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대한민국에 ‘조현병 포비아’ 퍼뜨리나
  • 박성의 기자 (sos@sisajournal.com)
  • 승인 2019.07.24 10:00
  • 호수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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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병 환자 범죄, 전체의 ‘0.04%’ 불과
“공포 과장 말고 치료에 역점 둬야”

“누나도 나를 찌르면 어떡해 엄마?”

지난 4월 주부 최민숙씨(가명·40)는 9살 막내아들의 물음에 숨이 턱 막혔다. 학교에서 돌아온 아들은 스마트폰을 대뜸 내밀었다. 진주 방화살인범 안인득을 다룬 기사가 보였다. 기사 제목 첫머리에 ‘조현병’이라는 단어가 선명했다. 최씨는 “그런 말 하는 거 아니야”라며 아들을 다독였지만 어린 아들의 얼굴빛은 어두웠다. 거실에선 첫째 딸 혜원양(가명·12)이 외할머니 옆에서 조용히 잠을 자고 있었다. 조금 산만하고 말수가 적었던 혜원이는 지난 2017년 2월 ‘아동기 조현병’ 진단을 받았다. 최씨는 “아들에게 ‘누나는 남들과 다를 뿐 나쁜 사람이 아니야’라며 병명을 알려줬었는데 내 실수였다”며 “가족마저 조현병 환자를 괴물처럼 보는 세상이 됐는데, 혜원이가 무슨 수로 버티고 살아갈 수 있을지 너무 막막하다”고 말했다.

대한민국엔 약 50만 명의 혜원이가 산다. 2017년 기준으로 국내에서 조현병으로 진료받은 환자는 10만7662명. 의학계에 따르면 조현병 유병률은 지역·인종·문화적 특성과 관계없이 1% 정도다. 이를 대입하면 자신이 조현병인 것을 모르거나, 알면서도 치료를 받지 않고 있는 국내 조현병 환자가 약 40만 명 더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이들은 대한민국에서 ‘예비 범죄자’라는 낙인이 찍힌 채 살아가고 있다. 최근 들어 조현병 환자들이 저지른 각종 강력범죄 사건이 연이어 보도된 뒤로, 대한민국 전역에 ‘조현병 포비아(공포증)’가 확산하면서다. 과연 이 같은 두려움의 근원 또는 근거는 무엇일까. 시사저널은 신경정신의학, 범죄 및 사회심리학, 경찰 등 각계 전문가들의 도움을 얻어 ‘조현병 포비아’ 실체를 추적해 봤다.

ⓒ 시사저널 임준선
ⓒ 시사저널 임준선

늘어나는 ‘흉기 든 조현병 환자’

조현병이란 사고, 감정, 지각, 행동 등 광범위한 인격 이상 증상을 일으키는 정신질환이다. 보통 10~20대에 발병하는데 원인은 아직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의학계는 유전적, 환경적 영향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증상은 다양하다. △환청이나 환각 △언어활동 이상 △반복되는 망상 △와해된 행동 및 긴장증적 행동 △대인기피 등이다. 조현병 초기엔 감정 표현이나 말수가 극히 적어지거나, 모든 일에 흥미와 의욕을 잃는다. 그러다 조현병이 활성기로 진입하게 되면, 망상과 환각에 시달리거나 누군가 자신을 해치려 한다는 불안감에 휩싸이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공격적인 행동을 보이는 환자들도 발생하며, 최악의 경우 살인 사건으로 번지기도 한다.

살인 사건 피의자 안인득(왼쪽)과 김성수. 이들 모두 조현병을 진단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 연합뉴스
살인 사건 피의자 안인득(왼쪽)과 김성수. 이들 모두 조현병을 진단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 연합뉴스

