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으나 마나 한 ‘대학 성평등센터’…‘非전공’ 센터장이 80%
  • 박성의 기자 (sos@sisajournal.com)
  • 승인 2019.07.30 14:00
  • 호수 1554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센터 상담 직원도 일반행정직이 대부분
“성평등센터장, 외부인사 영입도 해법”

골프를 전공한 교수가 ‘성희롱 대응 매뉴얼’을 알고 있을 확률은 얼마나 될까. 시사저널 취재 결과, ‘성평등(성폭력)센터’를 운영 중인 국내 대학 10곳 중 8곳이 성(性)문제 및 상담 관련 지식이 전무한 교수를 센터장에 앉힌 것으로 드러났다. 성고충 상담을 전담하는 실무자 역시 전문가가 아닌 다른 업무를 겸임하는 일반행정직원이 대다수였다. 대학 성평등 기구가 있으나 마나 한 것처럼 운영되는 사이, 성희롱·성폭행 피해자들에 대한 보호대책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학생들의 불만이 속출하고 있다.

시사저널과 만난 국내 한 사립대학의 전(前) 성평등 센터장은 “성희롱이나 여성학 관련 지식이 없는 사람을 센터장에 앉히다보니, 사건이 터지면 피해자 보호 보다는 사태 확산을 막는 것에만 급급한 게 현실”이라며 “관련 전문가를 뽑으려 해도, 예산이 아깝다는 이유로 계약직이나 기존 행정직원으로 센터를 굴리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고 토로했다.

7월7일 서울 여의도 여의나루역 앞에서 열린 ‘대학 내 권력형 성폭력·인권침해 해결을 위한 집회’에서 참가자들이 피켓을 들고 있다. ⓒ 뉴스뱅크
7월7일 서울 여의도 여의나루역 앞에서 열린 ‘대학 내 권력형 성폭력·인권침해 해결을 위한 집회’에서 참가자들이 피켓을 들고 있다. ⓒ 뉴스뱅크

아무나 하는 ‘성평등센터장’

서울 한 4년제 대학 경영학과에 다니던 최수진씨(여·가명·24). 지난해 5월 최씨를 지도하던 A교수가 “인턴 자리를 소개시켜 주겠다”며 술자리로 최씨를 불렀다. 최씨가 도착한 자리에는 40대 중소기업 대표가 있었다. A교수는 최씨에게 “저 대표가 아직 팔팔한 솔로다. 남자친구로 나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술자리 내내 비슷한 발언이 이어졌고 최씨는 이를 성희롱이라 판단했다. 최씨는 학내 성평등센터를 찾았다. 센터에 있는 한 직원에게 이 같은 사실을 털어놓는 사이, 센터장으로 있는 이공계 교수 B씨가 들어왔다. 최씨의 사연을 들은 B교수는 허탈한 듯 웃으며 “대표가 30대였어도 성희롱이라 생각했겠냐”며 “나이 많은 남자랑 사귀라 했다고 성희롱이면, 공대 졸업한 노총각들이 서러워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씨는 “B교수는 상담 내내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을 지으며 ‘오버한다’는 태도로 일관했다. 성평등센터장이라는 교수가 성희롱의 정의조차 모르는 것 같았다”며 “취업을 앞둔 시기라 고민 끝에 찾은 것인데, 센터장 대응에 더 큰 상처를 입어야 했다. 도대체 어떤 기준으로 대학이 성평등센터장을 임명하는 건지 의아했다”고 전했다.

실제 학내 성희롱 문제를 비(非)전문 교수가 총괄하는 경우는 비일비재하게 발생하고 있다. 이학재 자유한국당 의원이 교육부로부터 제출받은 ‘2019년 대학 내 성희롱·성폭력 담당기구 부서장 현황’에 따르면, 국내 대학의 약 80.46%가 상담이나 성희롱 관련 지식이 전무한 교수들을 센터장 자리에 앉힌 것으로 드러났다. 해당 자료는 교육부가 지난 6월 작성한 것으로, 국내 4년제 및 전문대학 261개교가 대상이 됐다. 여기에 포함되지 않은 일부 대학들은 아예 해당 센터가 없거나 자료를 제출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교육부 관계자는 “현재 우리나라 대부분의 대학에 성고충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부서가 있으나, 관련자 부재 등의 이유로 회신을 거부한 대학은 이번 조사 대상에서 제외됐다”고 밝혔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상담·심리학이나 여성학 등 관련 전공자를 상담센터장으로 임명한 대학은 9.96%(26개교)에 그쳤다. 여성 복지나 상담 등을 부수적으로 전공한 사회복지학과 교수를 임명한 대학(25개교)을 합치더라도, 성평등 상담 관련 전공교수가 센터장으로 있는 학교는 19.54%(51개교)에 불과했다. 성평등센터장의 전공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 것은 간호·물리치료학과로 13.79%(36개교)였다.

