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공영방송] 거대하고 낡은 ‘공장의 시대’는 저물고 있다
  • 김도연  미디어오늘 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7.22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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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 일상화된 KBS·MBC
경영 효율화 압박 속 생존 안간힘

MBC 여의도 사옥이 철거됐다. 서울 마포구 상암동 새 사옥에 박근혜 전 대통령 등을 초청해 ‘상암시대 개막’을 선언한 지 4년5개월 만인 지난 2월, 여의도 사옥 철거 기념식이 있었다. 전파를 쏘던 안테나를 철거하는 행사가 진행됐다. 최승호 MBC 사장은 “수십 년 동안 보랏빛 건물 안에서 대한민국 어느 조직보다 자율과 창의가 중시되는 문화가 살아 숨 쉬었다”고 여의도 시대를 마감하는 소회를 밝혔다. MBC 구성원들 대다수 마음도 비슷했을 것이다. ‘아 옛날이여!’

MBC 여의도 사옥은 ‘여의도 공장’이라 불렸다. 이 시절 지상파방송사는 독과점 체제의 우월적 지위를 누리며 공장에서 대량으로 물품을 찍어내듯 방송 콘텐츠를 쏟아냈다. 막대한 지상파방송사 매출액이 곧 대한민국 콘텐츠 생산량으로 받아들여졌던 시대다. 가히 ‘포디즘 시대’였다. 미국 기업가 헨리 포드(Henry Ford) 이름에서 유래한 이 용어는 높은 생산성과 고임금에 기초한 대량 생산·소비 시스템을 말한다. KBS와 MBC 두 공영방송의 고숙련 언론 노동자들이 스튜디오에서 생산한 드라마·예능·시사는 높은 시청률과도 직결됐다. 공급만 있다면 수요가 뒤따라오는 시대. 그 시절 우리는 TV를 통해서만 방송 콘텐츠를 소비할 수 있었다.

그러나 시대가 크게 바뀌었다. 신문·방송 겸영이 허용되며 2011년 12월 종합편성채널 4곳(TV조선·JTBC·채널A·MBN)이 개국했다. ‘넓어진 채널 선택권’과 ‘시청자 볼 권리 향상’ 등이 명분이었다. 그러나 방송시장 파이 관점에서 보면, 3명 살던 20평 아파트에 4명을 추가로 구겨 넣은 모양새다. 단순 셈법으로 시장 파이는 3분의 1에서 7분의 1로 쪼개졌다. 종편 개국 8년이 지난 지금은 시청자의 선택권이나 볼 권리 향상을 평가하는 목소리보다 시장의 아우성이 더 크게 들린다.

지상파·종편 모두가 힘들다고 아우성인 가운데 유튜브와 넷플릭스 같은 새 플랫폼 강자들이 국내 미디어 시장을 활보하고 있다. 국적이 ‘비(非)한국’인 이들은 규제에서 보다 자유롭다. 미디어 소비가 모바일과 인터넷으로 넘어갔고, 수용자는 플랫폼과 콘텐츠의 국적을 따지지 않는다. ‘포디즘’으로 결코 따라갈 수 없는 ‘포스트 포디즘 시대’가 눈앞에 열렸다.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지상파, 특히 KBS·MBC 두 공영방송의 위기는 이같이 첨예해진 방송 경쟁시장을 떼어놓고 설명할 수 없다.

ⓒ 시사저널 박은숙·고성준
ⓒ 시사저널 박은숙·고성준

지상파 광고 매출 7년 만에 반 토막

위기는 수치로도 확인된다. 주목해야 할 수치는 주 수익원인 ‘광고 매출’이다. 지난 6월 방송통신위원회가 발표한 ‘2018년도 방송사업자 재산 상황’을 보면, 지난해 지상파 광고 매출은 1조3007억원으로 전년도 대비 1115억원(7.9%) 감소했다. 2011년 지상파 광고 매출이 2조3754억원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7년 만에 반 토막 수준이다. 전체 방송 광고시장에서 지상파가 차지하는 비중은 2009년 68.2%에서 2018년 40.3%으로 꾸준히 줄고 있다. 이에 따라 2017년 368억원이었던 지상파의 영업손실은 지난해 2237억원으로 크게 늘었다. 지속적 광고 매출 하락과 프로그램 제작비 상승이 주요 요인으로 꼽혔다.

