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복지원 책임 소재 가린다…부산시 피해자 실태 조사 착수
  • 김완식 부산경남취재본부 기자 (sisa512@sisajournal.com)
  • 승인 2019.07.17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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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 피해자 심층면접 조사…피해 규모 파악‧지원 대책 마련
원장 일가 재산환수 방법 모색…진상규명 법통과 촉구 계획도

한국판 아우슈비츠로 불리는 형제복지원 사건을 부산시가 첫 공식 조사에 나선다. 광범위한 인권유린이 벌어진 형제복지원의 참상이 1987년 세상에 알려진 지 32년 만이다. 이번 조사의 핵심은 인권 유린 사태의 국가 책임을 가리고 박인근 원장 일가의 재산을 환수할 방법을 찾는 것이다. 

7월16일 오후 부산시청 소회의실에서  진행된 형제복지원 사건 피해자 실태 조사 용역 착수 보고회에 참석한 한 피해자 가족이 눈물을 훔치고 있다. ⓒ부산시
형제복지원 사건 피해자 실태 조사 보고회에 참석한 한 피해자 가족이 눈물을 훔치고 있다. ⓒ부산시

7월16일 시청에서 열린 형제복지원 사건 피해자 실태 조사 용역 착수 보고회에서 부산시 관계자는 “형제복지원 인권 유린사건의 진실을 반드시 밝히겠다”고 밝혔다. 부산시는 이번 조사 결과를 토대로 국회에 계류 중인 ‘내무부 훈령 등에 의한 형제복지원 피해 사건 진상 규명 법률안’(형제복지원 특별법)의 통과를 촉구할 계획이다.

부산시는 이번 용역을 통해 내년 4월10일까지 9개월간 사건 원인을 규명한다. 핵심은 국가 책임이 있는지를 찾아내는 데 있다. 형제복지원은 국가 복지체계 안에서 만들어지고 운영됐기 때문이다.

정부는 당시 사회복지사업법에 따라 형제복지원을 사회복지법인으로 등록했다. 이 과정에서 국가가 형제복지원 인권 유린을 방조한 책임이 있다는 판단이 내려질 수 있다. 또 한 사건이 세상에 알려진 이후 국가 기관이 제대로 된 조사를 하지 않은 점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형제복지원을 운영했던 박 원장 일가의 재산 증식 과정을 조사하는 내용도 용역에 포함됐다. 박 씨 일가가 복지원을 통해 모은 재산을 환수할 근거를 마련한다는 취지지만, 30년이 지난 사건인 만큼 관련 자료를 확보하는 데 어려움이 따를 것으로 보인다. 

용역 진행을 맡은 동아대학교 남찬섭 교수는 보고회에서 “1987년 사건이 터진 이후 당시 야당이었던 신민당의 조사도 이뤄지지 않았지만, 국가에 책임이 있는 건 분명해 보인다”며 “복지원 수용자는 정상적 식사와 의복을 제공받지 못했다. 국가 보조금이 다 어디로 흘러갔는지도 조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형제복지원 인권 유린 방조…국가 책임 규명이 핵심

특히 부산시는 생존 피해자 200여 명을 대상으로 심층 면접조사를 실시해 피해사실을 구체적으로 알아볼 계획이다. 조사를 통해 생존자들의 현 경제·심리·신체적 상태를 파악해 피해규모를 추정한다는 방침이다. 공무원, 경찰, 시설 종사자 등 직·간접적으로 형제복지원과 관련된 인물도 조사 대상이다.

이 날 보고회에 참석한 피해 생존자 모임 대표 한종선씨는 “부산시 차원에서 형제복지원 피해 실태 조사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지만 긍정적으로 생각한다”며 “사건의 피해 실태를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서는 부산시의 적극적인 협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난해 12월 개소한 피해신고센터 ‘뚜벅뚜벅’. 이곳에선 피해자 상담을 진행하고 있다.  ⓒ부산시
지난해 12월 개소한 피해신고센터 ‘뚜벅뚜벅’에서는 피해자 상담을 진행하고 있다. ⓒ부산시

부ㅏㄴ시는 앞서 지난해 9월 형제복지원 사건과 관련해 오거돈 시장이 사과 기자회견을 연 뒤 12월에는 피해신고센터 ‘뚜벅뚜벅’을 개소해 피해자 상담을 진행하고 있다. 이어 올해 3월에는 피해자 명예회복 및 지원에 관한 조례를 제정해 피해자 명예회복과 진상규명을 위한 토대를 마련하기도 했다. 

부산시 관계자는 “이번 용역은 형제복지원 사건 진상규명을 위해 공공기관에서 수행하는 첫 용역”이라며 “용역 결과가 진상규명과 피해자 지원을 위한 중요한 자료로 활용될 수 있는 만큼 면밀히 검토해 추진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한편 형제복지원 사건은 1975∼1987년 당시 내무부 훈령에 근거해 부랑인 단속이라는 명분으로 3000명 이상의 무고한 시민을 강제로 감금하고 강제노역·폭행·살인 등을 자행한 인권유린 사건이다.

1987년 탈출을 시도한 원생 한 명이 직원의 구타로 사망하고 35명이 집단 탈출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복지원의 만행이 세상에 알려졌다. 확인된 사망자는 513명이며 주검 일부는 암매장 등으로 찾지 못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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