엣지엣지)’라고 쓴 다음에 다 붙여서 빨리 읽으면 됩니다”라고 했다. 그러면 “부테젯지”, 혹은 미국인들이 흔히 하듯 ‘T' 발음을 약간 굴리면 “부레젯지” 처럼 들린다. 이마저 힘들면 그냥 자신의 성을 빼고 피트(Pete)라고 부르라고 했다. 실제로 사우스벤드에선 그를 피트 시장님(Mayor Pete)이라고 부른다. 뉴스 앵커나 해설위원들도 마찬가지다.

피트는 약관의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풍부한 경험과 경력을 자랑한다. 또 결코 흥분하지 않고 조곤조곤 말해 사람을 끌어들이는 카리스마까지 있다. 단 사람들이 그에게 끌리는 큰 이유는 따로 있다. 바로 그의 올곧은 윤리관과 사람을 대하는 진솔함이 현 미국 대통령과 큰 대조를 이루기 때문이다.

피트의 아버지 조세프는 몰타 출신이다. 유학생 신분으로 미국으로 건너왔다. 영문학 박사가 돼 노틀담 대학 영문학 교수로 재직했다. 그리고 제임스 조이스(James Joyce·아일랜드의 대작가) 학자로 알아주는 위치에 올랐다. 참고로 부테젯지란 이름은 몰타에서 매우 흔한 성씨 중 하나라고 한다.

아버지의 영향을 받은 피트는 문학에 심취해 제임스 조이스를 특히 좋아하게 되었다. 그의 책 『고향으로 돌아가는 가장 가까운 길』역시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즈』의 한 구절 “가장 멀리 돌아가는 길이 고향으로 돌아가는 가장 가까운 길이다(Longest way round is the shortest way home)”에서 따온 것이다. 

그는 또한 노르웨이 소설을 더 많이 읽고 싶어 노르웨이어를 배웠다. 현재 그는 노르웨이어 신문을 읽을 수 있는 실력을 갖췄다고 알려져 있다. 그 밖에도 6개의 외국어를 배워 총 8개 국어를 구사한다. 지난 4월 파리 노트르담 성당에 화재가 발생했을 때다. 현지 특파원의 질문을 받은 피트는 즉석에서 “노트르담 성당은 프랑스가 인류 문명에 준 선물이다. 우리가 합심해 복원할 것이다”라고 대답했다. 불어로. 이를 본 많은 이들이 감탄했다. 거기다 피트는 수화까지 할 줄 안다. 

고등학교를 1등으로 졸업한 그는 하버드 대학에서 역사와 문학을 전공했다. 대학 역시 우등으로 졸업한 뒤 선망의 대상인 로즈 장학생(Rhodes Scholar)으로 선발되었다. 그는 옥스퍼드 대학 펨브로크 칼리지에서 경제학을 공부하고 최우등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귀국 후엔  컨설팅 회사 맥킨지에서 경제 컨설턴트로 일하며 관련 실무를 익혔다. 

5월9일 민주당 대선 경선후보 피트가 캘리포니아 웨스트 할리우드에서 연설을 마친 뒤 동성 남편 채스턴 글레이즈만에게 키스하고 있다. ⓒ 연합뉴스
5월9일 민주당 대선 경선후보 피트가 캘리포니아 웨스트 할리우드에서 연설을 마친 뒤 동성 남편 채스턴 글레이즈만에게 키스하고 있다. ⓒ 연합뉴스

 

8개 국어, 우등 졸업, 해군 입대, 그리고 ‘커밍아웃’

그는 2007년 버락 오바마의 대선 캠프에서 일을 시작했다. 유세를 위해 여러 지역을 돌다가 낙후한 지방엔 지역사회를 이끌 젊은 사람들이 부족한 걸 보게 됐다. 군대에 자원입대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반면 상류층 자제들은 군대에 가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이에 피트는 27세의 나이에 해군에 입대한다.

