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도발’은 이제 장기전에 접어들었다
  • 배종찬 인사이트케이 연구소장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7.29 08:00
  • 호수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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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종찬의 민심풍향계] 일본 국민들의 文대통령에 대한 반감, 혐한, 과거에 대한 엇갈린 판단

7월1일 시작된 아베 일본 총리의 경제보복 조치는 끝이 보이지 않는다. 일본은 반도체 주요 소재 부품의 수출규제를 발표하면서 그 이유를 우리 정부의 신뢰상실로 돌렸다. 지난해 한국 대법원의 일본 전범기업 강제징용 배상 판결을 의미한다. 국내에선 한때 ‘한국 때리기’의 진짜 속셈이 7월21일 실시된 일본 참의원 선거 때문이 아닐까라는 분석이 제기됐다. 선거만 끝나면 일본의 보복 칼끝이 무뎌질 것이란 기대였다.

그러나 순진한 판단이었다. 참의원 선거에서 일본 연립여당은 과반 의석을 달성했다. 사실상의 승리다. 헌법 개정을 위한 3분의 2 의석을 차지하지는 못했지만 이미 3번째 총리직을 수행하고 있는 아베 내각에 대한 일본 국민들의 피로감을 감안한다면 좋은 성적이다. 일본 내각은 단기전 태세가 전혀 아니다. 아베 도발이 장기화할 결정적 이유는 일본 국민들의 한국에 대한 민심이 악화된 상태이기 때문이다. 아베 집권 이후 일본 국민들의 한국에 대한 여론은 리더, 혐한, 과거로 요약된다. 이 세 가지 감정은 아베 내각이 어느 때라도 ‘한국 때리기’를 가능하게 하는 무기가 되고 있다. 

7월21일 일본 참의원 선거 유세 현장에 모인 도쿄 시민들 ⓒ EPA 연합
7월21일 일본 참의원 선거 유세 현장에 모인 도쿄 시민들 ⓒ EPA 연합

첫째는 리더에 대한 일본 국민 여론이다. 일본 국민들의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신뢰는 매우 부정적이다. 과거사를 생각한다면 피해국의 지도자를 대하는 평가로 받아들기 어려울 정도다. 대한민국이 결코 일본에 위협을 가하지도 않았고, 경제적으로 일본에 피해를 입힌 사실조차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지속적인 ‘한국 때리기’와 상대국 지도자에 대한 불신 조장이 일본 국민들의 감정에 이입된 까닭이다.

한국일보와 요미우리신문이 한·일 양국 국민들을 대상으로 지난 5월 실시한 조사(자세한 개요는 그래프에 표시)에 따르면, 일본 국민 응답자 75%는 문 대통령을 불신하는 결과로 나타났다(그림1). 일본 국민들의 응답 결과를 보면 문 대통령에 대한 많은 정보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신뢰하지 않는다는 반응이다. 이성적인 평가라기보다 감정적인 결과로 보게 되는 이유다. 구체적인 근거가 있는 불신이라면 상호 신뢰회복 노력이 가능하겠지만, 이웃 나라 지도자에 대한 비이성적인 불신 감정이 팽배한 상태다. 이성적인 이해가 아니라 정치권에서 이용하기 쉬운 감정적 반응이므로 아베 도발이 단기전이 아니라 장기전으로 갈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日 보수우익에 한국은 좋은 먹잇감