반면 지난해 종편 4사 광고 매출은 4481억원으로 전년 대비 447억원 늘었다. 2011년부터 보면 종편은 716억원, 1710억원, 2355억원, 2229억원, 2863억원, 2880억원, 4004억원, 4481억원으로 광고 매출이 상승 추세다. 다만 영업 성적만 보면 JTBC가 유일하게 지난해 영업이익(129억원)을 봤다. MBN은 35억원, TV조선은 10억원, 채널A는 78억원 적자다. 전반적으로 방송시장이 불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KBS의 한 관계자는 “2003년 2조6565억원에 달하던 지상파 광고 매출액이 지금은 1조3000억원 수준이다. 물가 상승을 감안하면 주 수익원이 40% 밑으로 떨어진 건데 한 산업이 망해도 이상하지 않을 수치”라며 “이런 상황이 단순히 개별 회사만의 문제인지, 산업 구조적 문제가 아닌지 고민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지상파방송사들이 대표적 비대칭 규제로 꼽히는 ‘중간광고 도입’ 등을 요구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공영방송 시청률 위상에도 ‘역전’이 생겼다. 방통위가 지난 7월17일 발표한 ‘2018년도 방송사업자 시청점유율 산정 결과’를 보면 시청점유율 1위는 24.9%의 KBS였지만 2위는 12.6%를 기록한 CJ ENM(CJ 계열)이었다. 이 수치는 CJ오쇼핑, tvN 등 CJ 계열 채널 시청점유율을 모두 더한 수치지만 처음으로 MBC 시청점유율(12.1%)을 넘어섰다. MBC의 뒤를 이어 JTBC가 9%를 기록했고 지상파 3사의 막내 SBS가 8.5%에 그쳤다. TV조선이 8.3%, 채널A가 5.8%, MBN이 4.9%였다. 시청점유율은 전체 TV 방송에 대한 시청자의 총 시청시간 가운데 특정 방송채널 시청시간이 차지하는 비율이다.

조금 더 세부적으로 보자. 최근 업계가 주목하는 건 ‘레드 오션’이 된 드라마 시장이다. 지상파에서는 ‘찍으면 적자’ ‘돈 먹는 하마’라는 말부터 나온다. 과거처럼 드라마 하나가 방송사를 먹여 살리는 시대는 지나갔다는 이야기다. 이를테면, 자체 최고 시청률 15.8%로 지난 5월 종영한 KBS 2TV 드라마 《닥터 프리즈너》는 시청자들의 호평이 끊이지 않았다. 그러나 내부에서는 적자를 겨우 면했다는 평가다. KBS의 한 인사는 “드라마 16부작 하나 찍으면 20억~30억원씩 적자를 본다. 공익적으로 다양한 드라마 콘텐츠를 선보이는 것이 공영방송 역할일 텐데, 한 작품 찍으면 수십억원 적자가 나는 상황에서 새 도전을 하기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 괜찮은 콘텐츠에도 더 이상 광고가 붙지 않는 시대라는 것이다.

예능·드라마 인력 유출도 큰 타격을 줬다. KBS에서 tvN, JTBC로 빠져나간 예능·드라마 인력은 10년간 70~80명에 달한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MBC의 한 PD는 “우리 콘텐츠가 낡았다는 지적을 할 수 있지만 지난 정치체제에서 탄압을 극심하게 받은 것도 영향을 줬을 것이다. 무엇보다 인력 유출이 심했다. tvN 등에서 활약하는 PD 대부분이 지상파 출신이다. 그들에게 트레이닝을 받은 새 인재들이 이제 올라오는 중이고, 그들 콘텐츠가 호응을 얻고 있다”고 말했다.

드라마 작가, 배우, 연출, 스태프의 몸값은 오르고 광고주들은 유튜브 같은 뉴미디어로 눈길을 돌린 지 오래다. 중국 시장은 여전히 풀리지 않고 있다. 다른 해외 콘텐츠에 대한 비교우위는 떨어진다. 이에 MBC와 SBS는 드라마를 줄이고 예능을 늘리는 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MBC 드라마국은 오는 9월부터 월화극을 폐지하고 SBS도 여름 한 계절 월화극을 스톱했다. CJ ENM의 경우도 500억원대 제작비를 투입한 드라마 《아스달 연대기》 부진 등으로 드라마 제작사 스튜디오드래곤 주가가 하향세지만 지상파 방송 상황과 견주긴 어렵다.