이후 미국 예비군 해군 소위에 임명된 뒤 사우스벤드 시장으로 당선됐다. 그때부터 스튜더베이커의 버려진 공장 건물을 하이테크 산업 기지로 개발해 죽어가던 시의 경제를 살리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2014년 나라의 부름을 받고 7개월간 휴직계를 낸 뒤 해군 정보장교와 운전병으로서 아프가니스탄에서 근무를 하고 돌아왔다. 

돌아오자마자 그는 시장 재선 운동에 뛰어들었다. 그런데 그 때, 아무도 예상치 못했던 일이 일어났다. 피트가 지역 신문에 자신이 게이라고 기고문을 실은 것이다. 주위에선 보수적인 사우스벤드에서 커밍아웃을 하는 건 정치적 자살행위라고 했다. 하지만 그는 “아프가니스탄에서 죽을 고비를 몇 번 넘기는 사이 인생은 짧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가장하며 사는 건 너무 많은 에너지를 소모한다는 걸 깨달았다”고 털어놓았다. 

모두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피트는 80% 득표율로 재선됐다. 그렇게 2기 시장직에 오른 그는  8살 연하 초등학교 남교사 채스턴 글레이즈만을 만나 성당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피트는 종교나 신앙에 대해 얘기하는 걸 꺼리는 민주당 경쟁자들과 달랐다. 그는 자신의 종교관을 과감하게 피력했다. 성경 구절도 자유자재로 인용했다. 

미국의 유명한 선교 목사 프랭클린 그래엄은 “피트는 회개해야 한다”고 말했다. 게이라서다. 이에 피트는 당당히 밝혔다. “결혼 생활에 있어 내가 회개할 점은 많다. 좀 더 배우자를 생각해야 할 때 나만을 생각했던 이기적인 순간들을 회개한다. 그러나 회개하지 말아야 할 단 한가지는, 한 남자를 진심으로 사랑한다는 점이다.” 피트는 채스텐을 만나 부부의 연을 맺은 것이 신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는 계기가 됐다고 한다. 

여러 설문조사에 따르면, 피트의 지지층은 주로 대학 교육 이상의 학력을 지닌 백인으로 나온다. 반면 그의 최대 약점은 흑인 유권자다. 

20명이 넘는 민주당 대선주자들이 첫 토론회를 갖기 직전, 피트에게 큰 일이 닥쳤다. 사우스벤드의 백인 경찰이 총기를 소지하지 않은 흑인을 총으로 쏴 죽인 것. 설상가상으로 그 백인 경찰은 바디 카메라조차 켜지 않은 채 흑인을 상대하다 사고를 냈다.

미국에선 경찰 내 조직적인 인종차별 문제가 큰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흑인 지지층이 없는 피트에겐 난관이 아닐 수 없다. 피트는 경선 캠페인을 모두 중단하고 사우스벤드로 갔다. 그곳에서 희생자 가족들을 위로했다. 흑인들의 모든 질책을 온몸으로 받고 사과했다. 그리고 공청회를 열었다. 

대선주자로 한창 주목받는 피트가 공청회를 열면 아무리 작은 도시라 해도 기자들이 몰려올 게 뻔했다. 하지만 그는 간략한 기자회견이나 브리핑보단 공청회를 택했다. 피트가 곤혹스러워하며 욕설과 절규를 듣고, 사과하고, 설명하고, 또 사과하는 모습이 전국에 생방송으로 나갔다. 보는 사람조차 불편해 끝까지 보기 힘든 장면이었다. 

사우스벤드의 피트 시장이 6월6일 애틀란타 웨스틴 피치트리 플라자에서 열린 흑인 리더십 자문위원회(AALC)에 참석해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연합뉴스


“질책 받는 것도 시장으로서의 내 임무다”

공청회 후 기자를 만난 그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면서 “질책 받고 설명하는 것도 다 시장으로서의 내 임무다”라고 담담히 말했다. 이제 경선 토론회 때 인종 문제에 관한 질문 공세가 이어질 게 뻔했다. 