지난해 10월 서울 강서구의 한 PC방에선 “아르바이트생의 서비스가 불친절하다”는 이유로, 흉기를 휘둘러 아르바이트생을 무참히 살해한 사건이 발생했다. 경찰에 붙잡힌 피의자 김성수는 재판 과정에서 자신이 조현병을 앓았다고 주장했다. 지난 4월엔 경남 진주 한 아파트에서 방화살인 사건이 발생했다. 피의자는 안인득. 그동안 불이익을 당해 화가 났다면서 21명의 사상자를 냈다. 그는 범행 전인 2011년 1월부터 2016년 7월까지 약 5년간 68차례 조현병 진료를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6월엔 충남 공주시 공주IC 부근에서 역주행하던 화물차가 마주 오던 승용차와 정면 충돌했다. 이 사고로 화물차 운전자 A씨와 함께 탔던 아들, 예비신부로 알려진 승용차 운전자가 숨졌다. A씨 역시 조현병을 앓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 세 사건의 공통점은 △가해자가 조현병을 앓았고 △사건 원인 및 동기가 비(非)논리적이며 △피해자와 가해자 간 친분이 없었다는 점이다. 이른바 ‘묻지마 범죄’ 가해자로 조현병 환자가 연이어 등장하면서 대중은 공포에 휩싸였다. ‘조현병 환자가 언제든 나를 해칠 수 있다’는 불안감이 팽배했다. 실제 올해 들어 ‘조현병 범죄자를 강력 처벌해 달라’ ‘조현병 환자를 격리해야 한다’는 청와대 국민청원만 20건 가까이 올라왔다. 한 시민은 ‘강서구 PC방 김성수 범죄자를 다시 재판하게 해 주세요’라는 글을 통해 “조현병? 지들이 걸린 병이지 왜 그런 사람들한테 피해를 보면서 살아야 합니까?”라며 심신미약 가해자에 대한 강력한 처벌 및 법 개정을 요구하기도 했다. 해당 글은 7월17일 기준 1663명의 지지를 받았다. 조현병 환자에 대한 ‘특단의 조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점차 수면 위로 부상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일상에서 ‘흉기를 든 조현병 환자’를 마주할 확률은 얼마나 될까. 지난해 대한신경정신의학회가 발표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전체 범죄 중 조현병 환자의 범죄 비율은 0.04%다. 우리나라 전체 인구 중 조현병 환자 비율이 약 1% 수준이라는 것을 고려하면 미미한 수치인 셈이다. 그러나 일각에선 조현병 환자가 저지르는 범죄의 ‘수위’를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감정 제어가 쉽지 않은 조현병 환자의 경우, 일반인들에 비해 살인이나 폭행 같은 강력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주장이다.

경찰청이 발표한 최근 5년간 국내 전체 살인 사건(미수·기수 포함)을 살펴보면 △2013년 929건 △2014년 913건 △2015년 929건 △2016년 914건 △2017년 825건이었다. 같은 기간 정신질환자에 의한 살인 사건은 △2013년 58건 △2014년 64건 △2015년 66건 △2016년 73명 △2017년 72건이었다. 전체 살인 사건 가해자 중 정신질환자의 비율은 △2013년 6.24% △2014년 7.0% △2015년 7.1% △2016년 7.98% △2017년 8.72%다.

최근 5년간 국내 전체 폭력 사건을 살펴보면 △2013년 29만4188건 △2014년 29만79건 △2015년 30만5947건 △2016년 30만9394건 △2017년 29만3086건이었다. 정신질환자에 의한 폭력 사건의 경우 △2013년 1817건 △2014년 1985건 △2015년 2214건 △2016년 2625명 △2017년 2890건이었다. 전체 폭력 사건 가해자 중 정신질환자 비율은 △2013년 0.61% △2014년 0.68% △2015년 0.72% △2016년 0.85% △2017년 0.98%다.

커져가는 ‘조현병 환자 강경대응’ 목소리

이 같은 통계를 두고 상반된 2가지 해석이 제기된다. 우선 10명의 살인 사건 가해자 중 조현병 환자 같은 정신질환자는 1명 정도로, 조현병 환자에 대한 공포가 과장됐다는 주장이 나온다. 폭력 사건 역시 마찬가지다. 매년 30만 건 가까운 폭력 사건 중 정신질환자가 일으키는 사건은 1%도 되지 않는다.

그러나 한편에선 가해자 중 정신질환자가 차지하는 비율이 점차 증가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특히 살인까지 이어지진 않았지만, 정신질환자가 가족이나 행인에게 폭력을 행사한 경우가 5년 전 대비 1000명 가까이 증가했다. 최근 조현병 환자가 흉기를 휘둘렀다는 뉴스가 늘어난 게 단순 착시는 아니란 것이다.

범죄 전문가들은 숫자에서 읽히는 이 두 팩트(fact)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대한민국 1세대 프로파일러인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조현병을 앓는 환자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보는 성급한 일반화를 경계했다. 통계에서 나타나듯 전체 범죄자 중 조현병 환자 같은 정신질환자 비율이 결코 높은 수준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 교수는 “조현병 환자를 예비 범죄자로 간주할 그 어떤 근거도 없다”며 “오히려 일반인에 비해 (범죄를 저지를 확률이) 훨씬 낮고, 이를 고려하면 조현병 환자들을 특별히 위험한 존재로 보는 것은 현실을 왜곡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다만 이 교수는 조현병 환자 중 과격한 성향을 가진 ‘1%’에 주목한다. 일관된 행동 패턴을 갖는 조현병 환자의 특성상 한 번이라도 폭력을 휘두르거나 행패를 부렸다면, 재범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실제 최근 각종 살인 사건에 연루된 조현병 환자 대부분이 난동·폭력 등을 일으켰던 전력이 있었다. 결국 이들이 내 가족, 내 앞에 나타나면 우발적 사고가 언제든 벌어질 수 있다는 불안감, 또 이들을 통제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부재하다는 불신이 우리 사회에 ‘조현병 포비아’를 부르고 있다는 얘기다.