조직 전반 수술대에 올려야 하는 상황

거대한 몸집이면 경쟁에서 속도를 낼 수 없다. 공영방송 위기를 묻는 질문에 한 MBC PD는 이렇게 말했다. “KBS나 MBC는 그동안 스튜디오 제작 공정 시스템으로 운영됐다. 지금은 유튜브만 있으면 스튜디오 없이 방송하는 시대다. TV산업은 공장 시스템에 기반한 장치산업이었다. 하지만 현재 같은 다매체·소품종 시대엔 어느 때보다 유연함이 요구된다. 그러나 우리는 tvN·JTBC 등에 비해 인력 구조가 가볍지 않다.”

문제의식을 심화하면 KBS·MBC보다 각 부문 외주화가 용이했던 tvN이나 종편채널은 태생부터 ‘효율’에 기반을 뒀다는 것이다. 포디즘 시대 장점으로 기능한 공영방송의 고숙련 고비용 정규직 인력이 십여 년이 지나 노후화됐다. 반면 공영방송에 대한 사회적 압력과 기대, 강력한 노동조합 존재 등으로 부풀어 있는 몸집을 쉽게 줄이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 KBS의 현재 정규 인력은 4500여 명, MBC는 1600여 명 수준이다. 이에 반해 종편채널은 체급이 매우 낮다. 대표적 종편 JTBC의 정규직 직원 수는 올 3월 기준 232명에 불과하다.

물론 ‘슬림화’를 위한 자체 노력이 없는 건 아니다. 최승호 MBC 사장은 지난해 11월 창사기념사에서 “지난 10년 동안 조직은 불필요하게 확대됐고 인력은 방만하게 운용돼 왔다. 지속적으로 몸집을 줄이고 효율화하는 노력을 하겠다”고 밝혔고 MBC는 ‘창사 이래 최대 규모의 명예퇴직’을 계획했다. 그러나 연말, 연초 두 차례 명예퇴직에서 불과 60여 명만 퇴직했다. 매출 대비 인건비가 30%대를 넘는 상황에서 이 같은 고비용 인력은 여간 부담이 아니다. 2012년 파업 과정에서 채용한 이른바 ‘대체 인력’ 55명에 대한 근로계약 취소 논의도 있었지만 올해 초 이들 고용을 유지키로 했다. 향후 이어질 법적 분쟁에서 승산이 없다고 판단한 결과였다.

7월부터 비상경영에 돌입한 KBS는 고정 지출의 43%를 차지하는 인건비를 줄일 방침이다. 내부 문건인 ‘KBS 비상경영계획 2019’를 보면 KBS는 한시 계약직 703명을 오는 2021년까지 20% 감축할 계획을 갖고 있다. 올해 신입사원 선발을 중단하고 경력·특별채용을 확대하며 기존 정규직 규모도 조정할 방침이라고 한다. 확정·시행되지 않은 계획에 불과한 문건이지만 조직 전반을 수술대에 올려야 하는 상황인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방만한 경영이 새 이야기는 아니다. 감사원은 지난 2017년 11월 KBS가 악화되는 경영에도 상위직급 비율을 2013년 57.6%에서 2017년 60.1%로 늘리는 등 방만하게 조직을 운용했다고 지적했다. 감사원 발표는 ‘전체 직원의 60%가 연봉 1억원이 넘는다’는 보도와 비난이 쏟아진 배경이었다. KBS는 2008년과 2012년 감사에서도 두 차례에 걸쳐 효율적 인력 운영을 위해 상위직급 정원을 감축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받았지만 이를 시행하지 않았다. 지난 10여 년 스스로 몸집을 줄이려는 노력을 하지 않은 대가가 비상경영으로 되돌아온 셈이다. 과잉 인력에 대한 구조조정과 경영 효율화 압박은 앞으로 더 거세질 가능성이 높다.

