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성으로 흥한 마크롱, 도덕성으로 망하나
  • 최정민 프랑스 통신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8.01 14:00
  • 호수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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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롱 정부 내각, 부도덕 행위 등 논란으로 장관 9명 사임
국민 정서 안중에 없이 합법성 여부만 따져

40도를 넘나드는 사상 초유의 폭염이 들이닥친 올여름, 프랑스 여론은 정치권의 도덕성 논란으로 더욱 뜨겁게 달궈졌다. 내각 서열 2위인 프랑수아 드 뤼지 환경부 장관이 하원의장 재직 당시인 2017년과 2018년, 10여 차례의 사적인 저녁식사 자리를 공관에서 호화롭게 마련했던 것이 알려진 게 화근이었다. 지인들을 초대한 만찬 자리엔 공관의 인력이 대거 활용됐고, 공금으로 산 바닷가재와 1병당 450유로(약 59만원)에 육박하는 고급 포도주가 테이블에 올랐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사안은 일파만파로 번져 나갔다. “이제 노란조끼 시위대가 대형 바닷가재 풍선을 들고 시위장에 등장할 것”이라는 웃지 못할 예견들이 이어지기도 했다.

“합법·불법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도덕성의 문제다.” 이번 논란에 대한 프랑스 최대 여론조사 전문기관 이폽(Ifop)의 제롬 푸케 소장의 지적이다. 7월10일 보도 직후 드 뤼지 장관은 기자회견을 자청해 하나하나 반박했다. 당시 저녁식사는 모두 ‘전문가 그룹’을 초청한 자리였으며, 따라서 각계의 의견을 청취하는 하원의장의 업무적 성격이 짙었다고 항변했다. 그러나 이내 프랑스의 간판 정치평론가인 장 미셸 아파티가 자신이 해당 저녁 모임에 초대된 적이 있으며, “장관의 부인을 통한 친목 성격의 모임이었다”고 고백해 드 뤼지 장관의 결백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사안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환경부 장관 임명 후 장관 공관 보수를 위한 비용으로도 6만3000유로(약 8300만원)가 지출됐다는 보도가 이어지면서 그를 향한 비난 여론은 더 이상 걷잡을 수 없게 됐다.

프랑스 정부 내각 서열 2위였던 프랑수아 드 뤼지 환경부 장관(오른쪽)이 과거 공관 내 호화 만찬 논란으로 자리에서 물러났다. 대선부터 줄곧 도덕성을 강조해 온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의 이미지가 또 한 번 타격을 받았다. ⓒ EPA 연합
프랑스 정부 내각 서열 2위였던 프랑수아 드 뤼지 환경부 장관(오른쪽)이 과거 공관 내 호화 만찬 논란으로 자리에서 물러났다. 대선부터 줄곧 도덕성을 강조해 온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의 이미지가 또 한 번 타격을 받았다. ⓒ EPA 연합

“노란조끼, 바닷가재 풍선 들고 시위할 것”

마크롱 행정부는 그 어느 때보다 긴장한 모습이 역력했다, 유류세 인상에 대한 반발로 촉발돼 35차까지 진행된 노란조끼 시위 국면이 가까스로 가라앉은 상황에서 다시금 시위대의 분노에 불을 지를 사안이 제대로 등장한 것이다. 총리는 문제의 환경부 장관을 즉각 호출했다. 논란이 터졌을 당시 해외 순방 중이던 마크롱 대통령은 “순방 중 국내 사안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다”는 기존 입장만 되풀이해 또 한 번 긁어 부스럼을 만들었다. 드 뤼지 장관은 보도 6일 만에 결국 자리에서 물러났다. 사태의 확대를 우려한 마크롱 행정부 그 누구도 떠나는 장관을 잡는 시늉조차 하지 않았다.

