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총통 선거 판세까지 뒤흔든 ‘홍콩 시위’
  • 모종혁 중국통신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7.30 17:00
  • 호수 1554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反中’ 차이잉원과 ‘親中’ 한궈위 희비 쌍곡선…“2000년 선거 재판 될 수도”

“한 치 앞을 예측할 수 없다. 2000년 10대 총통 선거의 재판이 될 가능성이 크다.”

지난 7월23일 대만정치대학의 한 교수는 내년 실시될 대만 차기 총통 선거를 두고 19년 전의 과거사를 들췄다. 1999년 국민당은 롄잔을 총통 후보로 선출했다. 당시 현역 부총통인 데다, 리덩후이 총통의 지원이 절대적으로 작용했다. 하지만 당내에는 대중적으로 지명도가 높은 쑹추위가 있었다. 쑹추위는 당 비서장, 민선 대만성장 등을 역임하며 막강한 세력을 구축했다. 리 총통이 노골적으로 롄잔을 밀자, 쑹추위는 탈당해 무소속으로 선거에 출마했다. 결국 2000년 선거 결과, 야당인 민주진보당(민진당)의 천수이볜이 39.3%의 득표율로 당선했다. 여권 표가 쑹추위(36.8%)와 롄잔(23.1%)으로 갈리면서 어부지리를 한 것이다. 이로 인해 대만 역사상 최초로 정권 교체가 이뤄졌다.

이 교수는 “이후 11~15대는 모두 국민당과 민진당의 양자 대결이었지만, 내년은 분명히 다르다”며 “높은 득표력을 지닌 커원저 타이베이 시장이나 궈타이밍 전 훙하이정밀공업 회장 둘 중 적어도 한 명은 무소속으로 총통 선거에 나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무소속인 커 시장은 출마 여부를 아직 밝히지 않았다. 궈 전 회장 측은 중국국민당(국민당) 총통 후보 경선에서 떨어진 뒤 경쟁했던 한궈위 가오슝 시장에게 축하인사를 전했다. 그런데 왜 2000년 선거의 데자뷔가 거론되는 것일까. 민진당과 국민당 후보들 모두 약점을 안고 있는 탓이다.

왼쪽부터 민진당 소속 차이잉원 총통, 한궈위 가오슝 시장, 궈타이밍 전 훙하이정밀공업 회장, 커원저 타이베이 시장 ⓒ EPA·AP 연합
왼쪽부터 민진당 소속 차이잉원 총통, 한궈위 가오슝 시장, 궈타이밍 전 훙하이정밀공업 회장, 커원저 타이베이 시장 ⓒ EPA·AP 연합

‘라타이메이’ 차이잉원 對 ‘외성인’ 한궈위

올해 초만 해도 민진당 소속 차이잉원 총통의 재선을 예견하는 대만인들은 거의 없었다. 지난 2월 ‘빈과일보’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차이 총통에 만족한다는 응답은 27.4%에 불과했다. 그에 반해 ‘만족하지 않는다’는 55.6%에 달했다. 민진당 후보 중 누구를 선호하냐는 질문에는 라이칭더 전 행정원장(총리)이 38.6%로 차이 총통(17.6%)을 압도했다. 자신이 발탁한 총리보다 2배 이상 격차로 뒤처지는 굴욕적인 상황이었다. 차이 총통은 한 시장(35.1%), 커 시장(28.6%)과의 가상 3자 대결에서도 22%로 꼴찌였다.

이 같은 상황은 4월까지 계속됐다. 그런데 5월부터 차이 총통의 지지율이 조금씩 반등하기 시작했다. 올해 들어 중국 정부와 시진핑 국가주석이 잇달아 무력통일 불사를 언급한 데 대해, 차이 총통이 강력한 주권 수호 의지를 천명했기 때문이다. 또한 공약으로 약속했던 동성결혼 특별법을 입법원(국회)에서 통과시켰다. 이런 모습을 SNS로 적극 홍보하면서 젊은이들에게 대만을 수호하고 공약을 지키는 ‘라타이메이’라는 이미지를 심어주었다. ‘라타이메이’는 화끈한 성격의 대만 여성이라는 뜻이다. 그 덕분에 당내 지지율에서 라이칭더를 맹렬히 쫓아갔다.