위기에 맞서는 지상파의 ‘연대 의식’은 커지고 있다. 지상파 3사가 주축인 한국방송협회는 지난해 말 “중간광고로 발생하는 추가 재원은 모두 방송 공익성 강화와 한류 활성화 프로그램 제작, 상생 제작 환경 개선에 투입하겠다”며 대국민 약속을 발표했다. 양승동 KBS 사장도 지난 5월 취임 1주년 간담회에서 “중간광고가 허용되도록 노력했으나 아직까지 되지 않고 있다. 종편은 콘텐츠 수익이 늘어나면 경쟁력 강화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지만 지상파는 악순환 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지상파방송사들은 프로그램 하나를 2, 3회로 쪼개 프리미엄 광고(Premium Commercial Message·PCM)를 삽입하고 있다. 법망을 피하면서 광고 매출을 올리는 유사 중간광고다.

 

KBS, 수신료 인상 카드 다시 꺼내들어

종편은 출범 당시 의무전송, 황금채널 배치, 직접 광고 영업 및 중간광고 허용 등 여러 특혜를 받고 성장했다. 지상파 중간광고 도입은 시행령 개정 사항으로 방통위가 직권으로 할 수 있다. 방통위는 2019년 상반기 중간광고 도입을 공식화했지만 경쟁 사업자들의 반발과 정부 내 이견 등으로 도입이 보류된 상태다. 이를테면 신문협회는 “지상파 중간광고 강행은 국민 60%가 반대하는 국민 여론을 무시하는 처사”라고 강력하게 반발했는데 지상파 중간광고 도입이 신문 광고비 하락과 직결된다는 논리를 폈다. 더 중요한 것은 대표 회원사인 조선·중앙·동아 등 보수신문이 종편을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조선일보는 지난 2월 사설에서 “KBS는 예산의 43%를 사실상 세금으로 채우면서 직원의 60%가 1억원 넘는 연봉을 받는다. MBC는 작년 1200억원 적자를 내면서도 임원들이 특활비를 3000만원씩 받았다. 그런데도 정부는 지상파에 가상광고·간접광고에 이어 중간광고까지 허용해 주겠다고 한다”며 “정권 나팔수를 해 준 대가일 것”이라고 비판했다. 종편을 보유한 보수·경제지 시각은 대동소이하다.

KBS는 이참에 ‘수신료 인상’ 카드를 꺼냈다. 이훈희 KBS 제작2본부장은 통화에서 “현재는 매체의 공급 과잉 문제가 심각하다”며 “단기적 처방일 수 있으나 KBS를 광고시장 링 위에서 내려오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결국 수신료 문제가 해결돼야 한다. 몰락 위기에 처한 지상파 산업을 연착륙시키는 일은 중요하다. 수신료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시작돼야 한다”고 말했다. KBS가 방송 광고시장에서 빠지는 대신 1981년부터 38년 동안 월 2500원에 묶여 있는 수신료를 현실화(인상)하자는 취지다. 하지만 KBS 수신료 인상은 국회를 통과해야 한다. KBS의 ‘정부 편향’ 시비가 어느 정권이든 빚어진다는 점에서 수신료 인상은 야당이 쉽게 받을 수 없는 이슈다. 여소야대 국회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이를 인식한 듯 양 사장은 기자간담회에서 수신료 인상을 두고 “총선이 끝난 내년 하반기쯤 시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보수신문들은 종편이 개국하기 전 “KBS를 상업광고로부터 해방시켜 시청률에 얽매이지 않는 국민의 방송으로 거듭나게 할 때”(동아일보 2011년 2월9일자 사설)라고 목소리를 높였었다.

이효성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왼쪽 두 번째)이 6월18일 KBS 재난방송센터를 방문해 재난방송 개선사항에 대해 브리핑을 받고 있다. ⓒ 방송통신위원회
이효성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왼쪽 두 번째)이 6월18일 KBS 재난방송센터를 방문해 재난방송 개선사항에 대해 브리핑을 받고 있다. ⓒ 방송통신위원회