마크롱 정부는 역대 어떤 정부보다도 정치인의 ’도덕성‘을 강조하며 출발했다. 마크롱이 일찍이 대선 때부터 ‘정치 개혁’에 대한 강고한 의지를 보였던 것도, 대선 당시 경쟁자이자 유력 당선자로 꼽히던 프랑수아 피용 공화당 후보가 세비 횡령과 부인의 위장취업 등 각종 부도덕한 의혹들로 고꾸라지는 걸 지켜봤기 때문이다. 경쟁 후보에 대한 국민적 공분이 팽배해지는 걸 체감한 마크롱 후보는 그때부터 이와 정반대 이미지를 한껏 내세우며 신뢰와 입지를 쌓아 나갔다. 프랑스 국민들 역시 마크롱의 ‘젊고 청렴한’, 여느 후보들과 사뭇 다른 이미지에 공감하며 그에 대한 지지를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임기 2년이 흐르는 동안, 과거 마크롱의 강경했던 소신은 내각의 줄지은 낙마로 아픈 부메랑이 돼 돌아왔다. 마크롱 집권 이후 26개월간 물러난 장관의 숫자는 총 15명이다. 그중 절반이 넘는 9명이 각종 도덕성 논란에 휩싸여 옷을 벗었다. 사임 레이스의 출발선은 마크롱 집권 한 달 만인 2017년 6월, 마크롱 당선의 일등공신이자 최측근인 리샤르 페랑 국토부 장관이 끊었다. 자신의 지역구에서 부인의 사업을 위한 건물을 임대하는 과정에 부당한 압력을 행사한 것이다. 대선에서 마크롱과 연대하며 당선에 힘을 실었던 중도파의 거물 프랑수아 바이루가 법무부 장관에 등용되자마자 공금 유용 의혹으로 곧이어 자리에서 물러나기도 했다. 프랑스 사상 두 번째 여성 국방부 장관으로 주목을 받았던 실비아 굴라르 역시 유럽의회 의원 재직 당시 보좌관을 허위로 채용했다는 의혹이 불거져 사직서를 제출했다. 이 세 건은 모두 같은 달 며칠 간격으로 발생했다. 마크롱을 대통령 자리에 앉힌 ‘도덕적’ 이미지는 이처럼 빠른 속도로 무너져내렸다. 이후에도 로라 프레셀 체육부 장관, 프랑수아 니센 문화부 장관 등이 세금 축소 등의 의혹으로 지난해 모두 다른 인물로 교체됐다. 그 무렵 마크롱의 국정지지율은 대통령 당선 당시 얻었던 66%의 3분의 1 토막인 20%대 초반으로 추락한 상태였다.

“새로운 정치를 약속했지만, 구태가 더 빠르게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양상.” 마크롱 정부에 대해 프랑스 정치권과 전문가들은 이같이 평가하고 있다. 정부 전반에 퍼진 도덕적 해이와 잦은 사퇴에 따른 업무 공백 우려 또한 연일 지적되고 있다. 그럼에도 정부는 여론의 분노를 한참 실감하지 못하는 듯했다. 이번 만찬 논란이 터진 직후 정부는 해당 논란이 ‘합법이냐 불법이냐’를 거듭 쟁점화했다. 합법이든 불법이든 1병당 450유로짜리 와인이 올라가는 만찬 자체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국민 정서는 안중에도 없었다.

 

의혹 해소되지 않았는데도 “나는 결백”

마크롱은 드 뤼지 장관이 사임 의사를 발표한 지 하루 만에 교통부 장관인 엘리자베스 본을 환경부 장관 자리에 겸직 임명했다. 프랑스 언론은 환경정책의 동력이 상실되는 것을 막기 위한 빠른 조치라고 평가하면서도 다음 논란의 주인공은 또 누가 될지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내각 서열 2위를 날려버린 이번 스캔들이 마크롱 정부의 도덕성 논란의 종지부라고 생각하는 이는 거의 없다. 오히려 정부는 과거 도덕성 논란으로 자리를 떠난 인사들을 하나둘 다른 자리에 재임명하는 분위기다. 2017년 6월 마크롱 내각 인사 중 처음으로 사임을 표한 리샤르 페랑 전 국토부 장관은 자리에서 물러난 지 얼마 안 돼 하원의장으로 임명됐다. 그를 둘러쌌던 의혹들은 여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다.

이번 스캔들의 주인공 드 뤼지 전 장관은 사임 후인 7월23일 저녁 프랑스2 공영방송에 출연해 “나의 결백함은 증명됐다”고 거듭 강변했다. 그가 제시한 근거는 하원의원에서 제출한 ‘혐의 없음’이란 보고서 단 한 장이었다. 공금을 사용한 초호화 저녁식사 자리에 대한 도덕성 지적엔 단 한마디의 해명도 내놓지 못했다. 그가 주장한 결백함은 국민 정서가 정의하는 결백과는 거리가 매우 먼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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