이 외에 담당 교수의 전공을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기계공학과 등 이공계 7.66%(20개교) △체육이나 음악, 연기 등 예·체능학과 7.28%(19개교) △법대 5.75%(15개교) △사학과 등 인문계열 5.75%(15개교) △종교·철학 5.75%(15개교) △교육대 4.98%(13개교) △유아교육 4.60%(12개교) △경영·경제 4.21%(11개교) △청소년학과 등 사회과학계열 3.06%(8개교) △의예 0.76%(2개교) △조리과 등 기타 학과 9.19%(24개교)였다. 이 밖에 교수가 아닌 일반행정직원이 센터장으로 있는 학교는 7.28%(19개교)였으며, 센터만 있고 센터장을 임명하지 않은 학교(1개)도 있었다.

센터장 자신도 모르는 ‘센터장 임명 이유’

대학은 이 같은 실태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취재 중 만난 대학 관계자들은 “센터장의 전공과 센터 운영은 관계가 없다”고 입을 모았다. 센터장은 조직의 운영 전반을 관리하는 보직일 뿐, 상담 실무와는 연관관계가 없다는 것이다. 유아교육과 교수가 센터장을 맡고 있는 서울 4년제 한 사립대학 관계자는 “센터장은 단순 행정 보직이다. 교수가 직접 상담을 하는 경우는 굉장히 드문 케이스”라며 “센터가 있다는 사실이 중요한 것이지, 센터장이 누구냐는 시빗거리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경영학과 교수가 센터장을 맡고 있는 또 다른 대학의 관계자 역시 “센터장은 센터 운영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말했다. 사실상 성평등센터장 자리가 ‘껍데기’에 불과하다는 것을 자인한 셈이다.

2년 전 국내 한 대학의 성평등센터장 자리에 있었다는 K교수는 “대학이 센터장에게 바라는 것은 공감 능력이나 전문지식이 아니다. 학교의 이익을 해하지 않으면서도, 사태 확산을 사전에 방지하는 정도면 충분하다는 게 대학의 입장”이라고 했다. 그는 이어 “내 다음 후임을 뽑는 과정에서도 특별한 논의가 없었다. 총장의 ‘여자가 맡으면 어때’라는 소리에, 본인 의지나 전공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간호학과 교수가 센터장에 임명됐다”고 말했다.

센터장의 전문성이 결여된 상황에서, 센터에서 근무하는 상담직원들의 숙련도 역시 떨어진다는 분석도 나왔다. 교육부가 지난해 발표한 ‘2018 대학 내 성희롱·성폭력 실태조사’에 따르면, 대다수의 대학 내 성평등 기구 관련 담당자들의 경력이 짧을 뿐 아니라 타 업무와 겸임하는 경우도 많았다. 성고충 상담업무 외 타 업무를 수행하는 비율은 일반대학 88.3%, 전문대학 99.2%에 달했다. 소속은 성평등센터지만 업무시간의 대부분을 교직원 교육, 인사, 행정 업무 등에 할애하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간판만 ‘성평등센터’일 뿐, 근무하는 센터장과 직원이 전문적인 상담 서비스를 제공할 가능성은 매우 낮은 셈이다.

대학 성평등센터가 허술하게 운영되는 사이, 대학 내 성희롱·성폭력 사건은 계속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 교육부가 지난해 3월 장정숙 민주평화당 의원실에 제출한 ‘2013~17년 연도별, 유형별 대학 내 성범죄 발생현황’에 따르면, 성범죄 사건 수는 △2013년 35건 △2014년 40건 △2015년 64건 △2016년 75건 △2017년 107건 등 매년 증가했다. 가해자별로 살펴보면 △학생 106건 △교수(교원) 38건 △직원 16건 △강사 6건 △조교 1건 등으로 조사됐다. 5년간 집계된 총 320건의 사건 가운데 징계된 수는 209건으로, 나머지 111건은 증거 부족이나 합의 등의 이유로 징계 대상에서 제외됐다.