공영방송 존재 이유 입증해야

한 종편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넷플릭스, 유튜브 등 진짜 거대 공룡이 국내 콘텐츠 시장을 규제 없이 활보하고 있는데 중간광고를 둘러싼 지상파와 종편의 갈등만 부각하면 누가 좋은 건가요.” 이 지적도 일견 타당하다. 지난 7월4일 영국 방송통합규제기구 오프콤(Ofcom)은 스마트TV, 셋톱박스, 스트리밍 스틱 등 주요 시청 플랫폼에 공공 서비스 방송 콘텐츠가 분명히 보이도록 노출하는 규칙 등을 정부에 권고하고 자국 기업의 공공 서비스 콘텐츠를 보호할 수 있는 법률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국가 단위 시장에 국한됐던 미디어 영역의 빗장이 풀렸다. 페이스북, 유튜브, 넷플릭스, 아마존 프라임, 디즈니, 애플 등은 시장의 경계를 없애고 있는 ‘주역’들이다. 미디어 산업 기반이 되는 자원들은 이들 테크 회사로 쏠리고 있다는 진단이다. 최선욱 KBS 공영미디어연구소장은 “매출액이 떨어지고 영업 적자가 발생하면 콘텐츠 투자는 지속적으로 이뤄지기 어렵다. 그러면 콘텐츠 양을 줄여야 할 텐데 이 경우 우리 사회에 필요한 콘텐츠를 외국 콘텐츠에 의존하게 되면서 악순환이 계속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국내 정책 담당자라면 우리 산업과 문화, 여론을 어떻게 지켜 나갈 것인가를 디자인하기 시작해야 한다”며 “규제가 차별적이다, 비차별적이다는 양자 간 문제다. 보다 큰 틀에서 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공영방송은 존재 이유를 스스로 입증해야 한다. 이훈희 본부장은 “CJ는 ‘글로벌 경쟁력’을 명분으로 영화·드라마·음반 등 대중문화 영역의 수직 계열화에 성공했다”며 “그러나 문화는 수직계열화로 경쟁력이 생기는 게 아니다. 다양성을 기반으로 각각의 창작자와 프로덕션이 다양성을 추구하고, 이를 뒷받침하는 토양이 탄탄할 때 경쟁력이 생긴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공영방송이 시청자가 바라는 만큼 다양성을 보여주고 있다고 평가하긴 어렵다. 막장 드라마 논란, 예능 표절 시비는 여전하고 지난 10여 년 위축됐던 보도와 시사는 이제 자리를 잡는 중이다.

다만 방송시장 경쟁이 극대화하면서 방송의 공공성 제고를 요구하는 목소리는 세계 곳곳에 있다. 특히 뉴스·시사 부문에서 공영방송에 대한 기대는 커지고 있다. 대만에선 중앙통신사와 라디오방송, 공영방송그룹을 하나의 집단으로 통합하는 법률이 국회 심사를 앞두고 있다. 대만은 지난해까지 아시아에서 언론자유지수(국경없는기자회 발표)가 가장 높았던 국가다. 대만 방송계는 난립한 케이블방송으로 시청률 경쟁이 매우 치열하다. 선정성이 우선인 탓에 SNS에 난무하는 ‘가짜뉴스’가 버젓이 방송에 등장한다. 한국과 유사하게 대만 중장년층도 양안 관계, 동성혼, 탈원전 등 이슈에서 가짜뉴스를 공유한다. 린리윈(林麗雲) 대만대 저널리즘스쿨 교수는 “대만 공영방송 뉴스 신뢰는 높다. 하지만 보는 사람은 많지 않다. 공영방송 영향력을 높이는 게 과제”라고 밝혔다. 언론진흥재단 미디어연구센터가 지난 2월 전국 성인 남녀 1200명을 대상으로 ‘가짜뉴스’와 관련해 진행한 설문조사를 봐도 응답자 가운데 가장 많은 24%가 가장 유해하다고 생각하는 가짜뉴스 유형으로 ‘언론 보도 중 사실 확인 부족으로 생기는 오보’를 꼽았다. 뉴스 품질을 높이고 가짜뉴스를 바로잡는 일이 당장 손쉽게 공영방송 신뢰를 높일 수 있는 방법일지 모른다.

공영방송은 지배 구조가 공적이다. KBS는 100% 국가 소유다. MBC는 공적 기구 방송문화진흥회(MBC 지분 70% 소유)가 1대 주주다. 민영방송보다 더 높은 공익성을 요구받는다. 그러나 정부 입맛에 맞는 낙하산 사장 선임과 정권 편향 보도, 방만 경영 등으로 우리 공영방송은 스스로 입지를 축소시켜왔다. 급변하는 미디어 산업 구조에 맞게 내부를 혁신할 기회도 놓쳤다. 지금처럼 정부를 향해 규제 완화만 외쳐선 안 된다. 존재 이유를 증명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공장의 시대’는 하루가 다르게 저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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