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아동복, ‘日전범기’ 닮은 문양 파장…“글로벌 매출 절반 한국인데”
  • 공성윤 기자 (niceball@sisajournal.com)
  • 승인 2019.07.20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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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는 “시드니 오페라하우스 영향”이라지만 대표와 디자이너 모두 일본 관련 있어

국내에서 수십억원의 매출을 올리는 스페인 의류업체가 일본 전범기를 닮은 디자인을 선보여 빈축을 사고 있다. 최근 불거진 한·일 갈등과 맞물려 불매운동 조짐까지 일고 있다. 업체 측은 사과했지만 “앞뒤가 맞지 않는 변명”이란 비판 속에 오히려 화를 키운 형국이다. 

스페인 아동복 브랜드 ‘타오(TAO·The Animal Observatory)’는 최근 2019 FW(가을·겨울) 콜렉션을 인스타그램을 통해 공개했다. 이 중 한 윗옷의 왼쪽 가슴 부분에 달린 패치(장식용 조각)가 도마에 올랐다. 빨간색 원 주위로 수 갈래의 선이 뻗어나가는 문양이 마치 일본 군국주의를 상징하는 욱일기와 비슷했기 때문이다. 

일본 전범기 '욱일기' 형상(왼쪽)과 최근 타오 인스타그램에 올라왔다가 삭제된 2019 FW 콜렉션 중 일부 제품. ⓒ 인스타그램 캡처
일본 전범기 '욱일기' 형상(왼쪽)과 최근 타오 인스타그램에 올라왔다가 삭제된 2019 FW 콜렉션 중 일부 제품. ⓒ 인스타그램 캡처

 

7월19일 타오의 사과를 촉구하며 국내 온라인 쇼핑몰 '부비부'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사진. ⓒ 부비부 인스타그램 캡처
7월19일 타오의 사과를 촉구하며 국내 온라인 쇼핑몰 '부비부'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사진. ⓒ 부비부 인스타그램 캡처


“애 옷에 전범기라니 진짜 배신감”

이는 소비자 박민지(31·여)씨에 의해 처음 공론화됐다. 4살짜리 딸을 둔 그는 7월19일 인스타그램에 패치 사진을 올리며 “애 옷에 전범기라니 진짜 배신감(든다)”고 썼다. 영문으로 된 항의문도 같이 공개했다. 타오 본사에 이메일을 통해 집단으로 문제를 제기하자는 취지였다. 박씨의 게시글은 삽시간에 퍼졌다. 

곧 타오는 인스타그램에서 옷 사진을 내렸다. 이어 박씨를 포함한 일부 소비자 인스타그램에 이날 본사 계정으로 영문 댓글을 달았다. “어떤 식으로든 우리 디자인이 무례를 끼쳤다면 진심으로 깊게 사과한다” 등의 내용이었다. 

곽호영 타오코리아 대표도 한글 사과문을 냈다. 그는 인스타그램에 “엄중히 받아들여야 할 역사적인 아픔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당사의 무지함에 대해 깊이 사과드립니다”라고 밝혔다. 이어 “관련 제품은 국내 시장에서 회수하기로 결정했다”며 “공식 홈페이지서도 판매를 하지 않을 것이며 전 세계 리테일삽에도 리콜 요청할 계획”이라고 했다. 

다만 곽 대표와 타오 본사는 문제의 패치에 대해 “타오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라이아 아길라(Laia Aguilar)가 시드니 오페라하우스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었다”고 해명했다. 시드니의 맑은 날 태양에 의해 생긴 오페라하우스의 그림자를 형상화했다는 것이다. 타오 본사는 “결코 고의는 없으며 그 어떤 역사적 사건과 연관되는 것도 원치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래도 비판은 사그라들지 않았다. 디자인과 일본의 연관성이 드러나서다. 프랑스 패션잡지 ‘더 소셜라이트 패밀리(TSF)’는 2016년 12월 라이아 아길라와의 인터뷰를 실으며 “모두가 알 수 있듯 그의 스타일은 일본으로부터 영감을 받았다(Recognisable among all, Laia’s style takes inspiration from Japan)”고 했다. 현재 타오 인스타그램에서 삭제되지 않은 또 다른 FW 콜렉션 중엔 빨간색 원과 선이 그려진 모자가 있다.

타오의 장 앤드루(47) 대표도 일본과 인연이 있다. 7월19일 주간조선 인터뷰 기사에 따르면, 앤드루 대표는 세계적인 일본 생활용품 브랜드 무지(MUJI)를 2008년 스페인에 들여온 경험이 있다. 그는 유럽 다른 곳과 달리 유일하게 프랜차이즈 형태로 무지를 11년간 운영했다. 최근엔 일본 본사에 라이선스를 넘겼다. 당시 무지를 운영한 경험이 타오를 글로벌 브랜드로 만드는 데 발판이 됐다고 한다. 

현재 타오 인스타그램에 올라와있는 2019 FW 콜렉션 중 일부 제품. 아동 모델이 쓴 모자의 문양을 두고
현재 타오 인스타그램에 올라와있는 2019 FW 콜렉션 중 일부 제품. 아동 모델이 쓴 모자의 문양을 두고 "전범기를 떠올리게 한다"는 주장이 있다. ⓒ 인스타그램 캡처

 

곽호영 타오코리아 대표가 7월19일 인스타그램에 올린 사과문. ⓒ 인스타그램 캡처
곽호영 타오코리아 대표가 7월19일 인스타그램에 올린 사과문. ⓒ 인스타그램 캡처


“댓글로 변명하지 말고 홈페이지에 사과문 올려야”

소비자 박씨는 시사저널과의 통화에서 “예전부터 타오의 옷에 빨간 원이나 일본어를 형상화한 무늬가 자주 눈에 띄었다”며 “일본 브랜드인 줄 알았다는 엄마들도 간혹 있다”고 했다. 또 “인스타그램으로 문제를 알리기 전부터 본사에 항의메일을 보냈는데 전혀 답이 없었다”며 “내 글이 인터넷에 퍼지기 시작하니 그제서야 사과문을 올리는 행태를 보였다”고 꼬집었다. 

2015년 스페인에서 설립된 타오는 이듬해 국내에 소개됐다. 당시 현대미술 작품과도 같은 독특한 디자인으로 주목을 받았다. 시즌이 시작되자마자 불티나게 팔려 ‘타오 대란’이란 단어까지 생겼다. 그럼에도 국내에 전문 매장이 단 한 곳도 없다. 구매는 편집샵들의 자체적인 판매나 해외 직구를 통해 이뤄진다. 이렇게 타오가 한국에서 올린 연매출은 약 70억원. 전 세계 매출 160억원의 43%를 차지하고 있다. 

현재 ‘헤이든’ 등 아동복 공동구매 인터넷 카페에선 타오 제품을 사지 말자는 의견이 속속 올라오고 있다. 박씨는 “글로벌 매출 절반이 한국에서 나오는데, 우리가 불매운동이 본격화되면 매출에 심각한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타오가 특정 소비자에게 댓글로 변명을 할 게 아니라, 홈페이지에 영문으로 공식 사과문을 올려 전 세계 사람들이 이번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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