여기에 6월9일부터 홍콩에서 ‘범죄인 인도 법안’을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가 일어나면서 전세가 바뀌었다. 6월12일 발표된 ‘빈과일보’ 여론조사에서 35.4% 대 33.8%로 라이칭더를 처음 따돌렸다. 또한 한 시장(31.4%), 커 시장(26.9%)과의 3자 대결도 29.6%로 2위로 올라섰다. 그 여세를 몰아 다음 날 발표된 민진당 경선에서 차이 총통은 35.68%의 지지율을 얻어 라이칭더(27.48%)를 눌렀다. 막판에 대역전극을 펼친 것이다. 그에 반해 제1야당인 국민당의 후보 선출은 순조로웠다. 비록 궈 전 회장이 참여해 경선판을 잠시 흔들었으나 한궈위 대세를 뒤바꾸진 못했다.

한궈위 시장은 지난해 11월 지방선거에서 민진당이 독식해 왔던 가오슝 시장에 국민당 인사로는 최초로 당선됐다. 그 뒤 차기 대권주자로 급부상했다. 아버지가 국민당군 장교로 외성인(外省人) 2세대인 데다, 친근하고 소탈한 아저씨 이미지로 호감을 샀다. 외성인은 1949년 국공내전에서 패해 대만으로 건너온 이들을 가리킨다. 국민당은 외성인 출신이 주류다. 오랫동안 정치권과 거리를 두며 기업을 운영했던 점도 한몫했다. 한 시장은 1993년부터 입법의원을 3선이나 연임했다. 하지만 2002년 낙선한 뒤 2004년 사립학교를 설립해 운영했다. 또한 런허시 부시장, 타이베이 농산물도매공사 사장 등으로 일했다. 이랬던 한 시장이 지방선거에서 누구도 출마를 원하지 않았던 가오슝시에 국민당 깃발을 꽂으면서 일약 스타 정치인으로 발돋움했다. 한 시장은 “낡고 가난한 가오슝을 대만 최고의 부자 도시로 만들겠다” “10년 안에 가오슝 인구를 500만 명까지 늘리겠다” 등의 공약을 내걸었다.

 

4자 대결 구도 전망도

문제는 이런 공약이 현실적으로 실현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또한 그동안 정치인으로서, 시장으로서 뚜렷하게 거둔 성과가 없다. 또 다른 문제는 노골적인 친중(親中) 성향을 보여와서 2030세대의 반감이 아주 크다. 특히 홍콩 시위 사태의 여파와 중국 개입설까지 불거지면서 한 시장을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 7월16일 파이낸셜타임스는 중국 정부가 왕왕그룹이 소유한 ‘중국시보’와 CTiTV에 한 시장을 집중 부각하도록 직접 지침을 내렸다고 보도했다.

왕왕그룹은 대만 제과업계 1위로, 중국에 막대한 투자를 해 왔다. 중국에서 많은 매출을 내고 있는 왕왕그룹 입장에서 중국 정부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다. 비록 중국 정부는 “근거가 없다”고 반박했지만 대만 정계에서는 이를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홍콩 시위 사태 이후 한 시장은 일국양제(一國兩制·한 국가 두 체제)를 거부한다며 ‘하나의 중국’ 원칙을 찬성한다고 밝힌 바 있다. 따라서 민진당에서는 한 시장이 국민당 총통 후보로 결정된 현실을 내심 반기는 기류다. 이런 상황을 알기에 궈 전 회장은 한 시장에 대한 지지를 아직까지 직접 말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민진당에 유리한 국면도 아니다. 커원저 시장이 무소속으로 총통 선거에 출마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커 시장은 차이잉원 총통과 같은 본성인 출신이다. 본성인은 명·청대에 주로 푸젠에서 대만으로 건너온 한족이다. 게다가 두 사람은 정치·외교·사회 등 여러 분야에서 정견이 비슷해 지지층이 겹친다. 과거 민진당은 커 시장과 협력했으나 지난해 지방선거에서 자당 후보를 출마시키면서 관계가 틀어졌다. 만약 커 시장이 이번에 출마한다면 민진당 입장에선 최대 악재다.

정국이 묘한 방향으로 흐르면서 총통 선거가 4자 대결이 되는 게 아니냐는 전망마저 나온다. 대만은 광역시장이 공직을 유지하면서 총통 선거에 나갈 수 있다. 정당 경선에서 떨어진 낙선자도 탈당해 무소속으로 출마할 수 있다. 그렇기에 지난 7월22일 대만민의기금회가 발표한 여론조사에서는 4자를 대입시켰다. 결과는 차이 총통 29.7%, 한 시장 29.3%, 커 시장 18.3%, 궈 전 회장 15.9% 순이었다. 차이 총통과 한 시장의 양자 대결에서는 45% 대 40.1%였다. 내년 1월까지 5개월여밖에 남지 않은 대만 총통 선거, 여전히 짙은 안개에 휩싸여 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