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에 전투력 아닌 외교력을 주문한다
  • 유창선 시사평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7.22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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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창선의 시시비비] 일본을 어떻게 할 것인가, 반일 감정과 현실의 딜레마

과거사를 진정으로 반성할 줄 모르는 일본이라는 나라를 어떻게 대할 것인가는 대한민국에 들어섰던 모든 정권들이 부딪혔던 문제다. 일본의 결자해지(結者解之) 태도가 없는 상태에서 정부는 국민의 반일 감정을 대변할 것인가, 아니면 한·일 협력이 요구되는 현실을 우선할 것인가 사이의 딜레마로 정권마다 고민은 깊었다. 최근 일본 아베 정부가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라는 초강수 보복 조치에 나선 데 이어 추가 보복까지 거론하는 상황에서 한·일 관계는 비상한 국면을 맞고 있다.

현재 최악의 상황이 된 한·일 관계의 전사(前史)를 돌아보자. 2012년 8월10일, 임기말의 이명박 전 대통령은 독도를 전격 방문했다. 역대 대통령 누구도 하지 않았던 초강경 대일 카드였다. 그의 독도 방문이 돌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던 이유는 자신의 집권 4년여 동안의 대일관계 기조를 단숨에 뒤집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 전 대통령은 취임 직후인 2008년 3·1절 기념사에서 “한국과 일본도 서로 실용의 자세로 미래지향적 관계를 형성해 나가야 합니다”라며 과거사보다는 미래에 방점을 찍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7월15일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일본의 대(對)한국 수출규제와 관련한 발언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문 대통령, 정의용 국가안보실장 ⓒ 청와대제공
문재인 대통령이 7월15일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일본의 대(對)한국 수출규제와 관련한 발언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문 대통령, 정의용 국가안보실장 ⓒ 청와대제공

이명박·박근혜 정부, 일관된 철학 부재 

대통령이 된 후 이렇게 일본과의 우호적 관계를 강조해 왔고 독도 영유권 문제와 관련해 “잠시 기다려 달라”는 발언 논란에까지 휩싸였던 그가 느닷없이 독도를 방문한 배경에 대해 여러 정치적 해석이 대두되었다. 그해 상반기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체결을 추진했던 이명박 정부는 밀실 추진이라는 여론의 비판에 직면해 결국 이를 포기하는 일이 있었다. 게다가 친인척 비리 등으로 대통령 지지율은 20%를 하회하며 정권이 막다른 골목에 처하던 상황이었다. 그래서 이 전 대통령의 독도 방문에는 악화된 국내 여론을 의식한 정치적 카드라는 해석이 따라붙었다. 이 전 대통령은 국내의 정치적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대일관계에 대한 지론을 접고 반일 감정에 불을 붙이는 길로 들어섰던 것이다.

당시 여당이던 새누리당은 일본의 ‘독도 침탈 야욕’을 비난하며 “이 대통령의 독도 방문은 대한민국 영토 수호 의지를 보여주는 의미 있는 일”이라는 논평을 냈다. 정작 그 후신인 자유한국당은 일본의 보복 조치 직후 아베 정부의 행동에는 사실상 침묵한 채 문재인 정부의 무능력만 비판해 여론의 비판을 받은 바 있다.

그 뒤에 들어선 박근혜 정부는 대일관계에서 이명박 정부와는 정반대의 길을 걸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일본에 대해 집권 기간 내내 유화적인 태도를 취하다가 마지막에 가서 초강경으로 돌아섰다면, 박근혜 전 대통령은 거꾸로였다. 박 전 대통령은 취임 직후인 2013년 3·1절 기념사에서 “일본이 우리와 동반자가 되어 21세기 동아시아 시대를 함께 이끌어가기 위해서는 역사를 올바르게 직시하고 책임지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며 “가해자와 피해자라는 역사적 입장은 천년의 역사가 흘러도 변할 수 없는 것”이라고 했다.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도 강경한 대일 메시지로 받아들여졌다. 일본 정부가 수출규제의 칼을 빼든 지금은 보수정당이 아베 정부보다도 문재인 정부를 비판하는 데 열을 올리고 있지만, 보수정권이 언제나 일본에 대해 유화적인 태도를 취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이 말했던 ‘역사적 입장’은 천년이 아니라 2년도 가지 못했다. 박근혜 정부의 대일 기조는 임기 중반을 지나면서 유턴하게 된다. 2015년 3·1절 기념사부터는 “이제는 더 성숙한 미래 50년의 동반자가 돼 새 역사를 함께 써나가야 할 때”라며 ‘미래지향적 한·일 관계’ 정립에 방점을 찍기 시작했다. 실제로 그해 12월 박근혜 정부와 아베 정부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의 해결 방안에 합의하고 합의 사항의 이행을 전제로 ‘최종적·불가역적 해결’을 선언했다. 하지만 이 합의는 굴욕 협상이었다는 국내의 비판에 직면하고 문재인 정부 들어 결국 합의가 파기되기에 이르러, 오히려 한·일 관계를 더욱 얼어붙게 만드는, 잘못 끼운 단추가 되어 버렸다. 이명박, 박근혜 두 보수 정부에서 나타난 특징은 대일관계에 대한 일관된 철학과 역사의식의 부재였다. 

