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현대차그룹, 전국 농·산지와 국유지 제멋대로 썼다
  • 송응철 기자 (sec@sisajournal.com)
  • 승인 2019.07.22 10:00
  • 호수 1553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공장·연구소 9곳 토지 불법 전용·점용하다 ‘철퇴’…현대차그룹 “문제 반복되지 않도록 자구 노력”

현대자동차그룹이 전국의 토지를 불법 전용·점용하다 동시다발적으로 철퇴를 맞았다. 최근 6개월 사이 전국 지자체에 위법 사항이 적발된 공장과 연구소만 9곳에 달한다. 농·산지와 국유지를 적법한 허가 절차를 거치지 않고 도로나 주차장 등으로 개발해 무단으로 사용해 온 것이다. 국토의 효과적인 운용을 위해 정부가 정해 놓은 ‘룰’을 외면했다는 지적이다. 이번 일로 그동안 윤리준법경영을 강조해 온 현대자동차그룹 기업 이미지에도 타격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경기도 광명시 소하동에 있는 기아자동차 소하리공장 ⓒ 시사저널 임준선
경기도 광명시 소하동에 있는 기아자동차 소하리공장 ⓒ 시사저널 임준선

도로·주차장 등으로 개발해 무단 사용

이번 논란의 대표적 사례는 경기도 광명시의 기아자동차 소하리 공장이다. 기아자동차의 모태 공장인 이곳에선 농지 불법 전용이 적발됐다. 문제의 부동산은 ‘광명시 소하동 610-4, 610-6번지’ 두 필지다. 이곳은 개발제한구역이지만 아스팔트로 포장돼 그동안 도로와 카캐리어 주차장 등으로 이용돼 왔다. 당국 현장조사 결과 위법 사항이 확인되면서 기아자동차엔 원상복구 명령이 내려졌다. 기아자동차는 오래전부터 사용해 오던 도로여서 불법 전용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입장이다. 기아자동차 관계자는 “최근 광명시에서 시정명령이 내려오면서 문제를 인식했다”며 “현재 원상복구와 전용허가를 통한 양성화 방안 중에서 고민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차량 생산과 수출 기능을 갖춘 경기도 기아자동차 화성공장에서도 농지관리법 위반 사실이 당국에 포착됐다. 문제가 된 ‘화성시 우정읍 매향리 709번지’ 외 6필지는 아스팔트로 포장돼 500m 길이의 화성공장 후문 진입로로 사용돼 왔다. 기아자동차 관계자는 “현재 해당 농지가 도로로 포장된 경위와 사실관계를 파악하며 그에 대한 대책을 강구하는 중”이라고 밝혔다.

현대자동차에선 충청남도 아산시에 위치한 아산공장이 국유지를 무단으로 점유한 사실이 당국에 포착됐다. 문제의 필지는 ‘아산시 인주면 대음리 202-16번지(구거)’다. 현대자동차는 그동안 이 필지를 공장부지 일부로 사용해 왔다. 확인 결과 정상적인 점용허가 절차를 거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나면서 당국은 현대자동차에 점용료 징수 조치를 내렸다. 현대자동차 관계자는 “당국의 제재 이후 사용허가를 받고 정당한 사용료를 내며 해당 필지를 사용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현대자동차는 특히 산하 연구소 세 곳 모두에서 농·산지 불법 전용이나 국유지 무단점용 사실이 불거졌다. 현대·기아차의 환경기술 강화와 친환경차 개발을 위한 현대자동차 환경기술연구소는 국유지(하천)인 ‘용인시 기흥구 마북동 583-6번지’를 주차장으로 개발해 활용해 왔다. 이 과정에서 점용허가가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확인되면서 현대자동차에는 원상복구 명령이 내려졌다. 당국은 현대자동차가 명령을 이행하지 않을 경우 과태료를 부과한다는 방침이다.

미래 자동차 기술을 선행 연구하는 경기도 의왕시의 현대자동차 중앙연구소 역시 국유지를 무단 점유하다 당국의 제재를 받았다. 국유지인 ‘의왕시 삼동 산108번지’를 연구소 진입로와 연구소 부지로, 541번지를 주차장 일부로 개발해 사용해 온 게 문제가 됐다. 이 때문에 당국은 현대자동차에 변상금을 부과했다. 현대자동차 관계자는 “현재 의왕시와 협의를 통해 해당 부동산을 매입하거나 전용허가를 받아 사용하는 등의 방안을 모색 중”이라고 밝혔다.