정부 역시 이 같은 실태를 인지하고 있다. 지난 4월30일 교육부·법무부·문체부·복지부·고용부·경찰청·대검찰청 등 8개 기관에 양성평등 전담부서(양성평등정책담당관)를 신설하는 직제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영역별 성차별·성폭력 문제에 지속적·체계적으로 대응하겠다는 게 직제안의 골자다. 이번 개정으로, 미투운동 현안 영역인 학교, 체육·문화예술계, 직장 등을 소관하는 교육부, 법무부, 문체부, 복지부, 고용부에 양성평등 전담부서를 새로 신설하게 된다. 지난해 경찰청·대검찰청에 임시적으로 설치된 양성평등정책담당관을 정규 직제에 반영하는 한편 국방부의 성희롱·성폭력 근절 담당 인력도 보강하기로 했다.

 

분노한 대학생들 “국회·교육부 나서라”

그러나 정부가 말로만 대응책 강화를 외칠 뿐, 대학 내 성희롱 관련 행정에는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 교육부 관계자는 ‘대학 내 성희롱 성폭력 담당기구 운영 관련 교육부 규정 또는 지침이 있냐’는 질문에 “각 대학의 성희롱 성폭력 담당기구 운영은 대학 내부의 조직과 운영에 관한 사항으로, 각 대학의 규정 또는 지침이 있을 뿐”이라고 답했다. 성평등센터 문제가 표면화되더라도, 대학의 ‘셀프 개선’ 외에는 정부로선 손쓸 도리가 없다는 것이다.

학생들은 이 같은 실태에 분노하고 있다. 서울대 총학생회, 동국대 사회과학대학 운영위원회 등 15개 대학생 단체는 지난 7월7일 서울 여의나루역 인근에서 ‘대학 내 권력형 성폭력·인권침해 해결을 위한 집회’를 열고 대학의 부실한 성희롱 관련 대책 문제를 꼬집었다.

단체는 “대학 내 피해자들은 교원징계위원회가 가해자 징계를 논의하는 과정에서 완전히 배제된다”며 “진행 상황, 징계 결과도 알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피해자는 학교로부터 보호받아야 하지만 교내 인권센터와 성평등센터가 아예 없거나 있더라도 전문성이 부족해 2차 가해가 일어나는 경우가 매우 많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대학 내 성폭력 사건을 담당하는 인권센터를 내실화해야 한다”며 “가해 교수 징계 과정에서 피해자의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날 집회를 마친 참가자 700여 명은 ‘교육부와 국회는 대학 내 권력형 성폭력 및 인권침해를 해결하라’ 등의 현수막을 들고 국회 앞으로 행진했다.

“성평등센터장, 외부인사 영입도 해법”

국내 대학 중 인권센터를 최초로 설립한 곳은 중앙대다. 2013년부터 기존 성평등상담소와 더불어 인권상담소를 운영하고 있다. 이 작업을 진두지휘한 이가 여성학자인 이나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다. 그는 대학 내 성평등 기구 문제를 어떻게 진단하고 있을까. 이 교수는 “여성학 수업도 안 들어봤고 상담도, 법적 지식도 없는 사람이 어떻게 성폭력 문제를 처리할 수 있겠는가”라며 “성폭력 사건을 한 번도 다뤄보지 않은 교수가 해당 사건을 계속 맡는다면, 학생들은 학교를 불신할 수밖에 없게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 교수는 이어 “현재의 대학은 젠더 문제에 대한 기본 인식 자체가 매우 낮고, 이 탓에 (성평등 기구의) 비전문성이 강화·재생산되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며 “성평등 기구는 존재만으로 의미를 갖지 않는다. 지금의 유명무실한 상황을 탈피하기 위해 대학과 이해관계가 맞물리지 않은 외부 전문가를 초빙해 센터장으로 앉히는 것도 해답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