이명박 대통령이 2012년 8월10일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독도를 전격 방문했다. ⓒ 청와대제공
이명박 대통령이 2012년 8월10일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독도를 전격 방문했다. ⓒ 청와대제공

日 정부를 설득·압박할 외교 능력 절실

두 정부가 넘긴 공은 문재인 정부로 넘어왔다. 문재인 대통령은 집권 첫해에 한·일 위안부 합의 파기를 선언했다. 그리고 다음 해인 2018년 우리 대법원에서는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 판결이 내려졌다. 두 가지 사안 모두 일본의 강한 반발은 예정되어 있던 것이었다. 

일본의 한국 수출규제 조치로 촉발된 국민들의 반일 감정은 일본 제품들에 대한 불매운동으로 번지고 있다. 시민들은 일본 제품 목록을 전파하며 구입 자제를 촉구하고 나섰고, 일본 여행을 취소했다는 인증도 늘어나고 있다. 일본의 조치에 분개한 시민들의 자발적 행동은 당연한 의사 표현이다. 하지만 불매운동은 일본에 대한 장기전의 힘 있는 무기가 되는 데는 한계가 있어 보인다.

결국은 정부의 몫이며 책임이다. 국민의 반일 감정 분출은 결과적으로 정부의 협상력을 높이는 역할을 할 수는 있겠지만, 정부가 거기에 기댈 생각을 해서는 안 된다. 일본의 경제 보복이 장기화해 우리 기업들에 타격을 주고 국내 경제에 악영향을 줄 때 국민들의 분노는 우선은 비열한 일본 정부를 향하겠지만, 사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우리 정부도 결국에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되어 있다. 

일본 정부가 갑작스럽게 수출규제 조치를 내렸다고 하지만, 그들은 오래전부터 한국에 대한 보복 조치들을 검토하고 준비해 왔다. 일본 정부는 한국에 취할 수 있는 조치들 가운데 한국의 급소를 가장 아프게 찌르면서도 국제법상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는 것들을 치밀하게 준비해 왔음이 드러난다. 그러는 동안 우리 정부는 예상되는 보복에 대비해 무엇을 해 왔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예정된 위기 앞에서 그냥 손놓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지금은 국민들이 한목소리로 일본을 비판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생각에서 정부의 안이함을 질타하는 소리가 적을 뿐, 일본의 보복이 예상되는 결정들을 내놓은 이후 별다른 외교적 노력을 기울이지 못한 정부를 잘했다고 하는 것은 아니다.

국민의 반일 감정에 기대는 것도, 미국 정부가 우리 손을 들어줄 것이라는 낙관론도, 일본 참의원 선거가 끝나고 나면 달라질 것이라는 단견도 지금 국면에서 정부나 여당이 드러낼 태도는 아니다. 결국은 일본 정부를 한발 뒤로 물러서도록 설득하고 압박할 수 있는 외교적 능력, 급소가 드러난 우리 산업구조의 취약점을 개선해 나가는 경제적 능력이 절실한 시점이다. 지금 이 상황에서 문재인 정부에 주문하게 되는 것은 전투력이 아닌 외교적 능력이다. 이제라도 정부는 창의적인 대안들을 갖고 일본을 한발 뒤로 물러서게 하는 능력을 보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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