 

현대차 연구소 3곳 모두 논란에 휘말려

울산·소하리연구소를 통합해 출범한 경기도 화성시 현대자동차 기술연구소는 농지·산지관리법 위반과 국유지 점용이 모두 적발됐다. 먼저 현대자동차 소유의 ‘경기도 화성시 장안면 석포리 산24-45번지(산지)’에는 불법 송수신 시설이 축조된 사실이 확인됐다. 당국은 이를 산지를 불법 전용한 것으로 판단하고 복구명령을 내렸다. 이와 관련해 현대자동차는 다소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이 회사 관계자는 “통신사의 제안에 따라 휴대폰 송수신 시설 설치에 동의한 것”이라며 “현재 해당 통신사 측에 조속한 문제 해결을 촉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 연구소 입구 인근의 ‘화성시 남양읍 장덕리 975번지(농지)’는 주차장과 도로로 이용된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더해 당국은 현재 기술연구소가 국유지(하천)인 ‘화성시 팔탄면 노하리 621-2번지’ 일부를 자동차 주행시험장으로 개발한 정황을 파악하고 조사를 벌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현대자동차 관계자는 “장덕리 975번지 도로의 경우는 인근 주민들이 건립을 요구해 왔고 공익을 위한 차원에서 이런 제안에 응한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기아차 외 계열사에서도 위반 사항은 발견됐다. 현대모비스 이화공장이 그런 경우다. 현대모비스는 차량에 탑재되는 다양한 부품을 생산하는 업체로, 이화공장은 이 중 섀시 및 운전석 모듈 생산을 담당하고 있다. 이곳에선 국유지를 무단 점유한 사실이 당국에 포착됐다. ‘화성시 우정읍 이화리 1177-13번지(구거)’ 일부를 이화공장 주차장으로 개발한 것이다. 이에 당국은 현대모비스에 무단점유에 대한 변상금을 부과하고 원상복구 명령을 내렸다. 차량용 시트 제조업체인 현대엠시트는 공장 두 곳에서 법 위반 사실이 포착됐다. 모두 국유지를 무단 점용한 경우다. 울산공장은 국유지인 ‘경주시 외동읍 석계리 산199-2, 산288번지’ 두 필지를 주차장으로 사용해 오다 점용료를 납부하게 됐고, 아산공장도 국유지(농지)인 ‘아산시 둔포면 신남리 647번지’에 가설건축물을 건설해 사용해 오다 당국의 시정명령을 받았다.

이처럼 전국 9개 사업장 토지의 불법 전용과 점용 사실이 동시에 불거진 것은 대단히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그러나 이는 현대자동차그룹만의 일은 아니다. 토지를 불법 전용하다 적발된 다른 기업들의 사례도 적지 않다. 정부는 계획한 목적에 따라 효과적으로 국토를 운용하기 위해 토지를 정해진 지목으로만 사용하도록 하고 있다. 물론 용도 외로 토지를 사용할 수 있는 길도 열어놨다. 토지 전용허가 절차를 통해서다. 그럼에도 토지를 불법 전용·점용하는 일이 끊이지 않는 까닭은 무엇일까.

먼저 정상적인 전용 절차를 위한 금전적 부담을 들 수 있다. 전용허가를 받기 위해서는 전용부담금을 납부해야 한다. 토지 1㎡당 개별 공시지가가 5만원을 초과할 경우 1㎡당 5만원의 부담금이 매겨진다. 또 전용한 토지를 매각할 때도 공시지가 상승분의 25%를 세금으로 납부해야 한다. 그렇다고 매번 전용허가가 나는 것도 아니다. 허가를 위해선 환경에 미치는 영향 등을 다방면으로 고려하기 때문이다. 섣불리 전용허가를 신청했다 전용불가가 기정사실화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전용부담금과 허술한 단속이 불법 부추겼나

여기에 단속이 잘 이뤄지지 않는다는 점도 불법 전용에 대한 유혹을 부추긴다는 지적이다. 일부 지자체가 집중단속 기간을 정해 실태 점검에 나서고 있지만 이렇다 할 성과는 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단속 인력 부족이 그 원인으로 지목된다. 이 때문에 현재 토지 불법 전용 등에 대한 단속이 민간의 신고에 의존하다시피하고 있다. 실제 상기한 현대자동차그룹의 사례 대부분도 민간의 문제 제기에 따라 적발이 이뤄진 것이다.

뒤늦게 불법 전용·점용 사실이 적발되더라도 문제는 없다. 벌금을 내고 원상복구하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결국 토지 소유주 입장에서는 구태여 복잡한 절차를 거쳐 토지전용허가를 받아낼 이유가 없는 셈이다. 현대자동차그룹이 전국적으로 불법 전용·점용을 저질러온 것도 바로 이 때문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해 현대자동차 관계자는 “최근 6개월 사이 지자체로부터 시정명령이 내려오면서 문제를 인식하게 됐다”며 “이번 일을 계기로 같은 문제가 반복되지 않도록 자구 노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밝혔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