이 교수는 “조현병 환자들 중 폭력 전과가 있는 사람들은 위험한 부류가 맞다. 피해망상과 불안 증세가 폭력으로 이어지는 패턴이 반복될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이라며 “이 경우 경찰이 원칙대로 처리하면 된다. 문제가 되는 것은 조현병 환자의 거친 행동을 목격하고도 ‘괜찮아지겠지’ 하고 체포나 입건을 하지 않는 경우다. 영국이나 독일 등은 조현병 환자에 대한 사소한 신고라도 모두 기록하고 사건화한 뒤, 같은 상황이 누적되면 법적인 조처를 취한다. 한국 역시 전과가 있는 조현병 환자에 대해선 단호하게 대처해야 한다. 특히 흉기를 소지하고 다니는 조현병 환자는 치료가 강제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회에선 경찰이 단독으로 정신질환자를 응급입원시킬 수 있도록 하자는 주장이 나왔다. 송석준 자유한국당 의원은 지난 4월19일 ‘정신건강증진·정신질환자 복지서비스 지원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행정입원을 지자체장뿐만 아니라 경찰도 가능하게 하자는 게 개정안 골자다. 현행 정신건강법에선 위해 우려가 큰 정신질환자의 경우 지자체의 의한 행정입원만 가능하다. 급박한 상황이라면 응급입원을 시킬 수 있지만, 경찰과 의사 모두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 같은 행정입원 절차가 복잡한 탓에 정신질환자가 일으키는 각종 사고에 기민하게 대처하지 못한다는 게 송 의원의 주장이다.

 

“포비아 오해에서 비롯…치료받으면 괜찮다”

이 밖에 개정안엔 응급입원을 했다가 퇴원한 경우라도 위해 행위를 반복하거나 위해 행위의 우려가 큰 경우엔 주변인에 대한 접근제한 또는 격리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도 있다. 송 의원은 “조현병을 앓는 것으로 알려진 진주 방화살인 사건 피의자는 이전에도 7차례나 위협적인 난동 신고가 있었다”며 “정신질환자의 위해 행위 우려가 큰 경우에도 이를 제지할 법적 근거가 부족해 정신질환 범죄에 취약하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고 개정안 발의 취지를 설명했다.

조현병 환자에 대한 ‘관리 방법’이 사회 화두로 부상한 가운데, 일각에선 이 같은 논의가 사고를 예방하는 치료나 보호가 아닌 사고가 발생한 뒤의 통제와 처벌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조현병 환자들을 ‘위험 집단’처럼 분류하고 언제든 통제할 수 있다는 사인을 보낸다면, 오히려 조현병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만 키워 환자들이 치료를 기피하고 병력을 숨기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지난 6월27일 정신질환자의 강제입원권을 경찰에 부여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국가인권위원회의 판단이 나왔다. 인권위는 “개정안은 체포·구속영장 없이도 경찰 직권으로 2주간 인신 구속을 할 수 있는데, 이는 형사소송법 등 공권력에 의해 인신 구속이 허용되는 다른 법률과 비교해 과도하다”고 설명했다. 접근제한 및 격리조치 의무화 내용도 인권위는 “요건 및 절차, 범위 등의 구체성이 떨어져 남용의 우려가 있다”고 판단했다. 조현병 환자에 대한 명확한 진단 등이 생략된 채, 이상행동을 보였다는 근거만으로 그들을 격리·통제하려는 것은 인권침해 소지가 있다는 것이다.

대한조현병학회 홍보이사인 이명수 연세라이프정신건강의학과 원장은 “최근 각종 사건·사고를 일으킨 환자들 대부분이 치료를 중단했던 사람들이다. 약물 치료 등을 진행 중인 조현병 환자가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고 진단했다. 실제 진주 아파트 방화살인 사건 피의자 안인득 역시 사건 이전 2년9개월 동안 치료를 받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 원장은 “물론 치료받지 않은 조현병 환자들은 위험할 수 있다. 국민의 안전이 가장 중요하기에, 정부가 나서서 조현병 환자를 관리·치료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다만 치료받고 있는 조현병 환자들에겐 편견을 갖지 않고, 우리 사회 구성원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인식의 전환도 필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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