두 번째는 ‘혐한’이다. 혐한이란 한국에 대해 그리고 한국인에 대해 혐오하는 일본인들의 감정을 의미한다. 우리 국민들로서는 선뜻 받아들이기 힘든 용어다. 36년간 우리나라를 강제 점유하며 고통을 주었고 해방과 함께 분단국가의 숙명을 지게 만든 장본인이 일본이다. 그런데 가해자가 피해자를 미워한다니 어처구니없는 개념이다. 그러나 일본 내 민심은 그렇지 않다. 과거사로 출발해 각종 스포츠마다 치열한 대결 구도를 만들어온 두 국가 사이에 형성된 감정의 산물이다. 우리 국민들은 그동안 혐한론을 일본인 일부의 구닥다리 같은 편견으로 치부해 왔지만, 최근 보면 결코 간과할 상태가 아니다. 일본 우익들은 한국인에 대한 비하뿐만 아니라, 일본에 뿌리를 박고 살고 있는 재일동포 사회에 대한 혐오마저 스스럼없이 드러내고 있다. 아베 정권이 ‘한국 때리기’를 계속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보수우익 결집을 목적으로 하는 일본 지도층에게 한국에 대한 공격은 좋은 먹잇감이 된다. 좋은 예로 일본인들에게 성스러운 의식인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대해 한국인들과 한국 언론이 격렬하게 비판하는 것에 대한 그들의 반발 심리가 작동한다. 일본 국민들은 사사건건 반일 감정을 여과 없이 전달하는 한국 언론과 국민들에게 불편한 심리를 보인다. ‘헌법 개정’을 위한 전주곡으로 설명되는 참의원 선거에서 일본 국민들의 견제 심리는 작동되지 않았다. 단적으로 우리 국민들이 반발하는 수출규제에 대해 일본 국민 여론은 우호적이다.

일본 국영방송인 NHK가 이달 5~7일 실시한 조사(자세한 개요는 그래프에 표시)에서 일본 국민에게 ‘아베 내각의 한국 수출규제 정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본 결과, ‘적절한 대응’이라는 의견이 45%로 가장 많았다. 부적절한 대응이라는 반대 응답은 단 9%에 불과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어느 쪽이라 말할 수 없다’는 응답이 37%로 나타났다는 점이다(그림2). 어느 쪽으로도 판단을 내리지 않는 의견이 뜻밖에도 아베 총리의 장기전 빌미가 되는 셈이다. 일본 내에서 실시되는 여론조사를 보면 일본 국민들은 고유한 성향 때문에 민감한 문제에 대해 판단을 유보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경우 아베 총리의 정책에 힘을 실어주는 여론이 아니지만 대체로 정권은 무시하고 지나치는 경우가 다반사다. 한국을 공격하는 경제 도발에 대해 일본 국민들 역시 적극적으로 동조하지는 않지만 반대 의견엔 힘이 실리지도 않는다.

 

일본 국민 여론을 교묘하게 동원

아베 총리의 경제 도발이 장기화되는 이유 중 특급 이유는 ‘과거’에 대한 엇갈린 판단 때문이다. 맞은 사람은 기억하지만 때린 사람은 그 사실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는 말이 있다. 일본의 경우를 두고 하는 설명으로 들린다. 과거 수많은 고통을 주었지만 지금 한국의 번영된 모습을 보면서 우리가 무슨 잘못을 했느냐는 심보를 드러낸다. 과거사에 대한 이해와 관심에 있어 한·일 간 격차는 극명하다.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적 사실을 일본인은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같은 과거의 시간이지만 기억하는 모습은 천양지차다. 아베 총리의 한국을 향한 경제 도발의 배경이 된 사건은 지난해 우리 대법원의 전범기업 강제징용에 대한 배상 판결이다. 국가 간 배상 청구권이 정리되었다고는 하지만 개인이 직면했던 과거의 고통과 배상은 아직 해결되지 않은 것으로 우리 법원은 판단했다. 우리 영토 내에서 우리 법원의 판결은 존중되어야 한다. 대법원의 판결이 일본 정부의 눈치를 볼 일은 아니다.

그런데 문제는 일본 국민들의 여론이다. 매우 당연시하는 우리 국민들의 태도와는 달리 일본 국민들은 아베 총리의 주장대로 한국 대법원 판결이 국제법 위반이라는 데 공감하고 있다. 한국일보와 요미우리신문의 지난 5월 공동여론조사(자세한 개요는 그래프에 표시)에서 ‘한국 대법원 판결이 국제법 위반이라는 주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본 결과, 일본 국민들은 10명 중 8명 가까이 공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우리 대법원의 판결이 잘못되었다는 인식이다. 반대로 우리 국민들은 10명 중 8명 가까이 일본의 주장에 공감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똑같은 ‘과거’에 대해 한·일 국민들의 생각은 정반대 결과였다. 한·일 간 가장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 일본 국민 여론을 등에 업은 아베 총리가 단기전이 아닌 장기전을 선택하는 배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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