MSNBC 간판 앵커 레이첼 매도우가 그를 추궁했다. “왜 당신의 재임기간 동안 흑인 경찰의 수가 오히려 줄었는가? 왜 인종문제가 점점 더 심각해지기만 하나?” 모두 그가 어떤 통계를 대며 자신의 정책을 옹호하고 나설지 귀를 기울였다. 그런데 그의 대답은 뜻밖이었다. “여러모로 노력했지만 내가 해내지 못했다. 그래서 우리 모두 상처받고 있다.(I couldn’t get it done. So we are all hurting.)” 이 대답은 조용한 반향을 일으켰다. 한 언론은 “정치인이 보여준 아름다운 순간”이라고까지 평했다. 

다만 피트는 상대적으로 큰 관심을 끌지는 못했다. 그의 캠페인 자체가 민주당 후보들을 딛고 올라서는 데 목표가 있는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피트의 지지자 중에서도 그가 이번에 민주당 대선주자가 될 것이라 믿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또 수많은 경험에도 불구하고 너무 어리다고 생각하는 유권자도 의외로 많다. 게다가 사회주의 노선을 도입한 민주당의 좌파 세력이 중도적인 그의 정책을 반기지 않는다. 사우스벤드 총격 사건 이후 그의 지지율이 소폭 떨어진 것도 사실이다.

이 모든 상황에도 불구하고 지지자들은 여전히 피트에게 열광한다. 지난 분기 그의 캠페인 본부로 쏟아져 들어온 소액 기부금은 2400만 달러(283억원)가 넘었다. 민주당 경쟁자 중 모금액 1위다. 민주당의 사회주의 노선을 지지하지 않는 공화당원 사이에서조차 피트는 평판이 좋다. ‘피트를 위한 공화당원’이란 조그만 페이스북 팬클럽까지 생겼다.

왜일까. 미국에 살며 지금껏 대통령 선거를 8번 지켜봤다. 2020년 대선은 아홉 번째다. 세월로 치면 3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지켜봤다. 피트처럼 진실을 두려워하지 않는 정치인은 처음 봤다. 진실이 아무리 곤혹스럽고 괴로워도 숨기지 않는다. 숨지 않기에 그는 괴로운 진실 앞에서도 당당하다. ‘그가 너무 젊고 순진하기 때문일까’라고 반문까지 해 봤다. 

피트는 비교적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이모나 삼촌, 혹은 아버지뻘인 다른 후보나 대통령보다 훨씬 더 어른스런 행동으로 신뢰감을 준다. 욕설과 공약이 난무하는 정치판에 휩쓸리지 않으면서도 비판할 건 명확하게 소신껏 꼬집는다. 해결책을 덧붙이는 것도 잊지 않는다.

지지자들은 이런 피트를 보며 비록 현실이 암울해도 미국의 민주주의가 여기서 바닥나진 않을 거란 믿음과 희망을 갖는다. 경선 토론회 끝에 사회자가 “대통령이 되면 제일 먼저 할 일을 한 가지씩 말해달라”고 했다. 피트는 “민주주의를 복구하자”라고 답해 큰 박수를 받았다.

피트의 지지자들은 그 같이 젊은 정치인이 있다면 민주주의를 복구해 볼만 하겠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피트에 열광한다. 그를 바라보는 나 또한 ‘한국에도 이런 후보가 나왔으면’ 하는 생각을 금할 수 없다. 젊고, 카리스마 넘치고, 그러면서도 세상을 아는 사람. 대선에서 떨어져도 좋으니 긴 것은 기고, 아닌 것은 아니라고 하는 후보가 한명쯤 있었으면 한다. 

2020년 대선이 끝나고 그 4년 뒤, 또 4년 뒤, 피트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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