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트도 외면한 제로페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될까
  • 김희진 시사저널e 기자 (heehee@sisajournal-e.com)
  • 승인 2019.07.26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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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가맹점 수수료 0.9%까지 인하” vs “수수료율 인하되면 비용부담 확대 불가피”

한국마트협회가 서울시의 지급결제 시스템인 제로페이 사업에 참여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의사를 밝혔다. ‘관제페이’라는 오명에도 정부가 활성화에 사활을 걸던 제로페이가 가맹점들에게도 외면받는 모양새다.

업계에 따르면 한국마트협회는 최근 중소벤처기업부와 서울시에 현행 제로페이 수수료율을 개선해 달라는 요구사항을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국마트협회는 4000여 개 동네마트를 회원으로 두고 있는 사단법인이다. 협회 관계자는 “제로페이 사업계획을 철회한 것은 아니다”면서도 “동네마트가 적용받을 수 있는 제로페이 수수료율을 따져보니 일반 카드사 수수료율과 별반 차이가 없어 중기부와 서울시에 개선을 요구하고 협의 중”이라고 설명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왼쪽 두 번째)이 3월13일 서울 중랑구 우림시장을 찾아 제로페이 시연과 함께 가맹을 독려하고 있다. ⓒ 서울시 제공
박원순 서울시장(왼쪽 두 번째)이 3월13일 서울 중랑구 우림시장을 찾아 제로페이 시연과 함께 가맹을 독려하고 있다. ⓒ 서울시 제공

‘관제페이’ 오명에 가맹점주들도 외면

실제로 사업장에 적용되는 결제 수수료율을 따져본 결과 제로페이와 신용카드의 수수료율이 큰 차이가 없고 일부는 오히려 제로페이가 더 높은 수수료율을 적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제로페이로 결제했을 때 수수료를 내지 않기 위해선 직전 연도 매출이 8억원을 넘지 않으면서 상시근로자 수가 5인 미만이어야 한다. 상시근로자 수가 5인 미만인 가맹점 중 직전 연도 매출이 8억원을 초과하는 경우엔 0.3%, 12억원을 초과하면 0.5%의 수수료를 내야 한다.

한국마트협회에 회원으로 등록된 마트들의 평균 매출액은 90억원, 평균 종업원 수는 30명이다. 대부분 매출액이 8억원을 넘고 상시근로자가 5명 미만인 곳도 드물어 ‘소상공인’이 아닌 ‘일반 가맹점’에 해당하는 마트들이 상당수다. 이 때문에 협회 회원사 대부분이 수수료율 ‘제로’ 혜택을 적용받지 못한다.

일반 가맹점은 1.2%의 제로페이 결제 수수료율을 적용받는다. 연매출 5억~10억원에 해당하는 가맹점의 체크카드 수수료율이 1.1%, 신용카드가 1.4%인 것을 고려하면 제로페이의 수수료율이 체크카드보다 높고 신용카드와는 별반 차이가 없는 셈이다. 한국마트협회는 현행 1.2%인 일반 가맹점 수수료율을 직불카드 수수료(1.0%)보다 더 낮은 0.9%까지 내려 달라는 내용의 건의사항을 제시한 상태다. 도입 초기 소상공인의 비용 부담을 덜어주겠다는 취지로 시작된 제로페이가 결국 지금에 와서는 가맹점들로부터도 쓴소리를 듣게 된 상황이다.

그러나 중기부와 서울시의 제로페이 담당자들은 한국마트협회 회원 상당수가 매출액 기준 소상공인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중기부 관계자는 “협회 회원 중 매출액이 10억원 미만인 곳이 한 곳도 없는 것으로 안다”며 “소상공인으로 보기 어렵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라고 말했다. 서울시 제로페이 담당자 역시 “동네마트 중에서도 규모가 큰 마트들이 주로 한국마트협회 회원으로 가입돼 있어 일반 가맹점 수수료율을 적용받는 회원사들이 많다”며 “협회가 수수료율 인하를 요구하고 있지만, 서울시나 중기부가 주도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사항은 아니다. 제로페이에 참여하는 28개 민간 결제사들의 합의에 따라 결정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국마트협회의 수수료율 인하 요구에 금융사들은 벌써부터 걱정이 태산이다. 수수료율은 28개 민간 결제사들이 검토할 사안이라는 게 서울시와 중기부의 입장이나 제로페이 가맹점인 한국마트협회가 계속 수수료율 인하를 요구할 경우 결제 사업자들에게 정부 입김이 작용할 공산이 높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한국마트협회가 제로페이 수수료율 인하를 요구하기 전에도 금융사들은 불만이 많은 상황이었다. 제로페이 사업에 참여하며 실익 없이 운용비용 부담만 가중되고 있어서다. 이 같은 상황에서 정부가 수수료율 인하를 요구할 경우 비용 부담이 커질 수 있다는 게 금융권의 시각이다.

 

제로페이 비용 부담, 또다시 기업 몫으로

중기부는 6월 제로페이 운영법인 설립준비위원회 명의로 주요 시중은행에 공문을 보내 10억원대 설립 출연금을 요청한 바 있다. 추후에 법인을 만들면 은행들의 출연금을 기부금으로 처리하겠다는 내용이 골자였다.

제로페이를 둘러싸고 ‘관제페이’라는 비판이 나오자 정부는 표면상으로 제로페이의 운영권을 민간에 넘기겠다며 전담 운영법인 설립을 추진했다. 문제는 애초에 제로페이 사업 자체가 정부 주도로 시작됐음에도 불구하고 사업 전담 운영법인을 만드는 데 필요한 재원을 은행들에게 요구하며 부담을 민간에 떠넘겼다는 점이다.

중기부는 강제성이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해명하지만 금융사들은 정부로부터 혹시나 불이익을 받지 않을까 하는 걱정에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제로페이는 애초에 결제 사업자에게 이득이 없는 사업”이라며 “정부 독려에 따라 기업이 손해를 감수하면서 사업에 참여하고는 있지만 얼마나 지속 가능할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제로페이에 참여한 한 금융사 관계자는 “민간 결제사 입장에선 수수료로 벌어들이는 이익도 없는 데다 제로페이 사업 운영비용까지 대야 해서 부담이 크다”며 “제로페이의 결제 수수료가 ‘제로(0)’일 수 있는 건 결국 금융사가 비용을 떠안기에 가능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제로페이 활성화에 주력하는 정부 입장에선 마트협회가 강경하게 나온다면 수수료 인하를 적극 검토할 것”이라며 “만약 마트협회 요구에 따라 일반 가맹점 수수료율을 인하한다면 금융사의 비용 부담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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