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혜경의 시시한 페미니즘] 나 혼자 살아야 한다면?
  • 노혜경 시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7.20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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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새로운 가족 형태를 고민합시다

바르샤바에 공산주의 시대 박물관이라는 곳이 있었다. 공공시설이 아니고 민간이 운영하는 곳인데, 초등학교 교실 세 개 정도 규모에 공산 정부 시절의 생활을 엿볼 수 있는 각종 물품과 시설을 전시해 놨다. 비누와 치약 같은 생필품들, 가전제품, 옷가지들, 자전거와 경차 같은 탈것들까지 일상을 이루는 많은 것들이 망라되어 있었다. 가장 흥미로웠던 전시물은 국가가 노동자에게 배정했던 숙소였다. 가족 수에 따라 다른 크기의 아파트가 주어지는데, 내가 주목한 것은 기본이 되는 가구가 바로 1인이라는 사실이었다. 전시된 방도 1인용 아파트인데 침실, 부엌, 욕실, 응접실 등 모든 요소가 17~20㎡ 정도 크기의 방 안에 다 들어 있었다. 국가가 한 명의 노동자에게 방 하나를 배정했다는 사실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다.

물론 당대의 생필품들 중엔 유아용 젖병과 젖꼭지라든가 아기옷 같은 상품들이 중요하게 전시되고 있었고 5인 가족을 위한 아파트 도면도 있었으므로 1인이 가족의 기본단위였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 그것은 공부를 해 봐야 아는 일이겠다. 다만, 짐작할 수 있는 것은 국가가 주거를 의무적으로 제공할 때 그 최소 단위가 일가족이 아닌 한 사람이라는 사실이었다.

MBC 예능 프로그램인 《나 혼자 산다》의 기안84 모습 ⓒ MBC
MBC 예능 프로그램인 《나 혼자 산다》의 기안84 모습 ⓒ MBC

모든 청년에게 주거공간이 주어진다면

인기 있는 예능 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의 ‘기안84’는 그 프로그램에 출연한 모든 출연자 중 가장 ‘일반인’에 가까운 생활을 했었다. 반지하 원룸에서 고층아파트 투룸으로 이사를 했지만, 혼자 끓여 먹고 혼자 집을 가꾸고 혼자 집에서 노는 삶이었다. 그런데 독립적이고 안락해 보였다. 지상의 방 한 칸이 주어진다면 청년의 삶은 다 그럴 수 있다.

소득의 규모와 무관하게 국가가 모든 젊은이들에게 5평에서 7평의 주거공간을 준다면 그 삶은 어떻게 달라질까. 모든 스무 살에게 정부가 방 하나를 주고, 모든 동거생활자들에게 거실이 딸린 방 하나를 주고, 아이가 있는 동거생활자들에게 방 세 개 있는 집을 준다. 다른 말로 기본주거. 모든 청소년은 일단 《나 혼자 산다》를 공연하면서 사회에 등장하는 것이다. 그랬을 때, 세상은 어떻게 달라질까. 모든 청년은 남녀 불문하고 스무 살부터는 혼자 사는 것이 일반화된다면, 아마 의무교육 교과과정에는 요리, 바느질, 그 밖의 생존에 필요한 가사노동이 들어가야 할 것이며, 정부의 각종 법규도 가족 단위가 아니라 1인 단위로 기준이 바뀔 것이다. 무엇보다 부동산에 대한 정부 정책과 국민의 인식도 달라지겠고. 부동산도 보유세가 아니라 사용료를 내게 되겠고. 이때 사용료는 방의 규모가 아니라 개인소득에 따른 차등이 있었으면 좋겠고. 상상이 나래를 편다. 고교 평준화하듯이, 스무 살에 맞이하는 주거 평준화. 생각해 보면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닐 듯하다.

사회주의 국가의 과거지사를 보고서 “거 좋구나”라고 생각했다 해서 이 생각이 사회주의적인 것은 아니다. 오히려, 미래 세대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를 기성세대로서 고민하다가 폴란드에서 가능성 하나를 발견한 것에 가깝다. 농경사회적 대가족 제도에서 핵가족을 거쳐 가족 해체의 시대가 눈앞에 보이지만, 그 변화가 일어난 기간은 길어야 50년이다. 애써 만든 근대적 제도들이 하루빨리 미래에 적응하도록 바뀌어야 하는 압력을 받고 있다. 가족이 아니라 개인이 사회의 기초라는 생각이 그 출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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